집에 오니 아이를 씻기는 것부터 문제였다. 난 산후조리를 해야하니 갓 태어난 아가를 씻기는 것은 대학생인 시누와 랑 차지이니 말이다.
둘은 방으로 따스한 물을 받아왔다. 첫 아이 때 사용하려고 사왔던 아기 목욕용 그물은 새걸로 그대로 있어서 그걸 꺼내줬다.
둘은 이렇게 하는거네 저렇게 하는 거네 실랑이를 하다 합의점을 찾았는지 조용히 목욕을 시켰다. 쩔쩔매며 온 방안에 물을 튕기며 아가를 씻겼는데 참 대견해 보였다. 아가는 깨끗이 씻겨졌고, 분까지 바른 모습이 그럴싸했다.
그들은 처음에 모르고 배꼽도 안 뗀 아가를 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갓난쟁이 배꼽은 거즈에 딱쟁이가 제대로 앉지 않아서 빨갛게 덧났다. 시시때때로 소독을 해줬지만 빨갛게 부어오르는 배꼽이 무서워서 의사를 불렀다. 나도 아가 낳은 뒤 후유증이 심해서 의사의 왕진이 필요했다. 몇번의 의사의 방문뒤로 나도 아가도 염증의 기미는 가라앉아갔다.
난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아가는 배꼽이 떼어져 나가도 염증이 났던 배꼽이어서 쏙 들어가야 이쁠텐데...참외배꼽처럼 톡 튀어나오게 됐다.
에구. 기집애인데...배꼽이라도 내어놓는 비키니 수영복이라도 입을 때 엄마를 원망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커가면서 튀어나온 배꼽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랑은 아기 낳은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친구들을 불러왔다. 철없는 총각 친구들은 아기 낳은 집은 삼칠일동안 가면 안된다는 것도 모르고 놀러들와서 아사도를 구워먹었다.
대학생 시누는 내 밥이며 미역국이며 중간 간식으로 호박죽까지 해서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가끔 화나면 성질은 부릴지언정 심성은 착하고 곱다. 아가씨는 한달동안 최선을 다해서 내 산후조리를 위해서 힘써줬다. 정말 잘해줬다.
랑은 시누 힘들게 눈치도 없이 매일같이 친구들을 불러서 내가 한마디 했다. 철도없이 친구들을 부르면 아가씨 내 밥도 하기 힘들텐데 그거까지 어케 다하냐고 했더니 랑은 기분나쁘다며 화를 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나도 막 화를 내었다. 나와 아가를 돌봐주지 않는 랑에게 섭했다. 랑은 이제 밖으로 돌았다.
낚시를 다니고, 고스톱을 치러다니고, 나 산후 조리 할 동안 아가씨만 죽어났다. 자기 새끼 낳았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놀러만 다니는 철없는 랑이 너무 미웠다.
우린 서로 으르렁대며 미워했다. 랑은 이혼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나보고 너무 뎀비고 기가 쎄며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버릇을 다시 가르쳐야 되겠다는 둥 날 무시하는 태도와 못된 행동을 일삼았다. 칠거지악에 드는 거니깐 자기가 날 쫓아낼 수도 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난 너무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삼일만에 술이 취해 들어온 랑을 붙들고 정말 이렇게 해도 되냐고 따졌다. 남자가 어디를 나갔다 삼일만에 와도 따지면 안되는게 여자란다. 웃기고 있네.
난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엄마도 너무 보고싶었다. 날마다 울어서 산후의 내 눈은 극도의 피로로 시달렸다. 랑은 이런 내가 지겹고 싫다고 했다. 짜증나고 온순하지 못한 내가 진절머리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밖으로 뛰쳐 나갔다.
랑의 방황기였고, 랑이 내게 권태기를 가진 위험한 시기였다.
산후 한달이 다 되어가는 시기였는데 난 화가 나서 밖으로 쫓아나갔다. 어딜 가냐고 물으며 실랑이를 벌이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짐을 느꼈다. 매일 누워서 울기만했더니 심신이 너무 쇠약해져 있었다. 거리에서 난 힘없이 주저앉았다. 설움이 복받쳤다. 랑은 쇼부리지 말라고 날 밀쳐냈다.
왜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돌변했을까?
난 거리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넘어졌다. 랑은 술이 잔뜩 취한 상태에서 날 보며 웃었다. 난 랑의 웃음을 들으며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넌 용서못해.'
깨어보니 아가씨와 랑이 날 업고 집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화가 잔뜩 난 소리로 오빠와 날 비난하고 있었다. 난 아가씨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산후조리를 열심히 해줬는데 내가 이 모양으로 밖 차가운 길바닥에서 기절이나 하고...
방에 눕혀진 나는 눈물만 났다.
랑은 자기가 하던 기세가 있으니깐 조금의 누그러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나도록 집에 연락없이 안들어왔다.
그래. 너 그렇게 살아라. 난 나대로 살께.
이틀만에 들어온 랑에게 난 아무 말도 안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완벽하게 해냈다. 청소도 밥도 아이 키우는 것도 잘 해냈다. 단지 랑하고 완전 대화 단절에 들어갔다.
'넌 그런 대접을 받아야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공격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지렁이의 꿈틀거림같은 것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는 랑도 그 이혼남들의 조언을 멋지게 받아들여서 날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난 속으로 말했다.
'그래. 그런 사람들의 조언은 그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만들지.'
난 그 날 이후로 이혼을 꿈꿨다. 내가 당해온 설움. 인내... 그 모든 것이 무엇이었던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거 아냐. 남편이 몰라주는데 내가 왜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거냐고. 그만 두자.
하지만, 난 세상도 모르고 무능하고 돈도 없고 어렸다. 바보같은 내가 싫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게 난 여자 혼자 사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과부라서 여자 혼자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 속 깊이 아는 난 정말 나 혼자 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 새끼들에게 아빠란 자리를 없애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너무 슬펐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68. 산후조리
집에 오니 아이를 씻기는 것부터 문제였다. 난 산후조리를 해야하니 갓 태어난 아가를 씻기는 것은 대학생인 시누와 랑 차지이니 말이다.
둘은 방으로 따스한 물을 받아왔다. 첫 아이 때 사용하려고 사왔던 아기 목욕용 그물은 새걸로 그대로 있어서 그걸 꺼내줬다.
둘은 이렇게 하는거네 저렇게 하는 거네 실랑이를 하다 합의점을 찾았는지 조용히 목욕을 시켰다. 쩔쩔매며 온 방안에 물을 튕기며 아가를 씻겼는데 참 대견해 보였다. 아가는 깨끗이 씻겨졌고, 분까지 바른 모습이 그럴싸했다.
그들은 처음에 모르고 배꼽도 안 뗀 아가를 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갓난쟁이 배꼽은 거즈에 딱쟁이가 제대로 앉지 않아서 빨갛게 덧났다. 시시때때로 소독을 해줬지만 빨갛게 부어오르는 배꼽이 무서워서 의사를 불렀다. 나도 아가 낳은 뒤 후유증이 심해서 의사의 왕진이 필요했다. 몇번의 의사의 방문뒤로 나도 아가도 염증의 기미는 가라앉아갔다.
난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아가는 배꼽이 떼어져 나가도 염증이 났던 배꼽이어서 쏙 들어가야 이쁠텐데...참외배꼽처럼 톡 튀어나오게 됐다.
에구. 기집애인데...배꼽이라도 내어놓는 비키니 수영복이라도 입을 때 엄마를 원망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커가면서 튀어나온 배꼽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랑은 아기 낳은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친구들을 불러왔다. 철없는 총각 친구들은 아기 낳은 집은 삼칠일동안 가면 안된다는 것도 모르고 놀러들와서 아사도를 구워먹었다.
대학생 시누는 내 밥이며 미역국이며 중간 간식으로 호박죽까지 해서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가끔 화나면 성질은 부릴지언정 심성은 착하고 곱다. 아가씨는 한달동안 최선을 다해서 내 산후조리를 위해서 힘써줬다. 정말 잘해줬다.
랑은 시누 힘들게 눈치도 없이 매일같이 친구들을 불러서 내가 한마디 했다. 철도없이 친구들을 부르면 아가씨 내 밥도 하기 힘들텐데 그거까지 어케 다하냐고 했더니 랑은 기분나쁘다며 화를 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나도 막 화를 내었다. 나와 아가를 돌봐주지 않는 랑에게 섭했다. 랑은 이제 밖으로 돌았다.
낚시를 다니고, 고스톱을 치러다니고, 나 산후 조리 할 동안 아가씨만 죽어났다. 자기 새끼 낳았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놀러만 다니는 철없는 랑이 너무 미웠다.
우린 서로 으르렁대며 미워했다.
랑은 이혼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나보고 너무 뎀비고 기가 쎄며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버릇을 다시 가르쳐야 되겠다는 둥 날 무시하는 태도와 못된 행동을 일삼았다. 칠거지악에 드는 거니깐 자기가 날 쫓아낼 수도 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난 너무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삼일만에 술이 취해 들어온 랑을 붙들고 정말 이렇게 해도 되냐고 따졌다. 남자가 어디를 나갔다 삼일만에 와도 따지면 안되는게 여자란다. 웃기고 있네.
난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엄마도 너무 보고싶었다. 날마다 울어서 산후의 내 눈은 극도의 피로로 시달렸다.
랑은 이런 내가 지겹고 싫다고 했다. 짜증나고 온순하지 못한 내가 진절머리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밖으로 뛰쳐 나갔다.
랑의 방황기였고, 랑이 내게 권태기를 가진 위험한 시기였다.
산후 한달이 다 되어가는 시기였는데 난 화가 나서 밖으로 쫓아나갔다. 어딜 가냐고 물으며 실랑이를 벌이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짐을 느꼈다. 매일 누워서 울기만했더니 심신이 너무 쇠약해져 있었다.
거리에서 난 힘없이 주저앉았다. 설움이 복받쳤다.
랑은 쇼부리지 말라고 날 밀쳐냈다.
왜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돌변했을까?
난 거리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넘어졌다. 랑은 술이 잔뜩 취한 상태에서 날 보며 웃었다. 난 랑의 웃음을 들으며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넌 용서못해.'
깨어보니 아가씨와 랑이 날 업고 집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화가 잔뜩 난 소리로 오빠와 날 비난하고 있었다.
난 아가씨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산후조리를 열심히 해줬는데 내가 이 모양으로 밖 차가운 길바닥에서 기절이나 하고...
방에 눕혀진 나는 눈물만 났다.
랑은 자기가 하던 기세가 있으니깐 조금의 누그러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나도록 집에 연락없이 안들어왔다.
그래. 너 그렇게 살아라. 난 나대로 살께.
이틀만에 들어온 랑에게 난 아무 말도 안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완벽하게 해냈다. 청소도 밥도 아이 키우는 것도 잘 해냈다. 단지 랑하고 완전 대화 단절에 들어갔다.
'넌 그런 대접을 받아야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공격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지렁이의 꿈틀거림같은 것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는 랑도 그 이혼남들의 조언을 멋지게 받아들여서 날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난 속으로 말했다.
'그래. 그런 사람들의 조언은 그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만들지.'
난 그 날 이후로 이혼을 꿈꿨다.
내가 당해온 설움. 인내... 그 모든 것이 무엇이었던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거 아냐. 남편이 몰라주는데 내가 왜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거냐고.
그만 두자.
하지만, 난 세상도 모르고 무능하고 돈도 없고 어렸다. 바보같은 내가 싫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게 난 여자 혼자 사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과부라서 여자 혼자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 속 깊이 아는 난 정말 나 혼자 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 새끼들에게 아빠란 자리를 없애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너무 슬펐다.
그렇게 말없이 대화없이 한 집 별거생활 3개월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