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가 효은을 흔들어 깨웠다. 벌써 영국이었다. 이상하게도, 비행기는 텅텅 비어서 출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와 효은의 좌석은 붙어있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 담요를 덮고 잤고 도착한다는 방송에 레오가 먼저 눈을 뜬 것이다.
-벌써 영국이야?
효은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것 같네.
레오 역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입국장을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베스였다. 어디에 있어도 튀는 그녀의 패션 감각 덕분이었다.
-여깁니다, 사장님.
요한센이 제일 먼저 다가와 레오의 짐을 받으려 했다.
-숙녀 분 먼저.
레오가 눈짓으로 효은의 짐을 가리켰다. 요한센이 씩 웃더니 효은의 짐을 받았다.
-효은!
-베스!
두 룸메이트는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저 두 분 혹시 사귀시는 거 아닙니까?
갑자기 머쓱해진 레오에게 요한센이 물었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어.
베스와 효은이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음, 두 분 댁까지 모셔다드리죠. 그건 괜찮겠지요, 아가씨?
요한센의 말에 베스가 재빨리 좋다고 대답했다. 효은이 눈을 흘기자 베스는 뭐 어떻냐는 식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고 네 사람은 공항을 빠져나왔다.
-야, 엄마 아빠는 만났어? 식당은 좋던? 동생은?
-하나씩만 물어봐. 식당은 좀 컸구, 손님도 많고. 새로 산 아파트도 좋고. 효민이는 이번에 군대간다더라.
-내 선물은?
베스의 질문에 효은이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 출장비가 너무 적게 나와서 못 샀어. 대신 근사한 저녁 살게.
효은의 말에 베스는 노골적으로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밥 뭐 살건데?
그때, 차가 멈추고, 요한센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요한센은 내려서 효은의 짐을 챙겼다.
-아니에요. 우리가 할게요. 잘 가요, 요한센. 그로스베너씨.
-또 뵙죠.
요한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떨결에 베스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있어. 연락할게.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눈동자만은 부드럽게 인사하고 있었다. 효은 역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봐요. 잘 가요.
요한센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베스가 호들갑을 떨었다.
-너, 저 남자랑 같이 온 거야?
-우연히 비행기 같이 탄 거야. 그리고 너 짐 좀 들어. 안 그러면 선물 안준다.
-어? 선물? 뭐 사왔는데?
-화장품.
화장품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베스는 효은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손가방까지 빼앗아 들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효은이 피식 웃더니 그녀 뒤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같이 가, 베스!
-사무실로 가, 요한센.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들을 꺾었다.
-그런데, 요한센. 타고 온 비행기가 이상하게 텅텅 비었더군.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짐짓 눈을 크게 뜨고 놀랍다는 말투로 말했다.
-한국이 불황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줄었나 보죠? 다행입니다. 우리 그룹은 항공사는 없잖아요?
-그게 아니라. 다 예약된 좌석인데 돈만 내고 비행기를 안탔대.
-그래요? 뭐, 백만장자가 돈 자랑 했나보죠? 아니면 돈보다 더 귀중한 걸 위해 투자했던지.
요한센의 말에 레오가 눈을 흘겼다.
-그건 그렇고 아가씨와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셨습니까? 설마 올해 안에 결혼 하실 건 아니시죠?
-솔직히 말해, 요한센.
레오는 교묘하게 요한센의 질문을 피해가며 물었다.
-제가 솔직히 말할테니 사장님도 솔직해지시죠.
-좋아.
-제가 비행기 좌석을 전부 사버렸습니다. 덕분에 이틀 동안 소파에서 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티켓 대금을 사장님이 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가씨와 보낸 시간은 돈으로 살 만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 좋아. 그 티켓 값은 다 갚아주지 대신.
-대신 뭡니까?
-이번 월말 보너스 없는 거야.
-너무 하십니다. 뭐, 그걸로 때우죠. 이번엔 제 질문입니다.
요한센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로스베너 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효은 아가씨 마음을 얻으셨습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더 이상 싸우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어. 친구와 연인 그 사이인 것 같아. 신데렐라는 싫다더군.
차가 빌딩 앞에서 멈췄고 빌딩 경비 두 명이 달려 나왔다. 한 사람은 차 키를 받았고, 한 사람은 레오의 짐을 받았다.
-전 그 점이 마음에 듭니다.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웬 떡이냐 하지 않았겠어요?
-나도 그 점이 마음에 들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녀는 나하고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아. 그리고 여기는 너무 불편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레오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담스러워.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를 사랑하시는 군요.
-사랑이라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요한센이 맨 윗 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난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
-조금만 있으면 사장님은 그로스베너의 모든 주식을 포기하고라도 그 아가씨의 마음을 잡으려고 할 걸요?
-요한센!
레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요한센이 귀를 막는 시늉을 해 보였다.
-사장님은 그 아가씨를 사랑하는 겁니다. 사장님이 갖고 있는 어느 무엇보다 더 그 아가씨가 소중한거죠. 그래서 다른 모든 것들이 부담스러우신 겁니다. 왜 머리 좋으신 분이 그건 모르세요?
요한센이 핀잔을 주자 레오는 다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지도 몰라. 난 겁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저 좋은 친구라고 말해버리면. 난 어떡하냐고.
-정말 큰일 났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다. 레오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레오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 내 침실에서 좀 자고 싶어. 깨우지 말아줘. 그리고 잡지사 설립 계획안 다 준비 되었지?
방금 전까지 칭얼거리던 사랑에 힘들어하는 레오는 어디로 가고 침착하고 냉정한 사업가 레오가 서 있었다.
-네.
-세 시간 뒤에 깨워주고. 그때 설립안 가져오도록.
레오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넥타이를 벗어던지고는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적었다.
-아, 참! 요한센!
-네, 사장님.
나가려던 요한센은 레오가 부르자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강효은씨 핸드폰 하나만 해다 줘. 이유는 묻지 말고! 이 메모하구.
그러다 요한센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며 메모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나갔다.
정확히 30분 뒤 노키아의 최신형 핸드폰이 효은의 손에 놓였다.
-에? 이게 뭐죠?
효은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요한센을 올려다 봤다.
-글쎄요. 사장님이 드리라고 했습니다만.
-음.
효은은 잠깐 동안 고민했다.
-고마워요. 어쨌든. 잘 쓸게요. 그런데 그로스베너씨는 지금 뭐 하시나요?
-주무십니다.
-알았어요. 잘 가요.
문이 닫히자마자 베스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효은이 들고 있는 노키아의 최신식 휴대폰을 보자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와. 이거 이번 달에 나온 핸드폰이잖아! 이거 갖고 싶었는데. 너 진짜 좋겠다. 그 사람 그로스베너 비서지?
-그렇긴 한데 이걸 받아야할지 모르겠어.
-야, 받어. 그 사람 성의도 생각해 줘야지. 너한테 전화하겠다는 약속 지킬려구 그러는 거 아냐?
-설마.
효은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어보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나는 언제 그런 애인 만나냐? 하는 베스의 푸념 소리가 들렸다.
-아, 참 베스!
닫히려던 문이 다시 열렸다.
-왜?
-너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 하면 안돼? 니가 생각 하는 것 보다 우린 훨씬 더 멀고 먼 관계니까.
문이 닫히자 베스는 효은의 말투를 흉내냈다.
-멀고 먼 관계? 어디 찔리긴 하구만! 알았어!
베스의 말에 정말 가슴이 뜨끔한 효은은 핸드폰 상자 안에 들어있는 레오의 메모를 꺼냈다.
전화기를 항상 켜두세요.
-개구리 올림
레오의 말투가 생각난 효은은 피식 웃고 말았다. 검은 바탕에 빨간 장식이 들어간 노키아 핸드폰은 카메라도 있고, 어쨌든 최신식이긴 한 것 같았다. 핸드폰 전원을 누르며 효은은 살짝 웃었다. 재밌는 사람이야. 효은은 핸드폰 액정에 자기 이름을 입력했다. “멀고 먼 관계”
정확히 세 시간이 지나자 요한센은 레오의 방문을 두드렸다. 사장실과 통하는 레오의 방 -레오는 그곳을 비밀의 화원이라고 불렀다. - 의 존재는 요한센 밖에 몰랐다. 그리고 그 방의 열쇠는 요한센에게도 없었다. 오직 레오만의 방이었다.
-들어와.
요한센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레오의 방은 그의 취향대로 화이트와 블랙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그리고 반 투명 유리로 된 욕실과 분리된 화장실이 있었고 한 쪽 벽은 거울 유리로 되어있었다. 레오는 샤워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쉬셨습니까? 그리고 이게 강효은씨 전화번호입니다.
-고마워. 지금이 네 시지? 정확히 삼십분 뒤에 중역회의 소집해. 이제 일 해야지.
-네. 소집하겠습니다.
참 타고난 사업가야. 요한센은 미소 지으며 레오의 방에서 나왔다. 레오는 전화기를 들고 효은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피곤해서 자나? 30분 뒤엔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레오는 와이셔츠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 대, 전화벨이 울렸다. 레오는 날듯이 뛰어와 전화기를 들었다.
-그로스베너입니다.
-전화했었어요? 미안. 나 자고 있었어.
-내가 괜히 깨웠네. 더 자.
레오는 괜시리 미안해졌다.
-뭐해요?
-회의 들어갈건데. 있다 저녁때 얼굴 보여줄 수 있을까?
레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녁에요? 언제요?
-음.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끝나고 전화하지.
-그래요, 그럼. 하지만 너무 늦게는 안돼요. 적어도 밤 9시 이전에는 연락줘요.
-그래요, 그럼.
-그럼 있다 봐요. 안녕.
-안녕.
전화를 내려놓은 레오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레오는 재빨리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사업가로 변신했고, 정확히 30분 뒤 중영 회의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번 주 연재는 끝이네요~
다음주 월요일에 더욱 재밌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추천은 필수...댓글은 기본...ㅋ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다음주 예고
효은과 레오의 서울 데이트 사진을 찍어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레오는 그 협박범을 고소한다. 그러나 사진들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고 이코노믹스에서 해고당한 효은은 미란다가 근무하는 가디언의 경제부에 수습으로 취직한다. 첫날부터 시작되는 미란다의 공격에 효은은 눈물이 날 정도인데.. 신문사를 하나 차려주겠다는 레오에게 충고하는 요한센. 그리고 레오와 효은의 관계에는 가속도가 붙는데..
내일은 신데렐라 ★18★멀고 먼 관계
멀고 먼 관계
-일어나, 자기.
레오가 효은을 흔들어 깨웠다. 벌써 영국이었다. 이상하게도, 비행기는 텅텅 비어서 출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와 효은의 좌석은 붙어있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 담요를 덮고 잤고 도착한다는 방송에 레오가 먼저 눈을 뜬 것이다.
-벌써 영국이야?
효은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것 같네.
레오 역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입국장을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베스였다. 어디에 있어도 튀는 그녀의 패션 감각 덕분이었다.
-여깁니다, 사장님.
요한센이 제일 먼저 다가와 레오의 짐을 받으려 했다.
-숙녀 분 먼저.
레오가 눈짓으로 효은의 짐을 가리켰다. 요한센이 씩 웃더니 효은의 짐을 받았다.
-효은!
-베스!
두 룸메이트는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저 두 분 혹시 사귀시는 거 아닙니까?
갑자기 머쓱해진 레오에게 요한센이 물었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어.
베스와 효은이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음, 두 분 댁까지 모셔다드리죠. 그건 괜찮겠지요, 아가씨?
요한센의 말에 베스가 재빨리 좋다고 대답했다. 효은이 눈을 흘기자 베스는 뭐 어떻냐는 식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고 네 사람은 공항을 빠져나왔다.
-야, 엄마 아빠는 만났어? 식당은 좋던? 동생은?
-하나씩만 물어봐. 식당은 좀 컸구, 손님도 많고. 새로 산 아파트도 좋고. 효민이는 이번에 군대간다더라.
-내 선물은?
베스의 질문에 효은이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 출장비가 너무 적게 나와서 못 샀어. 대신 근사한 저녁 살게.
효은의 말에 베스는 노골적으로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밥 뭐 살건데?
그때, 차가 멈추고, 요한센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요한센은 내려서 효은의 짐을 챙겼다.
-아니에요. 우리가 할게요. 잘 가요, 요한센. 그로스베너씨.
-또 뵙죠.
요한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떨결에 베스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있어. 연락할게.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눈동자만은 부드럽게 인사하고 있었다. 효은 역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봐요. 잘 가요.
요한센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베스가 호들갑을 떨었다.
-너, 저 남자랑 같이 온 거야?
-우연히 비행기 같이 탄 거야. 그리고 너 짐 좀 들어. 안 그러면 선물 안준다.
-어? 선물? 뭐 사왔는데?
-화장품.
화장품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베스는 효은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손가방까지 빼앗아 들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효은이 피식 웃더니 그녀 뒤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같이 가, 베스!
-사무실로 가, 요한센.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들을 꺾었다.
-그런데, 요한센. 타고 온 비행기가 이상하게 텅텅 비었더군.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짐짓 눈을 크게 뜨고 놀랍다는 말투로 말했다.
-한국이 불황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줄었나 보죠? 다행입니다. 우리 그룹은 항공사는 없잖아요?
-그게 아니라. 다 예약된 좌석인데 돈만 내고 비행기를 안탔대.
-그래요? 뭐, 백만장자가 돈 자랑 했나보죠? 아니면 돈보다 더 귀중한 걸 위해 투자했던지.
요한센의 말에 레오가 눈을 흘겼다.
-그건 그렇고 아가씨와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셨습니까? 설마 올해 안에 결혼 하실 건 아니시죠?
-솔직히 말해, 요한센.
레오는 교묘하게 요한센의 질문을 피해가며 물었다.
-제가 솔직히 말할테니 사장님도 솔직해지시죠.
-좋아.
-제가 비행기 좌석을 전부 사버렸습니다. 덕분에 이틀 동안 소파에서 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티켓 대금을 사장님이 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가씨와 보낸 시간은 돈으로 살 만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 좋아. 그 티켓 값은 다 갚아주지 대신.
-대신 뭡니까?
-이번 월말 보너스 없는 거야.
-너무 하십니다. 뭐, 그걸로 때우죠. 이번엔 제 질문입니다.
요한센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로스베너 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효은 아가씨 마음을 얻으셨습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더 이상 싸우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어. 친구와 연인 그 사이인 것 같아. 신데렐라는 싫다더군.
차가 빌딩 앞에서 멈췄고 빌딩 경비 두 명이 달려 나왔다. 한 사람은 차 키를 받았고, 한 사람은 레오의 짐을 받았다.
-전 그 점이 마음에 듭니다.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웬 떡이냐 하지 않았겠어요?
-나도 그 점이 마음에 들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녀는 나하고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아. 그리고 여기는 너무 불편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레오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담스러워.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를 사랑하시는 군요.
-사랑이라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요한센이 맨 윗 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난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
-조금만 있으면 사장님은 그로스베너의 모든 주식을 포기하고라도 그 아가씨의 마음을 잡으려고 할 걸요?
-요한센!
레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요한센이 귀를 막는 시늉을 해 보였다.
-사장님은 그 아가씨를 사랑하는 겁니다. 사장님이 갖고 있는 어느 무엇보다 더 그 아가씨가 소중한거죠. 그래서 다른 모든 것들이 부담스러우신 겁니다. 왜 머리 좋으신 분이 그건 모르세요?
요한센이 핀잔을 주자 레오는 다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지도 몰라. 난 겁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저 좋은 친구라고 말해버리면. 난 어떡하냐고.
-정말 큰일 났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다. 레오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레오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 내 침실에서 좀 자고 싶어. 깨우지 말아줘. 그리고 잡지사 설립 계획안 다 준비 되었지?
방금 전까지 칭얼거리던 사랑에 힘들어하는 레오는 어디로 가고 침착하고 냉정한 사업가 레오가 서 있었다.
-네.
-세 시간 뒤에 깨워주고. 그때 설립안 가져오도록.
레오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넥타이를 벗어던지고는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적었다.
-아, 참! 요한센!
-네, 사장님.
나가려던 요한센은 레오가 부르자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강효은씨 핸드폰 하나만 해다 줘. 이유는 묻지 말고! 이 메모하구.
그러다 요한센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며 메모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나갔다.
정확히 30분 뒤 노키아의 최신형 핸드폰이 효은의 손에 놓였다.
-에? 이게 뭐죠?
효은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요한센을 올려다 봤다.
-글쎄요. 사장님이 드리라고 했습니다만.
-음.
효은은 잠깐 동안 고민했다.
-고마워요. 어쨌든. 잘 쓸게요. 그런데 그로스베너씨는 지금 뭐 하시나요?
-주무십니다.
-알았어요. 잘 가요.
문이 닫히자마자 베스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효은이 들고 있는 노키아의 최신식 휴대폰을 보자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와. 이거 이번 달에 나온 핸드폰이잖아! 이거 갖고 싶었는데. 너 진짜 좋겠다. 그 사람 그로스베너 비서지?
-그렇긴 한데 이걸 받아야할지 모르겠어.
-야, 받어. 그 사람 성의도 생각해 줘야지. 너한테 전화하겠다는 약속 지킬려구 그러는 거 아냐?
-설마.
효은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어보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나는 언제 그런 애인 만나냐? 하는 베스의 푸념 소리가 들렸다.
-아, 참 베스!
닫히려던 문이 다시 열렸다.
-왜?
-너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 하면 안돼? 니가 생각 하는 것 보다 우린 훨씬 더 멀고 먼 관계니까.
문이 닫히자 베스는 효은의 말투를 흉내냈다.
-멀고 먼 관계? 어디 찔리긴 하구만! 알았어!
베스의 말에 정말 가슴이 뜨끔한 효은은 핸드폰 상자 안에 들어있는 레오의 메모를 꺼냈다.
전화기를 항상 켜두세요.
-개구리 올림
레오의 말투가 생각난 효은은 피식 웃고 말았다. 검은 바탕에 빨간 장식이 들어간 노키아 핸드폰은 카메라도 있고, 어쨌든 최신식이긴 한 것 같았다. 핸드폰 전원을 누르며 효은은 살짝 웃었다. 재밌는 사람이야. 효은은 핸드폰 액정에 자기 이름을 입력했다. “멀고 먼 관계”
정확히 세 시간이 지나자 요한센은 레오의 방문을 두드렸다. 사장실과 통하는 레오의 방 -레오는 그곳을 비밀의 화원이라고 불렀다. - 의 존재는 요한센 밖에 몰랐다. 그리고 그 방의 열쇠는 요한센에게도 없었다. 오직 레오만의 방이었다.
-들어와.
요한센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레오의 방은 그의 취향대로 화이트와 블랙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그리고 반 투명 유리로 된 욕실과 분리된 화장실이 있었고 한 쪽 벽은 거울 유리로 되어있었다. 레오는 샤워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쉬셨습니까? 그리고 이게 강효은씨 전화번호입니다.
-고마워. 지금이 네 시지? 정확히 삼십분 뒤에 중역회의 소집해. 이제 일 해야지.
-네. 소집하겠습니다.
참 타고난 사업가야. 요한센은 미소 지으며 레오의 방에서 나왔다. 레오는 전화기를 들고 효은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피곤해서 자나? 30분 뒤엔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레오는 와이셔츠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 대, 전화벨이 울렸다. 레오는 날듯이 뛰어와 전화기를 들었다.
-그로스베너입니다.
-전화했었어요? 미안. 나 자고 있었어.
-내가 괜히 깨웠네. 더 자.
레오는 괜시리 미안해졌다.
-뭐해요?
-회의 들어갈건데. 있다 저녁때 얼굴 보여줄 수 있을까?
레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녁에요? 언제요?
-음.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끝나고 전화하지.
-그래요, 그럼. 하지만 너무 늦게는 안돼요. 적어도 밤 9시 이전에는 연락줘요.
-그래요, 그럼.
-그럼 있다 봐요. 안녕.
-안녕.
전화를 내려놓은 레오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레오는 재빨리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사업가로 변신했고, 정확히 30분 뒤 중영 회의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다음주 월요일에 더욱 재밌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추천은 필수...댓글은 기본...ㅋ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다음주 예고
효은과 레오의 서울 데이트 사진을 찍어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레오는 그 협박범을 고소한다. 그러나 사진들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고 이코노믹스에서 해고당한 효은은 미란다가 근무하는 가디언의 경제부에 수습으로 취직한다. 첫날부터 시작되는 미란다의 공격에 효은은 눈물이 날 정도인데.. 신문사를 하나 차려주겠다는 레오에게 충고하는 요한센. 그리고 레오와 효은의 관계에는 가속도가 붙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