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생생…현장 볼때마다 가슴저려"

마우스200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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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된 이형호 유괴사건…이양구 수사반장의 소회 팀원 1년간 매달려…"요즘 과학 이라면 검거 했을일"

15년이 흘렀지만 이양구(60) 씨는 여전히 암울한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9살짜리 형호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잠실대교 부근 한강둔치의 토끼굴을 지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아픔으로 저민다.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형호를 유괴 살해한 범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의 하나인 `이형호 군 유괴사건(1991년)`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는 이 반장의 가슴을 또다시 후벼 판다. 그놈을 잡지 못한 죄의식 때문이다. 이씨는 "영화가 진정 완성되려면 지금이라도 범인이 잡혀야 한다"면서 "개봉 후에도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년 말 정년퇴임한 이씨는 21일 오후 2시 형호 군이 발견된 그 자리에 서자 강남서 강력1팀을 이끌었던 수사반장으로 돌아왔다. 운전할 때도 유일한 증거였던 유괴범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며 그놈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1년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모양이다.

91년 3월 13일은 한겨울보다 추웠다. 서 있기조차 힘들 만큼 강바람도 매서웠다. 당시 이 반장은 잠실 주공아파트에서 한강으로 통하는 작은 수로 안에서 차갑게 식은 형호를 만났다. 질식사였다. 여느 봄날처럼 따뜻했다면 형호는 많이 손상됐을 텐데, 납치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그대로였다.

회한이 묻은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유괴 당시부터 수사를 맡았더라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며 가슴을 쳤다. "범인을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유인, 맞은편 현대해상 건물 쪽 전화부스에 나타났었는데 놓치고 말았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경찰 배치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때 수사관이 나였다면…." 안타까움은 말로 다 못한다. 수사기법이 발달한 요즘 같았다면 범인 검거는 일도 아니었다고 했다. 빛의 속도로 위치추적이 되고, 공중전화를 사용해도 인근 경찰서에서 검거했을 텐데 당시엔 그렇게 못했다는 것이다. 시신 발견이 늦었던 것도 그렇다. 요즘에는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 한강둔치가 붐비지만, 당시 그곳은 휑하니 인적이 드물었다. 40일이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된 것도 그 때문이다.

범인은 형호를 유괴하자마자 살해하고도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형호를 납치해 잘 데리고 있으니 돈을 갖고 오라"는 협박전화만 60차례 보냈다. 돈이 다급한 남자, 전화 속 목소리만이 유일한 단서였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면서 전화를 하는 범인의 동선은 일정치 않았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형호 시신 발견 후 마이크로필름 분석에만 1개월이 걸렸고 인근 주공아파트 2만여명 주민 모두를 수사대상에 포함시켰다. 수사팀원 18명 전체가 1년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씨는 수사팀원 부인들을 불러, "바람 피워 집에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범인을 잡을 때까지 내가 붙잡고 있다"며 안심시켜야 했다.

15년 전 형호가 발견됐을 때처럼 눈이 녹지 않았다. 발로 흙을 천천히 훑으며 깊은 숨을 몰아쉰 이씨는 "가장 마음이 아프고 쓰렸던 사람은 형호의 부모였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형호의 아버지는 재혼했다. 때문에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어머니 친척에게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분들의 얼굴을 볼 면목도 없다"는 이 반장은 "영화가 개봉돼 이미 받은 상처가 더 깊어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그놈, 잔혹한 놈이다"고 혼잣말을 하던 그는 힘주어 말했다. "어린이 유괴 살인 흉악범은 공소시효 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그렇게 그는 오늘 또 형호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