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요.
낙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희망이 없는 데다가 지겹고 고통스러기만 한 까닿이지요.
"차라리 죽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유달리 40~50대 여성에겐 이와 비슷한 감정이 태풍의 계절처럼 밀려오고 또 겹쳐지지요.
당연히 원인이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사별이 있을 때 가누지 못할 슬픔은 삶의 의욕을 송두리채 앗아 감니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남편과의 사별은 특히 그러하지요.
자식과 불귀의 이별이 생기면 역시 그러 합니다.
부모의 죽음, 가까운 친구의 사망 등등, 이런 이별들을 애도하는 감정 뒤에는 의례이
우울감이 따라오지요.
경제적 파탄이 있을 때 역시 결과는 같습니다.
자신과 자신이 중요하다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고 낭패를
당하였을 때 허탈감 뒤에 우울감이 따라오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당연한 귀결입니다.
40~50대 여성에겐 이와 같은 가능성이 많으며,대개의 경우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지요.
"천 석군은 천가지, 만 석군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 고 합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고요.
40~50대 여성에게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게 되어 있기에 그만끔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지요.
문제는 사별이나 파산으로 슬픔을 겪고 그 때문에 눈물짓는 우울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이 때 생기는 우울감은 당연한 감정의 변화이며 일시적이지요.
말을 바꾸어 보면 슬픈 일이 있어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그럴 만한 일이 없음에도 우울감에 빠져들어 고독과 무원고립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게
문제이지요. 40~50대 여성의 우울증은 바로 이점에서 다 함께 생각하고 거론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아서 이 글을 띄웁니다.
무슨 연유 때문일까...?
남편과 이렇다 할 문제도 없고,자녀들이 속을 썩이는 일도 눈에 뜨이지 않으며,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고,시집이나 친정과의 거북한 일도 없으며,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한 적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의 당당한 주부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40~50대에 들어선 여성들은 어떤한기(?)를 느끼기 시작하지요.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지나가고 어느날 갑짜기 가을바람이 옷소매를 스칠 때~ 시원한가 싶은
사이 문득 우스스스 휘날리는 낙엽을 보며, 낙엽과 비슷한 운명을 감지하듯 마음 한 구석에
우수가 깃들게 되지요.
공연히 서글퍼지기 시작 하지요.날씨 때문도 아닌데...
화사한 미래는 없는것 같지요.겨울의 나목 때문도 아닌데...
봄이 온다는것을 알지요.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사계절의 법칙을 모르는 바 아님니다.
꽃은 분명히 다시 피고 모두의 얼굴은 경괘한 미소와 더불어 생기가 넘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집의 형편이 그렇게 안 될 이유도 없지요.자기의 처지가 빗나갈 어떤 조짐도 없습니다.
그러나 허전하고 쓸쓸한 것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연필로 쓴 고독은 언제라도 지울수 있는 것이련만,이상하게도 지우개가 무력 합니다.
알고 보니 볼펜으로 쓰고 있는 고독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 였습니다.
40~50대 여성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의 조건 속으로 들어서는 시기 입니다.
첫째, 팽팽하던 피부에 기름기가 사라지고 잔주름이 거울 속으로 확연히 보이지요.
두째, 남편과의 상대적 열세를 느끼게 되지요.
세째,시간은 더 이상 자기편에 있지않고, 미래는 노화를 확인해 주기만 하지요.
넷째,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틈바구니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힘들지요.
다섯째,비록 단산을 했다해도 막상 생리의 변화가 생기면서 인생의 초가을을 피부로 느끼게 되지요.
여섯째,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절대자로 여기던 자녀들이 제각각 떠나면서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알게되지요.
일곱째,성 생활에서 남편과의 균형이 깨지고 미묘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것이 40~50대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게되는 중요한 현실들이지요.
헌신적으로 남편과 자녀를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한숨 돌리게 될 때,
그들은 자신으로부터 의외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게 되지요.
주부의 자리에서 전진도 후퇴도 없는 사이 남편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닦고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사랑과 보호를 간섭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영향권에서 멀어져 감니다.
상대적 열등감에서 허전함이 오히려 사치스러운 용어처럼 뻥 뚫린 마음의 골이 깊어만 감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얻었고,무엇을 위해 걸어온
길 인지 자신의 정체를 돌아 보게 되지만, 이에 기름기 빠진 죽쟁이 같은 자화상만 보게 되지요.
설상가상으로 생리적 변화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지요.
여성 호르몬의 변화는 주기적 생리를 위협하면서 상징적 생산성이 끝남을 볼 때,자신의 운명도
낙엽처럼 스러져감을 재 빨리 읽게 되지요.
무려 3백여 가지의 몸의 기능이 여성 호르몬의 퇴조와 함께 변화를 일으키는 결과는 하늘하늘
주름진 피부와 상기되는 열기와 한기의 교차를 경험하면서 수면장애까지 감수해야 하지요.
이 것 뿐만이 아님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인 성적 전성기가 남편의 무관심과 쇠퇴해진 정력에 의해
비참하게 거부되어 텅 빈 밤을 매울 길이 없을 때 이지요.
40~50대의 주부가 방황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 이지요.
도박과 춤, 심지어 마약에까지 탐닉되어 영상매체의 비참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혼외 성문제가 40~50대에 매우 노골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도 이 때 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해일처럼 밀려오는 고독과 우울감을 감당할수 없는
까닭이지요.
말초적 쾌감에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한다는것은 일종의 본능적 수단일지는 모르지요.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것, 아니 건재하다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던지 증명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침몰하는 자신을 방관할수 없다는 뜻이 겠지요.
자신의 정체감을 위해 반항과 돌진을 겁내지 않는 현상은 그래서 최후의 발악처럼 치부하는
일부 학자들도 있습니다. 옳은 판단이라고 간단히 말할수 없겟지요.
결과를 놓고 잘된 일이라 옹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저변의 심리를
일단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심인성 신체증"이라는 병이 40~50대 주부에 유난히 많다는 것을 모든 정신과 의사는
동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다.
귀에 풀벌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어지럽다.
가슴이 콩당 콩당 뛴다.
숨이차다.
가슴에 뭔가 있어 답답하다.
입맛이 없고 속이 쓰리다.
마디마디가 아프다.
몸은 천근이며,아랫배가 노상 더부룩하다.
등등 열거하면 "심인성 신체증"은 한이 없습니다.
자그만치 일시에 열 댓가지 증상이 여기 저기 동시다발성으로 나타나 견디기 힘들지요.
검사을 해보지만, 정상이지요. 병이 없다는 것입니다. 슬며시 화가 나겠지요.
그래서 오진인가 싶어서 크고 유명한 의사를 찾아서 이 병원 저 의사에게 검사를 하고
또 검사를 해보지요.
결론은 신경성 이라고 판정되지요.
때로는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40~50대 여성이 처한 여건으로 해서
깊은 좌절감과 우울감에 빠지기 직전, 구원의 울부짖음을 하는 증상들인 것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님니다.
섬세한 여성 특유의 적응방식으로서,반사적으로 선택된 선량한 증상들이지요.
자신과 가정을 파괴하는 퇴폐,향락적 행동양식에 비하면,바보스러우리만끔 우직하고
천진난만한 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대책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같은 40~50대 여성이라고 모두 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탈선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외형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지만도 않습니다.
사실 50년대 6,25전쟁과 그 극심한 후유증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위기상황 앞에 "우울감"이나
"심인성 신체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불행하기로 치면, 고통스럽기로 비유한다면 상대가 되지 않는 그 상황에서 오히려 병이 없었다는
것은,풍요롭게 살면서 그것도 이렇다 할 불행도 없는 상황에서 왜 이런 증상들에 시달려야 하는지,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곧 대응책으로 연결 될것입니다.
그것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사람의 성격과 관계되지요.
얼굴이 한결같이 다르듯이 성격 또한 다릅니다.
따라서 어떤 여성은 병으로,어떤 여성은 진일보된 자부심을 내세우며 살지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학식과 명예와 권력과 지위가 있기에 그렇지 못한 여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뻐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막상 할 일자리가 없는 현실 속에서 승화된 만족감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그게 문제라고 강변 하시겠지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지요.
전문적 고급 일자리를 갖고 있지 않은 여성 모두가 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지요.
반대의 경우, 우울증이 없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지요.
역시 성격이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하면 어떤 성격이 문제일까요...?
안달형 성격이 불리하지요.
자기중심적, 이기적 성격이 또한 그러하지요.
지나치게 매사를 자로 잰듯 살려는 성격도 위험합니다.
인생을 기계적 책임감,시간관념 그리고 승부욕으로 치부한 나머지,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최고의
가치일뿐 삶의 멋과 맛은 하찮은 사치라고 여기는 성격일수록 우울감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40~50대에 들어 서면서 경험되는 의외의 상황 앞에 결국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후회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어치피 마음대로 되는 일에도 한계점이 있게 마련이고,돈과 명예와 권력은 무한히 부풀기만 하기에
끝내 쫓을수 없는 무지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 엄청난 마음의 진공상태가 생기는 까닭이지요. 그것은 시야가 좁고 긴 터널식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에 견줄 수 있는 것 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님니다.
그렇다고 무시해도 좋을 만끔 부질없는 하잖은 것도 아니지요.
이런 저런 일들이 향해하는 배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늘 있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에
겁낼것도 뽐낼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탓하거나 자만할 일도 아니지요.
열심히 헤집고 가면서 고요와 풍랑속의위기를 경험속에 정리하면서,자신과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과 자산을 축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울감을 극복하는 것은 억지가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성격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것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도 가능성이 없지요.
그렇다고 비극적으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격에는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습니다.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장단점을 헤아려 보는 지혜가 필요하는 것이 남아 있는 열쇠인 것입니다.
반드시 큰 일을 계획하고 달성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말아야 합니다.
작가가 되어 마지막 이름을 남기려고 요란스러울 필요는 없습니다."주부가요대상"만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진 말라는 것이지요.
길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일,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겠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분수에 어울리게 가능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란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만이 찾아 낼 수 있는 권리이며, 의무이며,자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허영이 아니라,자신에게 처음으로 충실하려는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능히 우울감은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들(40대-50대)의 우울증에 대하여...
여성들(40대-50대)의 우울증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가끔은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요. 낙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희망이 없는 데다가 지겹고 고통스러기만 한 까닿이지요. "차라리 죽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유달리 40~50대 여성에겐 이와 비슷한 감정이 태풍의 계절처럼 밀려오고 또 겹쳐지지요. 당연히 원인이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사별이 있을 때 가누지 못할 슬픔은 삶의 의욕을 송두리채 앗아 감니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남편과의 사별은 특히 그러하지요. 자식과 불귀의 이별이 생기면 역시 그러 합니다.
부모의 죽음, 가까운 친구의 사망 등등, 이런 이별들을 애도하는 감정 뒤에는 의례이 우울감이 따라오지요.
경제적 파탄이 있을 때 역시 결과는 같습니다. 자신과 자신이 중요하다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고 낭패를 당하였을 때 허탈감 뒤에 우울감이 따라오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당연한 귀결입니다.
40~50대 여성에겐 이와 같은 가능성이 많으며,대개의 경우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지요. "천 석군은 천가지, 만 석군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 고 합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고요. 40~50대 여성에게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게 되어 있기에 그만끔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지요. 문제는 사별이나 파산으로 슬픔을 겪고 그 때문에 눈물짓는 우울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이 때 생기는 우울감은 당연한 감정의 변화이며 일시적이지요.
말을 바꾸어 보면 슬픈 일이 있어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그럴 만한 일이 없음에도 우울감에 빠져들어 고독과 무원고립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게 문제이지요. 40~50대 여성의 우울증은 바로 이점에서 다 함께 생각하고 거론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아서 이 글을 띄웁니다.
무슨 연유 때문일까...?
남편과 이렇다 할 문제도 없고,자녀들이 속을 썩이는 일도 눈에 뜨이지 않으며,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고,시집이나 친정과의 거북한 일도 없으며,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한 적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의 당당한 주부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40~50대에 들어선 여성들은 어떤한기(?)를 느끼기 시작하지요.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지나가고 어느날 갑짜기 가을바람이 옷소매를 스칠 때~ 시원한가 싶은 사이 문득 우스스스 휘날리는 낙엽을 보며, 낙엽과 비슷한 운명을 감지하듯 마음 한 구석에 우수가 깃들게 되지요.
공연히 서글퍼지기 시작 하지요.날씨 때문도 아닌데... 화사한 미래는 없는것 같지요.겨울의 나목 때문도 아닌데... 봄이 온다는것을 알지요.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사계절의 법칙을 모르는 바 아님니다. 꽃은 분명히 다시 피고 모두의 얼굴은 경괘한 미소와 더불어 생기가 넘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집의 형편이 그렇게 안 될 이유도 없지요.자기의 처지가 빗나갈 어떤 조짐도 없습니다.
그러나 허전하고 쓸쓸한 것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연필로 쓴 고독은 언제라도 지울수 있는 것이련만,이상하게도 지우개가 무력 합니다. 알고 보니 볼펜으로 쓰고 있는 고독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 였습니다.
40~50대 여성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의 조건 속으로 들어서는 시기 입니다.
첫째, 팽팽하던 피부에 기름기가 사라지고 잔주름이 거울 속으로 확연히 보이지요.
두째, 남편과의 상대적 열세를 느끼게 되지요.
세째,시간은 더 이상 자기편에 있지않고, 미래는 노화를 확인해 주기만 하지요.
넷째,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틈바구니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힘들지요.
다섯째,비록 단산을 했다해도 막상 생리의 변화가 생기면서 인생의 초가을을 피부로 느끼게 되지요.
여섯째,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절대자로 여기던 자녀들이 제각각 떠나면서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알게되지요.
일곱째,성 생활에서 남편과의 균형이 깨지고 미묘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것이 40~50대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게되는 중요한 현실들이지요.
헌신적으로 남편과 자녀를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한숨 돌리게 될 때, 그들은 자신으로부터 의외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게 되지요.
주부의 자리에서 전진도 후퇴도 없는 사이 남편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닦고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사랑과 보호를 간섭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영향권에서 멀어져 감니다. 상대적 열등감에서 허전함이 오히려 사치스러운 용어처럼 뻥 뚫린 마음의 골이 깊어만 감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얻었고,무엇을 위해 걸어온 길 인지 자신의 정체를 돌아 보게 되지만, 이에 기름기 빠진 죽쟁이 같은 자화상만 보게 되지요.
설상가상으로 생리적 변화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지요. 여성 호르몬의 변화는 주기적 생리를 위협하면서 상징적 생산성이 끝남을 볼 때,자신의 운명도 낙엽처럼 스러져감을 재 빨리 읽게 되지요.
무려 3백여 가지의 몸의 기능이 여성 호르몬의 퇴조와 함께 변화를 일으키는 결과는 하늘하늘 주름진 피부와 상기되는 열기와 한기의 교차를 경험하면서 수면장애까지 감수해야 하지요. 이 것 뿐만이 아님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인 성적 전성기가 남편의 무관심과 쇠퇴해진 정력에 의해 비참하게 거부되어 텅 빈 밤을 매울 길이 없을 때 이지요.
40~50대의 주부가 방황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 이지요. 도박과 춤, 심지어 마약에까지 탐닉되어 영상매체의 비참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혼외 성문제가 40~50대에 매우 노골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도 이 때 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해일처럼 밀려오는 고독과 우울감을 감당할수 없는 까닭이지요.
말초적 쾌감에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한다는것은 일종의 본능적 수단일지는 모르지요.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것, 아니 건재하다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던지 증명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침몰하는 자신을 방관할수 없다는 뜻이 겠지요.
자신의 정체감을 위해 반항과 돌진을 겁내지 않는 현상은 그래서 최후의 발악처럼 치부하는 일부 학자들도 있습니다. 옳은 판단이라고 간단히 말할수 없겟지요. 결과를 놓고 잘된 일이라 옹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저변의 심리를 일단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심인성 신체증"이라는 병이 40~50대 주부에 유난히 많다는 것을 모든 정신과 의사는 동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다. 귀에 풀벌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어지럽다. 가슴이 콩당 콩당 뛴다. 숨이차다. 가슴에 뭔가 있어 답답하다. 입맛이 없고 속이 쓰리다. 마디마디가 아프다. 몸은 천근이며,아랫배가 노상 더부룩하다. 등등 열거하면 "심인성 신체증"은 한이 없습니다. 자그만치 일시에 열 댓가지 증상이 여기 저기 동시다발성으로 나타나 견디기 힘들지요. 검사을 해보지만, 정상이지요. 병이 없다는 것입니다. 슬며시 화가 나겠지요. 그래서 오진인가 싶어서 크고 유명한 의사를 찾아서 이 병원 저 의사에게 검사를 하고 또 검사를 해보지요. 결론은 신경성 이라고 판정되지요. 때로는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40~50대 여성이 처한 여건으로 해서 깊은 좌절감과 우울감에 빠지기 직전, 구원의 울부짖음을 하는 증상들인 것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님니다. 섬세한 여성 특유의 적응방식으로서,반사적으로 선택된 선량한 증상들이지요. 자신과 가정을 파괴하는 퇴폐,향락적 행동양식에 비하면,바보스러우리만끔 우직하고 천진난만한 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대책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같은 40~50대 여성이라고 모두 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탈선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외형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지만도 않습니다.
사실 50년대 6,25전쟁과 그 극심한 후유증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위기상황 앞에 "우울감"이나 "심인성 신체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불행하기로 치면, 고통스럽기로 비유한다면 상대가 되지 않는 그 상황에서 오히려 병이 없었다는 것은,풍요롭게 살면서 그것도 이렇다 할 불행도 없는 상황에서 왜 이런 증상들에 시달려야 하는지,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곧 대응책으로 연결 될것입니다.
그것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사람의 성격과 관계되지요. 얼굴이 한결같이 다르듯이 성격 또한 다릅니다. 따라서 어떤 여성은 병으로,어떤 여성은 진일보된 자부심을 내세우며 살지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학식과 명예와 권력과 지위가 있기에 그렇지 못한 여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뻐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막상 할 일자리가 없는 현실 속에서 승화된 만족감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그게 문제라고 강변 하시겠지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지요. 전문적 고급 일자리를 갖고 있지 않은 여성 모두가 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지요. 반대의 경우, 우울증이 없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지요. 역시 성격이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하면 어떤 성격이 문제일까요...?
안달형 성격이 불리하지요. 자기중심적, 이기적 성격이 또한 그러하지요. 지나치게 매사를 자로 잰듯 살려는 성격도 위험합니다.
인생을 기계적 책임감,시간관념 그리고 승부욕으로 치부한 나머지,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최고의 가치일뿐 삶의 멋과 맛은 하찮은 사치라고 여기는 성격일수록 우울감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40~50대에 들어 서면서 경험되는 의외의 상황 앞에 결국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후회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어치피 마음대로 되는 일에도 한계점이 있게 마련이고,돈과 명예와 권력은 무한히 부풀기만 하기에 끝내 쫓을수 없는 무지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 엄청난 마음의 진공상태가 생기는 까닭이지요. 그것은 시야가 좁고 긴 터널식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에 견줄 수 있는 것 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님니다. 그렇다고 무시해도 좋을 만끔 부질없는 하잖은 것도 아니지요. 이런 저런 일들이 향해하는 배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늘 있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에 겁낼것도 뽐낼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탓하거나 자만할 일도 아니지요.
열심히 헤집고 가면서 고요와 풍랑속의위기를 경험속에 정리하면서,자신과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과 자산을 축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울감을 극복하는 것은 억지가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성격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것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도 가능성이 없지요. 그렇다고 비극적으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격에는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습니다.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장단점을 헤아려 보는 지혜가 필요하는 것이 남아 있는 열쇠인 것입니다.
반드시 큰 일을 계획하고 달성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말아야 합니다. 작가가 되어 마지막 이름을 남기려고 요란스러울 필요는 없습니다."주부가요대상"만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진 말라는 것이지요.
길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일,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겠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분수에 어울리게 가능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란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만이 찾아 낼 수 있는 권리이며, 의무이며,자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허영이 아니라,자신에게 처음으로 충실하려는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능히 우울감은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울증이라는 병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러 합니다.
끝으로 주부의 우울증은 남편과 가족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2004. 12.11. 휘뚜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