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화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문밖에서 그녀가 기침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수발기녀가 때를 맞춰 차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화는 소녀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줄 것을 부탁하고 머리를 묶었다.
약간은 찬 기운이 돌지만 상쾌한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아화는 심호흡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 자색의 비단옷을 준비해주거라. 연홍색 비단에 금으로 수 놓은 흉배가 함께 있을 것이다."
" 증장천왕께서 선물하신 그 옷을 말씀하시옵니까?"
" 그래. 장신구는 내가 직접 고를것이다."
아화를 다년간 모신 수발기녀는 눈치가 빨랐다.
"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아화는 설핏 웃으며,
" 내 꿈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좋은 일이 생기겠지. 아마도..기다리던 손님께서 오실 듯 하구나."
소녀는 아화의 주문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 쯤에서 물러났고 아화는 소녀가 준비해 온 차를 마시며 서늘한 공기가 들어서는 창가로 다가가 섰다.
그녀는 어젯밤 꿈을 되새겨보았다. 다행히도 꿈에서 본 어머니는 정갈한 차림새에 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그 온화한 얼굴을 하고 아화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아주고 사라졌다.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가끔 아화의 꿈 속을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아화는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나타나는 꿈이 예사롭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차림새가 곱고 편해보이면 그건 대개 길몽이었다. 하지만 근심 어린 얼굴과 초라한 차림이라면 크고 작은 흉사가 벌어지곤 하였다. 다행히 이번 꿈은 길몽이었고 아화는 여느때와는 달리 그 꿈이 의미하는 바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손님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채비를 끝낸 아화는 이른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화는 정원 가운데 자리잡은 정자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만화루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이른 시간의 만화루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밤 새 화려한 불빛과 가무와 사람들의 흥청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천계 최고의 만화루도 이 시간만큼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화루는 3층으로 된 본관과 2층으로 된 동관, 서관으로 주 건물이 세 채였는데 아화의 거처는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따로 있었다. 만화루에 손님이 드나드는 분주한 시간이면 그녀는 만화루 본관에 따로 마련된 집무실 겸 임시 거처에서 머무르면서 만화루의 화려한 밤을 관리했고, 그녀의 진짜 거처인 화왕궁으로 가는 길이 키 큰 나무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화왕궁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왕궁은 아화에게 요새같은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화는 화왕궁의 정원을 손수 꾸몄고 손질에도 각별한 정을 쏟고 있었다. 그래서 화왕궁에 들어설 영광을 얻은 손님들은 제일 먼저 이 정갈하면서도 운치있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빠져 감탄을 하곤 했다. 아화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날이면 곧잘 정원의 정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는 걸 즐겼다.
" 아화님...?"
아화가 사색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돌아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묘영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정원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온 까닭을 몰라 불안한 시선으로 좌우를 살폈다. 묘영이 화왕궁에 온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아화가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였습니까?"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이에 아화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 저었다.
" 묘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불렀을 뿐이야. 가끔은 아침 햇살에도 가슴이 시릴만큼 외로울때가 있거든. 그럴 땐 말동무가 절실히 필요하지."
"...네?"
아화의 말은 묘영에게 전혀 뜻밖이었다. 천계 최고 규모의 만화루-몇 백의 가솔을 이끌고 있고 내노라하는 귀족들이 그녀를 만나지 못해 안달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기를 누리면서 외로움이라니. 아화에게 전혀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었다. 묘영은 한 번도 아화 역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화의 고백은 적잖이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묘영은 아화의 웃음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기에 그녀의 웃음이 슬퍼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있으나 볼 수 없는 아버지까지 떠오르자 묘영은 가슴이 메여왔다. 그런 묘영의 심정을 알았는지 아화는,
" 아버지께 다녀오도록 해. 네가 가고싶을 때 언제든 말이야."
" 고..맙습니다.."
묘영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아화는 그런 묘영을 다독이더니,
" 나를 좀 보아 주겠니?"
묘영은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 아화의 눈을 마주 보았다.
" 묘영은 왜 기녀가 되려고 하지?"
아화의 질문에 묘영은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기녀가 되고자 만화루를 찾아왔을 때도 아화는 자신에게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새삼 그런 질문이 낯설기도 했지만 묘영은 아직까지도 소신있는 대답을 스스로 찾지 못했기에 더욱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태 수백번은 더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결론을 보류하고 말았다. 왜 기녀가 되려고 하는가? 굳이 솔직해지자면 증장천 제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화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묘영이 얼굴이 빨개진 채 머뭇거리자, 아화는 빙긋이 웃었다.
" 내가 처음 기녀가 되고자 이곳을 찾았을 때, 여리님께서 물으시더구나. 왜 기녀가 되려고 하느냐고."
묘영은 정식 기녀들을 수발하면서 어깨 너머로 여리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만화루를 처음 세운 분이며 나이가 들어 죽음에 임박했을 때까지도 손수 만화루를 꾸려나갔던 강인하고 지혜로운 기녀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갓 정식 기녀가 된 아화에게 생을 바쳐 꾸려온 만화루를 모조리 넘겨준 분이라는 것도 들은 적이 있었다. 만화루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신참내기 기녀에게 만화루를 통째로 물려준 것에 불만을 품고 만화루를 떠난 기녀들도 상당수였다고 들었다.
" 솔직하게 말씀드렸지. 내 인생을 망친 사내들을 주물러 보기 위해서라고. 그것이 치마폭이더라도 말이야."
" 하하..정말이세요?"
묘영은 아화의 당돌함이 우스웠는지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 여리님께선 아무 말 없이 날 받아주셨다. 그런데..그 분을 곁에서 모시면서 난 진심으로 기녀가 되고 싶어졌지."
" 진심..으로?"
" 그래. 진심으로. 복수를 위해 기녀가 되겠다던 철없던 생각이 그 분을 모시면서 바뀌었단다. 기녀라는 건..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단다."
나이 어린 수발 기녀인 묘영은 아화의 말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기녀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내들에게 단지 여자만은 아니란다. 그들은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야. 어디에서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지. 결국 지칠 대로 지쳐 이곳까지 오게 돼. 그걸 볼 줄 알고 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품어 주는 것이 기녀더구나. 그리고 여리님은 무리해서라도 만화루 식구들을 받아주셨어. 몸과 마음이 멍든 천민들을 내치는 법이 없으셨다. 모두를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어머니와 같은 기녀가..진짜 기녀였지."
묘영은 아련한 감격이 가슴 속에서 뭉쿨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만화루의 기녀들이 당당하고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만화루의 일꾼들이 아화를 진심으로 받들어 모시는 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정식 기녀들이 왜 자신과 다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단지 살 길을 찾아 기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을 치마폭에 싸기 위해 기녀가 되는 것도 아니란다. 지친 이들이 찾아왔을 때 가슴을 열어 감싸주고 그 힘으로 그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나는 그런 기녀가 되고 싶었다. "
아화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묘영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띄웠다. 아화는 잠시 정원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북방성의 영조님을 알고 있지?"
" 그 유명한 장군님 말씀이시지요? 아화님께서 특별히 모시는 분들 중 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여기 이런 상처가 있으신 분이구요."
묘영은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에 선을 죽 그었다.
" 옛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이건 나의 이야기란다."
묘영은 가슴이 뛰었다. 아화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만화루에 거의 없었다. 아화를 가까이서 모시는 최고급 기녀들이 아니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란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몇 안되는 그 고급기녀들이 입을 함부로 놀릴 위인들이 아니었다. 철문과도 같은 입을 가진 그런 기녀들이니 아화의 이야기가 새어나올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아화의 과거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니 묘영의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었다.
" 내 어머니는...귀족이셨다."
묘영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입이 딱 벌어졌다.
==올 겨울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나했는데 결국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목 감기가 심하게 걸려버렸네요. 의사 선생님이 목을 될 수록 쓰지 말라는데 그게 될 일입니까? 목이 생명인 직업인데..
초율(礎律) 제 35화
아화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문밖에서 그녀가 기침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수발기녀가 때를 맞춰 차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화는 소녀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줄 것을 부탁하고 머리를 묶었다.
약간은 찬 기운이 돌지만 상쾌한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아화는 심호흡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 자색의 비단옷을 준비해주거라. 연홍색 비단에 금으로 수 놓은 흉배가 함께 있을 것이다."
" 증장천왕께서 선물하신 그 옷을 말씀하시옵니까?"
" 그래. 장신구는 내가 직접 고를것이다."
아화를 다년간 모신 수발기녀는 눈치가 빨랐다.
"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아화는 설핏 웃으며,
" 내 꿈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좋은 일이 생기겠지. 아마도..기다리던 손님께서 오실 듯 하구나."
소녀는 아화의 주문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 쯤에서 물러났고 아화는 소녀가 준비해 온 차를 마시며 서늘한 공기가 들어서는 창가로 다가가 섰다.
그녀는 어젯밤 꿈을 되새겨보았다. 다행히도 꿈에서 본 어머니는 정갈한 차림새에 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그 온화한 얼굴을 하고 아화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아주고 사라졌다.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가끔 아화의 꿈 속을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아화는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나타나는 꿈이 예사롭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차림새가 곱고 편해보이면 그건 대개 길몽이었다. 하지만 근심 어린 얼굴과 초라한 차림이라면 크고 작은 흉사가 벌어지곤 하였다. 다행히 이번 꿈은 길몽이었고 아화는 여느때와는 달리 그 꿈이 의미하는 바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손님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채비를 끝낸 아화는 이른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화는 정원 가운데 자리잡은 정자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만화루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이른 시간의 만화루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밤 새 화려한 불빛과 가무와 사람들의 흥청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천계 최고의 만화루도 이 시간만큼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화루는 3층으로 된 본관과 2층으로 된 동관, 서관으로 주 건물이 세 채였는데 아화의 거처는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따로 있었다. 만화루에 손님이 드나드는 분주한 시간이면 그녀는 만화루 본관에 따로 마련된 집무실 겸 임시 거처에서 머무르면서 만화루의 화려한 밤을 관리했고, 그녀의 진짜 거처인 화왕궁으로 가는 길이 키 큰 나무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화왕궁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왕궁은 아화에게 요새같은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화는 화왕궁의 정원을 손수 꾸몄고 손질에도 각별한 정을 쏟고 있었다. 그래서 화왕궁에 들어설 영광을 얻은 손님들은 제일 먼저 이 정갈하면서도 운치있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빠져 감탄을 하곤 했다. 아화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날이면 곧잘 정원의 정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는 걸 즐겼다.
" 아화님...?"
아화가 사색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돌아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묘영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정원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온 까닭을 몰라 불안한 시선으로 좌우를 살폈다. 묘영이 화왕궁에 온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아화가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였습니까?"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이에 아화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 저었다.
" 묘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불렀을 뿐이야. 가끔은 아침 햇살에도 가슴이 시릴만큼 외로울때가 있거든. 그럴 땐 말동무가 절실히 필요하지."
"...네?"
아화의 말은 묘영에게 전혀 뜻밖이었다. 천계 최고 규모의 만화루-몇 백의 가솔을 이끌고 있고 내노라하는 귀족들이 그녀를 만나지 못해 안달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기를 누리면서 외로움이라니. 아화에게 전혀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었다. 묘영은 한 번도 아화 역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화의 고백은 적잖이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 어젯밤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셨단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도 허한 마음을 채울길이 없나보구나."
묘영은 아화의 웃음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기에 그녀의 웃음이 슬퍼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있으나 볼 수 없는 아버지까지 떠오르자 묘영은 가슴이 메여왔다. 그런 묘영의 심정을 알았는지 아화는,
" 아버지께 다녀오도록 해. 네가 가고싶을 때 언제든 말이야."
" 고..맙습니다.."
묘영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아화는 그런 묘영을 다독이더니,
" 나를 좀 보아 주겠니?"
묘영은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 아화의 눈을 마주 보았다.
" 묘영은 왜 기녀가 되려고 하지?"
아화의 질문에 묘영은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기녀가 되고자 만화루를 찾아왔을 때도 아화는 자신에게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새삼 그런 질문이 낯설기도 했지만 묘영은 아직까지도 소신있는 대답을 스스로 찾지 못했기에 더욱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태 수백번은 더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결론을 보류하고 말았다. 왜 기녀가 되려고 하는가? 굳이 솔직해지자면 증장천 제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화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묘영이 얼굴이 빨개진 채 머뭇거리자, 아화는 빙긋이 웃었다.
" 내가 처음 기녀가 되고자 이곳을 찾았을 때, 여리님께서 물으시더구나. 왜 기녀가 되려고 하느냐고."
묘영은 정식 기녀들을 수발하면서 어깨 너머로 여리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만화루를 처음 세운 분이며 나이가 들어 죽음에 임박했을 때까지도 손수 만화루를 꾸려나갔던 강인하고 지혜로운 기녀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갓 정식 기녀가 된 아화에게 생을 바쳐 꾸려온 만화루를 모조리 넘겨준 분이라는 것도 들은 적이 있었다. 만화루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신참내기 기녀에게 만화루를 통째로 물려준 것에 불만을 품고 만화루를 떠난 기녀들도 상당수였다고 들었다.
" 솔직하게 말씀드렸지. 내 인생을 망친 사내들을 주물러 보기 위해서라고. 그것이 치마폭이더라도 말이야."
" 하하..정말이세요?"
묘영은 아화의 당돌함이 우스웠는지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 여리님께선 아무 말 없이 날 받아주셨다. 그런데..그 분을 곁에서 모시면서 난 진심으로 기녀가 되고 싶어졌지."
" 진심..으로?"
" 그래. 진심으로. 복수를 위해 기녀가 되겠다던 철없던 생각이 그 분을 모시면서 바뀌었단다. 기녀라는 건..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단다."
나이 어린 수발 기녀인 묘영은 아화의 말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기녀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내들에게 단지 여자만은 아니란다. 그들은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야. 어디에서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지. 결국 지칠 대로 지쳐 이곳까지 오게 돼. 그걸 볼 줄 알고 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품어 주는 것이 기녀더구나. 그리고 여리님은 무리해서라도 만화루 식구들을 받아주셨어. 몸과 마음이 멍든 천민들을 내치는 법이 없으셨다. 모두를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어머니와 같은 기녀가..진짜 기녀였지."
묘영은 아련한 감격이 가슴 속에서 뭉쿨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만화루의 기녀들이 당당하고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만화루의 일꾼들이 아화를 진심으로 받들어 모시는 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정식 기녀들이 왜 자신과 다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단지 살 길을 찾아 기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을 치마폭에 싸기 위해 기녀가 되는 것도 아니란다. 지친 이들이 찾아왔을 때 가슴을 열어 감싸주고 그 힘으로 그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나는 그런 기녀가 되고 싶었다. "
아화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묘영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띄웠다. 아화는 잠시 정원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북방성의 영조님을 알고 있지?"
" 그 유명한 장군님 말씀이시지요? 아화님께서 특별히 모시는 분들 중 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여기 이런 상처가 있으신 분이구요."
묘영은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에 선을 죽 그었다.
" 옛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이건 나의 이야기란다."
묘영은 가슴이 뛰었다. 아화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만화루에 거의 없었다. 아화를 가까이서 모시는 최고급 기녀들이 아니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란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몇 안되는 그 고급기녀들이 입을 함부로 놀릴 위인들이 아니었다. 철문과도 같은 입을 가진 그런 기녀들이니 아화의 이야기가 새어나올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아화의 과거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니 묘영의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었다.
" 내 어머니는...귀족이셨다."
묘영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입이 딱 벌어졌다.
==올 겨울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나했는데 결국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목 감기가 심하게 걸려버렸네요. 의사 선생님이 목을 될 수록 쓰지 말라는데 그게 될 일입니까? 목이 생명인 직업인데..
멋쩍어서 씩 웃었더니 "안되면 어쩔 수 없구요" 하면서 같이 웃으시네요.
연말이라 약속도 많고 술자리도 많으시죠? 건강 생각하면서 즐기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