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신들의 유희 -3 차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민우와 심운중은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차 운전을 하던 정웅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장호야! 네 덕분에 우리의 목숨을 건지게 되었구나!’ 그림자들이 민장호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정웅기는 차를 더욱 몰아서 점점 그림자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언제 또다시 좆아 올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니 그나마 마음이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차 안은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물을 흘리던 강민우가 멍하게 있는 강민아를 보고 말했다. “민아야!” 그러나 강민아는 아직도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하게 있었다. “강. 민. 아!! 정신 차려!!” 강민우가 강민아를 흔들며 뺨을 찰싹! 찰싹! 때렸다. 그러자 멍하게 정신 못 차리던 강민아가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답답했으나 두 눈으로는 민장호의 죽음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소리치고 싶고 울고 싶었는데도 마음대로 않돼 안타까웠다. 그런데 강민우가 소리치며 뺨을 때리자 몸속을 옥죄던 기운이 사라지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흑! 흑! 흑! 어떻게! 장호 불쌍해서 어떻게....나 때문에...엉! 엉!” 그녀가 소리치며 통곡하자 차안은 다시 슬픔으로 물들어 갔다. 강민아가 진정되는 듯 보이지 강민우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우리들이 여럿 일 수 있었던 것이고 또 갑자기 모두 사라진 거지? 그리고 저 검은 그림자들은 또 뭐야?“ 그의 말에 심운중도 중얼 거리듯 말했다. “모르겠어. 우리가 2층에 올라갔을 때 웅기 네가 2층 창문을 닫고 있었어. 그리고 또 다른 우리가 막 흉가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았지. 그리고 민우가 내려간 후 갑자기 저 시커먼 그림자들이 우리를 공격해서 도망쳤는데 정말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꿈을 꾸고 있나?“ 흐느끼던 강민아가 말했다. “흐흐....나 무서워! 우린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 그들의 말을 듣던 정웅가가 운전을 하다 갑자기 차를 길 가장자리에 주차하며 소리쳤다. “알 것 같다. 어떻게 된 건지.” 그의 말에 강민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래? 말해봐!” 정웅기가 심각한 얼굴로 뒤 쪽의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흉가가 이상한 모습으로 찌그러드는 것을 봤지?” “응.” “그래. 마치 짓눌리듯이 일그러져버렸어.” “맞아. 그 위로 그림자들이 갑자기 더 불어났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정웅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내내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어. 그리고 또 다른 우리들을 계속 해서 만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더구나 또 다른 우리들은 결코 귀신이 아니였어. 그들 또한 우리를 보고 놀라며 우리를 오히려 귀신이라고 했지.“ “맞아! 그들도 놀라는 것 같았어.” “그럼? 우리가 과거로 돌아간 걸까?” 정웅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우린 결코 과거로 돌아가거나 한 것이 아니야. 내 생각에는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적어도 그 흉가에서는 3차원 적인 흉가가 갑자기 1차원적으로 찌그러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그렇고 또 다른 우리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는 것도 그것을 증명하는 거야.“ 그의 말에 강민아가 더욱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알 수가 없어.” “한마디로 우리가 만난 것은 과거의 우리들이란 말이야. 민우와 운중이가 2층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났다는 것은 처음 내가 흉가에 도착해서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모습을 본 거지. 나도 2층에 올라가서 창문을 닫으며 아래쪽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본 것을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밖에서 민우를 찾으며 돌아다닐 때 2층 창문을 닫는 사람을 봤는데 그게 바로 나였던 거야. 내가 나를 아래에서 올려보고 있었던 거지. 즉,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겹쳐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게 된 거지.“ 그의 말을 듣던 강민우가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가능하다는 거야? 어떻게 과거와 현재가 같이 한 공간에 존재하지?” “나도 모르겠어.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믿기지 않고,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은 일을 설명하려면 그것 밖에 없어. 그리고 실제로 차원의 공간이란 것은 하나의 경계와 같은 것이지 그 경계가 무너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심운중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네 말대로.....차원의 경계가 무너진다면....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정웅기가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된다면.....그것은 혼돈이지.....즉, 세상의 종말이야.” 강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서....설마?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것이란 말이야?” 정웅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일단은 이곳을 나가봐야 알지. 어쩌면 이곳 흉가에만 국한 된 일일지도 몰라. 가끔 차원의 경계와 경계에는 이곳처럼 시간 개념이 무너지는 중간 공간이 생기기도 하거든.....어쩌면 저 흉가가 그 중간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그러니 우린 그 공간만 빠져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어.“ 정웅기의 설명을 들으며 그를 쳐다보던 강민아가 놀라서 소리쳤다. “헛! 우....웅기야....네 얼굴이....네 얼굴에....갑자기 피가 흘러!” 강민아의 놀람에 찬 목소리에 강민우와 심운중은 정웅기의 얼굴을 쳐다보고 놀랐다. 정웅기의 얼굴에는 원래 상처가 없었는데 갑자기 얼굴 양쪽에 핏줄기가 천천히 생기더니 그곳에서 핏물을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굴 곳곳에 퍼런 멍 자국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더니 입술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상처를 내듯 터지기 시작했다. 순간 고통에 정웅기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아....아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민우가 심운중의 어굴을 보고 놀람에 차서 소리쳤다. “운...중아! 네 얼굴도....!!” 심운중은 강민우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너....너도 그래! 민우 네 얼굴도 상처투성이로 변해가고 있어!” 그들의 말에 조그만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든 강민아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람에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얼굴이....”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 점점 상처가 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왼쪽 눈에 시퍼런 멍이 생기더니 점점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상하게 왼 쪽 아랫배가 심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아....배...가 갑자기 아파!” 그러나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차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 또한 온 몸이 욱씬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특히, 정웅기의 머리에서는 붉은 핏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심운중이 옷깃을 찢어 그의 머리에 묶었다. 한동안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서로의 얼굴을 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강민우가 정웅기를 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우리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온 몸에 멍이 생기며 아픈 거지?” 정웅기가 깊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이건 우리 스스로 낸 상처 일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숲의 그림자를 피해 도망쳐 왔을 때, 마당에서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어. 나도 내 자신과 죽일 듯이 싸우고 있더라고....황당했지. 나중에 우리가 싸움을 멈추고 그림자들을 피하려 할 때 또 다른 우리들이 사라져 버렸지. 그것은 이미 차원이 삼차원에서 일차원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며 과거의 우리가 사라진 거야.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우리는 사라졌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는 그 상처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현실을 자각하므로 해서 아까 우리가 싸울 때 생긴 상처가 몸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긴 상처란 말이지. 후후...웃기지? 자기가 자기를 때리고......“ 그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숲 길 앞쪽에서 밝은 불빛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뭐야? 웬 불빛?” 그 불빛을 보고 놀란 정웅기는 차 라이트를 끄고 시동을 껐다. 이미 길 외곽으로 피해 있으므로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불빛을 보며 말했다. “쉿! 조용해! 저건 꼭 차동차 불 빛 같은데...” 그들이 숨죽이고 있자 점점 불빛이 다가오며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역시! 차가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어!” 강민우가 조용히 말하며 앞으로 볼 때 차 한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점점 차가 그들 앞 쪽으로 다가올수록 이아들의 눈은 의문과 경악으로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이내 차가 그들 앞을 지나갈 때는 모두 입술을 깨물며 덜덜 떨었다. 정웅기가 지나가는 차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우리는 차원의 경계에 있나보다. 흉가뿐만 아니라 이 일대가 모두 차원의 중간 공간인가 봐!“ 방금 그들의 앞을 지나간 차는 처음 그들이 흉가에 가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강민아는 바로 앞을 지나가는 차안에서 또 다른 자신이 밝게 웃으며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며 울먹였다. “웅기야....저 차! 흉가에 못 가게 말리자! 우리가 저 차 못 가게 말리면 장호를 살릴 수 있잖아. 그렇지? 처음부터 저 흉가에 가지 않으면 되잖아! 지금 차타고 가는 과거의 우리를 막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잖아!“ 그녀의 말에 강민우와 심운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맞아! 그래 막자!” 그러나 정웅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나도 차라리 저들을 지금 붙잡고 싶어. 그러나 소용없어.” 강민아가 따지듯 물었다. “왜?” “우리 얼굴에 난 상처가 왜 갑자기 생겼지? 이것은 우리가 자각을 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실이 겹치면서 생겨난 거야. 그런데 똑 같은 우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들에게 그것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되겠니? 또 다른 우리들이 우리를 귀신이 아니라고 믿더라도 장호는 자각하는 순간 사라지게 될 꺼야. 이 건 영화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들이 지금 우리의 과거 모습이지만 결코 과거는 아니라는 말이지. 이곳은 차원 경계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중간 공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어쩌면 우리가 방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한 순간의 흔적일지도 몰라 즉, 이 공간에 우리가 들어오면서 남겼던 흔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저들을 붙잡아서 설명한다 해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지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면서 혼란만 가중 될 뿐야.“ 그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정웅기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해!” 정웅기는 한동안 계속해서 차를 몰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우리가 마을에 접어들어 왼쪽 길로 들어와 흉가 까지는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마을이 보이지 않지?‘ 그는 시계를 다시 보았다. 그러나 시계는 처음 그들이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의 시간 9시30분에 멈추어 있었다. ‘젠장! 시간을 알 수 없으니....체감으로는 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정웅기는 차 운전을 하며 뒤 쪽을 보았다. 아이들은 너무 놀라고 지쳤는지 모두 쓰러져 자고 있었다. 느낌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렸다고 생각되는데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안개가 숲을 덮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돼. 길은 오직 이곳 하나 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들어갈 샛길은 보이지 않았어. 이 길만 따라가면 분명히 마을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해! 정말 이상해! 길을 잃은 걸까? 그리고 이 안개들은 뭐야? 기분 나쁘게 차원의 경계에는 항상 안개가 가득하다고 들었는데....혹시 이곳 어디에 차원의 경계를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나?‘ 안개가 너무 가득 차 올라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길을 천천히 가면서 정웅기는 긴장이 되었다. 이렇게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길을 운전하며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깨어날 줄 모르고 정웅기 혼자 운전을 하고 있자니 더욱 두려움이 일어났다. “모두 일어나봐!” 정웅기가 뒤 쪽을 보며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수면제를 먹은 듯 움직임이 없다. “젠장! 어떻게 저렇게 쉽게 잠들 수 있지?” 정웅기가 투덜거리며 다시 앞으로 볼 때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 흐릿한 것이 스윽 나타났다 사라졌다. “뭐야? 얘들아! 일어나봐!” 놀라서 소리쳤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은 일어 날 줄 몰랐다. 정웅기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앞을 보며 천천히 계속 운전해 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그래도 두려움이 많이 감소되는 듯 했다. “휴!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중얼거릴 때, 톡! 톡! 톡! 차창을 두둘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정웅기는 순간 머리칼이 일어서는 느낌이 들며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개 돌린 정웅기의 눈에 보인 것은 차 밖에서 무표정하게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하얗고 눈은 초점을 잃은 듯 멍하게 서서 정웅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정웅기가 아이들을 불렀다. “이...일어나봐!”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오히려 그의 좌측으로 무엇인가가 스윽 다가오며 정웅기를 불렀다. 웅기야......정웅기......가자......웅기야......가자.... 싸늘한 한기를 느끼며 그가 좌측을 보자 누군가 창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를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헛! 뭐.....뭐야!” 놀란 그가 보자 바로 창문하나를 둔 채로 차가운 미소와 함께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이 자신을 닮은 것 같았다. 아니, 핏기 없는 창백한 모습과 푸른 눈빛만 없다면 분명 정웅기 자신인 것이다. 바로 옆에서 푸른 눈빛을 번쩍이며 차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자 정웅기는 기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으으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차안의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엄마! 아아아!!” “안돼! 아아아!!” “윽! 악!” 강민우는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는 벌렁거리는 왼쪽 가슴을 만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휴!” 그 뿐만이 아니라 차 안에 있던 심운중과 강민아 그리고 정웅기 또한 식은 땀을 흘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심운중이 아직도 긴장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강민아가 두려움에 울먹이며 말했다. “아...악몽이야!” 강민우가 차 밖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우리 모두 잠들고 악몽을 꾸었나봐!” 정웅기도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옷깃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어떻게 우리 모두 갑자기 잠을 잔거지? 그리고 모두 악몽을 꾼 것 같으니...”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안개야! 한치 앞을 구별할 수 없는 안개가 가득 찼어. 아까 또 다른 우리가 흉가로 들어가는 것 까지는 본 것 같은데....그 후 모두 갑자기 잠이 든 건가?“ “그런가봐!” “그런데 여긴 어디지? 우리가 아까 주차하고 있던 곳과 다른 곳 같아.” “그러네. 아까는 저런 나무는 보이지 않았는데.” 정웅기는 짙은 안개 속에 거대하게 솟아오른 거목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기억이 안나. 내가 운전을 하다 잠들었나? 그래서 이상 곳에 정차하고 있나?” 그들이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을 때 강민아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나....말야.....이상해! 기억이....기억이 안나!” 그녀의 말에 강민우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기억이 안나다니!” “우리가 언제 만났었지? 여기 오기 전에 우리는 뭐했었지?” 그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하려던 강민우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여기...오기 전에....? 민아와 언제 만났었지? 어.....이상하네. 기억이 안나....” 그들의 말에 심운중과 정웅기 또한 자신들이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심운중이 머리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우린.....대학교....동아리 모임이었잖아. 그리고 흉가를 답사 온 거고.....” 그의 말에 강민아가 말했다. “그래. 맞아! 나도 거기까지는 기억이 희미하게 나 그런데 그 이전 기억이 없어. 우리가 정말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니? 너희들은 생각나? 집은? 그리고 다른 기억들은 생각나? 아니, 어제 네가 뭐 했었는지 기억이나?“ 그녀의 물음에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이상해! 생각이 안나...내가 어제 뭘 했지?” “나도 그래. 난 여기 들어오기 전에 뭘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웅기야 어떻게 된 거지? 우리 모두 왜 이렇지?“ 정웅기 또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도대체 뭐가 뭔지. 우리는 왜 흉가에 오게 된 거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웅기가 결심한 듯 말했다. “모두 이 이상한 공간에 우리가 들어 온 다음부터 생긴 일이야. 여기를 빠져 나가야해 그래야 모든 것이 풀릴 거야.“ 그가 말하며 차에 시동을 걸자 강민아가 긴장된 표정으로 안개 낀 숲을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지?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앞도 보이지 않잖아.” “일단 길을 따라가야지. 우리가 흉가로 갈 때는 길이 하나 뿐이 없었어. 이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올 꺼야. 우린 그 마을을 넘어 가야해!“
악마의 심장-28
13. 신들의 유희 -3
차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민우와 심운중은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차 운전을 하던 정웅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장호야! 네 덕분에 우리의 목숨을 건지게 되었구나!’
그림자들이 민장호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정웅기는 차를 더욱 몰아서
점점 그림자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언제 또다시 좆아 올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니 그나마 마음이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차 안은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물을 흘리던 강민우가 멍하게 있는 강민아를 보고 말했다.
“민아야!”
그러나 강민아는 아직도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하게 있었다.
“강. 민. 아!! 정신 차려!!”
강민우가 강민아를 흔들며 뺨을 찰싹! 찰싹! 때렸다. 그러자 멍하게 정신 못 차리던
강민아가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답답했으나 두 눈으로는 민장호의 죽음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소리치고 싶고 울고 싶었는데도 마음대로 않돼 안타까웠다. 그런데
강민우가 소리치며 뺨을 때리자 몸속을 옥죄던 기운이 사라지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흑! 흑! 흑! 어떻게! 장호 불쌍해서 어떻게....나 때문에...엉! 엉!”
그녀가 소리치며 통곡하자 차안은 다시 슬픔으로 물들어 갔다.
강민아가 진정되는 듯 보이지 강민우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우리들이 여럿 일 수 있었던 것이고
또 갑자기 모두 사라진 거지? 그리고 저 검은 그림자들은 또 뭐야?“
그의 말에 심운중도 중얼 거리듯 말했다.
“모르겠어. 우리가 2층에 올라갔을 때 웅기 네가 2층 창문을 닫고 있었어.
그리고 또 다른 우리가 막 흉가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았지. 그리고
민우가 내려간 후 갑자기 저 시커먼 그림자들이 우리를 공격해서 도망쳤는데
정말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꿈을 꾸고 있나?“
흐느끼던 강민아가 말했다.
“흐흐....나 무서워! 우린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
그들의 말을 듣던 정웅가가 운전을 하다 갑자기 차를 길 가장자리에 주차하며
소리쳤다.
“알 것 같다. 어떻게 된 건지.”
그의 말에 강민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래? 말해봐!”
정웅기가 심각한 얼굴로 뒤 쪽의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흉가가 이상한 모습으로 찌그러드는 것을 봤지?”
“응.”
“그래. 마치 짓눌리듯이 일그러져버렸어.”
“맞아. 그 위로 그림자들이 갑자기 더 불어났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정웅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내내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어. 그리고 또 다른 우리들을 계속 해서 만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더구나 또 다른 우리들은 결코 귀신이 아니였어.
그들 또한 우리를 보고 놀라며 우리를 오히려 귀신이라고 했지.“
“맞아! 그들도 놀라는 것 같았어.”
“그럼? 우리가 과거로 돌아간 걸까?”
정웅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우린 결코 과거로 돌아가거나 한 것이 아니야. 내 생각에는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적어도 그 흉가에서는 3차원 적인 흉가가 갑자기
1차원적으로 찌그러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그렇고 또 다른 우리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는 것도 그것을 증명하는 거야.“
그의 말에 강민아가 더욱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알 수가 없어.”
“한마디로 우리가 만난 것은 과거의 우리들이란 말이야. 민우와 운중이가 2층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났다는 것은 처음 내가 흉가에 도착해서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모습을 본 거지. 나도 2층에 올라가서 창문을 닫으며 아래쪽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본 것을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밖에서 민우를 찾으며
돌아다닐 때 2층 창문을 닫는 사람을 봤는데 그게 바로 나였던 거야. 내가
나를 아래에서 올려보고 있었던 거지. 즉,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겹쳐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게 된 거지.“
그의 말을 듣던 강민우가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가능하다는 거야? 어떻게 과거와 현재가 같이 한 공간에 존재하지?”
“나도 모르겠어.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믿기지 않고,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은
일을 설명하려면 그것 밖에 없어. 그리고 실제로 차원의 공간이란 것은 하나의 경계와
같은 것이지 그 경계가 무너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심운중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네 말대로.....차원의 경계가 무너진다면....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정웅기가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된다면.....그것은 혼돈이지.....즉, 세상의 종말이야.”
강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서....설마?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것이란 말이야?”
정웅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일단은 이곳을 나가봐야 알지. 어쩌면 이곳 흉가에만
국한 된 일일지도 몰라. 가끔 차원의 경계와 경계에는 이곳처럼 시간 개념이
무너지는 중간 공간이 생기기도 하거든.....어쩌면 저 흉가가 그 중간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그러니 우린 그 공간만 빠져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어.“
정웅기의 설명을 들으며 그를 쳐다보던 강민아가 놀라서 소리쳤다.
“헛! 우....웅기야....네 얼굴이....네 얼굴에....갑자기 피가 흘러!”
강민아의 놀람에 찬 목소리에 강민우와 심운중은 정웅기의 얼굴을 쳐다보고
놀랐다. 정웅기의 얼굴에는 원래 상처가 없었는데 갑자기 얼굴 양쪽에 핏줄기가
천천히 생기더니 그곳에서 핏물을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굴 곳곳에 퍼런 멍 자국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더니 입술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상처를 내듯 터지기 시작했다.
순간 고통에 정웅기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아....아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민우가 심운중의 어굴을 보고 놀람에 차서 소리쳤다.
“운...중아! 네 얼굴도....!!”
심운중은 강민우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너....너도 그래! 민우 네 얼굴도 상처투성이로 변해가고 있어!”
그들의 말에 조그만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든 강민아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람에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얼굴이....”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 점점 상처가 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왼쪽 눈에
시퍼런 멍이 생기더니 점점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상하게 왼 쪽
아랫배가 심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아....배...가 갑자기 아파!”
그러나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차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 또한 온 몸이 욱씬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특히, 정웅기의 머리에서는 붉은 핏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심운중이 옷깃을 찢어 그의 머리에 묶었다.
한동안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서로의 얼굴을
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강민우가 정웅기를 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우리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온 몸에 멍이 생기며 아픈 거지?”
정웅기가 깊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이건 우리 스스로 낸 상처 일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숲의 그림자를 피해 도망쳐 왔을 때, 마당에서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어. 나도 내 자신과 죽일 듯이 싸우고 있더라고....황당했지. 나중에
우리가 싸움을 멈추고 그림자들을 피하려 할 때 또 다른 우리들이 사라져 버렸지.
그것은 이미 차원이 삼차원에서 일차원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며 과거의 우리가
사라진 거야.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우리는 사라졌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는 그
상처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현실을 자각하므로 해서 아까
우리가 싸울 때 생긴 상처가 몸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긴 상처란 말이지. 후후...웃기지?
자기가 자기를 때리고......“
그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숲 길 앞쪽에서 밝은 불빛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뭐야? 웬 불빛?”
그 불빛을 보고 놀란 정웅기는 차 라이트를 끄고 시동을 껐다. 이미 길 외곽으로
피해 있으므로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불빛을 보며 말했다.
“쉿! 조용해! 저건 꼭 차동차 불 빛 같은데...”
그들이 숨죽이고 있자 점점 불빛이 다가오며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역시! 차가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어!”
강민우가 조용히 말하며 앞으로 볼 때 차 한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점점 차가 그들 앞 쪽으로 다가올수록 이아들의 눈은 의문과 경악으로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이내 차가 그들 앞을 지나갈 때는 모두 입술을 깨물며 덜덜 떨었다.
정웅기가 지나가는 차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우리는 차원의 경계에 있나보다. 흉가뿐만 아니라 이 일대가 모두 차원의 중간
공간인가 봐!“
방금 그들의 앞을 지나간 차는 처음 그들이 흉가에 가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강민아는 바로 앞을 지나가는 차안에서 또 다른 자신이 밝게 웃으며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며 울먹였다.
“웅기야....저 차! 흉가에 못 가게 말리자! 우리가 저 차 못 가게 말리면 장호를
살릴 수 있잖아. 그렇지? 처음부터 저 흉가에 가지 않으면 되잖아! 지금 차타고
가는 과거의 우리를 막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잖아!“
그녀의 말에 강민우와 심운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맞아! 그래 막자!”
그러나 정웅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나도 차라리 저들을 지금 붙잡고 싶어. 그러나 소용없어.”
강민아가 따지듯 물었다.
“왜?”
“우리 얼굴에 난 상처가 왜 갑자기 생겼지? 이것은 우리가 자각을 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실이 겹치면서 생겨난 거야. 그런데 똑 같은 우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들에게 그것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되겠니? 또 다른 우리들이 우리를 귀신이
아니라고 믿더라도 장호는 자각하는 순간 사라지게 될 꺼야. 이 건 영화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들이 지금 우리의 과거 모습이지만 결코 과거는 아니라는 말이지. 이곳은
차원 경계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중간 공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어쩌면 우리가 방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한 순간의
흔적일지도 몰라 즉, 이 공간에 우리가 들어오면서 남겼던 흔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저들을 붙잡아서 설명한다 해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지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면서 혼란만 가중 될 뿐야.“
그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정웅기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해!”
정웅기는 한동안 계속해서 차를 몰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우리가 마을에 접어들어 왼쪽 길로 들어와 흉가 까지는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마을이 보이지 않지?‘
그는 시계를 다시 보았다. 그러나 시계는 처음 그들이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의
시간 9시30분에 멈추어 있었다.
‘젠장! 시간을 알 수 없으니....체감으로는 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정웅기는 차 운전을 하며 뒤 쪽을 보았다. 아이들은 너무 놀라고 지쳤는지
모두 쓰러져 자고 있었다. 느낌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렸다고 생각되는데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안개가 숲을 덮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돼. 길은 오직 이곳 하나 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들어갈 샛길은
보이지 않았어. 이 길만 따라가면 분명히 마을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해!
정말 이상해! 길을 잃은 걸까? 그리고 이 안개들은 뭐야? 기분 나쁘게
차원의 경계에는 항상 안개가 가득하다고 들었는데....혹시 이곳 어디에
차원의 경계를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나?‘
안개가 너무 가득 차 올라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길을
천천히 가면서 정웅기는 긴장이 되었다. 이렇게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길을 운전하며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깨어날 줄 모르고 정웅기 혼자 운전을 하고 있자니 더욱
두려움이 일어났다.
“모두 일어나봐!”
정웅기가 뒤 쪽을 보며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수면제를 먹은 듯 움직임이 없다.
“젠장! 어떻게 저렇게 쉽게 잠들 수 있지?”
정웅기가 투덜거리며 다시 앞으로 볼 때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 흐릿한 것이
스윽 나타났다 사라졌다.
“뭐야? 얘들아! 일어나봐!”
놀라서 소리쳤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은 일어 날 줄 몰랐다.
정웅기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앞을 보며 천천히 계속 운전해 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그래도 두려움이 많이 감소되는 듯 했다.
“휴!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중얼거릴 때, 톡! 톡! 톡! 차창을 두둘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정웅기는 순간 머리칼이 일어서는 느낌이 들며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개 돌린 정웅기의 눈에 보인 것은 차 밖에서 무표정하게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하얗고 눈은 초점을 잃은 듯 멍하게 서서
정웅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정웅기가 아이들을 불렀다.
“이...일어나봐!”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오히려 그의 좌측으로 무엇인가가 스윽 다가오며
정웅기를 불렀다.
웅기야......정웅기......가자......웅기야......가자....
싸늘한 한기를 느끼며 그가 좌측을 보자 누군가 창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를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헛! 뭐.....뭐야!”
놀란 그가 보자 바로 창문하나를 둔 채로 차가운 미소와 함께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이 자신을
닮은 것 같았다. 아니, 핏기 없는 창백한 모습과 푸른 눈빛만 없다면 분명
정웅기 자신인 것이다. 바로 옆에서 푸른 눈빛을 번쩍이며 차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자 정웅기는 기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으으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차안의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엄마! 아아아!!”
“안돼! 아아아!!”
“윽! 악!”
강민우는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는 벌렁거리는 왼쪽 가슴을 만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휴!”
그 뿐만이 아니라 차 안에 있던 심운중과 강민아 그리고 정웅기 또한 식은 땀을
흘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심운중이 아직도 긴장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강민아가 두려움에 울먹이며 말했다.
“아...악몽이야!”
강민우가 차 밖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우리 모두 잠들고 악몽을 꾸었나봐!”
정웅기도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옷깃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어떻게 우리 모두 갑자기 잠을 잔거지? 그리고 모두 악몽을 꾼 것 같으니...”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안개야! 한치 앞을 구별할 수 없는 안개가 가득 찼어. 아까 또 다른 우리가
흉가로 들어가는 것 까지는 본 것 같은데....그 후 모두 갑자기 잠이 든 건가?“
“그런가봐!”
“그런데 여긴 어디지? 우리가 아까 주차하고 있던 곳과 다른 곳 같아.”
“그러네. 아까는 저런 나무는 보이지 않았는데.”
정웅기는 짙은 안개 속에 거대하게 솟아오른 거목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기억이 안나. 내가 운전을 하다 잠들었나? 그래서 이상 곳에 정차하고 있나?”
그들이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을 때 강민아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나....말야.....이상해! 기억이....기억이 안나!”
그녀의 말에 강민우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기억이 안나다니!”
“우리가 언제 만났었지? 여기 오기 전에 우리는 뭐했었지?”
그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하려던 강민우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여기...오기 전에....? 민아와 언제 만났었지? 어.....이상하네. 기억이 안나....”
그들의 말에 심운중과 정웅기 또한 자신들이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심운중이 머리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우린.....대학교....동아리 모임이었잖아. 그리고 흉가를 답사 온 거고.....”
그의 말에 강민아가 말했다.
“그래. 맞아! 나도 거기까지는 기억이 희미하게 나 그런데 그 이전 기억이 없어.
우리가 정말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니? 너희들은 생각나? 집은? 그리고
다른 기억들은 생각나? 아니, 어제 네가 뭐 했었는지 기억이나?“
그녀의 물음에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이상해! 생각이 안나...내가 어제 뭘 했지?”
“나도 그래. 난 여기 들어오기 전에 뭘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웅기야
어떻게 된 거지? 우리 모두 왜 이렇지?“
정웅기 또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도대체 뭐가 뭔지. 우리는 왜 흉가에 오게 된 거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웅기가 결심한 듯 말했다.
“모두 이 이상한 공간에 우리가 들어 온 다음부터 생긴 일이야. 여기를 빠져
나가야해 그래야 모든 것이 풀릴 거야.“
그가 말하며 차에 시동을 걸자 강민아가 긴장된 표정으로 안개 낀 숲을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지?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앞도 보이지 않잖아.”
“일단 길을 따라가야지. 우리가 흉가로 갈 때는 길이 하나 뿐이 없었어. 이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올 꺼야. 우린 그 마을을 넘어 가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