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14

삶의이유200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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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14

 

삐익~~ 소름끼치는 쇠의 마찰음을내며 문이 열렸다.

[3133 편지 쓴다고 했나?]

 

이곳은 제소자들 사이에 소위 통방이라는 것이 있어서 방으로는 필기도구의 반입이 되질 않았다.

편지를 쓰려는 제소자들은 모두 관에 하루전에 허가를 받아야했고, 허가 받은자만이 주어진 시간동안 편지를 쓸수 있었다.

공범과 말을 맞추어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모의를 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영도 어제 편지를 쓰겠노라고 신청을 해논 상태였으므로 아침부터 창가에 매달려 초조함을 달래며 서 있있다.

3번의 재판을 마치는 동안 지칠데로 지친 그였고, 어쩐지 매일 오던 편지가 갈수록 뜸 해지면서 급기야 10여일이 넘도록 혜영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집필실의 문이 열렸다.

벽을 바라보며 앉은뱅이 탁자가 길게 둘리어져 있는 자그마한 방이었다.

지영은 편지엽서와 검정색 볼펜 한자루를 받아들고 창가쪽으로 갔다.

창문 넘어로 많은수의 비둘기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뭐라 지껄이고 있는듯했다.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 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잔은 미리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랑하는 혜영씨...

  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건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어제 3번의 재판이 끝났어...

  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사실이 벌어지게 된건지 알수는 없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혜영씨에게

  해주지 못한 많은 것때문에 벌 받고 있는건가봐.

  요즈음 통 편지도 없고..면회도 없고...걱정 많이 하고 하루하루 혜영씨 생각으로 보내려다보니

  갑자기 너무 힘들어지네.

  나 참 이기주의지?

  어제 움직이는 차에 매달려 뛰어오던 혜영씨 모습 보았어.

  차안에서는 밖의 모습이 잘 보이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서럽던지, 안울겠다고 눈물보이지 않겟다고 맨날 다짐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

  혜영씨도 안울겠다고 햇으면서 우는걸보니 혜영씨나 나나 둘다 어지간히 바보 인가봐.

  혜영씨..

  참 마니 힘들지?

  못난 사람 만나서 맘 고생 너무많지?

  근데 내가 여기서 해 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그래서 더 맘이 아픈거구.

  힘들었던거. 가슴 아팠던거. 모두 갚아줄께...

  조금만 더 기다려줘.

  보고싶다.. 너무나 뼈에 사무치도록...

  사랑해]

 

 정성들여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던지.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몇번을 읽고 또 읽고 ...

 편지를 접어 담당 교도관에게 건네주었다.

 갑자기 일어서서인지 무릎부분이 저려왔다.

 

[편지썼냐?]

[네]

[누구한테?]

[애인한테요]

편지를 쓰고 나온 지영이 옷을 채 벗어던지기도 전에 방장을 말을 건넸다.

[요즘 니 애인한테 편지 안오던데 먼일있냐?]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겟어요. 어제 재판에는 왓던데]

[요즘 면회도 통 안오자나]

[네]

지영이 맥이 풀려버렸다.

내심 그 부분이 걱정되고 불안스러워 몇일씩 잠을 제대로 이룰수 없는 그였다.

[고무신 꺼꾸로 신은거지 임마]

물총이 아무생각없이 던진 말이었다. 지영은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야..그냥 해본말이야..아 그새끼 성깔하고는...]

[내 앞에서 그런말 하지마요.]

[안한다 안해 새끼야]

벗던 옷을 그냥 입어버렸다.

바닥에 털썩하고 앉아버렸다.

방안 사람들 모두는 알고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처음이 아니었고, 무수히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저렇게 힘들어하고 그들이 모른척 해주면서 시간이 지나가면 또 알게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심 지영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만 초범일뿐..여기 이들은 보통이 4-5범이니 많은 경험들을 했을테고 심지어 검사나 판사가 어떻게 질문을 할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때 이렇게 혹은 저렇게 대답하라고 일러주기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꼭 그렇게 물어왔다. 시킨데로 대답도 했다.

[만일....

 저들이 하는말이 맞는거라면....

 정말 혜영이 떠나가 버린거라면....

 난 어찌해야 하는걸까]

몇번이고 반문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