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시절에 시동생, 시누이 데리고 살지 맙시다!

새댁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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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시동생 혹은 시누이와 같이 사는 걸 너무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답답한 마음에 유부녀가 몇 글자 적습니다.

 

신혼일기 게시판에도 올렸는데요. 여기에도 올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저희 친정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저 먼 남쪽나라 작은 섬에서 8남매 중에 다섯째로 태어나 유일하게

 

대학교육 받고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얻어, 은행 다니는 엄마 만나 결혼한 우리

 

아버지에게는 일곱명의 피붙이들이 있었드랬죠.

 

울 엄마 결혼하자마자 잠실 아파트 전세 13평 신혼집으로 우리 할머니 삼촌들

 

하나둘 올려보냈습니다.

 

"야야.. 형이 똑똑허니 아파트 갖구 사는디 뭐허러 넘의 집에서 서럽게 산다냐.

 

여섯째가 서울서 일자리 구했데니께 니가 데불고 있으믄서 청소도 시키고 그람서

 

정다웁게들 살그라."

 

갓 결혼한 우리 엄마 나이 차이 안 나는 시동생이 너무 어려워 한 여름에 소데나시 한번

 

못 입어 보고, 저녁은 꼭 집에서 먹는 눈치없는 시동생 더운 국 끓여대며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애기들 태어나고 집 늘려 가니까 울 할머니 막내 고모까지 올려

 

보냈습니다. 우리 막내 고모, 엄마 일도 종종 도와주고 집에서 밥도 자주 안 먹고 늦게

 

들어와서 엄마 힘들게 안했다고 지금도 그러지만 아주 웃기지도 않습니다.

 

막내고모가 우리 집에 얹혀살면서 엄마는 집으로 친정 식구를 부르지도 못하고

 

친구들도 잘 놀러오지 못했죠. 입 싼 고모가 할머니한테 걸핏하면 언니네는

 

친정 식구들이 노상 사네 어쩌네 중계방송 하는 통에요. 시누이랑 사는 거 정말

 

힘듭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살림살이 간섭해, 세탁기에는 빨래감만 늘고,

 

할머니는 처녀애 행동거지 감시하라며 엄마 볶아대고. 

 

삼촌은 친구들 데리고 와서 먹고 노는 걸 무지 좋아했습니다.

 

작은 방에서 담배 뻑뻑 피우며 시골 친구들 불러서 고스톱 치고

 

게임하고. 어린 제 눈에도 그렇게 사는게 정말 꼴보기 싫었는데 엄마야 오죽

 

했을까요. 그런 삼촌이 5년 뭉개고 장가가니까 결혼 안한 막내 삼촌이 신세 좀

 

지자고 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삼촌이고 고모고 다 필요없으니 제발 우리

 

가족끼리 정말 명실상부한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사는게 소원이었습니다.

 

고모랑 삼촌이 놀아주고 가끔 간식도 사주고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이

 

빌 붙어 사는 통에 우리 가족은 단란함과 아기자기함은 찾아볼 수 없는

 

왠지 어수선하고 불완전한 가족공동체였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성가신 존재들과  

 

살아야 하는게 불만스러웠고, 어쩌다가 삼촌과 고모가 집에 없을 때 느끼던 평안함과

 

안락함을 왜 우리는 박탈당해야 하는지, 왜 고모와 삼촌은 충분히 빌 붙지 않고도

 

자기들이 독립할 수도 있는데 그 되지도 않는 가족 타령을 하며, 자기들은 형수와

 

언니한테 전혀 불편함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형수와 조카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제 어릴 때 기억은 오빠랑 늘 테레비 채널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던

 

철없는 삼촌들과 가족이네, 뭐네 내세우며 끈질기게도 붙어살던 고모.

 

거기서 맘 고생, 몸 고생 하던 불쌍한 우리 엄마에 대한 답답한 추억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몇 해 전인가 아빠랑 크게 다투시고 엄마가 눈물흘리며 말씀

 

하시더군요. 결혼하자마자 시동생 데리고 사는 통에 그 흔한 애정표현 한 번

 

못하고 살았다구요. 그래서 남편과 애틋한 정이 쌓일 틈이 없어서 결혼

 

생활이 참으로 힘들었다구요.

 

항상 생활이 식구들 뜨신 밥 해내느라 피곤하고 시댁붙이들 신경쓰이고 형수

 

노릇하느라 꾹꾹 참다보니 남편에 대한 원망만 쌓이고 있던 사랑도 차츰

 

없어졌다는 엄마 말에 눈물이 나더군요. 이제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다시 태어나면

 

시댁 식구들 끼고 살면서 맘 편히 살아보지 못했던 이런 구질구질한 자리로 절대 시집

 

안 올거라는 착하디 착하기만 했던 엄마의 한서린 외침에 저도 아빠도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제 결혼한지 4개월 된 새댁입니다.

 

맞벌이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신랑이 장남이지만 아직 부모님 젊으시고

 

정정하셔서 분가해서 살고 있죠. 물론 시동생, 시누이는 부모님이랑 삽니다.

 

다행이 시댁이 서울이라 우리 엄마처럼 서울로 상경한 시동생, 시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할 원천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댁이 지방이라 시동생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원천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전 단호하게 안 데리고

 

살았을 겁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정말 뼛 속 깊이 아픔으로

 

남은 엄마의 고생사를 알기 때문이요,  30년이 지났지만(자기 형이랑 오빠네

 

집이 곧 부모집이랑 마찬가진데 같이 사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함) 아직도

 

삼촌과 고모는 그 때 자기들이 얼마나 무신경하고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조카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앞으로 제가 낳을 아이들이

 

객 식구들로 인해 저처럼 단란한 가정을 갖지 못하고 자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이 말하더군요. 결혼 해서 2년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부부간의

 

정을 쌓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서로의 마음 속의 아픔과 그 누구하고도 나누지 못했던

 

비밀도 공유하고,  가슴 깊은 곳의 정서까지 이해해야 남은 한 평생을 사랑과 이해로

 

산다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정표현도 자주하고 부부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결혼해 보니까 정말 그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연애할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더군요.

 

엄마가 해준 밥만 먹다가 제가 직접 밥하고, 빨래하고, 먹은 것 치우려고 하니

 

어쩔 때는 그냥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하는

 

집안 일인데도 너무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서 괜히 신경질이 날때도 있더군요.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했는지도 알겠더군요. 세상에 주부 손을

 

거치지 않고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끔 신랑한테 투정 부리면 신랑이

 

흔쾌히 청소도 도와주고 쓰레기도 버려주고 밥도 해줍니다.

 

집안일 해주고 나면 제가 이쁘다고 엉덩이 토닥거려 줍니다. 뺨에도 쪽소리

 

나게 뽀뽀해주구요. 이제는 집안 일 하면 으례 자기가 엉덩이 두드려 달라고 내밀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책임감 강한 장남으로 길러져서

 

무뚝뚝하고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신랑이  지금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편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뒤에서 꼭 껴안고

 

말해주고 잠자기 전에는 당신이랑 결혼해서 정말 행복하다고 속삭여줍니다.

 

어쩔 때는 과일도 먹여주고 양말도 신겨주고 사랑스럽다고 많이 많이 안아줍니다.

 

부부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이런 애정표현들이 결혼 생활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필수 조건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이렇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애정표현과 사랑의 마음을 마음껏 고백할 수 있는 이런 2~3년의 시간들이 우리

 

부부의 평생을 행복하게 지켜줄 원동력이 될 거라고 전 확신합니다.

 

오빠 집인데 어때 하며 갓 결혼한 새언니 집에 얹혀 살고 계시는 시누이 여러분,

 

아니면 앞으로 그럴 계획인 시동생, 시누이, 친정동생 여러분.

 

둘만이 오붓하게 살아야 할 최소 2~3년의 신혼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달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앞으로 오빠 부부가 평생 살아가자면 구비구비 많은 시련이 있겠지요.

 

그 많은 시련을 이겨가자면 둘 만의 아기자기한 추억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랑을 공고하게 다지는 기간이 바로 신혼입니다.

 

오빠와 형을 사랑한다면, 정말로 그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면, 그리고 새언니에게도

 

조카들에게도 행복을 추구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능력이 있다면 그들에게 신혼의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

 

오빠와 새언니는 훗날 여러분의 부모님께, 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될 소중한 가족입니다. 오빠는 남자라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트러블이

 

뭔지 잘 몰라서, 장남이면 응당 져야할 짐이라고 생각하는 장남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럼없이 여러분과 같이 살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빠를 사랑한다면

 

한 발 물러서서 새언니의 마음도 헤아려 주세요.

 

오빠와 평생 살 새언니는 여러분이 분명 어렵고 불편할 겁니다.

 

그 누구보다도 오빠랑 둘만이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을 겁니다.

 

그 마음은 못된 이기심도 아니고 새언니가 품어서는 안 되는 큰 욕심이 아닙니다.

 

신혼에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있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오빠는 새언니 앞에서 응석쟁이가 될 수도 있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행복한 추억과 사랑을 만드는 일에 제발 방해자로 끼어들지 마세요.

 

시동생, 시누이들로 신혼이란게 없이 벅적거리며 살아야 했던 우리 엄마의 기막힌

 

삶이 하도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예비 새댁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동생들인데 어때 하면서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 마음이 평생 한으로, 피해의식으로, 상실감으로 돌아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엄마 세대야 못살고 힘들어서. 그리고 며느리의 인권을 너무 경시하는

 

사회 풍토라서 그랬다 칩시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젊은 새댁들에게 신혼기간의 중요함을 모르는 시댁의 무지와 결혼 하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농경사회에나 있을 법한 전근대적인 대가족제도의 윤리로 시동생들을

 

떠맡기는 것은 명명백백하게 부당한 일입니다. 결혼한 며느리들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야 남편들도 가정에서 안락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새는 싱글족들을 위해 보증금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원룸도 많고,

 

얼마 간의 보증금과 관리비를 내면 혼자 편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새언니와 오빠의 행복을 침해하면서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집에서 방해꾼으로  눈치코치 없이 동거하지 마시고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나오시길 바랍니다. 친정 언니 집에 얹혀 살고 있다면 형부와

 

언니한테 크나큰 정신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겁니다. 꽃같이 예쁜 신부와

 

둘만이 살고 싶은 마음은 형부도 간절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시동생들로 심하게 마음 고생한 우리 엄마는 지금도 한이 많습니다.

 

시동생 뒤치닥거리하며 애쓴 공도 없고, 고맙다 말도 못 들은 그 구질구질한 자리로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시집 안간다고 하십니다.

 

혹시 시댁으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동생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압력을 받고 계시는

 

예비 신부님들이 있다면 부당한 요구니까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삼촌, 고모와 살아봐서 아는데 그 길은 정말로 고생길 입니다.

 

엄마 세대도 아닌데 왜 그 짐을 다시 물려받으려 하십니까. 왜 그 부당함에

 

침묵하고 계십니까. 당당하게 신혼의 권리를 주장하시고 남편을 설득하세요.

 

이해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죠? 서로 갈등만 쌓이고 그 뿌리 깊은 갈등은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님의 가슴에 큰 구멍으로 남습니다.

 

불쌍한 친정 엄마 생각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픕니다.

 

이리 시간이 지났건만 엄마의 고통을 방치한 아빠의 무심함에도 속이 상합니다. 

 

시댁 식구들로 인해 일생에 한번 뿐인 신혼을 방해받지 마시고 부디 행복한

 

결혼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