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나를 위해 스스로 신분을 포기하고 천민부락으로 들어가 숨어사신 분이란다. 한 번도 힘들거나 슬픈 티를 내지 않아 나는 어머니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지. 어머니와 나는 행복했어. 하지만...병세가 깊어져 어머니는 결국 내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지."
묘영은 동정심이 어린 눈으로 아화를 쳐다보았다. 세상 유일한 핏줄을 떠나보내고 덩그라니 남아버린 소녀의 막막함이 가슴에 와 닿아서였다.
" 홀로 남은 뒤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부락 사람들은 인심이 좋고 착한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고아나 매 한가지인 나를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거든.그래서 난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화의 부락 사람들은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천민부락이라고 다 같은 인심은 아니었다. 어떤 부락은 같은 천민들에게도 혐오를 살 정도로 사납고 지저분하고 온갖 퇴폐가 판치기도 했다. 아화가 좋은 부락민을 만났것도 다 그녀의 복인지도 몰랐다.
" 특히 부락의 족장 어르신의 은혜를 많이 입었지.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일부터 상실감에 빠져 식음을 전폐한 나를 달래어 미음을 먹이시는 일까지 은혜를 많이 입었다. 내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지. 그 많은 손주들을 뒤로 하시고 나를 위해 구하기 힘든 책까지 구해다 주시기도 하셨어. 그 분은 내가 책을 펴고 공부하는 걸 보시면서 좋아하셨단다. 결국 나는 그 분 때문에 책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어"
아화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괴로운 기억이 머릿 속을 스치는 모양이었다.
" 그런 행복한 시간이 계속 될 줄만 알았지. 나는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컸고 어르신의 바램대로 내가 아는 것들을 부락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단다. 천민의 아이들이지만 모두가 영리했고 나는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좋았어. 그런데....어느 날, 관군이 들이닥쳤단다. 우리가 반역죄를 지었다더구나. 다들 억울하게 죽어갔지. 그 선한 사람들이...하늘 무서운 줄만 아는 우리가..반역이라니..힘이 없어 다들 저항 한 번 못하고 죽어갔단다."
아화의 슬픈 목소리에 묘영은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짓밟던 관군의 무리들이 떠오르며 묘영은 몸서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화의 눈빛도 슬프게 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같은 공포를 맛 보았던 것이다.
" 평화롭던 저녁 식사 시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밖에선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곧 관군들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지. 어르신은 나를 제일 먼저 숨기셨다. 혈족들이 아닌 나를 말이야.."
",,,,,,,,,,,,"
"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던 나는 어르신께 떠밀려 침대 밑 판자를 뚫어놓은 좁은 공간에 숨을 수 있었지. 벌어진 마루 바닥을 통해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관군들이 보였다. 온갖 집기며 살림살이들이 부서지고 나는 무서움에 떨었지. 너무 무서워서....그 곳에서 나갈 수조차 없더구나. 무섭게 생긴 장수 하나가 칼을 빼어 들었고....어르신이 피를 튀기며 쓰러지셨다. 하지만 그걸 눈 앞에서 보면서도 팔다리에 힘이 빠져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더구나...."
묘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화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손가락을 뻗어 여린 묘영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아화 역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촉촉한 눈이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 악몽같은 기억이지. 아직도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끔찍한 기억말이야. 나는 그 후에 무엇보다도 그 때 뛰쳐나가지 못하고 두려움에 숨어 있던 내가 미워서 참기가 힘들었단다. 차라리 그 때 같이 죽어버릴껄하는 후회가 남아 가슴을 뜯으며 살았단다..."
아화는 짧게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놀랄 만큼 담담하게,
" 내 양부이셨던 어르신께 칼을 들이 댄 장군이 바로.....영조님이시란다."
" 어..어떻게!"
오히려 묘영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조는 북방성의 이름높은 장군으로 소예공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명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복잡한 절차없이 아화를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귀한 손님이기도 했다. 묘영은 한 번도 영조를 모시는 아화에게서 분노나 살기같은 부정의 감정을 느낀 것이 없었다. 아화는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였고 최선을 다해 영조장군을 모시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그가 아화의 은인을 단칼에 베고 그녀의 평생을 짓밟은 바로 그 존재라니 묘영은 심히 놀랐다.
죽이고도 시원치않을 원수를 가까이 두고, 게다 어떻게 일말의 분노도 없이 진심으로 웃으며 대할 수 있는지 묘영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 저..는...."
묘영은 말을 삼켰다.
" 괜찮아. 말 해 보거라"
"......이해가 안갑니다. 어째서 아화님은 그런 분을 사심없이 모실 수가 있는지요? 저 같으면..외람되오나..."
".........?"
" 칼을 뽑았을지도 몰라요."
아화는 묘영이 조심스레 내 뱉는 말에 싱긋 웃었다.
" 나도 그랬다. 처음 만화루에서 영조님의 모습을 뵈었을 때, 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끔찍했던 그 날의....짐승처럼 어르신께 달려들던 그 원수의 모습과 죽어가던 어르신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내 가슴에 복수의 불꽃이 튀었지. 내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후회로 지새우던 지난 시간의 그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말이야."
묘영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태연해 보이는 아화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항상 가슴에 단도를 품고 다녔지. 그와 단 둘이 대면할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초율(礎律) 제 36화
" 어머니는 나를 위해 스스로 신분을 포기하고 천민부락으로 들어가 숨어사신 분이란다. 한 번도 힘들거나 슬픈 티를 내지 않아 나는 어머니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지. 어머니와 나는 행복했어. 하지만...병세가 깊어져 어머니는 결국 내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지."
묘영은 동정심이 어린 눈으로 아화를 쳐다보았다. 세상 유일한 핏줄을 떠나보내고 덩그라니 남아버린 소녀의 막막함이 가슴에 와 닿아서였다.
" 홀로 남은 뒤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부락 사람들은 인심이 좋고 착한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고아나 매 한가지인 나를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거든.그래서 난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화의 부락 사람들은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천민부락이라고 다 같은 인심은 아니었다. 어떤 부락은 같은 천민들에게도 혐오를 살 정도로 사납고 지저분하고 온갖 퇴폐가 판치기도 했다. 아화가 좋은 부락민을 만났것도 다 그녀의 복인지도 몰랐다.
" 특히 부락의 족장 어르신의 은혜를 많이 입었지.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일부터 상실감에 빠져 식음을 전폐한 나를 달래어 미음을 먹이시는 일까지 은혜를 많이 입었다. 내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지. 그 많은 손주들을 뒤로 하시고 나를 위해 구하기 힘든 책까지 구해다 주시기도 하셨어. 그 분은 내가 책을 펴고 공부하는 걸 보시면서 좋아하셨단다. 결국 나는 그 분 때문에 책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어"
아화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괴로운 기억이 머릿 속을 스치는 모양이었다.
" 그런 행복한 시간이 계속 될 줄만 알았지. 나는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컸고 어르신의 바램대로 내가 아는 것들을 부락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단다. 천민의 아이들이지만 모두가 영리했고 나는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좋았어. 그런데....어느 날, 관군이 들이닥쳤단다. 우리가 반역죄를 지었다더구나. 다들 억울하게 죽어갔지. 그 선한 사람들이...하늘 무서운 줄만 아는 우리가..반역이라니..힘이 없어 다들 저항 한 번 못하고 죽어갔단다."
아화의 슬픈 목소리에 묘영은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짓밟던 관군의 무리들이 떠오르며 묘영은 몸서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화의 눈빛도 슬프게 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같은 공포를 맛 보았던 것이다.
" 평화롭던 저녁 식사 시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밖에선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곧 관군들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지. 어르신은 나를 제일 먼저 숨기셨다. 혈족들이 아닌 나를 말이야.."
",,,,,,,,,,,,"
"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던 나는 어르신께 떠밀려 침대 밑 판자를 뚫어놓은 좁은 공간에 숨을 수 있었지. 벌어진 마루 바닥을 통해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관군들이 보였다. 온갖 집기며 살림살이들이 부서지고 나는 무서움에 떨었지. 너무 무서워서....그 곳에서 나갈 수조차 없더구나. 무섭게 생긴 장수 하나가 칼을 빼어 들었고....어르신이 피를 튀기며 쓰러지셨다. 하지만 그걸 눈 앞에서 보면서도 팔다리에 힘이 빠져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더구나...."
묘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화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손가락을 뻗어 여린 묘영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아화 역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촉촉한 눈이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 악몽같은 기억이지. 아직도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끔찍한 기억말이야. 나는 그 후에 무엇보다도 그 때 뛰쳐나가지 못하고 두려움에 숨어 있던 내가 미워서 참기가 힘들었단다. 차라리 그 때 같이 죽어버릴껄하는 후회가 남아 가슴을 뜯으며 살았단다..."
아화는 짧게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놀랄 만큼 담담하게,
" 내 양부이셨던 어르신께 칼을 들이 댄 장군이 바로.....영조님이시란다."
" 어..어떻게!"
오히려 묘영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조는 북방성의 이름높은 장군으로 소예공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명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복잡한 절차없이 아화를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귀한 손님이기도 했다. 묘영은 한 번도 영조를 모시는 아화에게서 분노나 살기같은 부정의 감정을 느낀 것이 없었다. 아화는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였고 최선을 다해 영조장군을 모시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그가 아화의 은인을 단칼에 베고 그녀의 평생을 짓밟은 바로 그 존재라니 묘영은 심히 놀랐다.
죽이고도 시원치않을 원수를 가까이 두고, 게다 어떻게 일말의 분노도 없이 진심으로 웃으며 대할 수 있는지 묘영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 저..는...."
묘영은 말을 삼켰다.
" 괜찮아. 말 해 보거라"
"......이해가 안갑니다. 어째서 아화님은 그런 분을 사심없이 모실 수가 있는지요? 저 같으면..외람되오나..."
".........?"
" 칼을 뽑았을지도 몰라요."
아화는 묘영이 조심스레 내 뱉는 말에 싱긋 웃었다.
" 나도 그랬다. 처음 만화루에서 영조님의 모습을 뵈었을 때, 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끔찍했던 그 날의....짐승처럼 어르신께 달려들던 그 원수의 모습과 죽어가던 어르신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내 가슴에 복수의 불꽃이 튀었지. 내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후회로 지새우던 지난 시간의 그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말이야."
묘영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태연해 보이는 아화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항상 가슴에 단도를 품고 다녔지. 그와 단 둘이 대면할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