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서루 오빠한테 옷 사달라고 해. 셋이 같이 옷 사러 가자. 오빠 차 가지고 오지? 동대문 같이 가자. 니 오빠 돈도 많다면서.”
“나중에.”
“뭘 나중에. 같이 가는 거다. 난 안 사주겠지?”
“오빠가 너한테 왜 사줘?”
병진이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단 둘이 만나는 것도 꺼려지니까. 그리고 쇼핑을 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질 것 같기도 했다.
“오빠, 일찍 왔네. 내 친구야. 병진이.”
“안녕하세요? 제가 오빠 보고 싶다고 졸랐어요. 괜찮죠? 혜림이가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오늘도 하루 종일 오빠 타령만 하더라구요.”
“그래요?”
서루 오빠는 병진이의 입 발린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병진이가 동대문 가고 싶대. 나도 살 것도 좀 있고. 오빠 괜찮아?”
“옷 사려구?”
“응.”
“얘 옷 구질구질 한 것 좀 보세요. 불쌍하죠? 옷 좀 사 입히세요. 저는 괜찮은데 혜림이는 옷을 좀 사야할 필요가 있어요.”
병진이가 서루오빠에게 말을 건네자 오빠를 보자 어색했던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림이는 뭐 입어도 이뻐요.”
“니네 오빠 너 옷 사줄 생각 없나보다. 그냥 이 옷 입고 다니래는데.”
서루 오빠의 농담을 병진이가 받았다.
“아니에요. 그런 건. 옷 사고 싶었어? 사줄게. 근데 혜림아! 옷 사는 건 좋은데 왜 동대문에 가? 백화점에 가지.”
“시간도 늦어서 어차피 몇 시간 못 보잖아. 백화점은 다음에 가자. 병진이도 동대문 가고 싶대.”
“그래 그럼. 자, 타시죠.”
오빠는 차 병진이가 탈 수 있게 뒷문을 손수 열어 주었다.
“이게 오빠 차에요? 너무 멋지다.”
“아니에요. 엄마 꺼에요.”
“그게 그거죠. 정말 쥑이네요.”
병진이가 뒷 자석에 오르고 나도 병진이를 따라 뒤에 타자 병진이가 거칠게 밀쳐냈다.
“너 뭐야? 넌 앞에 앉아. 예의도 모르냐. 무식하게.”
“아니. 너 낯설어 할까봐.”
“좋은 차 탔다고 낯설어 할 정도로 바본줄 알어? 안 낯설어. 하나도 안 낯서니까 빨리 앞에 앉아.”
“알았어. 앉으면 되잖아. 밀지 좀 마.”
“빨리 내려.”
쾅!
뒷 자석에서 내리자마자 병진이는 차문을 거칠게 닫았고, 어쩔 수 없이 서루 오빠의 옆에 앉았다.
“죄송해요. 거칠게 닫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제가 힘이 좀 세요.”
“괜찮습니다. 혜림이 친구 분은 처음 보는데 혜림이가 예뻐서 친구 분도 다 이쁜가봐요.”
“혜림이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혜림이가 쪼금 이뻐서 제가 사람대접을 하고 있긴 하죠.”
“하하. 웃긴 친구 분이시네요.”
병진이가 날 깍아내리는 농담을 하고 있는데도 별로 창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벌써 서루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걸까?
“그리고, 저 혜림이 친구 아니에요. 주종관계죠. 혜림이는 찜질방 사장. 저는 종업원. 헤림이가 친구 먹어주면 저야 좋은 거죠.”
서루 오빠가 의아해 하며 날 쳐다보았다.
“아니야. 얘가 우리 부모님 꺼니까 농담하는 거야. 요즘 병진이가 일 도와주고 있거든.”
차 안은 서루 오빠가 틀어놓은 최신 유행 발라드와 병진이의 시끄러운 말소리로 가득 찼다. 병진이가 간간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서루 오빠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이 없어진 것에 비하면 참을 만 했다. 묵묵히 창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민성 오빠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사랑하면 그 사람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진다고 했던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빠가 지금 이 시간 무얼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난 이렇게 오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빠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이 노래는 어제 같이 들었던 노래?’
“병진아, 이 노래 무슨 노래야?”
“우리 영원토록. 이승철 노래. 노래 좋지? 그래두 난 댄스 음악이 좋더라.”
“댄스 음악으로 바꿔 드릴까요?”
“오빠, 아니야. 그냥 듣자. 듣기가 좋아.”
음악을 바꾸려는 서루 오빠를 급하게 막았다.
“혜림이가 대놓고 영원토록 같이 하자네요. 오빠는 좋겠어요.”
“예.”
서루 오빠는 병진이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볼륨을 높여서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우리 영원토록 기억할 수 없겠지만은
처음 만난 설레임만은 간직해주길 바래요
지금처럼
“오빠, 그냥 댄스 음악 듣자.”
“왜 좋은데?”
“신나는 것 듣재두.”
나는 서루 오빠에게 괜한 성질을 부렸다. 민성 오빠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서루 오빠와 함께 듣기가 거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병진이와도 같이 듣고 싶지 않았다. 단 하루로 끝나버린 설레임이라고 해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곧 흥겨운 음악이 나왔고, 나도 아까보다는 자연스레 서루 오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상견례 날짜 잡아야지. 아버지가 일어나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머니 혼자라도 만나시겠다고 하네.”
“그래. 부모님께 말씀 드려볼께.”
“최대한 빨리 잡았으면 좋겠어. 그전에 우리는 가구랑 집도 보러 다녀야 되고. 앞으로 바쁘겠다.”
“응.”
그래. 가구도 사고, 오빠와 함께 살 집도 구하고. 단 하루 만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지. 민성 오빠랑 만나다고 해도 잘 만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민성 오빠도 결국은 현상 오빠처럼 결혼 이야기에는 뒷걸음 칠 테니까.
단 하루였지만 예쁜 추억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서루 오빠도 나에게 잘 해주니까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볼륨 좀 낮춰주세요. 전화가 와서.”
아마도 병진이의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응. 오빠? 나 헤림이랑 동대문 가고 있어. 일 끝나고 나 데리러 와. ······. 혜림이 연락처? 민성 오빠가 혜림이 연락처를 왜 물어?”
‘민성 오빠가 내 연락처를?’
“나랑 같이 있어. 그냥 나한테 물어봐. 뭐? 지갑? 혜림아, 너 민성 오빠 지갑 봤어? 어제 잃어버렸다는데.”
“아니. 못 봤는데.”
“오빠, 혜림이 지갑 못 봤대. ······. 뭐야? 뭘 다시 물어봐. 혜림이가 도둑이야? 지갑 잃어버려 놓고 왜 혜림이한테 물어. 민성 오빠도 웃기다. 몰라. 못 봤대잖아. 알았어. 이따 끝나고 전화해.”
“뭐래는 건데?”
병진이가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 물어보았다.
“몰라. 지갑 잃어버렸는데 너 연락처를 왜 물어봐.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널 도둑으로 봤나봐. 어때 나 잘했지?”
‘잘하기는. 그냥 연락처 가르쳐 주면 돼지. 이 태클녀야! 넌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구나.’
병진이가 저렇게 눈치가 없는 아이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놓고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데. 분명 민성 오빠는 지갑은 핑계고, 내 연락처를 알기 위해 영규 오빠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내 연락처를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단 둘이 따로 만났다는 것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눈 앞에서 연락 받을 기회를 날려버린 나는 너무나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서루 오빠, 나 잘했죠? 이제 결혼할 건데 아무 남자한테나 연락처 가르쳐 주면 안 되잖아요.”
“그럼요. 안 돼죠. 잘 하셨어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께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병진이가 상황에 안 맞는 말을 하기로 전교에서도 유명했지만 눈치가 아주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일부러 눈치 없는 말만 골라하면 모를까? 그럼 병진이는 내 마음과 민성 오빠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방해를 하고 있는 건가?’
머리를 급하게 돌렸다. 일요일에 링크장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오늘은 화요일. 그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연락처를 알게 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맞다. 그 지갑 내 가방에 있나봐. 어제 오빠가 맡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술에 취해서 깜박 잊었나봐. 어제 맸던 가방 집에 있는데. 찾아보고 연락한다고 그래. 아니다. 나한테 민성 오빠 연락처를 줘. 집에 있으면 내가 직접 연락할께.”
“괜찮아. 그 지갑 너 가져. 오빠는 잃어버린 줄 아는데 뭐.”
“어떻게 그러냐? 남의 지갑을 내가 왜 가져?”
“그럼 집에 있으면 낼 찜질방으로 가져와. 내가 영규 오빠 통해서 전해줄게. 귀찮게 네가 전해줄 필요는 없지.”
나는 몸을 돌려 병진이를 보았다. 병진이는 니가 머리를 돌려봐야 어림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병진이가 왜? 왜 나와 민성 오빠의 만남을 막고 있는 걸까? 순간 떠오른 것이 찜질방이었다. 내가 결혼을 해야 찜찔방 사장이 되고, 그래야 병진이의 월급이 올라간다. 사실 내가 사장이 된 후에는 관리 매니져를 시켜준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민성 오빠와의 만남을 막는 거란 말이야?
“둘이 참 잘 어울려요. 나중에 얘기 낳아도 정말 이쁘겠어요.”
뜬금없는 병진이의 아부성 발언은 모든 것을 명확히 해주고 있었다. 월급 몇 푼 때문에 그녀는 절대 민성 오빠와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뒤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kiwi (키위) - 18. 내부의 적
kiwi - 18
“아니. 나중에 입을래.”
“너 아까 세수도 안하고 구질구질한 옷 입고 왔던데. 그냥 그 옷 입고 가게?”
“응.”
“그러지 말고 서루 오빠한테 옷 사달라고 해. 셋이 같이 옷 사러 가자. 오빠 차 가지고 오지? 동대문 같이 가자. 니 오빠 돈도 많다면서.”
“나중에.”
“뭘 나중에. 같이 가는 거다. 난 안 사주겠지?”
“오빠가 너한테 왜 사줘?”
병진이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단 둘이 만나는 것도 꺼려지니까. 그리고 쇼핑을 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질 것 같기도 했다.
“오빠, 일찍 왔네. 내 친구야. 병진이.”
“안녕하세요? 제가 오빠 보고 싶다고 졸랐어요. 괜찮죠? 혜림이가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오늘도 하루 종일 오빠 타령만 하더라구요.”
“그래요?”
서루 오빠는 병진이의 입 발린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병진이가 동대문 가고 싶대. 나도 살 것도 좀 있고. 오빠 괜찮아?”
“옷 사려구?”
“응.”
“얘 옷 구질구질 한 것 좀 보세요. 불쌍하죠? 옷 좀 사 입히세요. 저는 괜찮은데 혜림이는 옷을 좀 사야할 필요가 있어요.”
병진이가 서루오빠에게 말을 건네자 오빠를 보자 어색했던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림이는 뭐 입어도 이뻐요.”
“니네 오빠 너 옷 사줄 생각 없나보다. 그냥 이 옷 입고 다니래는데.”
서루 오빠의 농담을 병진이가 받았다.
“아니에요. 그런 건. 옷 사고 싶었어? 사줄게. 근데 혜림아! 옷 사는 건 좋은데 왜 동대문에 가? 백화점에 가지.”
“시간도 늦어서 어차피 몇 시간 못 보잖아. 백화점은 다음에 가자. 병진이도 동대문 가고 싶대.”
“그래 그럼. 자, 타시죠.”
오빠는 차 병진이가 탈 수 있게 뒷문을 손수 열어 주었다.
“이게 오빠 차에요? 너무 멋지다.”
“아니에요. 엄마 꺼에요.”
“그게 그거죠. 정말 쥑이네요.”
병진이가 뒷 자석에 오르고 나도 병진이를 따라 뒤에 타자 병진이가 거칠게 밀쳐냈다.
“너 뭐야? 넌 앞에 앉아. 예의도 모르냐. 무식하게.”
“아니. 너 낯설어 할까봐.”
“좋은 차 탔다고 낯설어 할 정도로 바본줄 알어? 안 낯설어. 하나도 안 낯서니까 빨리 앞에 앉아.”
“알았어. 앉으면 되잖아. 밀지 좀 마.”
“빨리 내려.”
쾅!
뒷 자석에서 내리자마자 병진이는 차문을 거칠게 닫았고, 어쩔 수 없이 서루 오빠의 옆에 앉았다.
“죄송해요. 거칠게 닫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제가 힘이 좀 세요.”
“괜찮습니다. 혜림이 친구 분은 처음 보는데 혜림이가 예뻐서 친구 분도 다 이쁜가봐요.”
“혜림이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혜림이가 쪼금 이뻐서 제가 사람대접을 하고 있긴 하죠.”
“하하. 웃긴 친구 분이시네요.”
병진이가 날 깍아내리는 농담을 하고 있는데도 별로 창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벌써 서루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걸까?
“그리고, 저 혜림이 친구 아니에요. 주종관계죠. 혜림이는 찜질방 사장. 저는 종업원. 헤림이가 친구 먹어주면 저야 좋은 거죠.”
서루 오빠가 의아해 하며 날 쳐다보았다.
“아니야. 얘가 우리 부모님 꺼니까 농담하는 거야. 요즘 병진이가 일 도와주고 있거든.”
차 안은 서루 오빠가 틀어놓은 최신 유행 발라드와 병진이의 시끄러운 말소리로 가득 찼다. 병진이가 간간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서루 오빠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이 없어진 것에 비하면 참을 만 했다. 묵묵히 창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민성 오빠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사랑하면 그 사람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진다고 했던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빠가 지금 이 시간 무얼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난 이렇게 오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빠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이 노래는 어제 같이 들었던 노래?’
“병진아, 이 노래 무슨 노래야?”
“우리 영원토록. 이승철 노래. 노래 좋지? 그래두 난 댄스 음악이 좋더라.”
“댄스 음악으로 바꿔 드릴까요?”
“오빠, 아니야. 그냥 듣자. 듣기가 좋아.”
음악을 바꾸려는 서루 오빠를 급하게 막았다.
“혜림이가 대놓고 영원토록 같이 하자네요. 오빠는 좋겠어요.”
“예.”
서루 오빠는 병진이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볼륨을 높여서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우리 영원토록 기억할 수 없겠지만은
처음 만난 설레임만은 간직해주길 바래요
지금처럼
“오빠, 그냥 댄스 음악 듣자.”
“왜 좋은데?”
“신나는 것 듣재두.”
나는 서루 오빠에게 괜한 성질을 부렸다. 민성 오빠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서루 오빠와 함께 듣기가 거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병진이와도 같이 듣고 싶지 않았다. 단 하루로 끝나버린 설레임이라고 해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곧 흥겨운 음악이 나왔고, 나도 아까보다는 자연스레 서루 오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상견례 날짜 잡아야지. 아버지가 일어나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머니 혼자라도 만나시겠다고 하네.”
“그래. 부모님께 말씀 드려볼께.”
“최대한 빨리 잡았으면 좋겠어. 그전에 우리는 가구랑 집도 보러 다녀야 되고. 앞으로 바쁘겠다.”
“응.”
그래. 가구도 사고, 오빠와 함께 살 집도 구하고. 단 하루 만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지. 민성 오빠랑 만나다고 해도 잘 만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민성 오빠도 결국은 현상 오빠처럼 결혼 이야기에는 뒷걸음 칠 테니까.
단 하루였지만 예쁜 추억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서루 오빠도 나에게 잘 해주니까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볼륨 좀 낮춰주세요. 전화가 와서.”
아마도 병진이의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응. 오빠? 나 헤림이랑 동대문 가고 있어. 일 끝나고 나 데리러 와. ······. 혜림이 연락처? 민성 오빠가 혜림이 연락처를 왜 물어?”
‘민성 오빠가 내 연락처를?’
“나랑 같이 있어. 그냥 나한테 물어봐. 뭐? 지갑? 혜림아, 너 민성 오빠 지갑 봤어? 어제 잃어버렸다는데.”
“아니. 못 봤는데.”
“오빠, 혜림이 지갑 못 봤대. ······. 뭐야? 뭘 다시 물어봐. 혜림이가 도둑이야? 지갑 잃어버려 놓고 왜 혜림이한테 물어. 민성 오빠도 웃기다. 몰라. 못 봤대잖아. 알았어. 이따 끝나고 전화해.”
“뭐래는 건데?”
병진이가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 물어보았다.
“몰라. 지갑 잃어버렸는데 너 연락처를 왜 물어봐.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널 도둑으로 봤나봐. 어때 나 잘했지?”
‘잘하기는. 그냥 연락처 가르쳐 주면 돼지. 이 태클녀야! 넌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구나.’
병진이가 저렇게 눈치가 없는 아이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놓고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데. 분명 민성 오빠는 지갑은 핑계고, 내 연락처를 알기 위해 영규 오빠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내 연락처를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단 둘이 따로 만났다는 것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눈 앞에서 연락 받을 기회를 날려버린 나는 너무나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서루 오빠, 나 잘했죠? 이제 결혼할 건데 아무 남자한테나 연락처 가르쳐 주면 안 되잖아요.”
“그럼요. 안 돼죠. 잘 하셨어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께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병진이가 상황에 안 맞는 말을 하기로 전교에서도 유명했지만 눈치가 아주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일부러 눈치 없는 말만 골라하면 모를까? 그럼 병진이는 내 마음과 민성 오빠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방해를 하고 있는 건가?’
머리를 급하게 돌렸다. 일요일에 링크장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오늘은 화요일. 그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연락처를 알게 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맞다. 그 지갑 내 가방에 있나봐. 어제 오빠가 맡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술에 취해서 깜박 잊었나봐. 어제 맸던 가방 집에 있는데. 찾아보고 연락한다고 그래. 아니다. 나한테 민성 오빠 연락처를 줘. 집에 있으면 내가 직접 연락할께.”
“괜찮아. 그 지갑 너 가져. 오빠는 잃어버린 줄 아는데 뭐.”
“어떻게 그러냐? 남의 지갑을 내가 왜 가져?”
“그럼 집에 있으면 낼 찜질방으로 가져와. 내가 영규 오빠 통해서 전해줄게. 귀찮게 네가 전해줄 필요는 없지.”
나는 몸을 돌려 병진이를 보았다. 병진이는 니가 머리를 돌려봐야 어림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병진이가 왜? 왜 나와 민성 오빠의 만남을 막고 있는 걸까? 순간 떠오른 것이 찜질방이었다. 내가 결혼을 해야 찜찔방 사장이 되고, 그래야 병진이의 월급이 올라간다. 사실 내가 사장이 된 후에는 관리 매니져를 시켜준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민성 오빠와의 만남을 막는 거란 말이야?
“둘이 참 잘 어울려요. 나중에 얘기 낳아도 정말 이쁘겠어요.”
뜬금없는 병진이의 아부성 발언은 모든 것을 명확히 해주고 있었다. 월급 몇 푼 때문에 그녀는 절대 민성 오빠와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뒤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