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남이 만나 부부라는 공동체를 이루다보니 혼자일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때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고, 서로의 생활 습관을 이해하지 못해 수시때때로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함께 살다보니 다투게되는 이유가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로 가족이라는 제3자가 엮여 그와 관련된 문제로 싸우게되는 것 같았다.
남들은 결혼후에 경제적인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많이 싸운다고 들었는데 나에게 그건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에서 집을 구해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집을 구하라고 돈을 준 것도 아니었으며 그가 나에게 안겨준 것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성실하게 모아온 적금통장이 아닌 한도를 꽉꽉 채워 사용한 마이너스 통장이나, 결제대금과 분할 상환금이 한참 남은 카드, 시숙님과 어머님이 잠깐 빌려썼다는 본인 명의의 대출금 등등 이었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흥청망청 쓰고 살았다고 봐야하나? 이혼녀였던 애인의 생활비를 대주느라 돈이 많이 필요했을까? 본인은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자기가 가장 많이 돈을 들였다고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기 때문에 생색도 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의 한해 연봉이 일반 대기업체 직원보다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그걸 다 소진하고도 빚을 그정도 진다는걸 나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해서 경제적 주도권은 자연스레 내게 넘어왔다. 내게 있는 돈을 모두 털어 고금리의 카드대출과 타은행 대출부터 상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절반 정도가 남았으나 둘이 버는 대로 갚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해해야지’ 하며 치미는 화를 참으려 노력하다가도 다달이 월급을 받아 남편의 대출금을 먼저 상환하다보면 어느새 또 다시 화가 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같은 은행에서 만나 결혼하면 대부분 집도 사서 시작하고, 빚도 거의 없는 상태라 버는 족족 적금을 넣어 금방 돈을 모은다던데 그에 반해 전세집 한칸 마련할 능력 없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 화가 치미는 건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점은 어머님 집의 모든 공과금이 남편의 통장에서 자동이체 되고 있었던 거였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결혼해서 분가하고 막내아들인 오빠만 어머님과 함께 몇 년째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전화요금에 가스요금, 관리비에 국민연금까지 내고 있었으며 그것 외에도 어머님께 한달에 3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고 했다. 그것도 평달의 얘기였으며 3개월마다 있는 보너스달에는 50만원씩 드렸다니 그가 돈을 모을 수 없었던 데에는 어머님 부양의 이유도 컸으리라. 그런 고정비 외에도 돈들어갈곳이 수시때때로 많았을 테니……
어머님은 가족들에게 어디서 일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꺼려하며 나름대로 직장을 다니고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 하는 식당이었다. 그렇게 식당에서 일하며 월급을 꾸준히 받으셨는데도 아들한테 늘 용돈을 받아 생활했던 것이었다. 함께 사는 막내한테만 받았던 것도 아니고 분가한 딸 둘과 큰아들에게서도 매달 용돈을 받으셨다니 남편복은 없어도 자식복은 많으신듯 했다.
오빤 과거에 자신은 이정도 드렸었으나 이제는 결혼을 했으니 네가 알아서 드리라며 머리 아픈 문제 하나를 은근슬쩍 내게 떠넘겼고 그 때문에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었다. 그러던중 형님이 내게 해답을 주셨다. 본인은 달마다 10만원씩 드리며 제사나 명절때는 거기에 10만원을 더 드린다고 했다. 우린 통장에서 이체되는 돈만 해도 그 이상이었기에 생각같아선 용돈을 안드리고 싶었지만 오빠가 이제껏 해온게 있었기에 섣불리 그럴수도 없었다.
그래서 낸 결론이 오빠가 기존에 드렸던 돈의 절반인 15만원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제사나 명절때는 25만원을 드려야했기에 따지고보면 월에 20만원 이상을 드리는 셈이었다. 다행히 어머님은 그 결정에 대해 만족해 하셨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해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님 집의 공과금은 모두 오빠가 내고 있었지만 그 집은 오빠 형의 명의로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사망으로 어머님은 유족연금을 타게 되었고, 일시불로 탄 연금 전액을 투자 명목으로 사기꾼한테 몽땅 털리고서 시골에 있는 아버님의 집까지 처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건진게 그 집 한채였다. 그나마도 위험하다며 큰아들이 본인의 명의로 해놓은 그 집. 우리는 그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그 집의 공과금은 물론 재산세까지 납부해야했다. 그러니 결혼할 때 아무런 경제적 도움도 주지못한 데다가 이런 부담만 지운채 분가한 막내아들과 며느리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수밖에……
형님네도 그문제에 대해 모르는 척 가만히 있다가 결혼한지 3년이 지나 내가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자 그제서야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이 부담하겠다며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퍽이나 많이 생각해주신 듯 했으나 그것도 어머님이 미안한 마음에 여러 번 얘기를 꺼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이체를 형님께 옮겨드리겠다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 내 입장이었기에 괜찮다며 웃어 넘겼고 나중에 어머님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형님이 이용요금과 할부금을 부담하는걸로 그냥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리고 내가 또 한가지 놀랬던 것은 어머님의 씀씀이였다. 결혼전부터 어머님이 값비싼 옷을 좋아하는 나름대로 세련된 할머니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결혼후 보니 그건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그 집의 며느리가 되기전 지나간 어머님의 생신선물은 모피코트였다. 난 집안 사람들이 자꾸 그 모피코트 얘기를 꺼내길래 ‘돈 꽤나 주고산 인조모피인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입지도 않고 장롱에 걸어둔 그 문제의 모피코트 가격은 6백만원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어느 누가 생일선물로 6백만원짜리 모피코트를 원한단 말인가? 게다가 오빠가 그 절반인 3백만원을 부담해서 샀던거라고 하니 그간의 소비생활이 눈에 뻔히 보이는 듯 했다.
그후엔 이제 막내아들까지 안사람을 맞이해서인지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으셨지만 생신때나 어버이날마나 형제자매들이 모아 해드린 선물은 현금 외에도 평면TV, 진주목걸이, 옥매트, 모직롱코트 등 주로 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의 취향을 따라잡기가 힘들어 결국은 현금으로 드리고 있지만 엄마, 아빠 생신때 10만원도 안되는 신발이며 스카프, 티셔츠, 가방 등을 사드렸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기뻐해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자란 나에게는 다른 나라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후회스럽기도 했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 내 부모님한테 저런 비싼 선물 한번 드려볼 것을 하는 후회였다. 누구 좋으라고 허구헌날 아둥바둥 살며 시집갈 때 쓸 돈을 모았던 것인지 갑자기 나라는 애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자식이 날마다 회사다니며 뼈빠지게 번 돈을 수백만원 짜리 옷 한벌로 쉽게 써버릴 수 있단 말인가? 형님은 “자네가 이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보다 더 심한 일들이 많았어. 자기는 상상도 못할걸?” 하며 예의 킥킥거리는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도통 신기한 집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성격이 그다지 좋지않은 시숙님은 어머님한테 만큼은 좀 약해보였다. 애들이 말을 안들으면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보는자리에서 철썩 소리가 나게 뺨을 때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겁에 질려 잘못을 용서 받을 만큼 패주고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에게 어찌나 하인부리듯 일을 시켜대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민망할 정도였다. 그나마 본인 맘에 안맞으면 버럭버럭 고함을 쳐대고 자신의 지시에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린다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등 다소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시댁과는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도시에 살면서도 2주일에 한 번은 꼭 어머님을 찾아왔으며 어머님이 먹고 싶다거나, 입고 싶다거나, 사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은 제깍 형제들에게서 각출하여 눈앞에 만들어 보였고,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을 보니 그래서 큰아들은 타고나는 거라는 얘기가 그리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듯 싶었다. 큰아들은 멀리 있어도 힘이 되고 또 막내아들은 가까이 있어서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고 하시며 두 딸들이 아무리 용돈을 드리고 약을 사드려도 급할 때나 힘들 때 곧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들들이라고 얘기하시니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아들, 아들하며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한 명의 여자이면서 자신의 뱃속에서 나올 아이는 꼭 남자였으면 하는 이상한 습성들. 그것이 모두 딸은 출가외인이고 본인의 제사를 지내줄 사람은 아들들이라는 뼈 속 깊이 아로 새겨진 남아선호사상의 잔재가 아닐까? 물론 근본을 따지자면 며느리가 아들 손주를 낳아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들의 채근이 어느 한부분을 차지하기도 할것이다. 딸들도 아니 나 역시도 자신의 부모에게 당연히 잘하고 싶지만 결혼하게되면 시부모라는 새로운 부모가 또 생기게 되니 이래저래 친정에만 신경쓰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건 남자가 장인, 장모에게 신경쓰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신경써주는건 굳이 그러지않아도 괜찮지만 그사람의 됨됨이가 정말 훌륭해서 그렇게 잘해드리는 것이고, 여자가 남자의 부모에게 신경써주는건 원래부터 아내의 도리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우리나라 남자 대부분의 지론이기에 이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참 힘든일이 아닐수없다. 도대체 뭐가 다른것일까? 모두 한 배 속에서 낳은 귀한 자식들인데……
하지만 내 새엄마 또한 우리 아빠와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국은 늦둥이로 아들을 한명 낳은걸 보면 아직까지도 그 ‘아들’이라는 존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에게 그 정도로 소중한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듯하다.
지금은 나도 그 ‘아들’이라는 귀중한 존재를 한명 모시고(?) 있다. 결혼하기 전부터 딸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산한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었지만 어떻게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큰아들로부터 아들손주를 두명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아들인것을 내심 좋아하며 남들에게 자랑했던 시어머님을 생각해봤을 때 더 이상 낳지 않을거라 다짐하고 있는 나의 아이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손주가 아들임이 그나마 위안이 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손주 한명도 봐주지 못해서 복직을 못하고 집에서 애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어머님이 나한테 둘째를 꼭 가지라고 강요하거나 은근히 보채거나 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서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아들을 보면서 하루에 몇 번씩 다짐하고 한다. 소중한 너를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또 네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써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그에 앞서 훗날 너에게 어떤식으로든 짐이 되는 부모가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노라며……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어머니들은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너도 나중에 늙어보라며, 힘없고 돈없는 그런 생활능력 없는 노인이 되어보라며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욕이 생긴다. 또 열심히 모아야겠다는 의지도 생긴다. 부모라는 이유로, 단지 낳아주고 어렵게 길러줬다는 이유로 자식만 바라보고 한평생 살아가다가 어이없이 버림 받고 가슴에 멍이 드는 그런 슬픈 노년기를 보내기는 정말 싫기에……
Notice : 이상하게도 남자에게 부모가 있으면 그 배우자인 여자에게는 시부모가 되어 제2의 부모로써 대접을 받게 되지만 여자의 부모는 남자에게 있어 그저 허울 좋은 장인, 장모님일 뿐, 명절때나 1번씩 찾아뵈면 그만인 ‘집사람의 결혼전 부모’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왜 자신한테 부양해야할 부모님이 계시다면 엄연한 남남인 부인한테도 똑같이 부양해야할 부모님이 계시다는걸 모르는 척 하는걸까요? 말 그대로 모르는 척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묘한 고집이지요. 부인이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이 부인의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틀린걸까요? 그러니 남아선호사상이 자연스레 생기게 됩니다. 똑같이 배아파서 자식을 낳았는데도 딸한테는 똑 같은 대접을 받기가 힘드니 말이죠. 시집가면 시댁의 귀신이 돼라는 둥의 얘기만 봐도 여자에게 있어 결혼이라는 것은 친정을 영영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걸로만 보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그 뿌리를 찾기가 힘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온 그 악습은 시대가 변했다는 지금에와서도 그 근간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머리속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근본 사상부터 없애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아들도 딸도 모두 똑 같은 자식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누구보다도 귀하게 자라왔을테구요. 아내의 부모님을 본인이 먼저 챙겨보세요. 아내도 당신의 부모님을 똑같이 챙길겁니다. 용돈도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드리세요. 장인, 장모가 당신의 아내를 키울때도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키워낸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돈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그 전 주에 시댁을 다녀왔다면 이번주엔 처가집에 가자고 아내에게 먼저 얘기해보세요. 당신의 부모님이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듯 아내의 부모님도 외손주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제발 똑같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장인, 장모님을 모셔서 그런저런 이유로 항상 여자들이 피해의식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내어주신 분들이니까요.
[알리는 글] 긴 글을 여기까지 모두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결혼생활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데 시.친.결 방을 애용하시는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기혼여성 분들인것 같아 글 중 일부를 올려봅니다. 벌써 세번재 이야기네요. 지난번 이야기를 보고싶으신 분들은 제 아뒤로 검색하시거나 제 블로그에 가셔서도 볼 수 있어요. 주관적인 경험이고,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결혼!]그래서 아들, 아들 하는구나? - 그 세번째 이야기
제3장 - 그래서 아들, 아들 하는구나?
남과 남이 만나 부부라는 공동체를 이루다보니 혼자일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때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고, 서로의 생활 습관을 이해하지 못해 수시때때로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함께 살다보니 다투게되는 이유가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로 가족이라는 제3자가 엮여 그와 관련된 문제로 싸우게되는 것 같았다.
남들은 결혼후에 경제적인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많이 싸운다고 들었는데 나에게 그건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에서 집을 구해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집을 구하라고 돈을 준 것도 아니었으며 그가 나에게 안겨준 것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성실하게 모아온 적금통장이 아닌 한도를 꽉꽉 채워 사용한 마이너스 통장이나, 결제대금과 분할 상환금이 한참 남은 카드, 시숙님과 어머님이 잠깐 빌려썼다는 본인 명의의 대출금 등등 이었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흥청망청 쓰고 살았다고 봐야하나? 이혼녀였던 애인의 생활비를 대주느라 돈이 많이 필요했을까? 본인은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자기가 가장 많이 돈을 들였다고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기 때문에 생색도 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의 한해 연봉이 일반 대기업체 직원보다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그걸 다 소진하고도 빚을 그정도 진다는걸 나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해서 경제적 주도권은 자연스레 내게 넘어왔다. 내게 있는 돈을 모두 털어 고금리의 카드대출과 타은행 대출부터 상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절반 정도가 남았으나 둘이 버는 대로 갚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해해야지’ 하며 치미는 화를 참으려 노력하다가도 다달이 월급을 받아 남편의 대출금을 먼저 상환하다보면 어느새 또 다시 화가 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같은 은행에서 만나 결혼하면 대부분 집도 사서 시작하고, 빚도 거의 없는 상태라 버는 족족 적금을 넣어 금방 돈을 모은다던데 그에 반해 전세집 한칸 마련할 능력 없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 화가 치미는 건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점은 어머님 집의 모든 공과금이 남편의 통장에서 자동이체 되고 있었던 거였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결혼해서 분가하고 막내아들인 오빠만 어머님과 함께 몇 년째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전화요금에 가스요금, 관리비에 국민연금까지 내고 있었으며 그것 외에도 어머님께 한달에 30만원씩 용돈을 드렸다고 했다. 그것도 평달의 얘기였으며 3개월마다 있는 보너스달에는 50만원씩 드렸다니 그가 돈을 모을 수 없었던 데에는 어머님 부양의 이유도 컸으리라. 그런 고정비 외에도 돈들어갈곳이 수시때때로 많았을 테니……
어머님은 가족들에게 어디서 일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꺼려하며 나름대로 직장을 다니고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 하는 식당이었다. 그렇게 식당에서 일하며 월급을 꾸준히 받으셨는데도 아들한테 늘 용돈을 받아 생활했던 것이었다. 함께 사는 막내한테만 받았던 것도 아니고 분가한 딸 둘과 큰아들에게서도 매달 용돈을 받으셨다니 남편복은 없어도 자식복은 많으신듯 했다.
오빤 과거에 자신은 이정도 드렸었으나 이제는 결혼을 했으니 네가 알아서 드리라며 머리 아픈 문제 하나를 은근슬쩍 내게 떠넘겼고 그 때문에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었다. 그러던중 형님이 내게 해답을 주셨다. 본인은 달마다 10만원씩 드리며 제사나 명절때는 거기에 10만원을 더 드린다고 했다. 우린 통장에서 이체되는 돈만 해도 그 이상이었기에 생각같아선 용돈을 안드리고 싶었지만 오빠가 이제껏 해온게 있었기에 섣불리 그럴수도 없었다.
그래서 낸 결론이 오빠가 기존에 드렸던 돈의 절반인 15만원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제사나 명절때는 25만원을 드려야했기에 따지고보면 월에 20만원 이상을 드리는 셈이었다. 다행히 어머님은 그 결정에 대해 만족해 하셨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해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님 집의 공과금은 모두 오빠가 내고 있었지만 그 집은 오빠 형의 명의로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사망으로 어머님은 유족연금을 타게 되었고, 일시불로 탄 연금 전액을 투자 명목으로 사기꾼한테 몽땅 털리고서 시골에 있는 아버님의 집까지 처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건진게 그 집 한채였다. 그나마도 위험하다며 큰아들이 본인의 명의로 해놓은 그 집. 우리는 그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그 집의 공과금은 물론 재산세까지 납부해야했다. 그러니 결혼할 때 아무런 경제적 도움도 주지못한 데다가 이런 부담만 지운채 분가한 막내아들과 며느리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수밖에……
형님네도 그문제에 대해 모르는 척 가만히 있다가 결혼한지 3년이 지나 내가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자 그제서야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이 부담하겠다며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퍽이나 많이 생각해주신 듯 했으나 그것도 어머님이 미안한 마음에 여러 번 얘기를 꺼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이체를 형님께 옮겨드리겠다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 내 입장이었기에 괜찮다며 웃어 넘겼고 나중에 어머님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형님이 이용요금과 할부금을 부담하는걸로 그냥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리고 내가 또 한가지 놀랬던 것은 어머님의 씀씀이였다. 결혼전부터 어머님이 값비싼 옷을 좋아하는 나름대로 세련된 할머니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결혼후 보니 그건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그 집의 며느리가 되기전 지나간 어머님의 생신선물은 모피코트였다. 난 집안 사람들이 자꾸 그 모피코트 얘기를 꺼내길래 ‘돈 꽤나 주고산 인조모피인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입지도 않고 장롱에 걸어둔 그 문제의 모피코트 가격은 6백만원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어느 누가 생일선물로 6백만원짜리 모피코트를 원한단 말인가? 게다가 오빠가 그 절반인 3백만원을 부담해서 샀던거라고 하니 그간의 소비생활이 눈에 뻔히 보이는 듯 했다.
그후엔 이제 막내아들까지 안사람을 맞이해서인지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으셨지만 생신때나 어버이날마나 형제자매들이 모아 해드린 선물은 현금 외에도 평면TV, 진주목걸이, 옥매트, 모직롱코트 등 주로 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의 취향을 따라잡기가 힘들어 결국은 현금으로 드리고 있지만 엄마, 아빠 생신때 10만원도 안되는 신발이며 스카프, 티셔츠, 가방 등을 사드렸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기뻐해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자란 나에게는 다른 나라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후회스럽기도 했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 내 부모님한테 저런 비싼 선물 한번 드려볼 것을 하는 후회였다. 누구 좋으라고 허구헌날 아둥바둥 살며 시집갈 때 쓸 돈을 모았던 것인지 갑자기 나라는 애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자식이 날마다 회사다니며 뼈빠지게 번 돈을 수백만원 짜리 옷 한벌로 쉽게 써버릴 수 있단 말인가? 형님은 “자네가 이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보다 더 심한 일들이 많았어. 자기는 상상도 못할걸?” 하며 예의 킥킥거리는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도통 신기한 집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성격이 그다지 좋지않은 시숙님은 어머님한테 만큼은 좀 약해보였다. 애들이 말을 안들으면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보는자리에서 철썩 소리가 나게 뺨을 때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겁에 질려 잘못을 용서 받을 만큼 패주고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에게 어찌나 하인부리듯 일을 시켜대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민망할 정도였다. 그나마 본인 맘에 안맞으면 버럭버럭 고함을 쳐대고 자신의 지시에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린다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등 다소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시댁과는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도시에 살면서도 2주일에 한 번은 꼭 어머님을 찾아왔으며 어머님이 먹고 싶다거나, 입고 싶다거나, 사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은 제깍 형제들에게서 각출하여 눈앞에 만들어 보였고,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을 보니 그래서 큰아들은 타고나는 거라는 얘기가 그리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듯 싶었다. 큰아들은 멀리 있어도 힘이 되고 또 막내아들은 가까이 있어서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고 하시며 두 딸들이 아무리 용돈을 드리고 약을 사드려도 급할 때나 힘들 때 곧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들들이라고 얘기하시니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아들, 아들하며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한 명의 여자이면서 자신의 뱃속에서 나올 아이는 꼭 남자였으면 하는 이상한 습성들. 그것이 모두 딸은 출가외인이고 본인의 제사를 지내줄 사람은 아들들이라는 뼈 속 깊이 아로 새겨진 남아선호사상의 잔재가 아닐까? 물론 근본을 따지자면 며느리가 아들 손주를 낳아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들의 채근이 어느 한부분을 차지하기도 할것이다. 딸들도 아니 나 역시도 자신의 부모에게 당연히 잘하고 싶지만 결혼하게되면 시부모라는 새로운 부모가 또 생기게 되니 이래저래 친정에만 신경쓰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건 남자가 장인, 장모에게 신경쓰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신경써주는건 굳이 그러지않아도 괜찮지만 그사람의 됨됨이가 정말 훌륭해서 그렇게 잘해드리는 것이고, 여자가 남자의 부모에게 신경써주는건 원래부터 아내의 도리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우리나라 남자 대부분의 지론이기에 이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참 힘든일이 아닐수없다. 도대체 뭐가 다른것일까? 모두 한 배 속에서 낳은 귀한 자식들인데……
하지만 내 새엄마 또한 우리 아빠와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국은 늦둥이로 아들을 한명 낳은걸 보면 아직까지도 그 ‘아들’이라는 존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에게 그 정도로 소중한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듯하다.
지금은 나도 그 ‘아들’이라는 귀중한 존재를 한명 모시고(?) 있다. 결혼하기 전부터 딸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산한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었지만 어떻게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큰아들로부터 아들손주를 두명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아들인것을 내심 좋아하며 남들에게 자랑했던 시어머님을 생각해봤을 때 더 이상 낳지 않을거라 다짐하고 있는 나의 아이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손주가 아들임이 그나마 위안이 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손주 한명도 봐주지 못해서 복직을 못하고 집에서 애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어머님이 나한테 둘째를 꼭 가지라고 강요하거나 은근히 보채거나 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서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아들을 보면서 하루에 몇 번씩 다짐하고 한다. 소중한 너를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또 네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써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그에 앞서 훗날 너에게 어떤식으로든 짐이 되는 부모가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노라며……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어머니들은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너도 나중에 늙어보라며, 힘없고 돈없는 그런 생활능력 없는 노인이 되어보라며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욕이 생긴다. 또 열심히 모아야겠다는 의지도 생긴다. 부모라는 이유로, 단지 낳아주고 어렵게 길러줬다는 이유로 자식만 바라보고 한평생 살아가다가 어이없이 버림 받고 가슴에 멍이 드는 그런 슬픈 노년기를 보내기는 정말 싫기에……
Notice : 이상하게도 남자에게 부모가 있으면 그 배우자인 여자에게는 시부모가 되어 제2의 부모로써 대접을 받게 되지만 여자의 부모는 남자에게 있어 그저 허울 좋은 장인, 장모님일 뿐, 명절때나 1번씩 찾아뵈면 그만인 ‘집사람의 결혼전 부모’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왜 자신한테 부양해야할 부모님이 계시다면 엄연한 남남인 부인한테도 똑같이 부양해야할 부모님이 계시다는걸 모르는 척 하는걸까요? 말 그대로 모르는 척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묘한 고집이지요. 부인이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이 부인의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틀린걸까요? 그러니 남아선호사상이 자연스레 생기게 됩니다. 똑같이 배아파서 자식을 낳았는데도 딸한테는 똑 같은 대접을 받기가 힘드니 말이죠. 시집가면 시댁의 귀신이 돼라는 둥의 얘기만 봐도 여자에게 있어 결혼이라는 것은 친정을 영영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걸로만 보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그 뿌리를 찾기가 힘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온 그 악습은 시대가 변했다는 지금에와서도 그 근간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머리속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근본 사상부터 없애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아들도 딸도 모두 똑 같은 자식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누구보다도 귀하게 자라왔을테구요. 아내의 부모님을 본인이 먼저 챙겨보세요. 아내도 당신의 부모님을 똑같이 챙길겁니다. 용돈도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드리세요. 장인, 장모가 당신의 아내를 키울때도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키워낸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돈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그 전 주에 시댁을 다녀왔다면 이번주엔 처가집에 가자고 아내에게 먼저 얘기해보세요. 당신의 부모님이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듯 아내의 부모님도 외손주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제발 똑같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장인, 장모님을 모셔서 그런저런 이유로 항상 여자들이 피해의식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내어주신 분들이니까요.
[알리는 글] 긴 글을 여기까지 모두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결혼생활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데 시.친.결 방을 애용하시는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기혼여성 분들인것 같아 글 중 일부를 올려봅니다. 벌써 세번재 이야기네요. 지난번 이야기를 보고싶으신 분들은 제 아뒤로 검색하시거나 제 블로그에 가셔서도 볼 수 있어요. 주관적인 경험이고,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