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19

삶의이유20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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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19

 

침묵이 흐른다.

법정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싸늘한 기운이 지영을 감싸고 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지모를 전율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지영은 고개를 들어 법정을 가득메운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어딘가에 혜영이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다.

아니 찾을수가 없었다.

지영은 몸을 돌렸다.

그리곤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영이 앉은 자리 앞으로 2명의 서기관이. 왼쪽엔 검사석이. 오른쪽엔 변호인석이 ...

태극기 아래로 3명의 판사가....

 

가운데 앉은 판사가 입을 열기시작했다.

[이름..]

[김지영입니다.]

[주민등록번호..]

[XXXXXX-XXXXXXX 입니다.]

[본적..]

[서울시 성동구 ........입니다.]

간단한 인적 사항을 묻고 답하고...

[사건번호 93합25972호 대한 판결을 하겠습니다.]

법정안이 다시 싸늘해졌다.

판사는 앞에 놓은 물컵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지영은 부르르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본 사건에 관해 피해자 이상희가 경찰에서부터 검찰 그리고 법원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김지영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고, 이하 본건에 관해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김구연....방범대원 하진철의 진술,

  또 피고가 경찰에서 본인이 한 사실이라고 자백한 취지로 작성된 진술서 등을 토대로 본 사건에 대한

  검사의 공소가 의심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

 

판사가 지영을 바라보았다. 지영 역시 판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고가 검찰 및 본 법정에서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사건 당일 피고의 행적 및 주변의 정황

  으로 미루어 본 사건에 관해 전혀 의심이 없는 바는 아니나 피고가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유력한

  증인이나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검사의 공소를 뒤집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지영은 고개를 떨구었다.

[피고가 초범이고.....

  따라서 본 법정은 형법 제 3XX조 제 X항, X항. 동법 제 XXX조 제X항의 의거 피고 김지영을 징역 3년

  6월에 처한다.

  본 건과 관련하여 구금일수 183일을 위 형에 삽입한다.]

지영의 떨구어진 고개 아래로 한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온통 까맣게 변해버린듯한 법정안과 희미하게 잃어져가는 몇몇의 얼굴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피고]

[네]

[14일 이내에 항소하세요]

[.....]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영과 함께 앉아있던 교도관들이 지영을 일으켜 세웠다.

한걸음..또 한걸음...

법정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젠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수갑과 포승줄이 다시 지영을 동여메었다.

전보다도 더 꽉 묶여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보지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5척의 회색빛 담장..할수만 있다면 저 담장을 넘어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긴 복도를 지나 다시 위로 그리고 열려진 철문....

[어떻게 됬어?]

배식반장이 묻는다.

하지만 지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영의 눈이 방장을 향했다.

방장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두 알고 있다는듯이...처음부터 그렇게 될꺼라고 알고 있었다는 듯이....방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코끗이 찡하게 아려왔다.

[3년 6월....]

끝말을 흐리는 지영을 보며 방안 사람들 모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10개월의 형을 선고받고도 울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3년 6월 이라니...

긴 시간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3년 6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간걸까.

또다시 어둠이 내려왔는데...

[지영아~]

방장이 조심스럽게 지영을 불렀다.

지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방장을 바라보았다.

[형은 다음주에 판결이다.]

[알고 있어요.]

[네 나이에 3년 6개월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말이다. 군대도 2년 6개얼이고..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려라. 마음 아프겠지만 어쩌겠니. 방법이 없는걸...]

지영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처음 이런곳에 왔을때 그때 첫 징역이 1년 6월 이었다.]

[.....]

[매일 죽고 싶더라. 그래서 죽으려고도 해봣고....그런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건강만 잘 챙기다보면...감형도 되고 하니 금방 나갈 수 있을거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

[네.]

[항소해야지?]

[네. 해야죠]

[원래 너처럼 판결하기 애매하면 1심에서 나가는 경우는 거의없어]

[네.]

[신은 알테니까. 걱정말고 어여자라]

[네]

신....

신은 알까?

신은 있는 걸까?

 

지영은 오지않는 잠을 애써 청하려 하지 않았다.

지난 6개월간의 시간동안 억지로 잠을 자려할때마다 지영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한 여인의 초상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손을 내밀어 잡으려할때마다 한발짝 물러나 손을 내밀고 뒤로 물러서면 어느새 조금 앞으로 다가와 다시 손을 내밀던 꿈들도 수없이 꾸어왓기 때문이기도 했다.

먹고 자고.. 의미없는 반복 생활에 흘러가버린 6개월...그리고 또 다시 3년이란 시간...

아직도 얼마나 많이 이런 꿈들을 꾸어야할지도 알 수 없는거였다.

매일 아침이면 한통의 편지가 와주기를 기다려야 했었던 6개월..

오후가 접어들면 혹 면회를 와주지는 않을지를 기대했었던 그 시간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야햇던 나날들....

[3년 이라니...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중얼거려볼뿐 ..미칠것만 같았다.

 

[혜영씨...

  3년간 여기 더 있으라고하네..

  나 정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만약 혜영씨가 당신한테 잘못햇으니까.. 그래서 3년간 여기 있으라고 한다면 있을수 있겟는데...

  나..

  나 정말 아무죄가 없는데..

  혜영씨 오늘 어디 있었어?

  법정에 들어서면서 잠시 혜영씨를 찾았는데 안보이더라구.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자세히 찾을수는 없었지만..

  보고싶다...

  뼈속에 사묻치는 그리움.

  아마 이런걸까?]

편지지도 우표도 없는 글을 가슴에 새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