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제목을 바꾸었어요. 분위기 상 저 위의 제목이 맞는 것 같아서요.^^
아침에 일어난 강인은 서둘러 국을 끓이고 반찬을 놓는다. 출근도 출근이지만, 학교에 가야하는 현인 때문이다. 현인은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 잔뜩 멋이 들어 아침마다 꼭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예쁜 방울로 머리를 묶는다. 물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고 묶어주는 것은 강인의 몫이다. 아침마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강인은 이런 생활이 즐겁다.
강인의 환경이 처음부터 이렇게 열악했던 것은 아니다. 강인의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고 어머니는 마트에서 캐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돈도 잘 벌었고 저축도 착실히 해서 작은 아파트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장거리 운전을 나갔던 그의 아버지가 빗길에 사고를 냈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캐셔를 하고 강인은 학교를 다니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생명보험금을 타면서부터였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가장 쉬운 장사는 먹는 장사라는 말에 식당을 차렸고 식당은 술집으로, 나중에는 속칭 방석집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태어난 것이 현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강인의 방황은 상준을 만나면서 더 심해졌고 결국에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어쨌든, 고 중퇴였어도 착실히 살면 될 것을 상준과 패 싸움에 휘말리던 날, 강인의 삶이 바뀌었다. 누군가 칼로 상대편을 찔렀고, 머리를 다친 상준을 돌보던 강인은 뒤따라 온 경찰에 잡혔다.
그렇게 시작된 4년의 교도소 생활. 출소해 돌아온 강인의 집에는 이미 어머니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집에 들어올까. 이미 일곱 살이 된 현인은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고 학교에 돈을 내지 못해 학교 가기 싫다고 칭얼대는 날도 많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강인의 마음 속에 이 아이 만큼은 정말 잘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과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들어간 세차장에서 세차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가 세차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가게로 찾아가 봤지만, 가게 아가씨들은 어머니가 이미 가게를 처분했으며 자주 오던 젊은 -말로는 강인의 동생뻘이라 했다.- 건달과 같이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한테는 아무 말 안하든?
하는 것이었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온 강인은 담배를 하나 물었다.
-씨발, 좆같애.
-오빠, 엄마 어디 간 거야?
따라오겠다고 칭얼대서 데리고 온 현인이 강인의 바짓단을 잡고 흔들었다. 강인은 현인을 안아 올렸다.
-현인아! 인제는 오빠랑 둘이만 사는 거다. 엄마 안 올지도 몰라.
그래도 전셋돈은 안 빼서 간게 어디냐. 강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현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을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오빠, 나 준비물 사야 돼.
-얼마?
-오 백 원.
강인이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줬다.
-오 백 원은 너 써두 돼.
-정말? 그럼 공부방 선생님이랑 떡볶이 사 먹어야지!
-현인아, 너 공부방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응! 은채 닮았어!
-은채가 누구야?
강인이 묻자 현인이 짜증을 낸다.
-오빠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나오는 은채도 몰라? 임수정!
-아, 그 여자말이야?
-그래. 이쁘잖아.
현인이 운동화를 신으며 말했다.
-오빠는 언제 출근해?
-어, 있다 9시에 잘 갔다 와. 오늘도 공부방으로 데리루 갈까?
-응! 오빠 오니깐 좋더라.
현인은 서서 손을 흔들고 나갔다. 강인은 설거지를 하고 대충 집을 청소를 한다. 주부가 되어버린 그의
일상.
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강의실에는 벌써 학생들이 앉아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이야!
미은이 부렀다. 준은 뚜벅뚜벅 걸어가서 미은 앞에 앉는다.
-시험 공부 많이 했어?
-별로.
준은 한마디 하고 볼펜을 꺼냈다.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험지가 돌려졌지만 준은 그저 백지를 내고 나와 버렸다. 뒤에서 이봐, 하고 당황한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다. 어차피 학점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녀가 배우고 싶은 것은 글 쓰는 법이었다.
준이 알고 있는 엄마는 언제나 상냥했다. 그녀는 꿈 많던 대학생 시절 준의 아버지 조셉 로렌스를 만났다. 그는 미군이었다. 엄마는 미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로렌스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준을 갖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난리가 났다. 금지옥엽 키운 딸, 그것도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어디서 양키와 눈이 맞았다고, 당장 아이를 지우지 않으면 호적을 파버리겠다는 서슬 퍼런 외할아버지의 말에 병원 앞까지 갔다 온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미혼모 시설로 도망가 거기서 준을 낳았다. 그 사이, 로렌스는 미국으로 떠났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준을 본 외할아버지는 그대로 중풍을 맞아 3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준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로렌스였다. 엄마와 준을 보러 온 로렌스는 거액의 수표를 남겼다. 그 돈으로 외할아버지 병원 빚을 갚고 남는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대 성공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로렌스는 또 한번 그녀를 찾아왔다. 그때 준은 중학생이었다. 로렌스는 준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모녀는 그가 빌딩 한 채를 엄마 이름으로 사놨다는 것을 알았다. 준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준의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다시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내러가다 교통사고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준은 울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뼛가루를 마당에 뿌렸다. 늘 함께 있자고.
로렌스가 다시 나타난 것은 엄마가 죽은 지 3주 만이었다. 그는 준에게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별 뾰족한 수도 없기에 따라 나섰다. 미국의 그의 가족들은 모두 준에게 친절했다. 오빠가 둘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유학 중이라고 했다. 어쨌든 좋았다. 처음으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착각 이었다. 가족이라는 가면이 벗겨지는 데에는 삼년의 시간이 걸렸다. 술에 취한 그의 아들, 준의 이복 오빠가 그녀를 겁탈하려 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물건 - 끝이 뾰족한 장식용 촛대였다.-으로 그의 등을 내리 찍었다. 그의 비명을 듣고 뛰어온 로렌스의 손에 총이 쥐여져 있었다.
탕!
총알은 다행히 침대 위 벽에 박혔다. 준은 시트로 몸을 가리고 놀라 울지도 못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로렌스는 분이 안풀리는 지 아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안돼, 조셉!
로렌스의 아내가 소리쳤다.
-내 아들이야, 내 아들!
-내 아들? 그럼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니 당해도 되는 건가요?
준이 소리쳤다.
-준!
로렌스가 비명을 지르듯 준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들 모두 보기 싫어!
그날 이후로 로렌스와 아내는 자주 다퉜다. 그의 아내는 이제 ‘준’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그 계집애’라고 불렀다.
-어떻게 당신은 그 계집애를 위해 우리 아들을 쏘려고 했어?
-그 얘도 내 딸이야.
-내 딸은 아니지.
준은 짐을 쌌다. 한국으로 따라온 로렌스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열어주고, 전에 준이 살던 집을 다시 사줬다. 그리고 시집갈 때 쓰라며 통장 하나를 건넸다.
-미안하다, 내 딸아.
-아니에요, 아빠. 당신을 미워하진 않아요.
준은 공항에서 로렌스를 꼭 안아줬다. 그렇게 마지막이었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추워? 짜증나.
미은이 쫑알거리며 옆에 앉았다.
-뭐가 추워? 별로 안 추워.
준의 말에 미은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있다 백화점 안가?
-안가. 공부방 가야지.
-오늘은 안가도 되잖아.
-가기로 약속 했잖아.
준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미은이 따라서 일어섰다.
-난 거기 애들 싫어. 하나같이 다들 꾀죄죄해.
-그럼 넌 하지마.
준이 일어서자 미은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은 쇼핑가자. 응?
-됐다니까 그러네. 난 오늘 공부방 가야해.
-치. 알았어.
미은이 그녀의 소맷부리를 놓았다. 준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폭스바겐 좀 타볼라 했더니.
미은은 발 끝으로 땅을 차며 걷다 택시를 보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공부방 문을 연 준을 보고 현인이 달려왔다.
-선생님!
-그래, 공부 잘 하고 있었어?
-네! 선생님!
현인이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하자 다른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있다 우리 오빠 온댔어요. 오면 떡볶이 먹으러 가요.
현인이 소곤거렸다.
현인의 소곤거림에 준이 웃으며 답했다.
-선생님은 좋은데 현인이네 오빠는 선생님 좋아할까?
-좋아할거에요! 선생님은 예쁘잖아요.
현인이 말하고는 소파로 달려가 앉았다. 준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현인은 눈이 참 예쁜 아이다. 누군가가
-현인이는 엄마도 아빠도 없대요!
하고 말해서 물어 봤더니 그 아이는 황당하게도
-아빠는 요, 교통사고로 죽고요, 엄마는 요, 건달이랑 눈 맞아서 도망갔대요!
하는 것이었다. 준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주의를 준 뒤 현인을 돌아봤다. 현인은 다행히 그 말을 못 들은 듯 바닥에 누워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남다르게 느껴진 것은.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튀기라며, 양공주 딸이라며 놀림을 받고 커온 준에게 현인은 남다른 아이였다.
-너무 한 아이만 보살펴주면 안돼요, 이 선생. 아이들은 그런 걸 잘 알거든요?
공부방 고참 선생님이 주의를 주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 오빠!
현인이 손을 들었다. 유리 문 밖으로 강인의 모습이 보였다. 준은 그저 앉아 현인의 받아쓰기 노트만 채점하고 있었다.
-선생님, 백점이죠?
-응, 그래. 오늘도 잘했다. 노트 가져다 꽂아야지.
현인은 노트를 들고 책장으로 갔다. 그 사이 준이 일어나 강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선생님.
강인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인사를 했다.
-오빠! 우리 선생님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
현인이 달려와 강인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바지 잡고 늘어지는 것은 현인의 특기다.
-선생님이 가셔야지.
강인이 현인에게 말하고는 준의 얼굴을 살폈다. 놀랍게도 준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저,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아, 그러세요.
강인은 엉겁결에 대답했다.
준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앞서 걸어갔다. 현인도 그런 준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현인은 뭐가 좋은지 연신 준을 올려다 보며 연신 재잘거렸다.
-어? 오빠, 어디가?
정아였다. 정아는 가게 채소를 정리하다 말고 강인을 보고 뛰어나왔다. 준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며 답했다.
-그냥. 현인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
현인이 입을 삐쭉 해보이더니 준 뒤로 숨었다.
-저 여잔 누구야?
정아가 속삭였다.
-현인이 선생님.
-선생님이 머 저러냐?
-공부방 선생님이래. 왜? 잘 가르치기만 하면 좋지.
강인은 저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현인과 준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땅에 침을 뱉었다.
-그러지 좀 마. 더러워.
-니가 먼데 참견이냐? 내 마누라라도 되냐?
-되면 어쩔건데?
정아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강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현인이 빨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난 저 언니 싫어!
-왜?
강인이 달려와서 현인을 번쩍 안았다. 그러자 현인이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저 언니, 무서워.
-왜? 안그래. 좋은 언니야.
강인이 현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야. 선생님이 더 좋아.
현인의 말에 강인은 준을 돌아 보았다. 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내가 보기엔 선생님이 더 무섭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마차로 들어가니 따뜻한 기운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인은 현인에게 어묵 꼬지 하나를 건넸다. 현인은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도 어묵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드세요.
-아, 네.
준은 고개를 숙이더니 핫도그 하나를 들었다. 강인은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두고는 포크로 떡볶이 하나를 찍어 들었다.
-오늘 공부 잘했어?
-응! 오늘도 백점 맞았다.
현인의 말에 강인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는 오늘도 차 많이 고쳤어?
-어? 그래..
강인은 차마 아직 차 정비는 못하고 그저 세차만 하는 세차 보조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현인은 강인이 차를 고치는 의사라고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현인은 준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면서 우리 오빠는 차 고치는 의사에요! 하고 자랑을 해 보였다. 준은 활짝 웃으며 좋겠네, 하며 맞장구를 쳤다. 준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강인은 그녀가 웃으니 참 예쁘기도 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포장마차를 나온 셋은 한 동안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선생님 이제 가셔야죠?
강인이 먼저 말했다.
-아, 네. 차를 저 아파트에 주차 시켜서..
-어? 저기 우리 아파튼데.
강인은 현인이 가리키는 아파트를 바라봤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녹슨 베란다 난간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빨리 이사라도 가야하는데. 강인은 중얼거렸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해. 강인의 현재는 그랬다. 벗어나야 하는 굴레였다.
Knockin' On Heaven's Door *3*과거와 현재의 수레바퀴
아침에 일어난 강인은 서둘러 국을 끓이고 반찬을 놓는다. 출근도 출근이지만, 학교에 가야하는 현인 때문이다. 현인은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 잔뜩 멋이 들어 아침마다 꼭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예쁜 방울로 머리를 묶는다. 물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고 묶어주는 것은 강인의 몫이다. 아침마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강인은 이런 생활이 즐겁다.
강인의 환경이 처음부터 이렇게 열악했던 것은 아니다. 강인의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고 어머니는 마트에서 캐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돈도 잘 벌었고 저축도 착실히 해서 작은 아파트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장거리 운전을 나갔던 그의 아버지가 빗길에 사고를 냈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캐셔를 하고 강인은 학교를 다니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생명보험금을 타면서부터였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가장 쉬운 장사는 먹는 장사라는 말에 식당을 차렸고 식당은 술집으로, 나중에는 속칭 방석집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태어난 것이 현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강인의 방황은 상준을 만나면서 더 심해졌고 결국에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어쨌든, 고 중퇴였어도 착실히 살면 될 것을 상준과 패 싸움에 휘말리던 날, 강인의 삶이 바뀌었다. 누군가 칼로 상대편을 찔렀고, 머리를 다친 상준을 돌보던 강인은 뒤따라 온 경찰에 잡혔다.
그렇게 시작된 4년의 교도소 생활. 출소해 돌아온 강인의 집에는 이미 어머니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집에 들어올까. 이미 일곱 살이 된 현인은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고 학교에 돈을 내지 못해 학교 가기 싫다고 칭얼대는 날도 많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강인의 마음 속에 이 아이 만큼은 정말 잘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과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들어간 세차장에서 세차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가 세차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가게로 찾아가 봤지만, 가게 아가씨들은 어머니가 이미 가게를 처분했으며 자주 오던 젊은 -말로는 강인의 동생뻘이라 했다.- 건달과 같이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한테는 아무 말 안하든?
하는 것이었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온 강인은 담배를 하나 물었다.
-씨발, 좆같애.
-오빠, 엄마 어디 간 거야?
따라오겠다고 칭얼대서 데리고 온 현인이 강인의 바짓단을 잡고 흔들었다. 강인은 현인을 안아 올렸다.
-현인아! 인제는 오빠랑 둘이만 사는 거다. 엄마 안 올지도 몰라.
그래도 전셋돈은 안 빼서 간게 어디냐. 강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현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을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오빠, 나 준비물 사야 돼.
-얼마?
-오 백 원.
강인이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줬다.
-오 백 원은 너 써두 돼.
-정말? 그럼 공부방 선생님이랑 떡볶이 사 먹어야지!
-현인아, 너 공부방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응! 은채 닮았어!
-은채가 누구야?
강인이 묻자 현인이 짜증을 낸다.
-오빠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나오는 은채도 몰라? 임수정!
-아, 그 여자말이야?
-그래. 이쁘잖아.
현인이 운동화를 신으며 말했다.
-오빠는 언제 출근해?
-어, 있다 9시에 잘 갔다 와. 오늘도 공부방으로 데리루 갈까?
-응! 오빠 오니깐 좋더라.
현인은 서서 손을 흔들고 나갔다. 강인은 설거지를 하고 대충 집을 청소를 한다. 주부가 되어버린 그의
일상.
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강의실에는 벌써 학생들이 앉아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이야!
미은이 부렀다. 준은 뚜벅뚜벅 걸어가서 미은 앞에 앉는다.
-시험 공부 많이 했어?
-별로.
준은 한마디 하고 볼펜을 꺼냈다.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험지가 돌려졌지만 준은 그저 백지를 내고 나와 버렸다. 뒤에서 이봐, 하고 당황한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다. 어차피 학점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녀가 배우고 싶은 것은 글 쓰는 법이었다.
준이 알고 있는 엄마는 언제나 상냥했다. 그녀는 꿈 많던 대학생 시절 준의 아버지 조셉 로렌스를 만났다. 그는 미군이었다. 엄마는 미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로렌스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준을 갖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난리가 났다. 금지옥엽 키운 딸, 그것도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어디서 양키와 눈이 맞았다고, 당장 아이를 지우지 않으면 호적을 파버리겠다는 서슬 퍼런 외할아버지의 말에 병원 앞까지 갔다 온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미혼모 시설로 도망가 거기서 준을 낳았다. 그 사이, 로렌스는 미국으로 떠났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준을 본 외할아버지는 그대로 중풍을 맞아 3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준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로렌스였다. 엄마와 준을 보러 온 로렌스는 거액의 수표를 남겼다. 그 돈으로 외할아버지 병원 빚을 갚고 남는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대 성공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로렌스는 또 한번 그녀를 찾아왔다. 그때 준은 중학생이었다. 로렌스는 준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모녀는 그가 빌딩 한 채를 엄마 이름으로 사놨다는 것을 알았다. 준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준의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다시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내러가다 교통사고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준은 울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뼛가루를 마당에 뿌렸다. 늘 함께 있자고.
로렌스가 다시 나타난 것은 엄마가 죽은 지 3주 만이었다. 그는 준에게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별 뾰족한 수도 없기에 따라 나섰다. 미국의 그의 가족들은 모두 준에게 친절했다. 오빠가 둘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유학 중이라고 했다. 어쨌든 좋았다. 처음으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착각 이었다. 가족이라는 가면이 벗겨지는 데에는 삼년의 시간이 걸렸다. 술에 취한 그의 아들, 준의 이복 오빠가 그녀를 겁탈하려 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물건 - 끝이 뾰족한 장식용 촛대였다.-으로 그의 등을 내리 찍었다. 그의 비명을 듣고 뛰어온 로렌스의 손에 총이 쥐여져 있었다.
탕!
총알은 다행히 침대 위 벽에 박혔다. 준은 시트로 몸을 가리고 놀라 울지도 못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로렌스는 분이 안풀리는 지 아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안돼, 조셉!
로렌스의 아내가 소리쳤다.
-내 아들이야, 내 아들!
-내 아들? 그럼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니 당해도 되는 건가요?
준이 소리쳤다.
-준!
로렌스가 비명을 지르듯 준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들 모두 보기 싫어!
그날 이후로 로렌스와 아내는 자주 다퉜다. 그의 아내는 이제 ‘준’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그 계집애’라고 불렀다.
-어떻게 당신은 그 계집애를 위해 우리 아들을 쏘려고 했어?
-그 얘도 내 딸이야.
-내 딸은 아니지.
준은 짐을 쌌다. 한국으로 따라온 로렌스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열어주고, 전에 준이 살던 집을 다시 사줬다. 그리고 시집갈 때 쓰라며 통장 하나를 건넸다.
-미안하다, 내 딸아.
-아니에요, 아빠. 당신을 미워하진 않아요.
준은 공항에서 로렌스를 꼭 안아줬다. 그렇게 마지막이었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추워? 짜증나.
미은이 쫑알거리며 옆에 앉았다.
-뭐가 추워? 별로 안 추워.
준의 말에 미은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있다 백화점 안가?
-안가. 공부방 가야지.
-오늘은 안가도 되잖아.
-가기로 약속 했잖아.
준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미은이 따라서 일어섰다.
-난 거기 애들 싫어. 하나같이 다들 꾀죄죄해.
-그럼 넌 하지마.
준이 일어서자 미은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은 쇼핑가자. 응?
-됐다니까 그러네. 난 오늘 공부방 가야해.
-치. 알았어.
미은이 그녀의 소맷부리를 놓았다. 준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폭스바겐 좀 타볼라 했더니.
미은은 발 끝으로 땅을 차며 걷다 택시를 보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공부방 문을 연 준을 보고 현인이 달려왔다.
-선생님!
-그래, 공부 잘 하고 있었어?
-네! 선생님!
현인이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하자 다른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있다 우리 오빠 온댔어요. 오면 떡볶이 먹으러 가요.
현인이 소곤거렸다.
현인의 소곤거림에 준이 웃으며 답했다.
-선생님은 좋은데 현인이네 오빠는 선생님 좋아할까?
-좋아할거에요! 선생님은 예쁘잖아요.
현인이 말하고는 소파로 달려가 앉았다. 준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현인은 눈이 참 예쁜 아이다. 누군가가
-현인이는 엄마도 아빠도 없대요!
하고 말해서 물어 봤더니 그 아이는 황당하게도
-아빠는 요, 교통사고로 죽고요, 엄마는 요, 건달이랑 눈 맞아서 도망갔대요!
하는 것이었다. 준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주의를 준 뒤 현인을 돌아봤다. 현인은 다행히 그 말을 못 들은 듯 바닥에 누워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남다르게 느껴진 것은.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튀기라며, 양공주 딸이라며 놀림을 받고 커온 준에게 현인은 남다른 아이였다.
-너무 한 아이만 보살펴주면 안돼요, 이 선생. 아이들은 그런 걸 잘 알거든요?
공부방 고참 선생님이 주의를 주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 오빠!
현인이 손을 들었다. 유리 문 밖으로 강인의 모습이 보였다. 준은 그저 앉아 현인의 받아쓰기 노트만 채점하고 있었다.
-선생님, 백점이죠?
-응, 그래. 오늘도 잘했다. 노트 가져다 꽂아야지.
현인은 노트를 들고 책장으로 갔다. 그 사이 준이 일어나 강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선생님.
강인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인사를 했다.
-오빠! 우리 선생님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
현인이 달려와 강인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바지 잡고 늘어지는 것은 현인의 특기다.
-선생님이 가셔야지.
강인이 현인에게 말하고는 준의 얼굴을 살폈다. 놀랍게도 준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저,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아, 그러세요.
강인은 엉겁결에 대답했다.
준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앞서 걸어갔다. 현인도 그런 준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현인은 뭐가 좋은지 연신 준을 올려다 보며 연신 재잘거렸다.
-어? 오빠, 어디가?
정아였다. 정아는 가게 채소를 정리하다 말고 강인을 보고 뛰어나왔다. 준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며 답했다.
-그냥. 현인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
현인이 입을 삐쭉 해보이더니 준 뒤로 숨었다.
-저 여잔 누구야?
정아가 속삭였다.
-현인이 선생님.
-선생님이 머 저러냐?
-공부방 선생님이래. 왜? 잘 가르치기만 하면 좋지.
강인은 저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현인과 준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땅에 침을 뱉었다.
-그러지 좀 마. 더러워.
-니가 먼데 참견이냐? 내 마누라라도 되냐?
-되면 어쩔건데?
정아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강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현인이 빨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난 저 언니 싫어!
-왜?
강인이 달려와서 현인을 번쩍 안았다. 그러자 현인이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저 언니, 무서워.
-왜? 안그래. 좋은 언니야.
강인이 현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야. 선생님이 더 좋아.
현인의 말에 강인은 준을 돌아 보았다. 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내가 보기엔 선생님이 더 무섭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마차로 들어가니 따뜻한 기운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인은 현인에게 어묵 꼬지 하나를 건넸다. 현인은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도 어묵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드세요.
-아, 네.
준은 고개를 숙이더니 핫도그 하나를 들었다. 강인은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두고는 포크로 떡볶이 하나를 찍어 들었다.
-오늘 공부 잘했어?
-응! 오늘도 백점 맞았다.
현인의 말에 강인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는 오늘도 차 많이 고쳤어?
-어? 그래..
강인은 차마 아직 차 정비는 못하고 그저 세차만 하는 세차 보조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현인은 강인이 차를 고치는 의사라고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현인은 준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면서 우리 오빠는 차 고치는 의사에요! 하고 자랑을 해 보였다. 준은 활짝 웃으며 좋겠네, 하며 맞장구를 쳤다. 준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강인은 그녀가 웃으니 참 예쁘기도 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포장마차를 나온 셋은 한 동안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선생님 이제 가셔야죠?
강인이 먼저 말했다.
-아, 네. 차를 저 아파트에 주차 시켜서..
-어? 저기 우리 아파튼데.
강인은 현인이 가리키는 아파트를 바라봤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녹슨 베란다 난간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빨리 이사라도 가야하는데. 강인은 중얼거렸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해. 강인의 현재는 그랬다. 벗어나야 하는 굴레였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시험 점수 정리하느라 너무 바쁘네요 ㅋ
추천 꾸욱..댓글 만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