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유명한 논쟁거리들-관우vs제갈량 정적설 - "제갈량은 관우가 죽

가리온200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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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맞습니다.

제갈량은 유비가 촉황제가 된 후에 승상이 되었습니다

곶 제갈량은 병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오호 대장군이였돈 관우가 다스리던 형주 9군(?확실하지 않아서)은 손권과 조조의 대군에게 대대적인  침공을 받게되고 부하 장수의 지략의 모자람으로 인해 형주를 빼았기고 미방과 부사인의 오에게의 항복으로 점점 세력을 잃어갑니다

곧 맥성에 갇쳐 위태로운 상황이 된 관우는 상용성에 요화를 보내 구원을 청하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맹달의 부단적인 생각으로 상용에서는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았구 요화는 성도까지 가게됩니다

유비는 이소식을 듣고 대군을 일으켰지만 제갈량은 " 폐하. 산아 가겠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옥체를 보존 하셔야죠"하면서 천문을 보면서 시간을 끌었구 관우가 죽은 날에 출전을 하였으나 유비가 관우의 사망을 알게되자 오발하였죠.

그러자 제갈량은 장례식을 핑계로 출전을 지연하였고 결국 유비가 77만 대군을 일으켰을때 제갈량은 자발적으로 전투에 빠졌고 유비가 죽기많을 기다렸죠

유비가 죽음에 임박하였을때 유비는 제갈량에게 막중한 책임을 주었죠

위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제갈량은 황제가 되기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관우가 죽기전에 유비가 죽으면 관우는 황제 1순위죠 (유선은 멍청하구 유비는 형제를 아끼잖아여) 그래서 라이벌인 관우를 죽이죠

장비는 부하에게 죽는대 그것두 알구보면 제갈량이 시킨일!

아무튼 제갈량이 중원 정벌을 나갔을때 모반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났죠

사실은 진실입니다

소문이 확산되자 제갈량은 일이 발각된것이 두려워 성도로 가 시치미를 때죠

제갈량 원래 나쁜놈이에요

삼국지 완전 광의 허접한 릴레이였습니다.

 

 

2.아닙니다.

첨언해서, "썰"을 제외하고 사서만을 가지고 이 사건을 해석한다면 여몽, 육손의 뛰어난 계략에 의해서 관우가 죽게되었다는 쪽이 정설일 것 같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비교적 진수의 삼국지 내용들과 대부분 일치합니다. 육손이 당시 관우의 상태에 파악은 매우 정확했던 것 같고 여몽의 질병설을 고의로 유포시킨 계략도 훌륭한 계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릉을 함락하고 포로에 대한 처우도 훌륭했던 것 같구요. 이문열 삼국지에서 관우와 제갈량의 2인자 다툼에 대한 추측을 남겨 신선했었는데, 그 파장이 매우 큰 것 같네요. 이문열 삼국지에 남겼던 이문열씨의 얘기와 같이 대만등지를 돌며 여러 참고 문헌등을 검토했었다고 하니 저같이 정사와 배송지 일부 내용만 편협하게 구경했던 사람이 판단하기는 가당치 않지만, 관우VS제갈량의 정적설은 당시 유비진형의 정치적 상황에 기대어 추측한 이문열의 추론이지 않을 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갈량과 관우의 정적설이 훨씬 재미있고, 그럴 경우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도 해보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네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관우와 제갈량의 정적설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의 "썰"이죠. 하나 확실해 보이는 것은 관우의 형주에 대한 집착입니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는데, 그렇다면 제갈량은 정말 형주를 포기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죠. 개인적으로 천하 3분지계를 근거로 포기했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지정학적으로나 물류적으로 따져봐도 형주는 요충지임이 틀림 없지만 그 만큼 위나 오 또한 언젠가든 차지해야할 중요한 지역이었고, 당시 촉의 입장에서는 형주를 지키면서 세를 소모하기 보단 익주를 지키면서 세를 탄탄히 하는 것이 시급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유비는? 고민했을 겁니다. 제갈량 독자적으로 관우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형주를 지키려고 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주 원인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달려있는 관우의 형주에 대한 집착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 됩니다. 다른 사람은 형주를 포기하더라도 관우만은 절대로 형주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