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중국어 공부(?)좀 했습니다...ㅎㅎㅎ 정말 맘먹고 -광고보는게 아니라^^;- 기사를 첨부터 끝까지 훑어본게 얼마만인지...
개인적으로 번역하는거 무지 싫어합니다.
학교졸업하고 백수시절 실력도 안되는 것이 --;; 간도 크게 번역알바하다가
꽃피는 춘삼월에 방구석에서 마감에 시달리다
편두통을... 아니 맘의 병을 앓아버린 적이 있거덩요 ㅠㅠ
언어는 그 언어자체로 받아들여야지 -필이 확 꼳히죠^^;-분석하고 남의 나라말을 내나라말로 옮긴다는거 그 느낌까지 표현하기엔 제가 중국어가 짧은것이겠지요...ㅠㅠ 그래도 대충 말은 만들어서 ...그리고 최대한 의역을 피하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평소 축구용어도 모르는데다가 영문과 독일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부분 상당히 난감해서 여러한국기사를 보면서 그 이름을 추측해보았습니다...이게 제일 힘들더이다...--;;
혹시 경기보신 분들 그리고 축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어, 이거 이상하다 하셔도 그냥 이해하세요...
그냥 축구는 공이 굴러가나부다~~!하고 여기는 아줌마가 중국인들의 현란한 음차번역(외국이름이니지명이니...곧 죽어도 외국어공용표시 안합니다)에 몹시 힘들어하면서 찍었습니다.
참고로 저 찍는거 좀 합니다...^^;; 주로 주관식에 강합니다...^^;; 보지도 못한 경기를 그리고 이제 하루지나니까 한국은 이미 이 경기 잊은듯하긴 하지만
뒷북 ...지금부터 올라갑니다...
한국, 발라크의 50번째 경기를 휘젓다
12월 19일 아시아순회 두번째의 열띤 경기중에서 독일팀은 1:3으로 홈그라운드에서의 게임인 한국팀에 패함으로 클리스만감독의 5번의 경기중에 첫패배를 맛보았다. 이 경기는 한국팀에게는 1994년 월드컵조예선2:3으로,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0:1로 두 번씩이나 패한 독일에 대한 통쾌한 복수이자 또한 아시아팀이 독일에 처음으로 거둔 값진 승리이다.
지난주 목요일 일본팀을 격파하고 몇 시간 후 독일팀은 곧바로 그날 저녁 부산에 도착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클리스만감독은 일본을 이긴 433진법을 422로 변환하고 바로 얼마전 유럽축구연맹컵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슈튜트가르트의 공격수 쿠라니,안드레아스힝켈, 필립람, 그리고 시다 수비수 프레드리히,바이인 미드필드 토르스텐프링스등을 선발로 꼽았다.
경기가 시작된 후 한국의 적극적인 공세에 독일팀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전경기에서 일본인들을 아이 다루듯이 하던 독일팀이 한국팀에게 대항해서 조금도 장악하지 못한채, 전반전 한국팀의 볼점유성공율은 60%,발라크들은(독일팀을 지칭) 40%였다. 경기16분에 발락이 미드필드에서 공을 놓쳐 상대방에 공격의 기회를 주었고 이동국이 뒷수비수로부터 받은 스루패스를 연결해주어 올해 5월 중국올림픽팀과 경기에서 1득점1어시스트를 기록한 공격수 김동진의 공이 구석으로 낮게 파고들어 1:0 이 되었다. 경기24분 발라크는 페널티에어리어앞에서 얻은 프리킥으로 1:1을 만들었다. 이는 그가 국가대표팀에서의 22번째 골이자 동시에 월드컵준결승전에서 넣었던 골에 이어서 다시 한번 한국팀을 맞아 넣은 두 번째의 골이다.
한국은 강렬한 수비뿐 아니라 거센 반격을 계속하여 경기71분 한국팀 미드필드로부터 온 볼을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수비수와 싸우다 이동국이 볼을 얻어 멋지게 오른발터닝발리슛을 성공시켰다. 경기87분 한국인은 반격을 하여 최두리가 페널티내 우측에서 돌아서 람이 빼내지 못한 볼을 조재진이 오른발로 가볍게 슈팅을 해서 3:1이 되었다.
독일은 경기는85분에 페널티 내에서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전적 국가대표팀에서 5차례 페널티킥을 모두 성공시킨 발라크의 공이 이운재에 의해 밀쳐졌고, 2분 후 한국은 더 큰 공세를 펼쳤다. 독일팀의 전반전 첫 번째 실점 역시 발라크와 관계가 있으니 그는 국가대표팀의 50번째의 경기에서 아름다운 결말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선수들은 시종일관 발라크를 철저하게 방어하였기에 하마터면 2차례나 그가 상대방과 충돌하게 만들뻔 하기도 했다.
한국에게도 얼마의 행운이 함께 했다. 전반전 독일이 몇 차례나 아주 좋은 기회를 맞이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그 후에 골대에 볼이 맞는 등 볼이 들어가 주지 않았다. 발라크는 경기 후 독일 방송의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내가 페널티킥을 찰 때에 너무 경솔했고, 상대방의 골키퍼가 그토록 빨리 대응할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경기 후 갱의실로 걸어가면서 클린스만감독이 선수들에게 던진 첫마디는 “이번 패배는 절대로 끝이 아니다” 그는 모든 선수들이 이번 경기를 너무 심하게 중시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패배로부터 역시 배울 수 있수며, 더구나 이번 아시아순회경기의 목적은 전선수로 하여금 단결의지를 형성하는데 있으므로 “선수들이 서로 잘 지내고 서로를 존중한다며”그는 이점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한다고 밝혔다.
클린스만감독은 선수기용문제면에서 독일의 언론매체들로부터 의혹을 받았다. 일본팀과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이 아주 잘 뛰어주었는데 한국전에 있어 오히려 대폭의 선수교체를 했다는것. 금요일에 비로서 대열에 합류한 슈튜트가르트의 세용사 -쿠라니,힝켈,람을 일컫는듯-모두 선발로 했지만 쿠라니와 힝켈의 성적이 좋지 않다. 쿠라니는 경기34분경 골대 2미터 앞에서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힝켈 역시 감기의 영항으로 미드필드에서 교체되었다. 단지 람만이 그럭저럭 역할을 해주었을 뿐이지만 그나마 그 역시 차두리에게 밀려 효과가 없었다는것...
----2004.12.20. 중국의 티탄쩌우빠오의 취엔홍칭 기자------
이동국의 절묘한 발리슛
한국팀이 3:1로 독일을 누른 데에 가장 기여를 한 사람은 “사자왕”이동국이다. 이동국은 예전 독일 분데스리가의 브레멘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한골을 넣은 이후로 이번에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이동국은 6개월간을 독일의 브레멘에서 보냈다. 당시 그의 무릅부상이 완치되지 않았기에 단지 7번의 경기 중에 중간에 교체선수로 들어가서 그다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반년 후에 브레멘은 자동적으로 그와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동국에게 있어서 이런 경력은 줄곧 마음 한켠에 부담으로 남아있었고 늘 마음속으로 기회를 잡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증명하고픈 기대가 있었다. 이번 독일과의 경기야 말로 의심할 바 없이 그로 하여금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절대절명의 기회가 되고 말았다
이동국은 1998년 19세에 국가대표A매치에서 처음으로 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0차례의 국제경기 중에서 16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코스타니아, 오스트레일리아,나이지리아 와의 경기 중에 골을 넣은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3골은 모두 아시아팀과 상대로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많은 한국축구펜들은 이동국은 해봤자 고작 아시아수준일 뿐이라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동국은 경기 전에 이번 경기에서 골을 넣어 이러한 이야기들을 잠재우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했다.
2002년 월드컵후 한국팀은 신구시대간의 교체를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으나 월드컵예선을 준비하면서 코엘류감독은 줄곧 해외파선수를 주류로 하는 진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인 본프레레감독이 올해 6년에 감독을 이어받으면서 차츰 신인을 훈련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번 경기에서 그는 대다수의 해외파선수들 중에 단지 차두리와 조재진 이 두사람 만을 불러들여 팀내 평균연령이 24세로 낮추었다. 2년 반 전의 양팀이 벌였던 월드컵준결승경기와 비교해 본다면, 이번 독일팀 진영에 5명만이 그 경기에 참가했었고 한국팀은 차두리와 골키퍼 이운재 단 두 사람만이 월드컵경기에 참가했었다.
신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국팀은 기술적인 면이나 경험적인 면이나 모두가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총체적으로 볼때 독일이 70%의 우세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팀은 쉬지 않고 거센 공격을 펼쳤으며, 많지 않은 기회를 활용하여 세 차례나 독일의 대문을 두드렸다. 이는 이동국의 활약과 뗄 수가 없고 더군다나 앞선 두 차례의 골 모두 그와 연관이 있다.
경기16분 이동국은 김상식의 스루패스를 이어받아 김동진에게 넘겨준 공이 경기시작후 내내 풀어질 것 같지 않았던 두 팀의 대치상황에 반향을 주었다. 71분 한국미드필드에서 이동국과 독일선수 두 명이 서로 공을 겨루다가 이동국이 공을 빼앗았다. 이 때 그는 골문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가 공을 패스하거나 다시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이동국은 180도로 몸을 돌려 직접 오른발로 슛팅을 하였고 볼은 활모양으로 날아가서 모서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 절묘한 슈팅에 올리버칸 조차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하고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방어동작조차도 하지 못한 채 골문으로 들어가는 골을 바라보아야 했다. 81분에 이동국은 부담감을 떨쳐버린 편안한 웃음을 만면에 띄운채 조재진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비록 이동국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날 심사위원들에게 최고선수로 뽑힌 것은 한국의 골키퍼 이운재이다. 이운재는 경기25분에 클로제의 비수같은 공을 밀어내고, 경기84분에도 발라크의 공을 막아냈다. 경기후 독일 언론 매체에서 쌍방의 선수들에게 점수를 매겼는데 이운재와 차두리가 가장 높은 1.5점을 받았고, 이동국과 겨우 19세의 미드필더 김진규가 2점으로 그 뒤를 따랐다. 독일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발라크(2.5점)과 올리버 칸(3점), 기타의 선수들은 클로제와 람이 3.5점을 받은걸 제외하고는 거의 다 4점대이고 가장 경기를 망친선수로 게랄트아사모어와 쿠라니를 들어 5점을 주었다. 이로서 한국팀은 신인을 대거 기용한 것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앞으로 신구교체의 발걸음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2004.12.20. 중국의 티탄쩌우빠오의 쏭칭윈기자---
P.S.사실 차범근이 크린스만감독에게 핸드폰을 선물한 기사가 제법 크게 났습니다. 차두리가 정말 외국언론에서는 하이틴 스타처럼(?)부각되는군요...^^; 귀찮아서 그냥 생략! 담에 심심하면 올리죠^^;
한국VS독일 중국스포츠신문기사 번역해봤슴다.^^;
간만에 중국어 공부(?)좀 했습니다...ㅎㅎㅎ

정말 맘먹고 -광고보는게 아니라^^;- 기사를 첨부터 끝까지 훑어본게 얼마만인지...
개인적으로 번역하는거 무지 싫어합니다.
학교졸업하고 백수시절 실력도 안되는 것이 --;; 간도 크게 번역알바하다가
꽃피는 춘삼월에 방구석에서 마감에 시달리다
편두통을... 아니 맘의 병을 앓아버린 적이 있거덩요 ㅠㅠ
언어는 그 언어자체로 받아들여야지 -필이 확 꼳히죠^^;
그래도 대충 말은 만들어서 ...그리고 최대한 의역을 피하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평소 축구용어도 모르는데다가 영문과 독일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부분 상당히 난감해서 여러한국기사를 보면서 그 이름을 추측해보았습니다...이게 제일 힘들더이다...--;;
혹시 경기보신 분들 그리고 축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어, 이거 이상하다 하셔도 그냥 이해하세요...
그냥 축구는 공이 굴러가나부다~~!하고 여기는 아줌마가 중국인들의 현란한 음차번역(외국이름이니지명이니...곧 죽어도 외국어공용표시 안합니다)에 몹시 힘들어하면서 찍었습니다.
참고로 저 찍는거 좀 합니다...^^;; 주로 주관식에 강합니다...^^;;
보지도 못한 경기를 그리고 이제 하루지나니까 한국은 이미 이 경기 잊은듯하긴 하지만
뒷북 ...지금부터 올라갑니다...























한국, 발라크의 50번째 경기를 휘젓다
12월 19일 아시아순회 두번째의 열띤 경기중에서 독일팀은 1:3으로 홈그라운드에서의 게임인 한국팀에 패함으로 클리스만감독의 5번의 경기중에 첫패배를 맛보았다. 이 경기는 한국팀에게는 1994년 월드컵조예선2:3으로,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0:1로 두 번씩이나 패한 독일에 대한 통쾌한 복수이자 또한 아시아팀이 독일에 처음으로 거둔 값진 승리이다.
지난주 목요일 일본팀을 격파하고 몇 시간 후 독일팀은 곧바로 그날 저녁 부산에 도착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클리스만감독은 일본을 이긴 433진법을 422로 변환하고 바로 얼마전 유럽축구연맹컵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슈튜트가르트의 공격수 쿠라니,안드레아스힝켈, 필립람, 그리고 시다 수비수 프레드리히,바이인 미드필드 토르스텐프링스등을 선발로 꼽았다.
경기가 시작된 후 한국의 적극적인 공세에 독일팀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전경기에서 일본인들을 아이 다루듯이 하던 독일팀이 한국팀에게 대항해서 조금도 장악하지 못한채, 전반전 한국팀의 볼점유성공율은 60%,발라크들은(독일팀을 지칭) 40%였다. 경기16분에 발락이 미드필드에서 공을 놓쳐 상대방에 공격의 기회를 주었고 이동국이 뒷수비수로부터 받은 스루패스를 연결해주어 올해 5월 중국올림픽팀과 경기에서 1득점1어시스트를 기록한 공격수 김동진의 공이 구석으로 낮게 파고들어 1:0 이 되었다. 경기24분 발라크는 페널티에어리어앞에서 얻은 프리킥으로 1:1을 만들었다. 이는 그가 국가대표팀에서의 22번째 골이자 동시에 월드컵준결승전에서 넣었던 골에 이어서 다시 한번 한국팀을 맞아 넣은 두 번째의 골이다.
한국은 강렬한 수비뿐 아니라 거센 반격을 계속하여 경기71분 한국팀 미드필드로부터 온 볼을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수비수와 싸우다 이동국이 볼을 얻어 멋지게 오른발터닝발리슛을 성공시켰다. 경기87분 한국인은 반격을 하여 최두리가 페널티내 우측에서 돌아서 람이 빼내지 못한 볼을 조재진이 오른발로 가볍게 슈팅을 해서 3:1이 되었다.
독일은 경기는85분에 페널티 내에서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전적 국가대표팀에서 5차례 페널티킥을 모두 성공시킨 발라크의 공이 이운재에 의해 밀쳐졌고, 2분 후 한국은 더 큰 공세를 펼쳤다. 독일팀의 전반전 첫 번째 실점 역시 발라크와 관계가 있으니 그는 국가대표팀의 50번째의 경기에서 아름다운 결말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선수들은 시종일관 발라크를 철저하게 방어하였기에 하마터면 2차례나 그가 상대방과 충돌하게 만들뻔 하기도 했다.
한국에게도 얼마의 행운이 함께 했다. 전반전 독일이 몇 차례나 아주 좋은 기회를 맞이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그 후에 골대에 볼이 맞는 등 볼이 들어가 주지 않았다. 발라크는 경기 후 독일 방송의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내가 페널티킥을 찰 때에 너무 경솔했고, 상대방의 골키퍼가 그토록 빨리 대응할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경기 후 갱의실로 걸어가면서 클린스만감독이 선수들에게 던진 첫마디는 “이번 패배는 절대로 끝이 아니다” 그는 모든 선수들이 이번 경기를 너무 심하게 중시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패배로부터 역시 배울 수 있수며, 더구나 이번 아시아순회경기의 목적은 전선수로 하여금 단결의지를 형성하는데 있으므로 “선수들이 서로 잘 지내고 서로를 존중한다며”그는 이점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한다고 밝혔다.
클린스만감독은 선수기용문제면에서 독일의 언론매체들로부터 의혹을 받았다. 일본팀과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이 아주 잘 뛰어주었는데 한국전에 있어 오히려 대폭의 선수교체를 했다는것. 금요일에 비로서 대열에 합류한 슈튜트가르트의 세용사 -쿠라니,힝켈,람을 일컫는듯-모두 선발로 했지만 쿠라니와 힝켈의 성적이 좋지 않다. 쿠라니는 경기34분경 골대 2미터 앞에서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힝켈 역시 감기의 영항으로 미드필드에서 교체되었다. 단지 람만이 그럭저럭 역할을 해주었을 뿐이지만 그나마 그 역시 차두리에게 밀려 효과가 없었다는것...
----2004.12.20. 중국의 티탄쩌우빠오의 취엔홍칭 기자------
이동국의 절묘한 발리슛
한국팀이 3:1로 독일을 누른 데에 가장 기여를 한 사람은 “사자왕”이동국이다. 이동국은 예전 독일 분데스리가의 브레멘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한골을 넣은 이후로 이번에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이동국은 6개월간을 독일의 브레멘에서 보냈다. 당시 그의 무릅부상이 완치되지 않았기에 단지 7번의 경기 중에 중간에 교체선수로 들어가서 그다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반년 후에 브레멘은 자동적으로 그와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동국에게 있어서 이런 경력은 줄곧 마음 한켠에 부담으로 남아있었고 늘 마음속으로 기회를 잡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증명하고픈 기대가 있었다. 이번 독일과의 경기야 말로 의심할 바 없이 그로 하여금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절대절명의 기회가 되고 말았다
이동국은 1998년 19세에 국가대표A매치에서 처음으로 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0차례의 국제경기 중에서 16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코스타니아, 오스트레일리아,나이지리아 와의 경기 중에 골을 넣은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3골은 모두 아시아팀과 상대로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많은 한국축구펜들은 이동국은 해봤자 고작 아시아수준일 뿐이라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동국은 경기 전에 이번 경기에서 골을 넣어 이러한 이야기들을 잠재우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했다.
2002년 월드컵후 한국팀은 신구시대간의 교체를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으나 월드컵예선을 준비하면서 코엘류감독은 줄곧 해외파선수를 주류로 하는 진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인 본프레레감독이 올해 6년에 감독을 이어받으면서 차츰 신인을 훈련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번 경기에서 그는 대다수의 해외파선수들 중에 단지 차두리와 조재진 이 두사람 만을 불러들여 팀내 평균연령이 24세로 낮추었다. 2년 반 전의 양팀이 벌였던 월드컵준결승경기와 비교해 본다면, 이번 독일팀 진영에 5명만이 그 경기에 참가했었고 한국팀은 차두리와 골키퍼 이운재 단 두 사람만이 월드컵경기에 참가했었다.
신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국팀은 기술적인 면이나 경험적인 면이나 모두가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총체적으로 볼때 독일이 70%의 우세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팀은 쉬지 않고 거센 공격을 펼쳤으며, 많지 않은 기회를 활용하여 세 차례나 독일의 대문을 두드렸다. 이는 이동국의 활약과 뗄 수가 없고 더군다나 앞선 두 차례의 골 모두 그와 연관이 있다.
경기16분 이동국은 김상식의 스루패스를 이어받아 김동진에게 넘겨준 공이 경기시작후 내내 풀어질 것 같지 않았던 두 팀의 대치상황에 반향을 주었다. 71분 한국미드필드에서 이동국과 독일선수 두 명이 서로 공을 겨루다가 이동국이 공을 빼앗았다. 이 때 그는 골문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가 공을 패스하거나 다시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이동국은 180도로 몸을 돌려 직접 오른발로 슛팅을 하였고 볼은 활모양으로 날아가서 모서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 절묘한 슈팅에 올리버칸 조차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하고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방어동작조차도 하지 못한 채 골문으로 들어가는 골을 바라보아야 했다. 81분에 이동국은 부담감을 떨쳐버린 편안한 웃음을 만면에 띄운채 조재진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비록 이동국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날 심사위원들에게 최고선수로 뽑힌 것은 한국의 골키퍼 이운재이다. 이운재는 경기25분에 클로제의 비수같은 공을 밀어내고, 경기84분에도 발라크의 공을 막아냈다. 경기후 독일 언론 매체에서 쌍방의 선수들에게 점수를 매겼는데 이운재와 차두리가 가장 높은 1.5점을 받았고, 이동국과 겨우 19세의 미드필더 김진규가 2점으로 그 뒤를 따랐다. 독일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발라크(2.5점)과 올리버 칸(3점), 기타의 선수들은 클로제와 람이 3.5점을 받은걸 제외하고는 거의 다 4점대이고 가장 경기를 망친선수로 게랄트아사모어와 쿠라니를 들어 5점을 주었다. 이로서 한국팀은 신인을 대거 기용한 것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앞으로 신구교체의 발걸음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2004.12.20. 중국의 티탄쩌우빠오의 쏭칭윈기자---





P.S.사실 차범근이 크린스만감독에게 핸드폰을 선물한 기사가 제법 크게 났습니다. 차두리가 정말 외국언론에서는 하이틴 스타처럼(?)부각되는군요...^^; 귀찮아서 그냥 생략! 담에 심심하면 올리죠^^;
빠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