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국에서는 복제되어야 하는 한국인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위에 랭크되어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한 조사기관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앞질렀음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러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 속에서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였다. 그러나 세계사에 나오는 또는 현존하는 여타 독재자들과는 차이가 있어 세계의 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은 단순 독재와 차별을 두어 개발 독재로 분류하였다. 국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적 독재였다는 의미이다. 그의 정책과 철학은 제 3 세계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 많은 나라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과 경제 발전을 연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의 삶은 배고픔과의 투쟁이었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빵의 문제였다. 모든 것은 빵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 성립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400년 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부딪힐 때 민족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며 그래도 굶지 않고 지나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였다.
이렇게 빵의 문제는 자유 이전의 긴박한 생존의 문제였다. 우리는 미국의 3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 라는 유명한 선언은 자유의 소중함과 그것을 지키려는 비장한 각오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빵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단계를 높힌 욕구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기아로 죽어 가는 수억의 인간들을 잘 안다. 그들에게 자유와 빵의 선택을 요구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답은 명백하다.
주체사상이라는 신앙으로 무장되었다던 그들도 원수들의 나라를 향해 먹을 식량을 구걸하는 모습에서 사상도 정신도 빵의 문제가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는 그 의미를 상실함을 볼 수 있다. 지도자를 잘 못 선택한 혹은 잘못 만나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인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빵의 문제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역사 속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경제 발전을 이루어 5000 년의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데 발휘한 지도력에 대한 국민적 인정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발전이 우연한 시간적 일치라고 박정희 대통령의 크나큰 업적을 퇴색시키려 애쓴다.
우리 민족은 분명히 저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군 이래로 그 저력의 에너지를 한 번도 한 곳으로 뭉쳐 분출해 보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것은 흩어져 있던 에너지를 집결시켜 하나의 힘으로 분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역량이 절대로 요구된다. 파산에 직면한 회사를 새로운 경영자가 희생시키는 경우를 보면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번영의 이면에는 희생된 계층이나 집단이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니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잘 안다. 이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을 진보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불리 우는 영광을 얻었다.
이 산업 혁명도 당시에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농민은 농토를 잃고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차라리 진보의 발길을 멈추고 공업화를 추진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말한 역사가는 없다.
당시 지도자들을 매도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들도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나도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을 찬성하기보다는 반대하는 집단에 속해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정책은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긍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성장이며 현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 이라는 커다란 목적을 짧은 시간에 이룩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일부 제한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한 개인적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적 평가에는 그러한 소수의 희생이 무시되는 단점이 있다. 남산에서 고문을 당해 보고도 박정희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존경하겠느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안되긴 했지만 역사적 평가는 소수의 남산에서 고문을 당한 사람보다 혜택을 입은 대다수의 국민 편에서는 불평등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김일성이 세운 공화국이 정말 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면 한국전쟁동안 죽은 3백만의 억울한 생명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국의 북녘 저편에서 자유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현실과의 비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번영은 물론 한국민 모두가 합심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쉽 하에서 기초를 이루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비범한 인물이 탄생하는데는 시대가 적합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시대가 비범한 인물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을 한국 역사 속에 비범한 인물로 나타나게 한 것은 당시 사회와 정치 현실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복제되어야 하는 한국인의 상위 랭크나 존경하는 인물 순위 일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역사인식이 매우 객관적이고 건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이다. 그러나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복제되기를 바라는 한국인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위랭크나 존경하는 한국인중 일위를 차지 한 것은 우연히 아니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 한국 역사 속에서 일부의 허물을 벗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를 향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하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갈등을 빚던 정치지도자들이 후에 대통령이 되어 기대를 모았으나 수준이하의 정치를 하여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의 가치를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박정희 그는누구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였다. 그러나 세계사에 나오는 또는 현존하는 여타 독재자들과는 차이가 있어 세계의 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은 단순 독재와 차별을 두어 개발 독재로 분류하였다. 국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적 독재였다는 의미이다. 그의 정책과 철학은 제 3 세계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 많은 나라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과 경제 발전을 연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의 삶은 배고픔과의 투쟁이었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빵의 문제였다. 모든 것은 빵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 성립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400년 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부딪힐 때 민족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며 그래도 굶지 않고 지나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였다. 이렇게 빵의 문제는 자유 이전의 긴박한 생존의 문제였다. 우리는 미국의 3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 라는 유명한 선언은 자유의 소중함과 그것을 지키려는 비장한 각오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빵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단계를 높힌 욕구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기아로 죽어 가는 수억의 인간들을 잘 안다. 그들에게 자유와 빵의 선택을 요구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답은 명백하다.
주체사상이라는 신앙으로 무장되었다던 그들도 원수들의 나라를 향해 먹을 식량을 구걸하는 모습에서 사상도 정신도 빵의 문제가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는 그 의미를 상실함을 볼 수 있다. 지도자를 잘 못 선택한 혹은 잘못 만나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인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빵의 문제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역사 속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경제 발전을 이루어 5000 년의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데 발휘한 지도력에 대한 국민적 인정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발전이 우연한 시간적 일치라고 박정희 대통령의 크나큰 업적을 퇴색시키려 애쓴다.
우리 민족은 분명히 저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군 이래로 그 저력의 에너지를 한 번도 한 곳으로 뭉쳐 분출해 보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것은 흩어져 있던 에너지를 집결시켜 하나의 힘으로 분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역량이 절대로 요구된다. 파산에 직면한 회사를 새로운 경영자가 희생시키는 경우를 보면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번영의 이면에는 희생된 계층이나 집단이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니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잘 안다. 이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을 진보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불리 우는 영광을 얻었다. 이 산업 혁명도 당시에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농민은 농토를 잃고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차라리 진보의 발길을 멈추고 공업화를 추진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말한 역사가는 없다. 당시 지도자들을 매도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들도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나도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을 찬성하기보다는 반대하는 집단에 속해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정책은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긍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성장이며 현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 이라는 커다란 목적을 짧은 시간에 이룩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일부 제한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한 개인적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적 평가에는 그러한 소수의 희생이 무시되는 단점이 있다. 남산에서 고문을 당해 보고도 박정희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존경하겠느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안되긴 했지만 역사적 평가는 소수의 남산에서 고문을 당한 사람보다 혜택을 입은 대다수의 국민 편에서는 불평등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김일성이 세운 공화국이 정말 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면 한국전쟁동안 죽은 3백만의 억울한 생명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국의 북녘 저편에서 자유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현실과의 비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번영은 물론 한국민 모두가 합심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쉽 하에서 기초를 이루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비범한 인물이 탄생하는데는 시대가 적합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시대가 비범한 인물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을 한국 역사 속에 비범한 인물로 나타나게 한 것은 당시 사회와 정치 현실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복제되어야 하는 한국인의 상위 랭크나 존경하는 인물 순위 일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역사인식이 매우 객관적이고 건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이다. 그러나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복제되기를 바라는 한국인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위랭크나 존경하는 한국인중 일위를 차지 한 것은 우연히 아니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 한국 역사 속에서 일부의 허물을 벗고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를 향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하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갈등을 빚던 정치지도자들이 후에 대통령이 되어 기대를 모았으나 수준이하의 정치를 하여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의 가치를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