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용의 진영에서도 전략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며, 미란이 결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무해도와 운도의 무해진을 얻을 것입니다.”
“어찌할 생각입니까? 군사!”
“우선… 우리는 이곳 광잔성과 연포에서 계속 군사를 모으며 6개월 동안 시위를 할 것입니다.”
“6개월이나…?”
“네… 그리고 그 사이 사형을 포함한 50여명으로 구성된 정예 병사가 상인으로 위장해 중림부로 침투할 것입니다. 이들은 중림에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상인으로 위장해 무해진에 드나들 것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중림부에 6개월 이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적의 군사와 안면을 익혀 인심을 얻기 위함입니다.”
“오호… 하지만 그리 오랜 기간 이동도 하지 않으면서 상인으로의 위장이 가능한지…”
“물론, 협조가 없이는 불가합니다. 그러나 중림의 상인 중에 통일국가 시절부터 제 조부님께 신세를 지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여러 차례 여행을 통해 안면을 익히고 있는 자 입니다. 그자를 통해 내상 소속의 상인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자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믿을 수 있을 지, 없을지는 우리가 그자에게 어떠한 이익을 줄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 입니다.”
“그건…”
“봉국이 무해를 통과하는 내상에게 부과하는 세금보다 용이 조금 더 감면해 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그는 어차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희가 내상을 속이고 휘하로 위장했을 뿐…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 밀약이 성사 되었습니다.”
“흠… 그렇다면 중림부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으면서, 이익을 얻겠군…”
“그리고 결전의 날에는 적의 진에 드나들던 상인으로 위장했던 우리의 첩자들이 일제히 적의 군함과 진을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게 가능할지…”
“반드시 가능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중림부에는 모든 국가의 첩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진 것입니다. 다만, 먼저 읽히는 자가 패하는 것입니다.”
“흠…”
“그 후에는…”
“물론, 혼란에 빠진 무해진을 접수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적은 틀림없이 우리가 진격해 들어가면 발산에서 운하를 도하해 우리의 전진기지이자 퇴로인 광잔성(珖潺城)과 연포(連浦)를 얻으려 할 것입니다.”
미란의 이 말에 장수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럼 대책을?”
“없습니다.”
“네?”
“우리는 공격을 하면서 두 거점을 지킬 정도로 군사를 동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도하를 하도록 놓아둘 것입니다.”
“도대체…”
“이 전쟁의 승패는 어차피 운도의 무해진에서 날 것입니다. 무해진의 전투에서 패하면 우리는 광잔성과 연포를 잃을 것이고, 승전하면 우리는 무해도와 무해진을 얻고 빼앗긴 광잔성과 연포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날의 전략회의는 그렇게 길어지고 있었다.
#04
이이 결정된 전략대로 중림부에 침투한 용국의 정예군은 상인으로 위장하면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상의 우두머리인 목경부(目涇夫)는 이를 묵인하고 있었다. 미란은 중림 상인의 두 거목 중에서 대륙 내부의 경제를 담당하는 목경부와 밀약한 것이었다.
철기주와 그의 정예부대는 흩어져서 내상에 소속된 상인으로 무해진에 드나들기를 몇 개월 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어떠한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상인으로서 물자의 보급을 위해 봉국의 병사들과 얼굴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상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목진과 그 주변국 사이에 전쟁이 없자 적령은 중림부를 찾았다. 그렇게 중림을 찾은 적령은 초란에게서 중대한 군사기밀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저는 중립입니다만… 장군님과도 관련이 없으니…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혹… 군사활동에 관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느니라”
“적령님께서 제 목을 치지 않으신다면, 무관한 일 입니다.”
적령은 초란이 말하려는 정보를 경계했지만, 곧 호기심에 물었다.
“말해 보아라.”
“지금 용국과 봉국이 광잔성 일대와 무해에서 대규모 군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 비밀도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러한 중대한 시국에 양국의 군사를 이끄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수들이 이곳 중림부와 기루를 자주 드나들고 있습니다.”
“장군들이 직접 밀정활동을 한단 말이냐?”
“그만큼, 중대한 일이 벌이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장군 철기주가 이곳 초류향에 벌써 몇 개월째 드나들고 있습니다.”
“넌 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그런 비밀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너희들의 철칙이 아니더냐?”
“더 들으시지요. 실은 그 사실을 아는 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래도 봉국의 사람 같은데… ”
그녀의 이 말에 적령은 그만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냐…?”
적령이 조금은 노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자 초란은 무릎을 꿇고는 애원하듯 말했다.
“이번 일을 도와 주시면 제가 적령님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에게 직접 말하거라”
“그러면 철기주 장군의 정체가 만 천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초란의 눈을 바라본 적령은 그녀가 이 일로 목숨을 내어놓을 수도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를… 사모하느냐?”
“…죄송합니다.”
“여인이 영웅을 사모하는 것이 무엇이 어떻다는 것이냐?”
“…”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적령의 심정을 알리 없는 초란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초조해져서 적령을 재촉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너는 정보가 꾀 많은 것 같구나… 누구의 편이냐?”
“이 나라를 통일할 분의 편입니다.”
“그래…”
적령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나와 철기주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때 까지는 이 목숨을 다해 두 분의 눈과 귀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적령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런데… 봉국의 지휘관과 군사는 누구라고 하더냐?”
“대장군 호령과 제상 조위가 직접 출정했다 합니다.”
“…”
“왜… 그러시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적령은 지금 심히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심한 갈등에 빠진 그녀는 결국 초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 아버지…’
그날 밤.
두 여인은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침실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령이 입을 열었다.
“그자가 누구냐?”
“결정을 하신 겁니까?”
“그렇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소하(笑河)라는 기녀의 방을 나가는 자 입니다.”
적령은 곧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 했다.
“나는 이제 그만 중림부를 떠날까 한다.”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냐?”
“아까 안색을 보니… 봉국과 사연이 있으신 듯 한데… 어찌 용궁의 편을 드시는 것입니까?”
“봉국에 대한 애정보다 용국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빨리 용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중간에 나를 가로막는 제국들을 모두 빨리 쓸어버리고 싶다. 그뿐이다.”
두 여인은 깊게 침묵했다.
“다음에 올 때는 그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나도 너를 움직이게 하는 그 철기주란 장수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어차피 전장에서 결국 서로를 죽여야 한다면, 이런 기루에서 만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만…”
“…”
그날 밤.
적령은 초란의 사주대로 철기주의 정체를 이미 간파하고 본국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새벽 동트기 전에 소하라는 기생의 방을 나서는 첩자를 미행해 개울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막아 섰다. 동트기 전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짐승들만이 곧 밝아올 밤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냐?”
“봉의 개냐?”
“…”
얼굴을 가린 봉의 첩자는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자객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그러자 붉은 겉옷으로 신분을 숨긴 적령이 발도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곧 죽을 자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
“꾀나 자신이 있나 보군…”
“얼굴과 눈은 왜 가린 것이냐?”
“얼굴을 가린 것은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고, 눈을 가린 것은 피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군…”
“…”
“피를 보지 않으며, 어찌 전쟁에서 죽어간 자들의 염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냐? 나는 장수로서 그 가치를 알기에 이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려는 것이다.”
“궤변은 끝났나?”
“…”
그렇게 말하면서 적령은 잠시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미 그 기세로 자신의 앞에 선 이 첩자가 보통의 장수가 아님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검이 아닌 이 검으로 저자의 진검을 벨 수 있을지…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절대로…’
그때 봉의 첩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승부다!”
곧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적령의 발도… 그녀의 검은 부러지며 첩자의 몸에 박혔고 곧 첩자의 검도 그녀의 옷을 찢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첩자는 이미 목에 칼이 박혀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이… 이건…”
단 한 순간의 조우에 무엇인가를 깨달은 첩자는 피를 쏟으면 힘없이 쓰러졌다.
‘젠장, 이런 검으로는 이 정도가 고작인가…?’
적령은 부러진 검을 버리고 첩자에게 다가갔다.
“미안하군… 한번에 고통 없이 보내주려 했는데… 갑자기 임시로 구한 검이라서…”
“…시… 십이… 검무의… 발도…술…”
“…”
죽어가던 첩자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그만, 적령의 뇌리를 강하게 붕괴시키고 말았다.
“너… 넌…”
“왜… 어째서… 묘령님이… 왜…”
“…”
그녀는 죽어가는 첩자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이… 이건…”
그녀는 첩자의 얼굴을 가린 천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곧 첩자의 얼굴이 그녀의 시야에 새겨졌다.
영웅 (1부 5막 : 무해대전(舞海大戰) #03 & #04)
#03
용국의 광잔성(珖潺城).
그 시각 용의 진영에서도 전략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며, 미란이 결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무해도와 운도의 무해진을 얻을 것입니다.”
“어찌할 생각입니까? 군사!”
“우선… 우리는 이곳 광잔성과 연포에서 계속 군사를 모으며 6개월 동안 시위를 할 것입니다.”
“6개월이나…?”
“네… 그리고 그 사이 사형을 포함한 50여명으로 구성된 정예 병사가 상인으로 위장해 중림부로 침투할 것입니다. 이들은 중림에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상인으로 위장해 무해진에 드나들 것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중림부에 6개월 이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적의 군사와 안면을 익혀 인심을 얻기 위함입니다.”
“오호… 하지만 그리 오랜 기간 이동도 하지 않으면서 상인으로의 위장이 가능한지…”
“물론, 협조가 없이는 불가합니다. 그러나 중림의 상인 중에 통일국가 시절부터 제 조부님께 신세를 지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여러 차례 여행을 통해 안면을 익히고 있는 자 입니다. 그자를 통해 내상 소속의 상인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자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믿을 수 있을 지, 없을지는 우리가 그자에게 어떠한 이익을 줄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 입니다.”
“그건…”
“봉국이 무해를 통과하는 내상에게 부과하는 세금보다 용이 조금 더 감면해 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그는 어차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희가 내상을 속이고 휘하로 위장했을 뿐…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 밀약이 성사 되었습니다.”
“흠… 그렇다면 중림부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으면서, 이익을 얻겠군…”
“그리고 결전의 날에는 적의 진에 드나들던 상인으로 위장했던 우리의 첩자들이 일제히 적의 군함과 진을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게 가능할지…”
“반드시 가능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중림부에는 모든 국가의 첩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진 것입니다. 다만, 먼저 읽히는 자가 패하는 것입니다.”
“흠…”
“그 후에는…”
“물론, 혼란에 빠진 무해진을 접수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적은 틀림없이 우리가 진격해 들어가면 발산에서 운하를 도하해 우리의 전진기지이자 퇴로인 광잔성(珖潺城)과 연포(連浦)를 얻으려 할 것입니다.”
미란의 이 말에 장수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럼 대책을?”
“없습니다.”
“네?”
“우리는 공격을 하면서 두 거점을 지킬 정도로 군사를 동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도하를 하도록 놓아둘 것입니다.”
“도대체…”
“이 전쟁의 승패는 어차피 운도의 무해진에서 날 것입니다. 무해진의 전투에서 패하면 우리는 광잔성과 연포를 잃을 것이고, 승전하면 우리는 무해도와 무해진을 얻고 빼앗긴 광잔성과 연포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날의 전략회의는 그렇게 길어지고 있었다.
#04
이이 결정된 전략대로 중림부에 침투한 용국의 정예군은 상인으로 위장하면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상의 우두머리인 목경부(目涇夫)는 이를 묵인하고 있었다. 미란은 중림 상인의 두 거목 중에서 대륙 내부의 경제를 담당하는 목경부와 밀약한 것이었다.
철기주와 그의 정예부대는 흩어져서 내상에 소속된 상인으로 무해진에 드나들기를 몇 개월 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어떠한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상인으로서 물자의 보급을 위해 봉국의 병사들과 얼굴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상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목진과 그 주변국 사이에 전쟁이 없자 적령은 중림부를 찾았다. 그렇게 중림을 찾은 적령은 초란에게서 중대한 군사기밀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저는 중립입니다만… 장군님과도 관련이 없으니…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혹… 군사활동에 관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느니라”
“적령님께서 제 목을 치지 않으신다면, 무관한 일 입니다.”
적령은 초란이 말하려는 정보를 경계했지만, 곧 호기심에 물었다.
“말해 보아라.”
“지금 용국과 봉국이 광잔성 일대와 무해에서 대규모 군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 비밀도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러한 중대한 시국에 양국의 군사를 이끄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수들이 이곳 중림부와 기루를 자주 드나들고 있습니다.”
“장군들이 직접 밀정활동을 한단 말이냐?”
“그만큼, 중대한 일이 벌이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장군 철기주가 이곳 초류향에 벌써 몇 개월째 드나들고 있습니다.”
“넌 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그런 비밀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너희들의 철칙이 아니더냐?”
“더 들으시지요. 실은 그 사실을 아는 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래도 봉국의 사람 같은데… ”
그녀의 이 말에 적령은 그만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냐…?”
적령이 조금은 노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자 초란은 무릎을 꿇고는 애원하듯 말했다.
“이번 일을 도와 주시면 제가 적령님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에게 직접 말하거라”
“그러면 철기주 장군의 정체가 만 천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초란의 눈을 바라본 적령은 그녀가 이 일로 목숨을 내어놓을 수도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를… 사모하느냐?”
“…죄송합니다.”
“여인이 영웅을 사모하는 것이 무엇이 어떻다는 것이냐?”
“…”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적령의 심정을 알리 없는 초란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초조해져서 적령을 재촉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너는 정보가 꾀 많은 것 같구나… 누구의 편이냐?”
“이 나라를 통일할 분의 편입니다.”
“그래…”
적령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나와 철기주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때 까지는 이 목숨을 다해 두 분의 눈과 귀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적령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런데… 봉국의 지휘관과 군사는 누구라고 하더냐?”
“대장군 호령과 제상 조위가 직접 출정했다 합니다.”
“…”
“왜… 그러시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적령은 지금 심히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심한 갈등에 빠진 그녀는 결국 초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 아버지…’
그날 밤.
두 여인은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침실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령이 입을 열었다.
“그자가 누구냐?”
“결정을 하신 겁니까?”
“그렇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소하(笑河)라는 기녀의 방을 나가는 자 입니다.”
적령은 곧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 했다.
“나는 이제 그만 중림부를 떠날까 한다.”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냐?”
“아까 안색을 보니… 봉국과 사연이 있으신 듯 한데… 어찌 용궁의 편을 드시는 것입니까?”
“봉국에 대한 애정보다 용국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빨리 용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중간에 나를 가로막는 제국들을 모두 빨리 쓸어버리고 싶다. 그뿐이다.”
두 여인은 깊게 침묵했다.
“다음에 올 때는 그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나도 너를 움직이게 하는 그 철기주란 장수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어차피 전장에서 결국 서로를 죽여야 한다면, 이런 기루에서 만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만…”
“…”
그날 밤.
적령은 초란의 사주대로 철기주의 정체를 이미 간파하고 본국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새벽 동트기 전에 소하라는 기생의 방을 나서는 첩자를 미행해 개울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막아 섰다. 동트기 전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짐승들만이 곧 밝아올 밤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냐?”
“봉의 개냐?”
“…”
얼굴을 가린 봉의 첩자는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자객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그러자 붉은 겉옷으로 신분을 숨긴 적령이 발도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곧 죽을 자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
“꾀나 자신이 있나 보군…”
“얼굴과 눈은 왜 가린 것이냐?”
“얼굴을 가린 것은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고, 눈을 가린 것은 피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군…”
“…”
“피를 보지 않으며, 어찌 전쟁에서 죽어간 자들의 염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냐? 나는 장수로서 그 가치를 알기에 이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려는 것이다.”
“궤변은 끝났나?”
“…”
그렇게 말하면서 적령은 잠시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미 그 기세로 자신의 앞에 선 이 첩자가 보통의 장수가 아님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검이 아닌 이 검으로 저자의 진검을 벨 수 있을지…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절대로…’
그때 봉의 첩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승부다!”
곧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적령의 발도… 그녀의 검은 부러지며 첩자의 몸에 박혔고 곧 첩자의 검도 그녀의 옷을 찢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첩자는 이미 목에 칼이 박혀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이… 이건…”
단 한 순간의 조우에 무엇인가를 깨달은 첩자는 피를 쏟으면 힘없이 쓰러졌다.
‘젠장, 이런 검으로는 이 정도가 고작인가…?’
적령은 부러진 검을 버리고 첩자에게 다가갔다.
“미안하군… 한번에 고통 없이 보내주려 했는데… 갑자기 임시로 구한 검이라서…”
“…시… 십이… 검무의… 발도…술…”
“…”
죽어가던 첩자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그만, 적령의 뇌리를 강하게 붕괴시키고 말았다.
“너… 넌…”
“왜… 어째서… 묘령님이… 왜…”
“…”
그녀는 죽어가는 첩자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이… 이건…”
그녀는 첩자의 얼굴을 가린 천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곧 첩자의 얼굴이 그녀의 시야에 새겨졌다.
“…요…서위…”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