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안의 훈훈한 기운이 얼었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에 내 마음은 내내 언 상태였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나의 심장이 녹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그 열기는 사실 너무 뜨거웠다. 이미 내 심장인 불에 데인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너무 추웠지?”
“괜찮아.”
“아니야. 추웠을 거야. 올 때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럴 수 없었지만.”
“나도 시합 전에 꼭 이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네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런데 시간이 다가오자 그 믿음에 자신이 없어지는 거야.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오지 않았더라면 병진이라도 찾아갔을 거야.”
오빠는 그 때처럼 손을 잡고는 깍지를 꼭 끼었다.
“커피를 정말 맛있게 마시는 구나.”
“응. 나 커피 정말 좋아해. 아까부터 너무 마시고 싶었는걸.”
사실은 커피보다는 오빠의 입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한 잔의 커피는 커피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의 입술에 대한 갈증은 한 번을 마셨지만 가라앉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민성 오빠가 갑자기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했다.
“아, 오빠. 사람들이 보잖아.”
“아니야. 아무도 못 봤어.”
그 후로 오빠는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를 노려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계속 해댔다.
“진짜 짓궂어. 어렸을 때 개구쟁이였지?”
“하지 말까?”
“아니.”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없어서 내가 먼저 민성 오빠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읍. 저질.”
오빠는 손으로 자기 입을 닦아냈다.
“뭐야?”
“하하. 진짜 귀엽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웃던 오빠는 자신의 팔로 내 머리를 감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안타까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 밤부터는 안타까움의 불면을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진정한 휴식을 허락받은 것과 같았다.
“나 오빠 지갑 샀다.”
“내 지갑?”
“응. 오빠가 지갑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걸 전해주면서 만나고 싶었거든. 정말 잃어버렸던 거야?”
“아니지. 네 연락처를 알려고. 그런데 영규가 가르쳐주지 않더라구.”
“병진이도 그랬어. 왜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걸까?”
“글쎄.”
오빠는 글쎄라고 말했지만 뭐가 짐작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뭘 생각하는데. 아는 것 있어?”
“아니. 네가 얼마 후면 결혼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거겠지. 너 배고프지 않아? 아까 잘 못 먹는 것 같던데.”
뭔가 서두르는 분위기. 내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일까?
“혜림아, 배고프지 않냐구?”
“어, 배고파. 조금. 먹고 싶은 것 있어?”
“음. 라면.”
“라면?”
“며칠 전에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었어. 그 때 생각했지. 너랑 라면을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나도 오빠와 같은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었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혼자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민성 오빠와 함께였으면 하는 바램들이 나를 괴롭혔었다.
“나중에 내가 만든 음식을 오빠에게 대접하고 싶어. 잘은 못하지만.”
“괜찮아. 난 네가 독약이 든 스프를 줘도 먹을 수 있어.”
"······?"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날 사랑하니까. 네가 음식에 독을 넣는다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어. 안다고 해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오빠 먹지마. 내 마음 속에선 먹지 않았으면 할 것 같은데. 오빠가 죽기를 바라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김동인 소설 중에 그런 단편이 있어. 남자 여자가 같이 약을 먹는 거야. 같이 죽으려구. 남자는 약을 삼켰지. 그리고 피를 토한다. 그런데 여자는 그 약을 먹지 않았어. 남자는 원망에 가득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거야.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어. 나쁜 여자구나. 그런데 널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을 것 같아. 혼자 죽는다 해도. 내가 죽어도 넌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오빠 그런 말 하지마. 그런 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냥 지금처럼 같이 커피 마시고 즐겁고 했으면 좋겠는데. 사랑한다면 같이 행복해야 하잖아.”
“그래. 우리 행복하게 살자.”
잠시 후 라면을 먹은 우리는 비디오방에서 라면 맛이 나는 키스를 나누었다. 짐 캐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서 온갖 기적을 행하는 영화였는데 언뜻 언뜻 영화를 보면서 신의 대리라 해도 우리의 달콤함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나 내일 상견례해.”
나는 오빠의 어깨를 베고 누워 말했다.
“······.”
“집에 가서 말할 꺼야. 결혼 못 하겠다구.”
“고마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 알고 있어.”
“아니야. 어려울 것 없어. 엄마 아빠도 이해하실 거야. 아직 인사를 드린 것도 아닌데 뭘.”
어느새 밤이었다. 비디오방을 나선 우리는 밤거리를 부둥켜안고 걸었다. 사실 춥다는 핑계로 내가 안겨있는 것이었다.
“춥다. 어디에 들어가야겠어. 네 몸이 점점 차지는 것 같아.”
“조금 춥기는 해. 그래두 요새 많이 따뜻해졌어. 오빠! 우리 날이 따뜻해지면 놀이동산에 가자. 사진도 찍구 말이야. 난 예전부터 놀이동산 잔디밭에서 통닭이 먹고 싶었어. 어렸을 때 먹었던 것이 생각나.”
“좋아. 날이 따뜻해지는 대로 꼭 가자.”
발이 꽁꽁 얼 정도로 밤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20년만에 만난 사람들이니만큼 할 말도 많았다. 서로 만나기 전에 무얼하고 살았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다음엔 오빠 어릴적 사진을 보여줘. 오빠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궁금해. 예전부터 함께였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래두 이제라도 만난 것에 감사하자. 앞으로 평생 함께 할건데.”
평생. 나와 평생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말은 어떤 말보다도 달콤했다.
“사랑해, 오빠.”
“어, 내가 먼저 말하려구 했는데. 사랑한다. 혜림아.”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그전에 단 한번도 그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마음 속 깊이 갇혀있던 말을 꺼내는 열쇠를 민성 오빠가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우리는 행복했다. 찬 바람이 옷 속 깊이 들어와도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없어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떻게 하지?”
“나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내일 상견례에 관해 말씀드려야 하니까.”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아닐까?”
“그러네.”
시간은 벌써 자정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매일 늦게 보내서 미안해. 너 내일 할 일도 있을텐데. 다음부터는 일찍 보내줄게.”
“오빠 잘못이 아니잖아. 정말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어.”
“그래.”
가야겠다고 말한 후 이십여분을 헤어지지 못하고 인사말만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만날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까지 정한 후에야 겨우 헤어질 수 있었다.
“밤에 택시 위험해. 데려다 줄게.”
“아니. 다음에. 다음에 데려다 줘.”
나는 오빠를 혼자 두고 굳이 혼자 택시에 올랐다. 집 앞에서 헤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가족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한 일이니까. 밤에 탄 택시는 왜 이리 빠른지 택시의 속도만큼 오빠와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니야. 우린 이제 하나야. 마음으로 묶여있으니까.’
뜨거운 심장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 빌라에 오르려 할 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서루 오빠?’
“너 너무 늦었다. 결혼 앞둔 애가 다른 남자랑 이래도 되는 거야? 전화도 계속 꺼져 있고.”
“오래 기다렸어?”
“여덟시부터니까 한 다섯 시간쯤.”
“잘됐네. 안 그래도 전화를 할까 했었는데. 미안해. 내일 상견례 취소하자. 우리 부모님들께는 내가 말할께.”
kiwi (키위) - 23. 라면맛 키스
kiwi - 23
커피숍안의 훈훈한 기운이 얼었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에 내 마음은 내내 언 상태였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나의 심장이 녹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그 열기는 사실 너무 뜨거웠다. 이미 내 심장인 불에 데인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너무 추웠지?”
“괜찮아.”
“아니야. 추웠을 거야. 올 때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럴 수 없었지만.”
“나도 시합 전에 꼭 이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네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런데 시간이 다가오자 그 믿음에 자신이 없어지는 거야.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오지 않았더라면 병진이라도 찾아갔을 거야.”
오빠는 그 때처럼 손을 잡고는 깍지를 꼭 끼었다.
“커피를 정말 맛있게 마시는 구나.”
“응. 나 커피 정말 좋아해. 아까부터 너무 마시고 싶었는걸.”
사실은 커피보다는 오빠의 입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한 잔의 커피는 커피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의 입술에 대한 갈증은 한 번을 마셨지만 가라앉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민성 오빠가 갑자기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했다.
“아, 오빠. 사람들이 보잖아.”
“아니야. 아무도 못 봤어.”
그 후로 오빠는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를 노려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계속 해댔다.
“진짜 짓궂어. 어렸을 때 개구쟁이였지?”
“하지 말까?”
“아니.”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없어서 내가 먼저 민성 오빠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읍. 저질.”
오빠는 손으로 자기 입을 닦아냈다.
“뭐야?”
“하하. 진짜 귀엽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웃던 오빠는 자신의 팔로 내 머리를 감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안타까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 밤부터는 안타까움의 불면을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진정한 휴식을 허락받은 것과 같았다.
“나 오빠 지갑 샀다.”
“내 지갑?”
“응. 오빠가 지갑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걸 전해주면서 만나고 싶었거든. 정말 잃어버렸던 거야?”
“아니지. 네 연락처를 알려고. 그런데 영규가 가르쳐주지 않더라구.”
“병진이도 그랬어. 왜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걸까?”
“글쎄.”
오빠는 글쎄라고 말했지만 뭐가 짐작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뭘 생각하는데. 아는 것 있어?”
“아니. 네가 얼마 후면 결혼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거겠지. 너 배고프지 않아? 아까 잘 못 먹는 것 같던데.”
뭔가 서두르는 분위기. 내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일까?
“혜림아, 배고프지 않냐구?”
“어, 배고파. 조금. 먹고 싶은 것 있어?”
“음. 라면.”
“라면?”
“며칠 전에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었어. 그 때 생각했지. 너랑 라면을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나도 오빠와 같은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었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혼자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민성 오빠와 함께였으면 하는 바램들이 나를 괴롭혔었다.
“나중에 내가 만든 음식을 오빠에게 대접하고 싶어. 잘은 못하지만.”
“괜찮아. 난 네가 독약이 든 스프를 줘도 먹을 수 있어.”
"······?"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날 사랑하니까. 네가 음식에 독을 넣는다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어. 안다고 해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오빠 먹지마. 내 마음 속에선 먹지 않았으면 할 것 같은데. 오빠가 죽기를 바라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김동인 소설 중에 그런 단편이 있어. 남자 여자가 같이 약을 먹는 거야. 같이 죽으려구. 남자는 약을 삼켰지. 그리고 피를 토한다. 그런데 여자는 그 약을 먹지 않았어. 남자는 원망에 가득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거야.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어. 나쁜 여자구나. 그런데 널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을 것 같아. 혼자 죽는다 해도. 내가 죽어도 넌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오빠 그런 말 하지마. 그런 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냥 지금처럼 같이 커피 마시고 즐겁고 했으면 좋겠는데. 사랑한다면 같이 행복해야 하잖아.”
“그래. 우리 행복하게 살자.”
잠시 후 라면을 먹은 우리는 비디오방에서 라면 맛이 나는 키스를 나누었다. 짐 캐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서 온갖 기적을 행하는 영화였는데 언뜻 언뜻 영화를 보면서 신의 대리라 해도 우리의 달콤함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나 내일 상견례해.”
나는 오빠의 어깨를 베고 누워 말했다.
“······.”
“집에 가서 말할 꺼야. 결혼 못 하겠다구.”
“고마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 알고 있어.”
“아니야. 어려울 것 없어. 엄마 아빠도 이해하실 거야. 아직 인사를 드린 것도 아닌데 뭘.”
어느새 밤이었다. 비디오방을 나선 우리는 밤거리를 부둥켜안고 걸었다. 사실 춥다는 핑계로 내가 안겨있는 것이었다.
“춥다. 어디에 들어가야겠어. 네 몸이 점점 차지는 것 같아.”
“조금 춥기는 해. 그래두 요새 많이 따뜻해졌어. 오빠! 우리 날이 따뜻해지면 놀이동산에 가자. 사진도 찍구 말이야. 난 예전부터 놀이동산 잔디밭에서 통닭이 먹고 싶었어. 어렸을 때 먹었던 것이 생각나.”
“좋아. 날이 따뜻해지는 대로 꼭 가자.”
발이 꽁꽁 얼 정도로 밤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20년만에 만난 사람들이니만큼 할 말도 많았다. 서로 만나기 전에 무얼하고 살았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다음엔 오빠 어릴적 사진을 보여줘. 오빠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궁금해. 예전부터 함께였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래두 이제라도 만난 것에 감사하자. 앞으로 평생 함께 할건데.”
평생. 나와 평생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말은 어떤 말보다도 달콤했다.
“사랑해, 오빠.”
“어, 내가 먼저 말하려구 했는데. 사랑한다. 혜림아.”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그전에 단 한번도 그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마음 속 깊이 갇혀있던 말을 꺼내는 열쇠를 민성 오빠가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우리는 행복했다. 찬 바람이 옷 속 깊이 들어와도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없어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떻게 하지?”
“나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내일 상견례에 관해 말씀드려야 하니까.”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아닐까?”
“그러네.”
시간은 벌써 자정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매일 늦게 보내서 미안해. 너 내일 할 일도 있을텐데. 다음부터는 일찍 보내줄게.”
“오빠 잘못이 아니잖아. 정말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어.”
“그래.”
가야겠다고 말한 후 이십여분을 헤어지지 못하고 인사말만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만날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까지 정한 후에야 겨우 헤어질 수 있었다.
“밤에 택시 위험해. 데려다 줄게.”
“아니. 다음에. 다음에 데려다 줘.”
나는 오빠를 혼자 두고 굳이 혼자 택시에 올랐다. 집 앞에서 헤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가족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한 일이니까. 밤에 탄 택시는 왜 이리 빠른지 택시의 속도만큼 오빠와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니야. 우린 이제 하나야. 마음으로 묶여있으니까.’
뜨거운 심장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 빌라에 오르려 할 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서루 오빠?’
“너 너무 늦었다. 결혼 앞둔 애가 다른 남자랑 이래도 되는 거야? 전화도 계속 꺼져 있고.”
“오래 기다렸어?”
“여덟시부터니까 한 다섯 시간쯤.”
“잘됐네. 안 그래도 전화를 할까 했었는데. 미안해. 내일 상견례 취소하자. 우리 부모님들께는 내가 말할께.”
“그럴 필요 없어. 오늘 상견례 끝났으니까.”
서루 오빠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