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도 기술도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더우기,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며, 공비를 내려 보내고, 땅굴을 파 내려오던 북한이 있어서 안보적으로도 매우 불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손엔 총을 한손엔 삽을 잡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과 필리핀 보다 3배 정도 못살았고, 베트남이나 태국 보다도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나라가 되었습니까?
60년도는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어 팔아먹는다는 개념조차 세워져 있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인력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여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할일없이 뒷골목이나 기웃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외국으로 일자리 찾아서 이민도 가고, 광부로 간호사로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었지요.
이승만 정권당시 한국을 둘러본 어느 미국의 세계적인 유명언론인은 당시의 한국을 '오물더미의 나라'라고 경멸했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외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통렬한 비판이었습니다.
세상에 ‘한국인처럼 어리석고 게으른 민족은 처음봤다’ 면서 현상황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이들의 타고난 '국민성'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가능성은 오물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60, 70년대 눈부신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비약적인 경제부흥을 이루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의 ‘한강의 기적’이 훨씬 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비록 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산업사회의 전통과 훈련된 국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라인강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라인강은 자연의 수로로서 통일 전 서독의 물류를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화물 물동량은 거의 60%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건설비도, 유지비도 필요없는 천혜의 자연 수로인 라인강 덕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라인강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 또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상징합니다. 지도자의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투지와 불퇴전의 용기로서 목표지향적 리더십으로 ‘우리도 잘살아 보자’ ‘하면 된다’ 라는 비전하에 우리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한 끝에 기적같은 산업화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우리 국민의 역량과 의지에 시동스위치를 누르는 지도력을 박정희 대통령이 발휘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폄하자들은 그의 위대한 공은 절대 말하지 않고,
과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괴롭혔습니까? 아니면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굶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잘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박대통령의 공이 80%이고, 과가 20%
라고 평가하지 않습니까?
밥이 필요한 시절에 국민들에게 밥을 준 지도자 라고 국민들은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후진국에서 산업화가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모든 바람직한 목표를 모조리 달성할 수 있는 정부는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를 단시일 안에 달성하려면 적어도 당분간은 다른 가치나 목표들을 지연시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민주화를 왜 소홀히 했느냐의 물음이나 비난은 지나친 요구일 것입니다. 그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이 먼저 이룩되면 그 위에서 우람하고 튼튼한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철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그 토대위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란 논리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자유만큼은 부분적으로 제약을 가했지만, 북한과는 달리 대부분이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살던 시대였습니다.
사유재산제는 당연한 것이었고, 여행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학교선택의 자유, 그리고 무슨자유... 무슨자유 등이 보장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권위적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은 당시 자유진영의 선진민주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위적이었다는 것이지 북한과 비교하면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북한이 남침을 호시탐탐 노리던 그 때,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법에 의해서나 사고에 의해서나 죽은 사람은 30명도 안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 평균 30명의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자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했던 행동이 우리나라의 발전과 우리의 삶을 위한 행위였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자신의 자리의 위신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기에 그분의 업적을 인정하고 80%의 국민이 그의 공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위대한 공이 과를 덮고도 남는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기간 중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 했음에도 불가사의하게 친인척 비리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이 한건도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거주이전의 자유, 사유재산제가 보장되지 않고, 시위도 허락되지 않죠. 그리고 정부에 반항하면 바로 총살시킨다고 합니다. 중국도 아직까지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완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60-70년대 당시, ‘인권’을 외치고 ‘민주’를 외치던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민주 인사들도 있었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산업화에 반대하고, 위장된 민주화를 외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과 내통되고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미국 일본으로 다니면서 주한미군철수를 외친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고, 철강산업에 반대, 조선산업 하자는데 반대한 사람들 아닙니까?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한강의 기적은 가능했습니다. 당대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 낸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학생들을 선동해 온갖 중상모략 왜곡을 일삼았고.. 개방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서는 굴욕외교라고 욕을 해 댔으며..
북과의 대치로 인해 안보상황이 불안해서, 안보상의 위기를 돌파하고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결단한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젊은이들 피를 팔아 먹는다고 했으며..
고속도로 건설한다고 했을때 재벌들을 위해 길 놓아주는 것이라고 매도 했으며.. 포항제철과 조선소 건설을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가 무슨 제철사업을 할 수 있으며 조선소 건설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반대했습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 만큼 손쉽고 재미있고 편한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기에 영합했더라면 지금의 조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내외의 수많은 비판을 무릎쓰고 추진한 산업구조안에서 지금 먹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것이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제품이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만 부흥시킨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국민교육과 의식계몽에 힘썼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선현유적을 정비하는데 애쓰셨습니다. 충무공을 모신 이순신 사당, 유관순 유적, 윤봉길 의사 유적, 칠백의사 총, 율곡 이이 서원, 이퇴계 서원, 박물관, 신라, 백제 유적지 등 전국방방곡에 문화유산을 정비하셨습니다.
또한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주도 개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6.25때 폐허가 되었던 벌거숭이 산을 산림육성을 하여 푸른산으로 만들었고, 경제개발을 하면서도 환경보전을 위해서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자연보호헌장을 공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업적들과 국민에 대한 헌신 때문에 국민들의 80%가 공이 과보다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왜 가장 존경을 받을까?
*5% 친북좌파,운동권 출신은 아직 이해 못하는 부분입니다*
1960년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도 기술도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더우기,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며, 공비를 내려 보내고, 땅굴을 파 내려오던 북한이 있어서 안보적으로도 매우 불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손엔 총을 한손엔 삽을 잡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과 필리핀 보다 3배 정도 못살았고, 베트남이나 태국 보다도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나라가 되었습니까?
60년도는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어 팔아먹는다는 개념조차 세워져 있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인력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여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할일없이 뒷골목이나 기웃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외국으로 일자리 찾아서 이민도 가고, 광부로 간호사로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었지요.
이승만 정권당시 한국을 둘러본 어느 미국의 세계적인 유명언론인은 당시의 한국을 '오물더미의 나라'라고 경멸했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외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통렬한 비판이었습니다.
세상에 ‘한국인처럼 어리석고 게으른 민족은 처음봤다’ 면서 현상황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이들의 타고난 '국민성'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가능성은 오물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60, 70년대 눈부신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비약적인 경제부흥을 이루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의 ‘한강의 기적’이 훨씬 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비록 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산업사회의 전통과 훈련된 국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라인강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라인강은 자연의 수로로서 통일 전 서독의 물류를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화물 물동량은 거의 60%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건설비도, 유지비도 필요없는 천혜의 자연 수로인 라인강 덕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라인강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 또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상징합니다. 지도자의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투지와 불퇴전의 용기로서 목표지향적 리더십으로 ‘우리도 잘살아 보자’ ‘하면 된다’ 라는 비전하에 우리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한 끝에 기적같은 산업화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우리 국민의 역량과 의지에 시동스위치를 누르는 지도력을 박정희 대통령이 발휘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폄하자들은 그의 위대한 공은 절대 말하지 않고,
과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괴롭혔습니까? 아니면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굶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잘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박대통령의 공이 80%이고, 과가 20%
라고 평가하지 않습니까?
밥이 필요한 시절에 국민들에게 밥을 준 지도자 라고 국민들은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후진국에서 산업화가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모든 바람직한 목표를 모조리 달성할 수 있는 정부는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를 단시일 안에 달성하려면 적어도 당분간은 다른 가치나 목표들을 지연시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민주화를 왜 소홀히 했느냐의 물음이나 비난은 지나친 요구일 것입니다. 그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이 먼저 이룩되면 그 위에서 우람하고 튼튼한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철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그 토대위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란 논리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자유만큼은 부분적으로 제약을 가했지만, 북한과는 달리 대부분이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살던 시대였습니다.
사유재산제는 당연한 것이었고,
여행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학교선택의 자유, 그리고 무슨자유... 무슨자유 등이 보장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권위적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은
당시 자유진영의 선진민주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위적이었다는 것이지
북한과 비교하면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북한이 남침을 호시탐탐 노리던 그 때,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법에 의해서나 사고에 의해서나 죽은 사람은 30명도 안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 평균 30명의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자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했던 행동이 우리나라의 발전과 우리의 삶을 위한 행위였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자신의 자리의 위신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기에 그분의 업적을 인정하고 80%의 국민이 그의 공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위대한 공이 과를 덮고도 남는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기간 중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 했음에도 불가사의하게 친인척 비리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이 한건도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거주이전의 자유, 사유재산제가 보장되지 않고, 시위도 허락되지 않죠. 그리고 정부에 반항하면 바로 총살시킨다고 합니다. 중국도 아직까지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완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60-70년대 당시, ‘인권’을 외치고 ‘민주’를 외치던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민주 인사들도 있었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산업화에 반대하고, 위장된 민주화를 외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과 내통되고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미국 일본으로 다니면서 주한미군철수를 외친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고, 철강산업에 반대, 조선산업 하자는데 반대한 사람들 아닙니까?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한강의 기적은 가능했습니다.
당대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 낸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학생들을 선동해 온갖 중상모략 왜곡을 일삼았고..
개방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서는
굴욕외교라고 욕을 해 댔으며..
북과의 대치로 인해 안보상황이 불안해서, 안보상의 위기를 돌파하고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결단한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젊은이들 피를 팔아 먹는다고 했으며..
고속도로 건설한다고 했을때 재벌들을 위해 길 놓아주는 것이라고 매도 했으며..
포항제철과 조선소 건설을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가 무슨 제철사업을 할 수 있으며 조선소 건설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반대했습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 만큼 손쉽고 재미있고 편한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기에 영합했더라면 지금의 조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내외의 수많은 비판을 무릎쓰고 추진한 산업구조안에서 지금 먹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것이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제품이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만 부흥시킨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국민교육과 의식계몽에 힘썼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선현유적을 정비하는데 애쓰셨습니다.
충무공을 모신 이순신 사당, 유관순 유적, 윤봉길 의사 유적, 칠백의사 총, 율곡 이이 서원, 이퇴계 서원, 박물관, 신라, 백제 유적지 등 전국방방곡에 문화유산을 정비하셨습니다.
또한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주도 개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6.25때 폐허가 되었던 벌거숭이 산을 산림육성을 하여 푸른산으로 만들었고, 경제개발을 하면서도 환경보전을 위해서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자연보호헌장을 공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업적들과 국민에 대한 헌신 때문에 국민들의 80%가 공이 과보다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