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는 비극이란 소재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단순히 비극이라는 이유로 많은 시청자를 ‘미사폐인’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일단 `미사`는 `제대로` 만든 비극이다.
주인공 차무혁(소지섭)을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아니다. 그를 부모 사회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버림받게 만든다.
또한 그가 20여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짧은 생마저도 뇌에 총알이 박혀있는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설정이 `제대로 된` 비극인 것이다. 그의 뇌에 박힌 총알은 단순히 육체적인 통증만 주는 게 아니다.
그가 느끼는 두통은 사랑에도 사회적응에도 또 가족사에도 실패한 태생적, 사회적 통증이다. 그래서 그가 그 통증으로 행동하는 구토는 그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거부하는 사지의 몸부림인 것이다.
이는 ‘비극은 연민의 정을 자아내도록 하는 결말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정화(catharsis)시킨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시청률에 적용시킨 것에 다름아니다.
단순히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슬픔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버림 받는다’는 비극 하나로 죽음을 포함한 모든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기에 `미사`가 ‘요즘 드라마에서 죽음이 난무한다’는 비난을 교묘히 벗어나 시청률과 평가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시청자들은 ‘미사’를 통해 비극과 운명과의 관계를 알수있다.
왜냐하며 미사의 주인공인 소지섭과 이혜영, 그리고 임수정 등 등장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은 역대의 어느 비극에서나 그랬듯 본인의 의도된 잘못이었다기 보다는 주어진 운명에 맞서 살다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고통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소지섭의 경우 태어난 후부터 버림받는 억척스런 운명으로 태어났고, 그런 운명에 맞서 삶을 살아갔는다 것 밖에 그의 죄를 설명할 수 없다.
더욱이 오들희(이혜영)의 경우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친아들의 심장으로 양아들을 살리는 아이러니를 보이며, 그녀를 용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녀의 아들 소지섭이 이미 죽은 후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죄의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겐 돌을 던질만한 잘못이 없다. 양자인 정경호를 친자처럼 사랑한 것 밖에는 말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운명대로 친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하게 된 비련의 운명을 가진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렇게 운명지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비극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사’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전개함에 있어서 간결함과 긴장감, 화면으로 표현함에 있어서의 여운과 영상의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 배우들의 연기력은 ‘미사’를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미사폐인’이 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은채(임수정)를 자신의 잠바 속에 넣으며 꼭 끌어안는 무혁(소지섭)=사진 KBS 제공]
'미사'는 비극이고, 비극은 '운명'이다 - 미사를 보는 이유
KBS 2TV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는 비극이란 소재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단순히 비극이라는 이유로 많은 시청자를 ‘미사폐인’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일단 `미사`는 `제대로` 만든 비극이다.
주인공 차무혁(소지섭)을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아니다. 그를 부모 사회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버림받게 만든다.
또한 그가 20여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짧은 생마저도 뇌에 총알이 박혀있는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설정이 `제대로 된` 비극인 것이다. 그의 뇌에 박힌 총알은 단순히 육체적인 통증만 주는 게 아니다.
그가 느끼는 두통은 사랑에도 사회적응에도 또 가족사에도 실패한 태생적, 사회적 통증이다. 그래서 그가 그 통증으로 행동하는 구토는 그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거부하는 사지의 몸부림인 것이다.
이는 ‘비극은 연민의 정을 자아내도록 하는 결말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정화(catharsis)시킨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시청률에 적용시킨 것에 다름아니다.
단순히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슬픔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버림 받는다’는 비극 하나로 죽음을 포함한 모든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기에 `미사`가 ‘요즘 드라마에서 죽음이 난무한다’는 비난을 교묘히 벗어나 시청률과 평가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시청자들은 ‘미사’를 통해 비극과 운명과의 관계를 알수있다.
왜냐하며 미사의 주인공인 소지섭과 이혜영, 그리고 임수정 등 등장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은 역대의 어느 비극에서나 그랬듯 본인의 의도된 잘못이었다기 보다는 주어진 운명에 맞서 살다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고통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소지섭의 경우 태어난 후부터 버림받는 억척스런 운명으로 태어났고, 그런 운명에 맞서 삶을 살아갔는다 것 밖에 그의 죄를 설명할 수 없다.
더욱이 오들희(이혜영)의 경우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친아들의 심장으로 양아들을 살리는 아이러니를 보이며, 그녀를 용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녀의 아들 소지섭이 이미 죽은 후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죄의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겐 돌을 던질만한 잘못이 없다. 양자인 정경호를 친자처럼 사랑한 것 밖에는 말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운명대로 친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하게 된 비련의 운명을 가진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렇게 운명지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비극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사’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전개함에 있어서 간결함과 긴장감, 화면으로 표현함에 있어서의 여운과 영상의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 배우들의 연기력은 ‘미사’를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미사폐인’이 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은채(임수정)를 자신의 잠바 속에 넣으며 꼭 끌어안는 무혁(소지섭)=사진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