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셋있는 집안에 막내로 태어나 일찍 부모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난 바로위에 언니와 다섯살 큰언니와 여섯살 차이나는 막내였다. 언니들 각자 자기앞가림 하기에 바쁘다보니 날 터치하는일이 없었고 학교도 곧잘 빠지고 친구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때나이 18세였다. 그사람은 날 좋아해주었고 그런 그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우린 헤어졌었다. 내나이 20살되던해에 난 재수중이였다. 오랜만에 지금의 남편을 다시 만났다. 나보다 한살많아 대학생이 되어있던 남편. 옛날 얘기하며 술을 많이 마셨고 필름이 끊길정도로 취하진 않았건만.. 그사람과 잠자리까지 하게되었다. 그게 처음이였다.. 한달후 임신임을 알았고 난 내탓이 아니라 그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합의하에 중절수술하기로 하였고... 서로 금전문제로 다투기도 하며 내자식인줄 어떻게 아느냐는 폭언도 들었다. 그사람과는 해결을 보았고 미련도 연민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였었다. 임신을 하였지만 엄마라는 것에 실감도 나지 않았고 두려웠다. 하지만 중절수술 한다는것이 당장 내겐 더 큰 고민이였다. 나는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었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고 태동이 느껴진지 오래된 무렵.. 어느날 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났다. 지금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나의 언니는 막내동생 의사시키는것이 소원이였고.. 난 충분히 할수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내게 더 많이 실망햇던것 같다.. 손에 10만원을 쥐고 가장친했던 친구 유일하게 내소식 알고지내는 친구에게 얹혀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았고 집나온지 3주만에 진통이 찾아와 아들을 낳았다. 출산과 동시에 폐결핵 중증인걸 알았고 난 곧바로 약물치료를 해야했다. 다행히 처음우려와는 달리 한달후 건강해졌고 작디작았던 내아들 출생시 1.9k으로 너무나도 작았던 나의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내사정을 아는 병원측과 시청의 도움으로 난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돈한푼없이 치료받았고 언니에게 무릎꿇고 빌어 월세방 하나 얻을수 있었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매달 정부보조금도 받을수 있었다. 어리디 어렸던 난 이제 엄마이다.. 뱃속에 있을땐 몰랐던 모성애를 느꼈고 가족 친지 모두다 나를 버렸지만 나는 내아들이 있기에 명절날 갈곳이 없어도 그것이 그리 기쁠수가 없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10개월이 되었고 그때 아이아빠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때 내 짧은 생각으론 아이에게 죄인이 되지 말자는것이였다. 네아버지가 누군지는 알려주자.. 당신아들이 살아있다는것만 알게 해줘야한다는 이상야릇한 사명감비슷하였다. 그는 나를 심하게 비난하였고,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아들였다.. 그에게도 죄를 지었단 생각이 들었기에... 군대를 간 그사람은 어느날부터 내게 연락을 해오기 시작하였고.. 그때의 나는 그를 내아이의 아버지라는 다른눈으로 보기 시작했던것 같다.. 휴가나온 그가 내아이를 안아보는것이..내아이가 내품에만 있다가 아버지에게 안기는모습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한번 몸을 허락하는일이 생겼다.. 2000년도 그날밤 그에게 하루몸을 허락하여 아이를 가지게 된것에 심하게 절망하였던 내가.. 우리식구들 보기에 내인생 처절하게 망친 그사람에게 또한번 몸을 허락하는것이였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난 임신하였다.. 낳으면 연년생이 될 아이가 뱃속에서 또 자라고 있었다. 임신 4주째 심장이 뛴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고 8주째 아이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계류유산 된것 같다는말을 들었다. 계류유산임을 알기전 난 그에게 말하였다. 임신하였노라고.. 오래전 지금의 아들을 지우자고 내가 먼저 말했지만 이제 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기에 뱃속의 아이를 지울수 없노라고... 하지만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고.. 다만 아이가 있다는걸 알라고... 그말을 한후 유산임을 알았고 그는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은 하엿지만 날 하룻밤 상대로 생각한것이 화가낫다. 그렇게 생각한거라면 넌 사람을 잘못 찝은거라고 나혼자 이를 갈았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은 할수있다는 변호사말에 정말 해볼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난 그의집에 그의 아들이 있음을 또 둘째아이가 죽었음을 알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알렸고 다시는 그가 내주위에 얼씬거리는 일이 없었음 한다고 알렸다. 그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말한다.. 자기자식의 아들인지 믿을수가 없노라고... 그사람은 허락도 없이 자기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노라고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그후로 몇달이 지났다. 나는 그를 피해 이사를 했고 집전화도 모두 바꾸었다.아이가 2살이 되었을때 그남자 어떻게 알았는지 내집을 알아내서 찾아와 말한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결혼하자고.. 나는 거절하였고 다시 이사하였다.. 내아이 세살이 되었을때다.. 이때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주구장창 돈만 벌러 다니고 있었고,, 생활고에 많이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보조금을 받을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이사간 집을 다시 알아내어 찾아왔고 결혼하자고 날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내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은 너무나도 강했다.. 2003년 여름 그와 같이 살기로 결심을 하였고.. 내게 욕설을 퍼붓던 그의 부모를 만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잘할것을 맹세하엿다.. 그는 여전히 군복무중이였고 전역 5개월남은 상태였다. 그는 좀 산다는집안에 장남이다.. 나는 인사드린 3일후 그의부모님 강압으로인해 남편없는 시집살이를 시작하였고.. 축산업한다는 일많은 집안에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했다. 첫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밥을짓고 일꾼들 하루세끼 해먹였으며.. 그넓은집 쓸고 닦고 했으며.. 손님들 오면 아이가 버르장머리없이 뛴다고 아이데리고 방에들어가 앉아있곤 하였다.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몸도 많이 아팠고.. 눈다래끼가 심해져 팅팅부어 앞을 볼수가 없을때 병원을 갈수있었다.. 자신들보기에 내가 아픈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밖에 나갈수가 없었다. 힘들게 낳은만큼 내가 집착도 많이 했던 나의 아들은 24시간 담배연기에 휩쓸려 감기걸렷다 하면 폐렴까지 가곤하엿고.. 그탓은 전부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보내고 돈번답시고 꼴갑친 내탓이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걸 일일이 말한적 없다.. 항상 행복하노라고 말했고.. 그는 만족해했다. 그를 매일 내가 전활하여 사랑한다 말하였고.. 나와 아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가끔 휴가나오면 그는 내게 바깥바람도 쐬어주곤 하였고.. 내가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준다기에.. 못다한 공부.. 다시 잘해보고싶다고 말했다.. 그가 전역을 1달 앞둔 어느날이였다. 아침상을 차렸건만 속이쓰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난 좀 쉬겠노라 말을 했더니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밥상에 못앉느냐고 소릴질렀다. 나도 모르게 행동이 퉁퉁거렸고 그런 내게 못마땅햇는지 시어머니가 내게 훈계를 하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시아버지 옆에서 한마디 한다.. 버릇이 없다고 자란싹이 저러니 어디서 뭘 배웟겠냐고.. 정작 나는 시아버지와 마찰이 심했다.. 젊었던 그분은 자기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술먹으면 아내를 패기일쑤였고 어두컴컴한 밤 내가 자고있는방 머리맡에 앉아있곤 하였다. 어른이 들어왔는데 버릇없이 자고 있다며.. 다른 횡포도 많았지만 그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태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시아버지를 참을수 없어 그때 첨으로 말대꾸를 했다. 아버님은 왜 날 그렇ㄱ ㅔ싫어하시느냐고.. 그랬더니 그러더라.. 나가라고.. 너같은 인간 싫다고 당장 나가라고.. 난 그런다고 하엿고 짐을 모두 쌌다. 시어머니 이렇게 나가버리면 내아들과는 절대 못사는걸 명심하라고 윽박질렀고 짐싸고 잇는 내게 싹수 노란년이라고 시아버지 삿대질해대고 있었다. 어린 내아들만 엄마울지 말라고 눈물 닦아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아들은 나를 많이 챙긴다.. 아직 어려서인지 몰라도 나밖에 모른다고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말을 한다.. ) 그렇게 나는 그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난 쫓겨났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생겼다며 좋아라하던 언니들은 또한번 울었고 차라리 그런시부모라면 잘된거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휴가나온 그는 내게 실망이라며 편지를 던져주었고.. 나는 그를 완전히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전역하고 그는 같이 잘못했다고 빌자고 내게 와서 빌었다. 그때의 시아버지 좀 누그러져서는 날더러 다시 올라오라고 하는상태였다. 나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합가가 아닌 분가로 살기로 하였다. 나중에 내가 더 연륜이 생기면 그때 모시겠노라고.. 무조건 내가 하자는대로 하겠다는 남편은 나로인해 가족과 등을 돌렸다. 분가로 인해 우리는 시부모들과 인연을 끊어야했고.. 난 그래도 이렇게 사는것이 좋았다. 전에 내가 살던 집... 13평임대아파트.. 세를 주었던 그아파트를 다시 들어가서 살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잇음을 너무나도 잘보여주었고 그런그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집안일과 육아 모든것에 있어서는 오로지 내게 전담하였다.. 그런 그와 살면서 내자신이 식모인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하였다.. 그러면서 많이 좌절도 하였고 같은 맞벌이인데.. 나만 힘들다는것.. 아이는 오로지 내게만 매달려있었고 아빠가 뭔지도 몰랐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많이 울었다.. 언니들에게 전활해 나 그냥 혼자 살면 안되는거냐고 조언좀 해달란 말도 많이 했다... 그러다 임신이 되었다.. 난 독하게 마음먹었다.. 이런 그와 살면서 아이가 또 생기는건 끔찍했다. 그는 너무나도 흔쾌히 중절수술에 합의했고 난 그와 함께인것이 싫어 친구에게 병원갈것을 부탁했다. 수술하고 마취에게 덜풀려 한참자고 집에 들어가니 그는 내게 화를낸다.. 지금껏 무얼햇느냐고.. 그는 굉장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또 그는 안다.. 그를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것도.. 내가 예전에 참많이 좋아하던 사람ㅇ ㅣ있었다는것도.. 그를 사랑한적 없다는것... 단지 아이아버지이기에 많이 양보했다는것.. 그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에대해 모든걸 의심한다.. 수술하고 들어와 그에게 대충말하고 잤다.. 담날 아침 밥차리라며 그가 깨웠다. 솔직히 그날까지 밥차리라고 깨울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그에게 점점 멀어지는듯 한다.. 지금도 ... (참고로 난 피임은 남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절대 약도 먹지 않으며 질외사정도 못하게 한다. 확실한 피임법을 남자가 해결하지 못하면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세번째 임신은 그가 나보다 힘이 더 셌기 때문이다.. ) 첫아이는 이제 네살이고 나는 네번째 임신을 하였다.. 어떻게 임신이 된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난 임신도 너무 잘되는 년이라고...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내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그는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내아들보다 내가 더 좋다고 한다.. 자긴 아들때문에 사는것ㅇ ㅣ아니란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리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난.. 낳는다고 하였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그는 썩 돈을 잘 버는편이다.. 일이 너무 힘든 3D업종이라 그렇지.. 그외에는 참 괜찮은 편이다.. 성실하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친구들도 잘 안만나고 항상 집과 회사를 병행한다.. 가끔씩 친언니에게 아일 맡기고 영화보러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나와 같이 데이트 하는것을 즐긴다.. 그래서 집안일에 짜증나다가도 그런그에게 마음이 풀어지곤 한다.. 이제 분가해서 산지 1년이 조금 못되었다.. 아이도 남편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고... 나도 그와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한가지 흠이라면 난 그에게 마음을 주지는 못하는것 같다.. 단지 내아이아빠외에는 감정이 없다.. 임신 7개월인 지금 시댁식구들이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저번달부터...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안그럼 정말 호적을 파겠다고... 그는 장남이기에 어깨가 무겁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사실 나와 사는동안 자신은 소리내어 웃어본적이 없다고.. 자기의 마음은 항상 무겁다고... 시부모들이 뭐라 그러든 자길 위해서 미친척하고 살아줄수 없는거냐고... 나 오늘 생각한다... 뱃속의 내아이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헤어질텐데... 그와의 인연을 끊고 싶다...
내인생....
딸만 셋있는 집안에 막내로 태어나 일찍 부모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난 바로위에 언니와 다섯살 큰언니와 여섯살 차이나는 막내였다. 언니들 각자 자기앞가림 하기에
바쁘다보니 날 터치하는일이 없었고 학교도 곧잘 빠지고 친구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때나이 18세였다. 그사람은 날 좋아해주었고
그런 그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우린 헤어졌었다. 내나이 20살되던해에 난 재수중이였다.
오랜만에 지금의 남편을 다시 만났다. 나보다 한살많아 대학생이 되어있던 남편.
옛날 얘기하며 술을 많이 마셨고 필름이 끊길정도로 취하진 않았건만.. 그사람과 잠자리까지
하게되었다. 그게 처음이였다..
한달후 임신임을 알았고 난 내탓이 아니라 그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합의하에 중절수술하기로
하였고... 서로 금전문제로 다투기도 하며 내자식인줄 어떻게 아느냐는 폭언도 들었다.
그사람과는 해결을 보았고 미련도 연민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였었다.
임신을 하였지만 엄마라는 것에 실감도 나지 않았고 두려웠다.
하지만 중절수술 한다는것이 당장 내겐 더 큰 고민이였다. 나는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었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고 태동이 느껴진지 오래된 무렵.. 어느날 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났다.
지금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나의 언니는 막내동생 의사시키는것이 소원이였고.. 난
충분히 할수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내게 더 많이 실망햇던것 같다..
손에 10만원을 쥐고 가장친했던 친구 유일하게 내소식 알고지내는 친구에게 얹혀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았고 집나온지 3주만에 진통이 찾아와 아들을 낳았다.
출산과 동시에 폐결핵 중증인걸 알았고 난 곧바로 약물치료를 해야했다.
다행히 처음우려와는 달리 한달후 건강해졌고 작디작았던 내아들 출생시 1.9k으로 너무나도 작았던
나의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내사정을 아는 병원측과 시청의 도움으로 난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돈한푼없이 치료받았고
언니에게 무릎꿇고 빌어 월세방 하나 얻을수 있었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매달 정부보조금도 받을수 있었다.
어리디 어렸던 난 이제 엄마이다.. 뱃속에 있을땐 몰랐던 모성애를 느꼈고 가족 친지 모두다 나를
버렸지만 나는 내아들이 있기에 명절날 갈곳이 없어도 그것이 그리 기쁠수가 없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10개월이 되었고 그때 아이아빠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때 내 짧은 생각으론 아이에게 죄인이 되지 말자는것이였다. 네아버지가 누군지는 알려주자..
당신아들이 살아있다는것만 알게 해줘야한다는 이상야릇한 사명감비슷하였다.
그는 나를 심하게 비난하였고,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아들였다.. 그에게도 죄를 지었단 생각이
들었기에... 군대를 간 그사람은 어느날부터 내게 연락을 해오기 시작하였고..
그때의 나는 그를 내아이의 아버지라는 다른눈으로 보기 시작했던것 같다..
휴가나온 그가 내아이를 안아보는것이..내아이가 내품에만 있다가 아버지에게 안기는모습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한번 몸을 허락하는일이 생겼다..
2000년도 그날밤 그에게 하루몸을 허락하여 아이를 가지게 된것에 심하게 절망하였던 내가..
우리식구들 보기에 내인생 처절하게 망친 그사람에게 또한번 몸을 허락하는것이였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난 임신하였다.. 낳으면 연년생이 될 아이가 뱃속에서 또 자라고 있었다.
임신 4주째 심장이 뛴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고 8주째 아이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계류유산 된것
같다는말을 들었다.
계류유산임을 알기전 난 그에게 말하였다. 임신하였노라고.. 오래전 지금의 아들을 지우자고
내가 먼저 말했지만 이제 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기에 뱃속의 아이를 지울수 없노라고...
하지만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고.. 다만 아이가 있다는걸 알라고...
그말을 한후 유산임을 알았고 그는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은 하엿지만 날 하룻밤 상대로 생각한것이 화가낫다. 그렇게 생각한거라면 넌 사람을 잘못
찝은거라고 나혼자 이를 갈았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은 할수있다는 변호사말에 정말 해볼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난 그의집에 그의 아들이 있음을 또 둘째아이가 죽었음을 알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알렸고 다시는 그가 내주위에 얼씬거리는 일이 없었음 한다고 알렸다.
그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말한다.. 자기자식의 아들인지 믿을수가 없노라고...
그사람은 허락도 없이 자기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노라고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그후로 몇달이 지났다. 나는 그를 피해 이사를 했고 집전화도 모두 바꾸었다.아이가 2살이 되었을때
그남자 어떻게 알았는지 내집을 알아내서 찾아와 말한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결혼하자고..
나는 거절하였고 다시 이사하였다.. 내아이 세살이 되었을때다.. 이때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주구장창 돈만 벌러 다니고 있었고,, 생활고에 많이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보조금을 받을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이사간 집을 다시 알아내어 찾아왔고 결혼하자고 날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내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은 너무나도 강했다.. 2003년 여름 그와 같이 살기로 결심을 하였고..
내게 욕설을 퍼붓던 그의 부모를 만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잘할것을 맹세하엿다..
그는 여전히 군복무중이였고 전역 5개월남은 상태였다.
그는 좀 산다는집안에 장남이다.. 나는 인사드린 3일후 그의부모님 강압으로인해
남편없는 시집살이를 시작하였고.. 축산업한다는 일많은 집안에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했다.
첫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밥을짓고 일꾼들 하루세끼 해먹였으며.. 그넓은집 쓸고 닦고 했으며..
손님들 오면 아이가 버르장머리없이 뛴다고 아이데리고 방에들어가 앉아있곤 하였다.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몸도 많이 아팠고.. 눈다래끼가 심해져 팅팅부어 앞을 볼수가 없을때
병원을 갈수있었다.. 자신들보기에 내가 아픈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밖에 나갈수가 없었다.
힘들게 낳은만큼 내가 집착도 많이 했던 나의 아들은 24시간 담배연기에 휩쓸려
감기걸렷다 하면 폐렴까지 가곤하엿고.. 그탓은 전부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보내고 돈번답시고
꼴갑친 내탓이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걸 일일이 말한적 없다.. 항상 행복하노라고 말했고.. 그는 만족해했다.
그를 매일 내가 전활하여 사랑한다 말하였고.. 나와 아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가끔 휴가나오면 그는 내게 바깥바람도 쐬어주곤 하였고..
내가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준다기에.. 못다한 공부.. 다시 잘해보고싶다고 말했다..
그가 전역을 1달 앞둔 어느날이였다.
아침상을 차렸건만 속이쓰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난 좀 쉬겠노라 말을 했더니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밥상에 못앉느냐고 소릴질렀다.
나도 모르게 행동이 퉁퉁거렸고 그런 내게 못마땅햇는지 시어머니가 내게 훈계를 하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시아버지 옆에서 한마디 한다..
버릇이 없다고 자란싹이 저러니 어디서 뭘 배웟겠냐고..
정작 나는 시아버지와 마찰이 심했다.. 젊었던 그분은 자기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술먹으면 아내를 패기일쑤였고 어두컴컴한 밤 내가 자고있는방 머리맡에 앉아있곤 하였다.
어른이 들어왔는데 버릇없이 자고 있다며.. 다른 횡포도 많았지만 그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태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시아버지를 참을수 없어 그때 첨으로 말대꾸를 했다.
아버님은 왜 날 그렇ㄱ ㅔ싫어하시느냐고..
그랬더니 그러더라.. 나가라고.. 너같은 인간 싫다고 당장 나가라고..
난 그런다고 하엿고 짐을 모두 쌌다. 시어머니 이렇게 나가버리면 내아들과는 절대 못사는걸
명심하라고 윽박질렀고 짐싸고 잇는 내게 싹수 노란년이라고 시아버지 삿대질해대고 있었다.
어린 내아들만 엄마울지 말라고 눈물 닦아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아들은 나를 많이 챙긴다.. 아직 어려서인지 몰라도 나밖에 모른다고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말을 한다.. )
그렇게 나는 그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난 쫓겨났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생겼다며 좋아라하던 언니들은 또한번 울었고 차라리 그런시부모라면 잘된거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휴가나온 그는 내게 실망이라며 편지를 던져주었고.. 나는 그를 완전히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전역하고 그는 같이 잘못했다고 빌자고 내게 와서 빌었다.
그때의 시아버지 좀 누그러져서는 날더러 다시 올라오라고 하는상태였다.
나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합가가 아닌 분가로 살기로 하였다.
나중에 내가 더 연륜이 생기면 그때 모시겠노라고..
무조건 내가 하자는대로 하겠다는 남편은 나로인해 가족과 등을 돌렸다.
분가로 인해 우리는 시부모들과 인연을 끊어야했고.. 난 그래도 이렇게 사는것이 좋았다.
전에 내가 살던 집... 13평임대아파트.. 세를 주었던 그아파트를 다시 들어가서 살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잇음을 너무나도 잘보여주었고 그런그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집안일과 육아 모든것에 있어서는 오로지 내게 전담하였다..
그런 그와 살면서 내자신이 식모인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하였다..
그러면서 많이 좌절도 하였고 같은 맞벌이인데.. 나만 힘들다는것.. 아이는 오로지 내게만
매달려있었고 아빠가 뭔지도 몰랐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많이 울었다.. 언니들에게 전활해 나 그냥 혼자 살면 안되는거냐고
조언좀 해달란 말도 많이 했다...
그러다 임신이 되었다.. 난 독하게 마음먹었다.. 이런 그와 살면서 아이가 또 생기는건 끔찍했다.
그는 너무나도 흔쾌히 중절수술에 합의했고 난 그와 함께인것이 싫어 친구에게 병원갈것을
부탁했다. 수술하고 마취에게 덜풀려 한참자고 집에 들어가니 그는 내게 화를낸다..
지금껏 무얼햇느냐고.. 그는 굉장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또 그는 안다..
그를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것도.. 내가 예전에 참많이 좋아하던 사람ㅇ ㅣ있었다는것도..
그를 사랑한적 없다는것... 단지 아이아버지이기에 많이 양보했다는것..
그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에대해 모든걸 의심한다..
수술하고 들어와 그에게 대충말하고 잤다.. 담날 아침 밥차리라며 그가 깨웠다.
솔직히 그날까지 밥차리라고 깨울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그에게 점점 멀어지는듯 한다.. 지금도 ...
(참고로 난 피임은 남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절대 약도 먹지 않으며 질외사정도 못하게 한다.
확실한 피임법을 남자가 해결하지 못하면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세번째 임신은 그가 나보다 힘이
더 셌기 때문이다.. )
첫아이는 이제 네살이고 나는 네번째 임신을 하였다.. 어떻게 임신이 된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난 임신도 너무 잘되는 년이라고...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내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그는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내아들보다 내가 더 좋다고 한다..
자긴 아들때문에 사는것ㅇ ㅣ아니란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리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난..
낳는다고 하였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그는 썩 돈을 잘 버는편이다.. 일이 너무 힘든 3D업종이라 그렇지.. 그외에는 참 괜찮은 편이다..
성실하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친구들도 잘 안만나고 항상 집과 회사를 병행한다..
가끔씩 친언니에게 아일 맡기고 영화보러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나와 같이 데이트 하는것을
즐긴다..
그래서 집안일에 짜증나다가도 그런그에게 마음이 풀어지곤 한다..
이제 분가해서 산지 1년이 조금 못되었다..
아이도 남편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고... 나도 그와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한가지 흠이라면 난 그에게 마음을 주지는 못하는것 같다.. 단지 내아이아빠외에는 감정이 없다..
임신 7개월인 지금 시댁식구들이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저번달부터...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안그럼 정말 호적을 파겠다고...
그는 장남이기에 어깨가 무겁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사실 나와 사는동안 자신은 소리내어 웃어본적이 없다고.. 자기의 마음은 항상 무겁다고...
시부모들이 뭐라 그러든 자길 위해서 미친척하고 살아줄수 없는거냐고...
나 오늘 생각한다...
뱃속의 내아이만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헤어질텐데...
그와의 인연을 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