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이불로 몸을 감추고 있는 내게 제이가 말했다. 내 생각도 제이의 그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느낌으로 따뜻함을 말하고 있었다. 젊기에, 아니 어리기에 가능한 순수한 몰두에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면 억지스러울까?
적어도 제이는 내 몸 구석구석을 훔쳐보며 엉덩이는 빈약하고, 허벅지는 몸에 비해 굵다든가하는 평가는 하지 않고, 서로의 맨 살이 부딪치고 서로 느끼고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 보였던 것이다.
제이는 이내 내 품에서 잠이 들었고, 그 날 밤 내내 내 가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일이 있고난 이틀 후 제이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동안 촬영 스케줄이 없다며 바람을 쐬러 도심을 벗어난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아직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터라 나도 며칠쯤은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1박 정도를 할 여유밖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이가 너무 어린, 그리고 매력이 넘치는 남자와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서였다.
이틀 만에 만난 제이는 너무나 멋져 보였다. 원래도 길에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매력이 넘치는 아이었지만 내 눈에 다른 감정이 실리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를 보는 내 눈에 너를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널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라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고, 내 인생에서 간직하고 싶은 그 날 밤 전과 같았다.
“누나, 어디로 갈까? 누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매니저 형 차라는 갤로퍼를 끌고 온 제이가 말했다.
“글쎄. 아무데나.”
제이와 둘이 떠나는 여행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바다 보러 갈래? 속초 쏠까?”
“아니. 가까운데 아무데나 가자.”
“피곤하구나. 알았어. 청평 가자.”
도착한 곳은 강물이 바로 밑에 내려다보이는 깨끗해 보이는 모텔이었다. 아무데나 가자고 했던 것은 나였지만 주변 관광은 하나도 하지 않고, 바로 모텔에 들어가 버리는 제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짠, 이거 봐라. 누나 만화책 좋아해?”
“만화 무지 좋아하지. 뭐 있는데.”
“누나도 보라고 순정만화도 빌려왔어. 그런데 잘 몰라서 책방 주인이 신간이라고 하는 걸루 가져왔지. 나 이뻐?”
“역시 넌 내 동생이다.”
차 뒤에는 무려 50권이나 되는 만화책이 실려 있었고, 그것을 꺼내는 우리는 광산에서 노다지를 깨듯 즐거워했었다.
제이의 여행 목적은 늘어지기라고 했다. 조용한 곳에 파묻혀 만화책을 보고, 술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고, 졸리면 자는, 그런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점이 나도 마음에 들었다. 모텔로 직행한 제이를 두고 날 값싼 여자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했던 오해도 사라져 버렸다.
배가 고프면 가까운 식당을 찾은 잠깐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제이는 줄곧 내 무릎을 베고, 만화책을 읽었다. 눕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제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이 좋아서 그냥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만화책을 보았다.
“정말 편하다. 그래서 누나가 좋아.”
“내가 오히려 고마운 걸. 만화책도 좋고, 물도 좋고, 산도 좋다.”
“내일은 어디에 갈까? 그냥 여기 있을래?”
“나 내일은 집에 가야지.”
“누나 그러지 말고. 며칠 같이 놀아줘. 나 또 앞으로는 바쁠 것 같단 말이야. 응? 응?”
“미안해. 진짜로 일이 있어.”
“싫어. 안 보낼 거야.”
제이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팔을 뒤로 해서는 자신의 한 손으로 꽉 쥐었다. 한 손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한 남자의 힘에 흠칫 놀라면서, 이 녀석 정말 남자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마. 팔 아파.”
“내일 집에 갈 거야, 안 갈 거야?”
“가야 된다니까.”
“그러지 말고 나랑 있어. 응?”
“아, 아. 진짜 아파. 놔줘.”
“아파?”
제이는 손을 놓더니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는 머리에 키스를 해주었다. 감각이 둔한 머리였는데도 제이의 입술 감촉이 느껴져 몸에 전기가 이는 듯 했다. 그 녀석은 머리에, 목에, 귀에 키스를 해주더니 왼쪽 귀를 살며시 물었다.
“안 갈 거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는 목 쪽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옷 늘어나.”
“그럼 밑으로 넣을까?”
제이의 양 손이 옷 속으로 들어오더니 작은 원을 그리 듯 움직였다.
“기분 좋지? 나도 좋아.”
“너무 밝아. 창피해.”
“아니. 이러고만 있을 거야.”
우리는 십여 분 그런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간간히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제이에게 키스를 했고, 두 다리로는 제이의 허리를, 두 팔로는 제이의 등을 감싸 쥐었다.
“커튼이라도 쳐줄까?”
“아니. 이러고만 있을 거야.”
나는 제이의 말을 흉내내고는 이틀 동안 너무 그리웠던 제이의 입술을 마음껏 음미했다.
곧 우리는 이불이 거추장스러운 날씨였음에도 이불 속에 함께 누웠다. 여전히 제이는 가슴만을 탐했지만, 나는 제이의 바지를 벗기고, 웃옷을 벗겼다. 이불 속은 금세 우리의 땀 냄새로 채워지고, 점점 더워졌다.
제이의 혀가 내 몸 구석구석을 핥는 것이 마치 날카로운 쇳조각이 할퀴는 것처럼 느껴져 약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제이는 내 위로 올라와 내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의 움직임에 약했던 신음 소리는 점점 강도 높은 괴성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것을 탄성으로 생각했는데 제이는 동작을 멈추더니 염려스런 눈으로 물었다.
“아파?”
나는 대답 대신 엉덩이를 움직였고, 제이도 알았다는 듯 좀 더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평에서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발길이 닿는 데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하루에 조금씩 서울에서 멀어지는 일정을 짠 것이다. 그 날은 양평 콘도에서 다음날은 홍천콘도에서 그리고 마지막 날은 속초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아직 다 보지 못한 재미있는 만화책이 차 안에 가득했고,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할만한 애인이 함께한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여행은 일정을 다 채우지 못했다.
홍천에 머물렀을 때였다. 제이의 감미로운 애무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나는 제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사랑해.”
제이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말했지만 제이는 끝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나 제이를 밀쳐내고 옷을 주워 입었다. 하지만 제이는 날 달래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색해진 분위기로 그 다음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제이는 의자를 뒤로 하고 내내 잠만 잤다.
그렇다고 제이의 연락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제이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나자고 했다. 만나는 것을 좋았지만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너무 제이 중심적이었다.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집 앞으로 나오라던가, 촬영시간이 잠시 빌 것 같으니 잠깐 촬영장으로 나오라는 식이었다.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바쁜 제이였기에 나는 모든 걸 이해했다.
사실 마음속은 그러지 못했지만.
마음속에선 아니 머릿속에서도 나이의 벽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여잔데. 나도 보호받고 싶고. 응석을 부리고 싶은데.
그러다가 결국 한계를 넘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텔레비전에서 여자친구가 없다고 인터뷰를 한 제이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 날밤 술에 취한 채로 제이에게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너한테 내가 뭐니?”
“누나 술 마셨어?”
“너한테 내가 뭐냐구, 이 자식아!”
“인터뷰 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다들 그렇게 얘기하잖아.”
“내가 숨겨둔 애인이라고 치자. 네 애인은 맞는 거냐? 숨기는 건 괜찮다구. 네 애인이긴 한 거냐?”
“술 많이 마셨나봐. 내가 내일 전화할게.”
“시끄러. 니 전화 안받을 거야. 지금 얘기해. 왜 말을 못해? 아니라고 하면 내가 협박이라도 할까봐.”
“난 누나가 편해서 좋았어.”
질문과는 다른 얘기였지만 충분히 답이 되는 말이었다.
“영원히 좋은 누나로 남아줄까?”
“그랬으면 좋겠어.”
“미안하다. 그건 내가 못하겠어. 더럽고 치사해서 못하겠다구.”
온갖 욕과 험한 말들을 퍼붓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는 제이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지 않고, 다시 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3일 후 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이는 없고 한 여자가 없는 번호라고 일러주었다.
허망했다.
허망해서 웃음만 나왔다.
바보 같은 년. 영계 좋아하더니 제대로 당했구나.
이 정신 나간 년아, 분수를 알았어야지.
제이 다음으로 만난 남자와 제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가족들과 웃으며 제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
남아있던 20대를 제이를 향해 칼을 갈며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직 늙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좋은 여자를 놓쳤다는 후회를 안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이를 만날 기회는 단 한번도 오지 않았다.
서른이 되자 제이를 만나도 후회를 안겨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당시 나이 어리고 예쁜 탤런트와 스캔들이 난 것도 그랬지만 내 자신이 늙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제이에 대한 분노와 복수를 향한 마음이 점점 사그라졌다.
제이는 브라운관에서 아직도 20대 초반으로 살고 있고, 나는 서른을 넘기고도 두 번의 봄을 맞이한 노처녀가 되었다.
이젠 내 조카라고 해도 다들 믿어준다.
올해부터는 그가 그립거나 밉지 않고, 오히려 그가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19이상] kiwi (키위) - 27. 묘향이야기 - 하
kiwi - 27. 묘향이야기
“참 따뜻했어.”
새삼스레 이불로 몸을 감추고 있는 내게 제이가 말했다. 내 생각도 제이의 그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느낌으로 따뜻함을 말하고 있었다. 젊기에, 아니 어리기에 가능한 순수한 몰두에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면 억지스러울까?
적어도 제이는 내 몸 구석구석을 훔쳐보며 엉덩이는 빈약하고, 허벅지는 몸에 비해 굵다든가하는 평가는 하지 않고, 서로의 맨 살이 부딪치고 서로 느끼고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 보였던 것이다.
제이는 이내 내 품에서 잠이 들었고, 그 날 밤 내내 내 가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일이 있고난 이틀 후 제이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동안 촬영 스케줄이 없다며 바람을 쐬러 도심을 벗어난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아직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터라 나도 며칠쯤은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1박 정도를 할 여유밖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이가 너무 어린, 그리고 매력이 넘치는 남자와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서였다.
이틀 만에 만난 제이는 너무나 멋져 보였다. 원래도 길에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매력이 넘치는 아이었지만 내 눈에 다른 감정이 실리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를 보는 내 눈에 너를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널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라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고, 내 인생에서 간직하고 싶은 그 날 밤 전과 같았다.
“누나, 어디로 갈까? 누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매니저 형 차라는 갤로퍼를 끌고 온 제이가 말했다.
“글쎄. 아무데나.”
제이와 둘이 떠나는 여행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바다 보러 갈래? 속초 쏠까?”
“아니. 가까운데 아무데나 가자.”
“피곤하구나. 알았어. 청평 가자.”
도착한 곳은 강물이 바로 밑에 내려다보이는 깨끗해 보이는 모텔이었다. 아무데나 가자고 했던 것은 나였지만 주변 관광은 하나도 하지 않고, 바로 모텔에 들어가 버리는 제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짠, 이거 봐라. 누나 만화책 좋아해?”
“만화 무지 좋아하지. 뭐 있는데.”
“누나도 보라고 순정만화도 빌려왔어. 그런데 잘 몰라서 책방 주인이 신간이라고 하는 걸루 가져왔지. 나 이뻐?”
“역시 넌 내 동생이다.”
차 뒤에는 무려 50권이나 되는 만화책이 실려 있었고, 그것을 꺼내는 우리는 광산에서 노다지를 깨듯 즐거워했었다.
제이의 여행 목적은 늘어지기라고 했다. 조용한 곳에 파묻혀 만화책을 보고, 술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고, 졸리면 자는, 그런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점이 나도 마음에 들었다. 모텔로 직행한 제이를 두고 날 값싼 여자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했던 오해도 사라져 버렸다.
배가 고프면 가까운 식당을 찾은 잠깐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제이는 줄곧 내 무릎을 베고, 만화책을 읽었다. 눕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제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이 좋아서 그냥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만화책을 보았다.
“정말 편하다. 그래서 누나가 좋아.”
“내가 오히려 고마운 걸. 만화책도 좋고, 물도 좋고, 산도 좋다.”
“내일은 어디에 갈까? 그냥 여기 있을래?”
“나 내일은 집에 가야지.”
“누나 그러지 말고. 며칠 같이 놀아줘. 나 또 앞으로는 바쁠 것 같단 말이야. 응? 응?”
“미안해. 진짜로 일이 있어.”
“싫어. 안 보낼 거야.”
제이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팔을 뒤로 해서는 자신의 한 손으로 꽉 쥐었다. 한 손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한 남자의 힘에 흠칫 놀라면서, 이 녀석 정말 남자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마. 팔 아파.”
“내일 집에 갈 거야, 안 갈 거야?”
“가야 된다니까.”
“그러지 말고 나랑 있어. 응?”
“아, 아. 진짜 아파. 놔줘.”
“아파?”
제이는 손을 놓더니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는 머리에 키스를 해주었다. 감각이 둔한 머리였는데도 제이의 입술 감촉이 느껴져 몸에 전기가 이는 듯 했다. 그 녀석은 머리에, 목에, 귀에 키스를 해주더니 왼쪽 귀를 살며시 물었다.
“안 갈 거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는 목 쪽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옷 늘어나.”
“그럼 밑으로 넣을까?”
제이의 양 손이 옷 속으로 들어오더니 작은 원을 그리 듯 움직였다.
“기분 좋지? 나도 좋아.”
“너무 밝아. 창피해.”
“아니. 이러고만 있을 거야.”
우리는 십여 분 그런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간간히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제이에게 키스를 했고, 두 다리로는 제이의 허리를, 두 팔로는 제이의 등을 감싸 쥐었다.
“커튼이라도 쳐줄까?”
“아니. 이러고만 있을 거야.”
나는 제이의 말을 흉내내고는 이틀 동안 너무 그리웠던 제이의 입술을 마음껏 음미했다.
곧 우리는 이불이 거추장스러운 날씨였음에도 이불 속에 함께 누웠다. 여전히 제이는 가슴만을 탐했지만, 나는 제이의 바지를 벗기고, 웃옷을 벗겼다. 이불 속은 금세 우리의 땀 냄새로 채워지고, 점점 더워졌다.
제이의 혀가 내 몸 구석구석을 핥는 것이 마치 날카로운 쇳조각이 할퀴는 것처럼 느껴져 약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제이는 내 위로 올라와 내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의 움직임에 약했던 신음 소리는 점점 강도 높은 괴성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것을 탄성으로 생각했는데 제이는 동작을 멈추더니 염려스런 눈으로 물었다.
“아파?”
나는 대답 대신 엉덩이를 움직였고, 제이도 알았다는 듯 좀 더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평에서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발길이 닿는 데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하루에 조금씩 서울에서 멀어지는 일정을 짠 것이다. 그 날은 양평 콘도에서 다음날은 홍천콘도에서 그리고 마지막 날은 속초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아직 다 보지 못한 재미있는 만화책이 차 안에 가득했고,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할만한 애인이 함께한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여행은 일정을 다 채우지 못했다.
홍천에 머물렀을 때였다. 제이의 감미로운 애무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나는 제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사랑해.”
제이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말했지만 제이는 끝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나 제이를 밀쳐내고 옷을 주워 입었다. 하지만 제이는 날 달래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색해진 분위기로 그 다음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제이는 의자를 뒤로 하고 내내 잠만 잤다.
그렇다고 제이의 연락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제이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나자고 했다. 만나는 것을 좋았지만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너무 제이 중심적이었다.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집 앞으로 나오라던가, 촬영시간이 잠시 빌 것 같으니 잠깐 촬영장으로 나오라는 식이었다.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바쁜 제이였기에 나는 모든 걸 이해했다.
사실 마음속은 그러지 못했지만.
마음속에선 아니 머릿속에서도 나이의 벽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여잔데. 나도 보호받고 싶고. 응석을 부리고 싶은데.
그러다가 결국 한계를 넘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텔레비전에서 여자친구가 없다고 인터뷰를 한 제이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 날밤 술에 취한 채로 제이에게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너한테 내가 뭐니?”
“누나 술 마셨어?”
“너한테 내가 뭐냐구, 이 자식아!”
“인터뷰 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다들 그렇게 얘기하잖아.”
“내가 숨겨둔 애인이라고 치자. 네 애인은 맞는 거냐? 숨기는 건 괜찮다구. 네 애인이긴 한 거냐?”
“술 많이 마셨나봐. 내가 내일 전화할게.”
“시끄러. 니 전화 안받을 거야. 지금 얘기해. 왜 말을 못해? 아니라고 하면 내가 협박이라도 할까봐.”
“난 누나가 편해서 좋았어.”
질문과는 다른 얘기였지만 충분히 답이 되는 말이었다.
“영원히 좋은 누나로 남아줄까?”
“그랬으면 좋겠어.”
“미안하다. 그건 내가 못하겠어. 더럽고 치사해서 못하겠다구.”
온갖 욕과 험한 말들을 퍼붓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는 제이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지 않고, 다시 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3일 후 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이는 없고 한 여자가 없는 번호라고 일러주었다.
허망했다.
허망해서 웃음만 나왔다.
바보 같은 년. 영계 좋아하더니 제대로 당했구나.
이 정신 나간 년아, 분수를 알았어야지.
제이 다음으로 만난 남자와 제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가족들과 웃으며 제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
남아있던 20대를 제이를 향해 칼을 갈며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직 늙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좋은 여자를 놓쳤다는 후회를 안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이를 만날 기회는 단 한번도 오지 않았다.
서른이 되자 제이를 만나도 후회를 안겨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당시 나이 어리고 예쁜 탤런트와 스캔들이 난 것도 그랬지만 내 자신이 늙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제이에 대한 분노와 복수를 향한 마음이 점점 사그라졌다.
제이는 브라운관에서 아직도 20대 초반으로 살고 있고, 나는 서른을 넘기고도 두 번의 봄을 맞이한 노처녀가 되었다.
이젠 내 조카라고 해도 다들 믿어준다.
올해부터는 그가 그립거나 밉지 않고, 오히려 그가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얼마 전에 네가 대학생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았어.
너무 잘 어울리더라.
옷도 정말 귀티나고, 멋지던 걸.
잘 지내고 있지?
이젠 팬으로서 널 지켜볼게.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아이의 아빠가 되는 모습도.
너도 언젠가는 아저씨가 되겠지.
그걸 상상하니 웃기구나.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는 걸.
나 사실은 아직도 가끔 네 생각을 해.
그건 다 네가 너무 멋있는 남자라서 그래.
제이 이젠 어른이 되었겠구나.
좋은 여자를 만나도 가끔은 내 생각도 해주렴.
- 편한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