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와 쓰레기 / 125

김명수200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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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와 쓰레기

 

집집마다 시래기를 말려 놓은 집이 많다. 김장을 하고 나면 무청이나 배추 잎을 삶거나 혹은 생으로 짚으로 엮어서 추녀 밑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고 겨우내 밑반찬으로나 국거리로 먹기 위해 시골에서는 겨울 찬거리로 빠짐없이 말린다. 서늘한 곳에서 말리면 엽록소가 파괴되지 않고 비타민 손실도 없기에 채소가 귀한 겨울철에는 풀 향기가 폴폴나는 훌륭한 채소구실을 한다.


이 시래기 때문에 얼마 전 다툼이 벌어졌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시래기'를 꼭 '쓰레기'라고 부른다. 한번은 "보소 이형, 쓰레기가 아니고 시래기가 맞는 말입니다." 하고 핀잔을 주니 아주 같잖아 눈꼴사납다는 듯 힐끗 비웃음을 띄운다. 내심 표준말도 못 알아듣는 촌놈이고 무식꾼인 네놈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눈초리다. 헛똑똑이들이 하는 전형적인 자기과시 행태다.

 

시래기라고 하면 어쩐지 토담에 짚으로 매달린 허술한 살림이 노출되어 무지렁이 음식같이 들리는 것 같고, 쓰레기라고 하면 시설 거창한 대형 마켓에서 진공 포장으로 제대로 가공된 꽤 고급의 식품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시래기라고 부르면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처럼 들리고, 쓰레기라고 말하면 어딘가 유식하고 고상하게 폼 나는 음식 같은가 보다. 환장할 일이다.

 

이 사람의 말투는 시래기뿐만 아니라 '목요일'도 '몽-요일'이고 '밀양'도 '미량'이 아니라 글 쓰는 그대로 '밀-양'이라고 말한다.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백양하고 밀양에 목욕하러 갔는데 목요일은 쉬는 날이라 목욕을 못했다.' 하는 말을 이양반의 어법은 '뱅-양하고 밀-양에 몽-욕 하러 갔는데 몽-요일은 쉬는 날이라 몽-욕을 못했다.'라고 읽어야 정답이 되는 것이다. 언어적으로 잘난체하는 걷멋만 잔뜩 든 날나리다. 잘난 척은 하고 싶고 아는 것은 없는 열등감 때문이리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말의 대체 변천 현상이 인터넷문화를 타고 일상으로 번지고 있고, 인터넷에 오르는 글들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답답한 문장과 조잡한 단어, 해독불능의 상형문자들이 초를 다투며 생겨나고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이런 비뚤어진 말이 고상한척 가면을 쓰고 토속적이고 서민적이고 국민 다수가 평균으로 쓰는 말들을 급속하게 밀어내고 있다. 우리 고유의 말이 외래문화의 껍데기를 쓰고 오히려 천박한 말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래기가 쓰레기로, 목요일이 몽요일로 불려야 유식한 줄 아는 쓰레기 같은 족속들이 양산되고 있는 사회가 난처하고 두렵기만 하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언어는 당연히 우리들의 손으로 올바르게 지켜져야 한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2005  01  04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