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든 줄 모르는 잠에서 깨어 바다가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의 풍경이었다면 쓸쓸해 보였을 텐데 해운대 모래사장에는 사람들로 활기차 보였다.
햇빛에 눈이 부셨다. 서울보다 강렬한 것 같았다. 이 것도 서울과 마음가짐이 달라서 일까? 하루 사이에 좀 더 강렬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손을 펼쳐 손바닥으로 태양을 받았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선 사치스러워 누릴 수 없던 일이었다. 부산 여행에서 제일 호강하는 건 손바닥이라고 생각했다. 햇볕도 머금고, 그의 몸도 머금었으니.
“으, 몸이 아직 부서지진 않았나봐.”
그가 잠에서 깨어나 내게 손을 뻗었다.
“이제 부서질 거야.”
달려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었다.
“이 걸론 부족해. 몸이 다 아플 정로로 이번엔 열심히 해보자.”
“이 방에서 걸어 나가는 사람은 반칙이야.”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그의 엉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그가 깨기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몸이 더 많이 움직일수록 그가 내 것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를 갖고 싶은 만큼, 그만큼 더 분주해졌다. 소유욕에서 시작된 몸짓들이었다. 그는 나를, 나는 그를 간절히 갖길 원했다. 순수하지 못한 욕심들이 703호에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잠시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관광도 포기했건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나를 지나치지 않았다. 지나쳐 가는 시간은 없는 걸까? 왜 모든 시간은 나를 통과하고 지나갈까?
서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왜?”
“아니야.”
그는 부산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부산에서의 일은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하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가 약속한 것은 없었지만 반쪽을 만나게 된 거라는 나의 느낌을 더 강하게 믿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예전처럼 연락을 뜸하게 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규칙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항상 같은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돌아오자마자 구입한 핸드폰은 아침 8시 40분, 오후 12시 05분, 오후 6시 30분, 오후 10시면 어김없이 울렸다. 한번도 나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밤을 같이 보내자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루어지는 만남이 있는 날이면 그 편에서 늦은 귀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한, 매너 있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내 꿈은 다 이루었어.’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삶을 이젠 모두 이룬 셈이었다. 모두 퇴근을 해버린 어두운 사무실에서 나는 혼자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행복했다. 행복해도 웃음이 나는 구나.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사무실 창가로 가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있다가 어릴 적 매일 기도문처럼 외우던 것을 기억해 냈다.
‘진짜 엄마, 아빠! 절 빨리 데리러 와주세요.
가짜 엄마, 아빠는 제 이름도 이상하게 지어놓고 맛있는 초콜릿도 날마다 못 먹게 해요.
엄마는 선생님이고, 아빠는 아주 큰 회사에 다니고 있겠죠?
집은 대궐같이 크고, 진짜 사람 같은 인형도 많구요.
방은 저 혼자 쓰게 해주세요, 그리고 예쁜 핀이랑 강아지도 사주세요.
바쁘시더라도 제발 빨리 와주세요. 빨리요.’
내 꿈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리고 꼭 엘리트 남성을 만나 엘리트 가정을 꾸려야 했다. 부족한 것은 없는 집이었지만 장사꾼의 딸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어릴 적 우리 부모가 내 친부모가 아닐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내 키가 10센티 더 클 때쯤에는 멋진 부모가 나타나 날 데려갈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보니 딸부자집인 우리 집에서 나를 입양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꿈은 물에 휴지가 녹아버리 듯 흐물거리며 사라져 버렸다.
현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엘리트를 향한 내 마음까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멋진 여성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미친 듯이 책에 코를 박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다.
고3 때, 상습적인 빈혈에 시달려가며 노력했음에도 목표했던 대학의 학과에는 못 미치는 점수를 얻게 되었고, 대학이냐 전공이냐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과감히 전공을 포기한 덕에 알아준다는 유명 여대의 간판은 얻게 되었지만 4년간의 아침은 내내 주사를 맞으러 가는 어린애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학점 관리만은 소홀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졸업을 할 때는 취업문이 높기로 유명한 언론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큰 회사에 내 책상이 하나 있다는 것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20대의 보상으로는 넘치는 것이어서 명함이 새로 나오던 날 고가의 명함지갑에 명함을 채우고는 감격스러움에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그 명함지갑은 주변에 엘리트 여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사인 것처럼 열렬히 기뻐해준 지인들의 선물 중 하나였다.
“우리가 돈 모아 샀어. 마음에 들어?”
“정말 고마워. 꼭 사고 싶었던 거였는데 어떻게 알고.”
“청옥여사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두 이건 너무 비싸지 않아? 니들 무리했다.”
“그 회사에 일하려면 이정도는 써야지. 엘리트만 모인 회사잖아.”
친구들이 건네준 것은 내가 알기로 제일 비싼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그녀들은 그 명품이 내게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넌 명품을 지닐 자격을 갖게 되었다고 그녀들이 공식적으로 발급해준 허가증을 들고 우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명품 명함지갑에 이어 이제 명품 같은 남자를 갖게 된 것이다. 교수 아빠에 일류대학교, 튼튼한 항공사 직장을 가진 남자. 온 몸이 간질간질 할 정도로 행복에 겨웠다.
“아직 퇴근 안 했어?”
회사 선배 연준씨였다.
“어머, 혼자인 줄 알았어. 불쑥 나타나는 게 어디있어? 놀랐잖아.”
“놀랐어? 미안해.”
그 남자의 지나친 친절이 싫었다. 매번 나에게 굴복하는 남자, 재미없었다.
“퇴근 안 해?”
“해야지.”
“집으로 가는 거야?”
“응.”
“바쁜 거 아니면 나랑 술 한 잔 마시자.”
“내가 선배랑 술을 왜 마셔? 이상한 소문에 휘둘리는 것 질색이야.”
“소문나면 책임지면 되잖아.”
“퇴근 안 해? 나 먼저 간다. 내일 봐.”
그의 호감이 나에게는 비 호감이었다. 언젠가는 일주일에 두어 번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직장이니까 직장도 문제 될 것 없었지만 그가 나와 같은 장사꾼의 아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어둠에 맡기고 퇴근을 하면서 어서 오후 10시가 되기를 바랐다.
부산 여행 후 두 달이 지나면서 갑작스럽게 그에게 또 연락이 없었다. 내 몸은 전화가 오던 그 시간마다 조건 반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 마다 종을 울렸다던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을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개 꼴이었다. 며칠쯤은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실험용 개처럼 생각 드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오는 저녁 먹자. 할 말이 있어]
연준 선배가 전해준 쪽지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여전히 비호감이었지만 쪽지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가 따뜻한 남자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어디서요? 그것도 함께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다. ^^]
항상 굴복하는 남자와 근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그 남자의 차로 남산에 갔다. 해운대는 가을이었는데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내릴까?”
“아니. 추워. 이젠 할 말을 해 봐,”
“이런, 너무 무섭게 하지는 마.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 무서워.”
“난 질질 끄는 게 무서워.”
이 남자 나의 신경질을 또 잘 참아내고 있다.
“남자 친구 있던 거 같은데 헤어졌니?”
“어.”
모든 남자를 기회를 평등하게 나누어 주려야 한다는 자비심에서 비롯된 교활한 거짓말이었다. 실은 멍하니 나를 찾지 않는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평생 혼자 살 것도 아닐 테고, 다음 남자로 날 후보에 넣어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어.”
“누구나 그런 기회는 있지. 선배도 마찬가지고.”
“고마운데.”
“근데 아직은 아니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쯤은 할 수 있지. 널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
“할 얘기가 이거였다면 돌아가자. 피곤해.”
“집에 데려다 줄게. 가는 길에 우유 사줄 테니 따뜻하게 먹고 자.”
집에 돌아와서 우유대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대답이 어떻든 전화를 해보지 않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청옥이? 미안해. 그동안 무척 바빴어. 걱정 되서 전화한 거지? 안 그래도 오늘쯤은 꼭 전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다.”
이 남자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음색으로 장난스럽게 자기가 그리웠냐고 물었다.
“응.”
“나도 너 보고 싶다.”
그 통화 이후로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내 쪽이었다. 그마저도 처음엔 반갑게 받아주더니 2주쯤 지나자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해? 바빠?”
“바쁘지는 않아.”
“왜 전화 안했어?”
“니가 먼저 전화할지 알았어.”
그리곤 침묵. 매번 말을 잇지 않는 그 때문에 대화들은 그에 일상에 대한 나의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밥 먹었어?”
“오늘은 퇴근 늦게 해?”
“회사는 별 문제 없지?”
질문에는 한계가 있었다. 날마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질문들에 지쳐갔고, 그의 단답형 답들에 지쳐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바쁘다는 그를 억지로 불러 만났다.
“요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는 대체 왜 그러니? 쿨하고 멋진 너는 어디로 갔어? 매일 전화기를 붙들고 밥은 먹었는지 집에 몇 시에 들어갔는지 내게 보고하는 것도 지겨워.”
“그런 대화들이 지겨운 건 마찬가지야. 좀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다고.”
“깊은 얘기 뭐. 회사 업무 중에 전화를 받아 사랑한다 이런 말 해주길 바라는 거야? 너도 회사 생활해서 잘 알잖아. 그게 가능하니?”
“그럼 요즘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그럼 이 전에 하루 몇 번씩 전화했던 남자는 정상이 아니었나?”
“비꼬지 마. 어디서 너 나 따위가 날 비꽈?”
너 따위. 내가 장사꾼의 딸이란 걸까? 어디가 부족한 거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만 만나자. 너한테 내 일상을 보고하고 싶지 않아.”
이 남자를 다시는 못 본다는 말?
“화내서 미안해. 많이 힘들고 피곤했을텐데 내가 투정이 심했어.”
놓칠 수가 없다.
이젠 그가 없으면 살고 싶지 않은 걸.
“앞으로는 귀찮게 일할 때는 전화하지 않을께. 저녁에 한 번만 통화하면 되지 뭐. 오늘도 피곤했는데 불렀지? 그만 들어가봐. 내가 예민했었어. 미안해.”
다행히 남자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 끝내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후 마음과는 달리 나의 손가락은 하루에도 몇 번 그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마약 중독자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떨리던 손가락은 통화가 끝난 후에야 맥 빠진 손가락이 되어 떨림을 멈추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질수록 멈출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바빠?”
“응.”
하루의 통화가 단 두 마디로 끝나는 날의 연속이었다. 끝내야 한다는 것은 손가락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버림받은 손가락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청옥아, 아직도 기다려야 하는 거니?”
연준 선배가 비상구 계단에서 그의 특유의 따뜻한 음성으로 그 말을 뱉었을 때 비로소 나의 손가락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다. 차가운 건 이젠 싫어.
“내일 대답할게. 괜찮지?”
그 날 차가운 남자를 끝장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마무리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개운치 않았다. 규섭씨를 만나서 당당히 나 다른 남자가 생겼어. 아주 따뜻한 남자야 너와는 다른, 이라고 면전에서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집착을 그렇게라도 떨쳐야 했다. 그가 그 말을 듣고 나를 잡아준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날은 하루 종일 규섭씨는 내 전화를 받아서 고민을 하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출근길에 나가있기로 했다. 우리 회사와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선택한 결정이었다.
모두들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
‘이 껌들은 누가 다 씹은 걸까?’
바닥에 붙은 껌들을 헤아려보았다.
도심을 껌을 씹다가 바닥에 버릴 확률.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한참 바라보았다.
세상엔 이해 못할 사람들이 많지. 규섭씨도 그렇고. 멀리서 그가 보였다. 그가 날 발견하자마자 부지런히 걸어온다. 다행히 모른 척은 안하는군.
쩍!
순간 귀가 멍멍해졌다. 나는 내 뺨을 부여잡고 이해 못할 사람들의 흔적 위에 앉아 있었다.
“너 사람 귀찮게 할래? 전화 안받는 것 보면 널 보기 싫다는 걸 이해 못하겠어? 이래야 이해가 되냐고? 어때? 이젠 정이 뚝뚝 떨어졌냐?”
그를 노려보며 일어섰다. 그는 또 다시 내 뺨을 후려쳤다.
“니까짓께 날 노려 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회사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남자에게 가버리겠다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조금은 멍한 채로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 때, 내가 가버리겠다고 말하려던 다른 남자, 연준 선배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거다.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는 풍경을 제공했던 나는 그에게 갈 자신이 없었고, 연준 선배는 대답이 예정되어 있던 날,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두 남자에게 같은 시간에 버림을 받는다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내게 일어났고,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을 흡수해버릴 능력이 없었다.
그 사건은 엘리트들에 관한 환상을 모조리 가져가 버린 일이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니. 엘리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내가 숨어든 곳은 장사꾼 아버지의 품이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곳에서 내 상처도 점점 아물어져 갔다.
그렇게 몇 년 후에 두 남자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인간 말종으로 당연히 성병에 걸리거나 모든 여자에게 버림을 받을 것 같았던 규섭씨는 전직 골프 선수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고, 연준씨도 갓 입사한 앳된 여직원과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우스운 세상 속에 살고 있음에 그 며칠은 내내 웃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웃음이 나오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는 그냥 그런 기억일 뿐이다.
이쯤에서 나를 처량한 눈으로 보거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탁하건데 제발 날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여기지는 말아 달라.
난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독히도 운이 나쁜 20대였다고.
하지만 늘 운이 없을 수는 없다. 늘 운이 좋을 수는 없듯이. 내게 곧 운수 좋은 날들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kiwi (키위) - 35. 청옥이야기 - 하
kiwi - 35
언제 든 줄 모르는 잠에서 깨어 바다가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의 풍경이었다면 쓸쓸해 보였을 텐데 해운대 모래사장에는 사람들로 활기차 보였다.
햇빛에 눈이 부셨다. 서울보다 강렬한 것 같았다. 이 것도 서울과 마음가짐이 달라서 일까? 하루 사이에 좀 더 강렬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손을 펼쳐 손바닥으로 태양을 받았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선 사치스러워 누릴 수 없던 일이었다. 부산 여행에서 제일 호강하는 건 손바닥이라고 생각했다. 햇볕도 머금고, 그의 몸도 머금었으니.
“으, 몸이 아직 부서지진 않았나봐.”
그가 잠에서 깨어나 내게 손을 뻗었다.
“이제 부서질 거야.”
달려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었다.
“이 걸론 부족해. 몸이 다 아플 정로로 이번엔 열심히 해보자.”
“이 방에서 걸어 나가는 사람은 반칙이야.”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그의 엉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그가 깨기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몸이 더 많이 움직일수록 그가 내 것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를 갖고 싶은 만큼, 그만큼 더 분주해졌다. 소유욕에서 시작된 몸짓들이었다. 그는 나를, 나는 그를 간절히 갖길 원했다. 순수하지 못한 욕심들이 703호에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잠시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관광도 포기했건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나를 지나치지 않았다. 지나쳐 가는 시간은 없는 걸까? 왜 모든 시간은 나를 통과하고 지나갈까?
서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왜?”
“아니야.”
그는 부산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부산에서의 일은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하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가 약속한 것은 없었지만 반쪽을 만나게 된 거라는 나의 느낌을 더 강하게 믿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예전처럼 연락을 뜸하게 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규칙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항상 같은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돌아오자마자 구입한 핸드폰은 아침 8시 40분, 오후 12시 05분, 오후 6시 30분, 오후 10시면 어김없이 울렸다. 한번도 나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밤을 같이 보내자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루어지는 만남이 있는 날이면 그 편에서 늦은 귀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한, 매너 있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내 꿈은 다 이루었어.’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삶을 이젠 모두 이룬 셈이었다. 모두 퇴근을 해버린 어두운 사무실에서 나는 혼자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행복했다. 행복해도 웃음이 나는 구나.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사무실 창가로 가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있다가 어릴 적 매일 기도문처럼 외우던 것을 기억해 냈다.
‘진짜 엄마, 아빠! 절 빨리 데리러 와주세요.
가짜 엄마, 아빠는 제 이름도 이상하게 지어놓고 맛있는 초콜릿도 날마다 못 먹게 해요.
엄마는 선생님이고, 아빠는 아주 큰 회사에 다니고 있겠죠?
집은 대궐같이 크고, 진짜 사람 같은 인형도 많구요.
방은 저 혼자 쓰게 해주세요, 그리고 예쁜 핀이랑 강아지도 사주세요.
바쁘시더라도 제발 빨리 와주세요. 빨리요.’
내 꿈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리고 꼭 엘리트 남성을 만나 엘리트 가정을 꾸려야 했다. 부족한 것은 없는 집이었지만 장사꾼의 딸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어릴 적 우리 부모가 내 친부모가 아닐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내 키가 10센티 더 클 때쯤에는 멋진 부모가 나타나 날 데려갈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보니 딸부자집인 우리 집에서 나를 입양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꿈은 물에 휴지가 녹아버리 듯 흐물거리며 사라져 버렸다.
현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엘리트를 향한 내 마음까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멋진 여성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미친 듯이 책에 코를 박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다.
고3 때, 상습적인 빈혈에 시달려가며 노력했음에도 목표했던 대학의 학과에는 못 미치는 점수를 얻게 되었고, 대학이냐 전공이냐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과감히 전공을 포기한 덕에 알아준다는 유명 여대의 간판은 얻게 되었지만 4년간의 아침은 내내 주사를 맞으러 가는 어린애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학점 관리만은 소홀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졸업을 할 때는 취업문이 높기로 유명한 언론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큰 회사에 내 책상이 하나 있다는 것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20대의 보상으로는 넘치는 것이어서 명함이 새로 나오던 날 고가의 명함지갑에 명함을 채우고는 감격스러움에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그 명함지갑은 주변에 엘리트 여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사인 것처럼 열렬히 기뻐해준 지인들의 선물 중 하나였다.
“우리가 돈 모아 샀어. 마음에 들어?”
“정말 고마워. 꼭 사고 싶었던 거였는데 어떻게 알고.”
“청옥여사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두 이건 너무 비싸지 않아? 니들 무리했다.”
“그 회사에 일하려면 이정도는 써야지. 엘리트만 모인 회사잖아.”
친구들이 건네준 것은 내가 알기로 제일 비싼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그녀들은 그 명품이 내게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넌 명품을 지닐 자격을 갖게 되었다고 그녀들이 공식적으로 발급해준 허가증을 들고 우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명품 명함지갑에 이어 이제 명품 같은 남자를 갖게 된 것이다. 교수 아빠에 일류대학교, 튼튼한 항공사 직장을 가진 남자. 온 몸이 간질간질 할 정도로 행복에 겨웠다.
“아직 퇴근 안 했어?”
회사 선배 연준씨였다.
“어머, 혼자인 줄 알았어. 불쑥 나타나는 게 어디있어? 놀랐잖아.”
“놀랐어? 미안해.”
그 남자의 지나친 친절이 싫었다. 매번 나에게 굴복하는 남자, 재미없었다.
“퇴근 안 해?”
“해야지.”
“집으로 가는 거야?”
“응.”
“바쁜 거 아니면 나랑 술 한 잔 마시자.”
“내가 선배랑 술을 왜 마셔? 이상한 소문에 휘둘리는 것 질색이야.”
“소문나면 책임지면 되잖아.”
“퇴근 안 해? 나 먼저 간다. 내일 봐.”
그의 호감이 나에게는 비 호감이었다. 언젠가는 일주일에 두어 번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직장이니까 직장도 문제 될 것 없었지만 그가 나와 같은 장사꾼의 아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어둠에 맡기고 퇴근을 하면서 어서 오후 10시가 되기를 바랐다.
부산 여행 후 두 달이 지나면서 갑작스럽게 그에게 또 연락이 없었다. 내 몸은 전화가 오던 그 시간마다 조건 반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 마다 종을 울렸다던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을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개 꼴이었다. 며칠쯤은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실험용 개처럼 생각 드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오는 저녁 먹자. 할 말이 있어]
연준 선배가 전해준 쪽지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여전히 비호감이었지만 쪽지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가 따뜻한 남자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어디서요? 그것도 함께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다. ^^]
항상 굴복하는 남자와 근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그 남자의 차로 남산에 갔다. 해운대는 가을이었는데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내릴까?”
“아니. 추워. 이젠 할 말을 해 봐,”
“이런, 너무 무섭게 하지는 마.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 무서워.”
“난 질질 끄는 게 무서워.”
이 남자 나의 신경질을 또 잘 참아내고 있다.
“남자 친구 있던 거 같은데 헤어졌니?”
“어.”
모든 남자를 기회를 평등하게 나누어 주려야 한다는 자비심에서 비롯된 교활한 거짓말이었다. 실은 멍하니 나를 찾지 않는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평생 혼자 살 것도 아닐 테고, 다음 남자로 날 후보에 넣어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어.”
“누구나 그런 기회는 있지. 선배도 마찬가지고.”
“고마운데.”
“근데 아직은 아니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쯤은 할 수 있지. 널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
“할 얘기가 이거였다면 돌아가자. 피곤해.”
“집에 데려다 줄게. 가는 길에 우유 사줄 테니 따뜻하게 먹고 자.”
집에 돌아와서 우유대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대답이 어떻든 전화를 해보지 않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청옥이? 미안해. 그동안 무척 바빴어. 걱정 되서 전화한 거지? 안 그래도 오늘쯤은 꼭 전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다.”
이 남자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음색으로 장난스럽게 자기가 그리웠냐고 물었다.
“응.”
“나도 너 보고 싶다.”
그 통화 이후로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내 쪽이었다. 그마저도 처음엔 반갑게 받아주더니 2주쯤 지나자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해? 바빠?”
“바쁘지는 않아.”
“왜 전화 안했어?”
“니가 먼저 전화할지 알았어.”
그리곤 침묵. 매번 말을 잇지 않는 그 때문에 대화들은 그에 일상에 대한 나의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밥 먹었어?”
“오늘은 퇴근 늦게 해?”
“회사는 별 문제 없지?”
질문에는 한계가 있었다. 날마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질문들에 지쳐갔고, 그의 단답형 답들에 지쳐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바쁘다는 그를 억지로 불러 만났다.
“요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는 대체 왜 그러니? 쿨하고 멋진 너는 어디로 갔어? 매일 전화기를 붙들고 밥은 먹었는지 집에 몇 시에 들어갔는지 내게 보고하는 것도 지겨워.”
“그런 대화들이 지겨운 건 마찬가지야. 좀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다고.”
“깊은 얘기 뭐. 회사 업무 중에 전화를 받아 사랑한다 이런 말 해주길 바라는 거야? 너도 회사 생활해서 잘 알잖아. 그게 가능하니?”
“그럼 요즘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그럼 이 전에 하루 몇 번씩 전화했던 남자는 정상이 아니었나?”
“비꼬지 마. 어디서 너 나 따위가 날 비꽈?”
너 따위. 내가 장사꾼의 딸이란 걸까? 어디가 부족한 거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만 만나자. 너한테 내 일상을 보고하고 싶지 않아.”
이 남자를 다시는 못 본다는 말?
“화내서 미안해. 많이 힘들고 피곤했을텐데 내가 투정이 심했어.”
놓칠 수가 없다.
이젠 그가 없으면 살고 싶지 않은 걸.
“앞으로는 귀찮게 일할 때는 전화하지 않을께. 저녁에 한 번만 통화하면 되지 뭐. 오늘도 피곤했는데 불렀지? 그만 들어가봐. 내가 예민했었어. 미안해.”
다행히 남자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 끝내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후 마음과는 달리 나의 손가락은 하루에도 몇 번 그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마약 중독자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떨리던 손가락은 통화가 끝난 후에야 맥 빠진 손가락이 되어 떨림을 멈추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질수록 멈출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바빠?”
“응.”
하루의 통화가 단 두 마디로 끝나는 날의 연속이었다. 끝내야 한다는 것은 손가락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버림받은 손가락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청옥아, 아직도 기다려야 하는 거니?”
연준 선배가 비상구 계단에서 그의 특유의 따뜻한 음성으로 그 말을 뱉었을 때 비로소 나의 손가락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다. 차가운 건 이젠 싫어.
“내일 대답할게. 괜찮지?”
그 날 차가운 남자를 끝장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마무리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개운치 않았다. 규섭씨를 만나서 당당히 나 다른 남자가 생겼어. 아주 따뜻한 남자야 너와는 다른, 이라고 면전에서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집착을 그렇게라도 떨쳐야 했다. 그가 그 말을 듣고 나를 잡아준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날은 하루 종일 규섭씨는 내 전화를 받아서 고민을 하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출근길에 나가있기로 했다. 우리 회사와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선택한 결정이었다.
모두들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
‘이 껌들은 누가 다 씹은 걸까?’
바닥에 붙은 껌들을 헤아려보았다.
도심을 껌을 씹다가 바닥에 버릴 확률.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한참 바라보았다.
세상엔 이해 못할 사람들이 많지. 규섭씨도 그렇고. 멀리서 그가 보였다. 그가 날 발견하자마자 부지런히 걸어온다. 다행히 모른 척은 안하는군.
쩍!
순간 귀가 멍멍해졌다. 나는 내 뺨을 부여잡고 이해 못할 사람들의 흔적 위에 앉아 있었다.
“너 사람 귀찮게 할래? 전화 안받는 것 보면 널 보기 싫다는 걸 이해 못하겠어? 이래야 이해가 되냐고? 어때? 이젠 정이 뚝뚝 떨어졌냐?”
그를 노려보며 일어섰다. 그는 또 다시 내 뺨을 후려쳤다.
“니까짓께 날 노려 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회사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남자에게 가버리겠다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조금은 멍한 채로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 때, 내가 가버리겠다고 말하려던 다른 남자, 연준 선배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거다.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는 풍경을 제공했던 나는 그에게 갈 자신이 없었고, 연준 선배는 대답이 예정되어 있던 날,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두 남자에게 같은 시간에 버림을 받는다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내게 일어났고,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을 흡수해버릴 능력이 없었다.
그 사건은 엘리트들에 관한 환상을 모조리 가져가 버린 일이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니. 엘리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내가 숨어든 곳은 장사꾼 아버지의 품이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곳에서 내 상처도 점점 아물어져 갔다.
그렇게 몇 년 후에 두 남자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인간 말종으로 당연히 성병에 걸리거나 모든 여자에게 버림을 받을 것 같았던 규섭씨는 전직 골프 선수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고, 연준씨도 갓 입사한 앳된 여직원과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우스운 세상 속에 살고 있음에 그 며칠은 내내 웃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웃음이 나오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는 그냥 그런 기억일 뿐이다.
이쯤에서 나를 처량한 눈으로 보거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탁하건데 제발 날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여기지는 말아 달라.
난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독히도 운이 나쁜 20대였다고.
하지만 늘 운이 없을 수는 없다. 늘 운이 좋을 수는 없듯이. 내게 곧 운수 좋은 날들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기억 속에 그저 운이 나쁜 여자가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