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 15

키라라2005.01.08
조회218

 

 

사랑해...

그리고 잊지 말고 기억 해줘 .

 

내가.

언제나...

내 눈 안에...
내 손바닥 안에...

 

널 담아두고 지켜줄거라는 걸...

 

[가슴앓이 by 키라라]


 

"준수씨..."

 

얼굴에서 입술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모조리 입술로 점령해 버린 그가 얼굴을 들고 날 홀릴 때마다 사용하는 -내가 가장 꼼짝 못해 하는 아주 멋진...- 웃음을 보였다.

 

나와 시선이 얽히자 특유의 가라앉은 음성으로 내가 들을 수 없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차안과 밖이 너무나도 고요해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구해줄께...."

 

...

 

 

늦은 밤, 그와 야간 드라이브를 즐겼다.
너무 멀리까지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이 -잠시 동안, 아주 잠시- 생겼었지만 오늘같은 분위기를 망칠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즐겨 찾는다는 어느 호적한 곳에 다다르자 차를 세우고 내리게 했다.
평상시 처럼 그가 차문을 열어주고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아 이끌어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일 뿐인데도 정말이지 너무 어색했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괜한 어색함에 쭈뼛거리자 커다란 손을 뻗어 날 가볍게 들어올리더니 오랜 주행으로 뜨거워진 차 본넷트 위에 앉혔다.


엉덩이가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느낌에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다 잠시 차 안으로 몸을 숙이는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혀를 내밀었다.

몇 초 뒤, 차 안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흘러 나왔다.

 


"한 곡 출래?"

 

그가 내 앞으로 두 손을 벌렸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예쁜 웃음을 보자 자신없게 고갤 저었다.

 

"긴장되니?"

 

그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더니 소리나게 피식 웃으며 내게 바보라고 했다.


"나... 한번만 더... 불..러 줄래?"

 

조금 떨어져 서며 말하는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생겼다.

강렬한 크리스탈 헤드라이트 불빛과 은은한 달빛의 조화로 생긴 몇 겹의 그림자로 인해 반듯하고 날렵한 콧날과 다듬은 것처럼 선이 잘빠진 턱선, 한올 한올 심은 듯 섬세한 속눈썹 선까지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응? 한번만...더... 불러 봐...응?"

 

"............"


애교스럽기 보다는 처량할 정도로 애원했지만 대답없이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 지켜보기만 했다.


"그럼...이건 어때."

 

음악에 맞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 그의 손이 마술이라도 부리듯 우아하게 치켜 올려지더니 위 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스윽.

 

"아!"

 

손끝이 쫘악 펴지는 순간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빛을 내며 내 입에서 탄성을 끌어냈다.


어깨를 꽂꽂하게 세우고 자신에게 집중한 내 모습에 자신감이 더해진 그가 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흔들때 마다 더욱 힘이 들어간 다른 한 손이 눈을 찌를 듯이 강한 빛을 숨기고 그 빛을 굴리 듯 좌우로 여러 번 움직였다.

 

"후욱....훅."


그가 손가락 틈으로 입김을 불어넣는 시늉을 해 보이더니 손을 몇번 흔들었다.

 

"응?"

 

내 몸은 블랙홀처럼 날 빨아들이는 호기심으로 인해 점점 더 앞으로 쏠리는 중이었다.

 

사박. 사박.

 

풀 밟는 소리와 음악이 묘하게 어우려졌다.

그가 가볍게 몸을 반쯤 돌려 두 줄기의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빛이 나는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그 모습에 나 역시 습관적으로 집게손가락을 뻗어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에서 처럼...


손끝과 손끝이 닿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체온과 함께 따뜻한 물체가 손가락에 닿아 네번째 손가락을 감쌌다.

 

"이..이...이건..."

 

잠시 빛을 내는 손가락을 바라보다 다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나.....나...난...난..."

 

더듬거리며 이 상황에 어울릴 만한 단어들을 떠올려 보려했으나 오히려 숨만 막힐 뿐이었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날 보던 그가 입을 가리고 사시나무 처럼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겁먹지마. 괜찮아... 내가 널 보고 있잖아."  

 

손가락 하나 하나를 쓰다듬던 그가 내 눈을 들여다 보며 불안할때 마다 습관적으로 물어뜯어 상태가 엉망인 손톱 끝에 입술을 갖다댔다.


표현할 수 없는 전기가 열을 올리며 내 몸을 훑었다.

 

"...윽...윽...윽...."

 

푸르스름한 달빛의 영향으로 인해 온 몸을 분위기에 맡겨 버리고만 내가 어린아이 처럼 아랫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울먹였다.

 

"날 봐...응? 이거 보여?"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최대한 크게 펼치고 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입가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


그의 손가락에도 나와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링이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이젠 정말 이성이 마비되기 직전이라 방금 전 까지도 크게 들리던 음악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내 말 들어줄래? ....너...듣다가 또 울지 말기다~"

 

슬그머니 날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허리에 감겨오는 그의 단단한 팔을 느끼며 푹신하게 들풀이 자라있는 땅을 디뎠다.


그는 내가 중심을 잡고 서자 내 손을 잡은 채로 한 걸음 물러서게 했다.
내 어깨에 양손을 살포시 얹은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름 속에 반쯤 몸을 맡긴 달빛에 그의 눈이 흑요석 처럼 빛을 냈다.


"내게... 네 남자가 될 기회를 줘서 고마워."

 

길고 단단한 팔뚝이 내 등을 감싸 안았다.

 

"...언제나 사랑하고 늘 내 눈 안에 널 담아둘게. 나만의 여자를 원하기 보다... 너만의 남자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거, 이젠 잘 알아. 내가 부족하게 보이더라도 네가 사랑으로 날 감싸준다면...정말 그래준다면... 날 만남으로 해서 앞으로 널 자주 괴롭힐지도 모르는 수많은 오해와 가슴 저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흐읍..."

여자를 매료시킬 줄 아는 달콤한 말에 숨이 막혀왔다.


"어디서나 내가 네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도록 떳떳하게 우리가 서로 사랑함을 세상 어디 건 보이고 다닐 것을 약속해. 그리고 다시는 날 사랑함으로 인해 네 눈에 눈물 고이는 일이 없도록 해줄게..."

 

날 꼭 껴안고 있던 팔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게 느껴지더니 그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몇 걸음 물러섰다.

 

아까와는 다르게 웃음기 없이 딱딱한 표정을 한 그가 날 똑바로 쳐다봤다.

 

서늘할 정도로 깊어 보이는 그의 눈빛에 다시 한번 숨을 삼켰다.

 

"...사랑해..."   

 

"흐윽..."

 

오한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그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를 껴안아 버렸다.

그리고는 여지껏 날 지탱해주던 모든 불안감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지금까지 커오면서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성격 역시 좋지 않은 날 좋아한다고 말해줬던 남자 친구들에게서는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던 가슴 에이는 말이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서 들어 본 고백들 중에서 가장 날 감동시키는 말로 날 울렸다.

 

 

 

"사랑해."


 

가져도...가져도... 뭔가 하나쯤은 빈 듯한 공허함이 내 성격을 강팍하게 만들었고, 말 못하고 삭히는 이기심에 물어뜯은 손톱이 인내심을 소멸 시켜 말주변을 없게 만들었던 지난 시간들 전부가 그의 말로 인해 모두 보상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고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던 날 그의 인내심 강한 고백이 잡아 주었다.


이젠 내가 미애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착하디 착한 남자 때문에 과거가 아닌 회피 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오늘 말할까...

 

내일 말할까...

 

어떻게 변명하나...

 

뭐라고 해야 날 버리지 않을까...등등의 고민은 봄볕에 눈 녹듯 사그라지고 떳떳하게 나설 자신이 생겼다.


날 구해준다는 말...믿고싶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내가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그가 다칠 수도 있고 그와 함께하는 이런 행복이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을 거라는 걸...


짧은 순간이지만 그를 안고 있음으로 해서 많은 것이 분명해졌다.

 


눈 딱 감고 그에게 다 말해버렸다.

 

잘못했노라고...

다시는 나쁜 마음 품지 않겠노라고...


미애에게 나쁜 짓을 하기 위해 뒤따라갔었던 사실과 그 후의 모든 일까지도 그를 껴안은 채로 다 말했다.

물론 윤성희와의 일까지.

 


그의 탄탄한 등 근육이 단단하게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계속 힘주어 안은 채로 줄줄이 고백했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세상에서 가장 하고싶은 말.

그것은 바로...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고싶은 말.

그것은 바로...

너만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