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 보따리 기행기...

쨔샤^ ^*2005.01.08
조회410

우선은 뭔가라도 해 봐야 하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중국으로 가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놈으로 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렁~

급기야 맥이 다을수 있는 모든 연락처에 연락을 했다

어디 또 술타령이나 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리고 며칠뒤 겨우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방에서 만났는데 녀석은 멋적은듯 연신 미안 하다고만 연발했다

난 녀석에게 최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주도록 노력 했다

그렇게 출발일을 정하고 세부 계획을 밝힌후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는데...

집사람이 역까지 태워 주었다

먼저 후배녀석의 집으로 가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글씨 아이들 둘까지 모두 델고 나오지 않는가

당초 예정에도 없었는데...

아이들을 중국 처가에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일이야 어떻게 되었건 앞뒤 가릴것 없이 차에 몸을 싣었다

그런데...

토요일이라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이렁~ 장장 4시간을 서서 가야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그후 일정에 비하면 그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중국 여행기의 첫발이 시작 되었다

 

출발직전의 인천항은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한다

일명 보따리 상인들의 물건 싸기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위의 타이틀 처럼 나 또한 여행 목적을 보따리로 잡았기 때문에 우선 그들의 행보가 나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난 이것 저것 물어 보았는데 잘 가르쳐 주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은 무척 바쁘니 배에 가서 보자는 애기 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물은 내용들은 전혀 쓸데없는 애기 들이라고나 할까

 

4시

드디어 출발 시간

외국여행이 처음인 나는 앞사람이 뭔가를 꺼내고 있기에 불안한 맘에 옆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주머니걸 모두 꺼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렁~

울 아이들이 10원 짜리 50원 자리 동전을 한가득 주머니에 채워놓은 터라 그걸 다 꺼내자면...

하지만 세무직원 앞에서 열심히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득 밀려있는데...

동전 휴지조각 라이터 등등 얼마나 많은지 한참을 꺼내도 아직도 가득 이었다

특히 달러는 쓰기 편하게 1,2달러등으로 환전하여 그 뚜게가 얼나마 푸짐한지 주머니에서 잘 나오질 않는다

결국 세무 직원이 기다리다 못해 포기를 하구서 빨리 가라고 소리친다

난 분명 할걸 하는데...

 역시 지고는 못 참는 성격

좀 친절하면 안되냐구 맞대응  낑~

후배네 짐 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힘좋은 내가 그중 가장 무거운걸 두개나 맡았다

그렇게 시작된 짐잔치가 대구에 다시 도착할때 까지 끊이질 않았고...

배가 출발하자 말자 난 집에서 갖구온 술잔치를 벌렸다

근처 상점에서 사면될걸 대구에서 낑낑 거리며 운반 했으니 그 노고는...

하지만 배에는 참소주를 팔지 않는다

모두들 부러운 눈치는 이르떄 없구

찬 뱃바람을 맞으며 소주 한잔 걸치는 재미는 아마 느껴보지 못한 분은 모를거야

누군가 동석을 부탁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뭐하러 중국 가나..고 물으니 자기는 여자 장사 하러 간다고 한다

일명 기생 관광 주선자 이다

즉 조선족 한족 여자들 잡아놓구 한국에서 손님구해 델구 간다는 것이다

값비싼 한국여자 더우기 요즘은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는 실정이니 장사가 수지가 맞을것 같기도 했다

특히 구한 여자들은 반 감금 상태로 월급도 주지 않아도 팀으로 산다는 것인데...

어릴때 들은 일본인들의 기생 관광이 생각이 났다

개네들 울 나라 여행 오는게 아니라 여자보러 온다는...

당시 한국 여자들이 일본놈에게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울분이 삭였던가

하지만 지금은 울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저 사람이 아니면 또 딴 사람이...

꽤 수지맞는 장사인지라 너나 할것없이 뛰어 드는 형국

중국에서 7년간 있었던 후배놈이 자기도 그기에 대해선 잘 아니 우리도 저거 한번해 보자고 한다

잉~ 그럼 여자는 맘대로...???

짤라 말했다

지금 우리 목적이 뭐냐구

밖이 너무 추워 술판을 임시 접기로 하구서 안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아까 말을 건넸던 보따리 상인들이랑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다

그중에 한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노 신사를 만났는데...

라면 한그릇에 소주 한명을 거뜬히 비우는 실력에 탄복을 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정도 술은 중국 북방인에게 입 가심 이었다

우린 인천에서 부터 같이 친해온 싹시한 40대 여인과 꽤 친하게 지냈는데 교수라는 분은 그기에 자꾸 작전을 건다

난 은근히 둘을 붙여 주기두 하구 여러가지를 묻기도 하였다

연길이 고향 이라는 그 여인의 사연은 이러 하였다

그녀는 중국에 남편이 있는 여인 이었다

그러니까 위장 결혼을 하여 한국인이 된 것이다

예전엔 다방을 했다가 지금은 개인 보따리업을 하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녀는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보따리 상인들의 생태에 관해서...

그들은 정말 비참했다

배가 집이라는 그들...

자신들의 숙소가 정해져 있고  생필품들이 모두 배에 있다

배를 타고가서 물건을 내리고 다시 배를 타고 들어온다

그리고 또 다시 배를 타고...

대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텃세가 심하다고 한다

그럼 그밑에 사람들은...   그저 일당이나 받는...

노부부도 끼여 있었고 여자들도 많았다

일당 그저 5만원

갔다 오는데 그 가격인지

아님 일당이 그러한지

하여튼 그들에게 주어진 댓가였다

 

배에서 16시간의 여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술 한잔 허구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니 도착 했다고 한다

행여 여권을 잊을까 놋미초사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뱃전에 나가니 찬바람이 콧등을 떄린다

뭔가 허름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지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했다

왜 한자로 씌여져 있담

난 그저 미친놈이 폼 낸다고 저렇게 썼나보담 허구 생각했는데

글씨 여기가 중국 이란다

글구 반대로 한자를 읽어야 뜻이 되지  끙~

 

별다르게 없었다

이국적인 그런 모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나가는게 문제이고 전쟁이었다

처음본 중국은 너무 초라했다

꽤 크다는 대련항 이었지만  무빙워커 하나 보이질 않았다

다음은 통관

선상 비자를 받은 후배네 땜에 한참을 기다렸다

난 그저 까불고 다녔는데 드디어 후배 부인으로 부터 목소리 큰 주의가 들어왔다

여기는 중국 이라고...

함부러 하지 말라고

외국이 첨인 난 정지선을 한두번 넘었을 뿐인데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여긴 중국 판이고 재들판... 서서히 텃세 불리기 시작 하는데 그냥 죽어 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