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셋째 언니가 다급하게 불렀다. 제이 오빠한테 청혼이라도 받은 건가? 셋째 언니는 숨이 할딱할딱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큰 언니가, 큰 언니가.”
큰 언니? 설마 전부터 사려고 벼르던 프로젝션 텔레비전이라도 샀단 말인가? 좁아터진 방에 그 TV를 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큰 언니의 행동에 모두 반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큰 언니가 남자를 데리고 왔어. 다음 달에 결혼할 남자를.”
“흡.”
순간 호흡 곤란을 느꼈다. 오히려 텔레비전을 사왔다고 하면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큰 언니가 누드집을 냈다고 할 만큼의 사건이었다. 그것도 헐렁한 엄마 팬티를 걸치고 찍었다고 해도 말이다.
“혜림아, 숨을 크게 쉬어. 휴우, 휴우, 이렇게.”
“어. 이젠 괜찮아. 어디? 지금 왔어.”
“쪽방에. 빨리 가보자.”
“어, 어.”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서로를 진정시키며 방에 들어갔다. 모두 나보다는 먼저 그 사실을 알았는지 병진이마저 와있었다.
엄마, 아빠 앞에 앉아있는 그 남자는 딱 보기에도 작고 볼품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찜질방에 눈이 멀어 아무 남자나 꼬셔왔군.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현재 적당한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볼품없는 남자가 대답했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직장도 없는 남자라. 언니 그렇게도 급했던 거야?
언니를 처량하게 보는 내 눈을 의식 못하는지 언니는 연신 싱글벙글 얼굴에 억지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미국에서 어제 나왔어요.”
큰 언니의 입이 찢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가만, 어제 미국에서 왔다면 채팅으로 만났다는 거야? 어째 요즘엔 컴퓨터 앞에 붙어있더니만.
“AICPA 취득하고 나온 거에요. 여태껏 공부를 했던 거죠.”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큰 언니는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목젖이 다 보일 정도였다.
“그게 뭐냐?”
“공인 회계사요. 미국에서 따는 건데 우리나라 회계사는 국내에서밖에 인정 못 받지만 AICPA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공인회계사. 모두 술렁이는 가운데 큰 언니는 또 말을 이었다.
“기억 안나요? 명수씨잖아. 학벌이 낮다고 엄마 아빠가 만나주지도 않던 명수씨.”
내 기억의 아주 저편에서 가물거리며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언니의 마지막 남자. 학벌과 집안을 이유로 언니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막았던 그 남자. 집 앞에 왔다가 우리 집 대문도 넘지 못한 돌아가야 했던 사건. 그 날 큰 언니의 난동으로 마무리되어 잊혀져 갔던 사건.
언니와 이 남자는 그 사건으로 칼을 갈며 오늘을 기획했을 것이다. 언니의 저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거의 사색이 되어 말도 잇지 못하셨다.
“미국 살다 왔으면 솰라솰라 잘 하시겠네요?”
병진이가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아마도 영어를 잘하냐고 묻는 거겠지.
“아, 예.”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빠다 냄새가 나더라.”
순간 나의 긴급 임무는 병진이의 제거가 되었다. 내가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긴장감이 도는 이 때 오히려 즐거운 임무기도 했다. 이어질 큰 언니의 공격을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할 정도였기에.
“병진아, 우리는 나가자.”
“······.”
“빨리 나가자. 가게 볼 사람 없잖아.”
병진이는 노골적으로 나가기 싫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억지로 끌고 나왔다.
“병진아, 나 등 좀 쓸어줘.”
“왜? 깨끗한데.”
“소름이 돋아서 그래. 등 좀 따뜻하게 문질러 줘라.”
“부러워서 그러냐?”
병진이가 등을 쓸어주며 물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사람들끼리 이렇게 큰 비밀을 숨기고 살 수 있다니. 언니의 집요함에 소름이 돋아.”
“누군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중 3땐가? 그 때 헤어진 줄 알았는데.”
최소 5년의 시간이 흐른 일이었다. 놀람이 서서히 가라앉자 두 사람이 지나온 인고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지독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둘이 만나 불꽃 튀는 사랑을 하고 안정적으로 결혼을 하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지독한, 아주 지독한 사랑이다.
큰 언니가 집념의 사나이의 팔짱을 끼고 유유히 찜질방을 나가버리고 난 후 난 엄마에게 달려갔다.
“허락했어?”
“그럼 어쩌니. 많이 놀라긴 했지만 이 언니 데려가 준다니 더 바랄 것도 없다.”
엄마도 충격을 많이 받으신 모양이었다.
“아빠도 허락했고?”
“그래. 넌 니 걱정이나 해. 어쩔 거야? 전에 인사왔던 남자는.”
“결혼 안한다니까. 다 끝났어.”
“너만 끝나면 다야? 내일 옷이나 단정히 입고 와.”
“왜?”
“내일 사부인 될 분 건물 계약하러 온다가 들린다고 연락 왔더라.”
“누가 사부인 될 사람이야? 그 아줌마가 여길 왜 와?”
“건물 주인이 보러 온다는 데 누가 말려? 이 기집애야, 이 일을 대체 어쩔 거냐고. 속 안 썩이는 자식새끼가 하나도 없어. 니 큰 언니 시집보내고 나면 나도 몰라. 환갑이 내일인데 자식들 뒷바라지 이제 나도 지쳤다. 찜질방 넘겨주고 난 니 아빠랑 여행이나 다닐란다.”
엄마는 여느 때보다도 지쳐 보이셨다. 서루 오빠 어머니 눈치를 안 보실 수 없겠지. 그래도 나는 절대 볼 수가 없다고.
퇴근을 하고 병진이와 집에 일찍 들어와서도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한 때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찜질방이 확실히 날아가 버린 것도 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서루 오빠 어머니의 대면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나 힘든데. 내가 준 사약까지 먹겠다고 해놓고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냐고.’
마음은 점점 민성오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갔다. 병진이도 어제보다도 마음이 괴로운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움을 담뿍 담은 채 아주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kiwi (키위) - 39. 칼을 간 사랑
kiwi - 39
“혜림아! 혜림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셋째 언니가 다급하게 불렀다. 제이 오빠한테 청혼이라도 받은 건가? 셋째 언니는 숨이 할딱할딱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큰 언니가, 큰 언니가.”
큰 언니? 설마 전부터 사려고 벼르던 프로젝션 텔레비전이라도 샀단 말인가? 좁아터진 방에 그 TV를 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큰 언니의 행동에 모두 반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큰 언니가 남자를 데리고 왔어. 다음 달에 결혼할 남자를.”
“흡.”
순간 호흡 곤란을 느꼈다. 오히려 텔레비전을 사왔다고 하면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큰 언니가 누드집을 냈다고 할 만큼의 사건이었다. 그것도 헐렁한 엄마 팬티를 걸치고 찍었다고 해도 말이다.
“혜림아, 숨을 크게 쉬어. 휴우, 휴우, 이렇게.”
“어. 이젠 괜찮아. 어디? 지금 왔어.”
“쪽방에. 빨리 가보자.”
“어, 어.”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서로를 진정시키며 방에 들어갔다. 모두 나보다는 먼저 그 사실을 알았는지 병진이마저 와있었다.
엄마, 아빠 앞에 앉아있는 그 남자는 딱 보기에도 작고 볼품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찜질방에 눈이 멀어 아무 남자나 꼬셔왔군.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현재 적당한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볼품없는 남자가 대답했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직장도 없는 남자라. 언니 그렇게도 급했던 거야?
언니를 처량하게 보는 내 눈을 의식 못하는지 언니는 연신 싱글벙글 얼굴에 억지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미국에서 어제 나왔어요.”
큰 언니의 입이 찢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가만, 어제 미국에서 왔다면 채팅으로 만났다는 거야? 어째 요즘엔 컴퓨터 앞에 붙어있더니만.
“AICPA 취득하고 나온 거에요. 여태껏 공부를 했던 거죠.”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큰 언니는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목젖이 다 보일 정도였다.
“그게 뭐냐?”
“공인 회계사요. 미국에서 따는 건데 우리나라 회계사는 국내에서밖에 인정 못 받지만 AICPA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공인회계사. 모두 술렁이는 가운데 큰 언니는 또 말을 이었다.
“기억 안나요? 명수씨잖아. 학벌이 낮다고 엄마 아빠가 만나주지도 않던 명수씨.”
내 기억의 아주 저편에서 가물거리며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언니의 마지막 남자. 학벌과 집안을 이유로 언니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막았던 그 남자. 집 앞에 왔다가 우리 집 대문도 넘지 못한 돌아가야 했던 사건. 그 날 큰 언니의 난동으로 마무리되어 잊혀져 갔던 사건.
언니와 이 남자는 그 사건으로 칼을 갈며 오늘을 기획했을 것이다. 언니의 저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거의 사색이 되어 말도 잇지 못하셨다.
“미국 살다 왔으면 솰라솰라 잘 하시겠네요?”
병진이가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아마도 영어를 잘하냐고 묻는 거겠지.
“아, 예.”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빠다 냄새가 나더라.”
순간 나의 긴급 임무는 병진이의 제거가 되었다. 내가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긴장감이 도는 이 때 오히려 즐거운 임무기도 했다. 이어질 큰 언니의 공격을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할 정도였기에.
“병진아, 우리는 나가자.”
“······.”
“빨리 나가자. 가게 볼 사람 없잖아.”
병진이는 노골적으로 나가기 싫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억지로 끌고 나왔다.
“병진아, 나 등 좀 쓸어줘.”
“왜? 깨끗한데.”
“소름이 돋아서 그래. 등 좀 따뜻하게 문질러 줘라.”
“부러워서 그러냐?”
병진이가 등을 쓸어주며 물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사람들끼리 이렇게 큰 비밀을 숨기고 살 수 있다니. 언니의 집요함에 소름이 돋아.”
“누군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중 3땐가? 그 때 헤어진 줄 알았는데.”
최소 5년의 시간이 흐른 일이었다. 놀람이 서서히 가라앉자 두 사람이 지나온 인고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지독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둘이 만나 불꽃 튀는 사랑을 하고 안정적으로 결혼을 하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지독한, 아주 지독한 사랑이다.
큰 언니가 집념의 사나이의 팔짱을 끼고 유유히 찜질방을 나가버리고 난 후 난 엄마에게 달려갔다.
“허락했어?”
“그럼 어쩌니. 많이 놀라긴 했지만 이 언니 데려가 준다니 더 바랄 것도 없다.”
엄마도 충격을 많이 받으신 모양이었다.
“아빠도 허락했고?”
“그래. 넌 니 걱정이나 해. 어쩔 거야? 전에 인사왔던 남자는.”
“결혼 안한다니까. 다 끝났어.”
“너만 끝나면 다야? 내일 옷이나 단정히 입고 와.”
“왜?”
“내일 사부인 될 분 건물 계약하러 온다가 들린다고 연락 왔더라.”
“누가 사부인 될 사람이야? 그 아줌마가 여길 왜 와?”
“건물 주인이 보러 온다는 데 누가 말려? 이 기집애야, 이 일을 대체 어쩔 거냐고. 속 안 썩이는 자식새끼가 하나도 없어. 니 큰 언니 시집보내고 나면 나도 몰라. 환갑이 내일인데 자식들 뒷바라지 이제 나도 지쳤다. 찜질방 넘겨주고 난 니 아빠랑 여행이나 다닐란다.”
엄마는 여느 때보다도 지쳐 보이셨다. 서루 오빠 어머니 눈치를 안 보실 수 없겠지. 그래도 나는 절대 볼 수가 없다고.
퇴근을 하고 병진이와 집에 일찍 들어와서도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한 때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찜질방이 확실히 날아가 버린 것도 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서루 오빠 어머니의 대면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나 힘든데. 내가 준 사약까지 먹겠다고 해놓고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냐고.’
마음은 점점 민성오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갔다. 병진이도 어제보다도 마음이 괴로운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움을 담뿍 담은 채 아주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병진아! 이리 와봐.”
“어?”
“잠깐만 이리 와보라구.”
병진이를 끌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왜 그래? 무섭게.”
“우리 도망가자.”
“도망?”
“바다 보러 가자.”
“지금?”
“그래. 가서 며칠 있다 오자. 둘만의 여행. 좋지 않아?”
“멋져, 멋져! 내 마음을 읽은 것이야? 좋아, 너무 좋아.”
병진이는 나를 끌어안고 입맞춤까지 해대고 난리였다.
“조용히 해.”
“알았어, 알았다.”
“인터넷으로 시간부터 알아보자.”
“어디로 가지?”
“강릉이나 속초. 어디든. 그런데 너 돈 있어?”
“나 조금 있어. 월급 받은 지 얼마 안됐잖아.”
“좋아. 난 셋째 언니 신용카드를 몰래 가지고 올게. 혹시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
“우리 빨리 시간부터 알아보자. 벌써 7시 넘었잖아. 차가 있으려나.”
우리는 급하게 컴퓨터 앞으로 갔다. 병진이가 동서울고속터미널 홈 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있다, 있어. 8시 차하고, 9시 차.”
“9시 차 타는 걸로 하고 빨리 준비하자.”
“좋았어!”
급하게 옷가지를 챙기는 내 마음은 벌써 넓고 넓은 바다로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