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빌어먹기 딱 맞다.

왕방울200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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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찿아 보면 남을 대하는 떳떳한 도리라고 되어있다. 도리는 무엇인가 하면 마땅히 해야할 바른 길을 말함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체면이라는 말은 어떤 점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부정적 역활만 해오지 않았는가 싶다.

어떤 물건을 놓고 다툴 적에 남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제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것을 체면도 없이 덤빈다고 한다. 음식을 먹을 적에도 그렇다. 자기만 양껏 배를 채우는 것을 체면도 없이 먹어댄다고 한다. 다 옳은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체면을 차리는 일인 듯 싶기도 하다.

사실 옛날에는 손님을 가서 아무리 배가 곺아도 밥을 더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밥을 몇술갈 남겨 놓는 것으로서 배부르게 잘먹었습니다. 하는 인사를 대신했다.  음식이 귀한 시절이고 보니 어디 가서 밥을 더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긴 했을 것이다. 혹은 배고픈 하인들에게 베푸는 양반의 인심이 그런 풍습을 남겨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밥을 몇 수저 남겨 놓는 것도 체면을 차리는 일로 치부되기도 했다.

양반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안쬐인다고 하는 말도 체면에서 비롯된 말이다. 지조를 지킨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긴 하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체면과 관계가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무를 해다가 따뜻하게 불을 지피기보다는 추위에 사지가 오므러들망정 양반체면을 깍이면서 까지 그런 짓은 못하겠다 이거다.

궂은 일은 상민이나 하고 양반은 뒷짐을 지고 멀직이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던 것이 예날의 풍속이였던지라 양반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글이나 읽고 글씨나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 때문에 할 줄 모른다고 하는 말은 내가 바로 양반이다. 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수단쯤으로 이용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이렇게 체면은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는 못한다.로 우리의 정서를 이끌었던 것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그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면 밥 빌어먹기 딱 알맞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날에도 나는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한가지 예로 맞벌이 부부의 경우를 들어 보겠다. 아내가 직장에서 늦게 오는날 남편은 태평하게 앉아서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미 저녁 식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그러고 앉아있다.

이런 사람한테 배곺플텐데 밥을 해서 먹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밥을 할 줄 몰라서  그러고 있는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새같이 경쟁에서 지면 낙오되고 마는 세상에서 못한다고 하는 말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무조건 해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