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은 무릎 위에서 흰 비단 장갑을 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비영의 치장을 맡았던 시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이 아름다운 공주의 자태에 흐뭇해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비영은 일어서서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황궁 최고의 제단사가 수개월을 걸려 완성한 약혼복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금실과 최고급 비단으로 짜낸 천에 금박과 수많은 작은 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과 황금의 약혼복은 함께 태어난 것처럼 어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걸린 금과 진주로 된 목걸이는 그것을 선물한 제 2황비의 탁월한 안목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시녀 한 명이 약혼복과 함께 마련된 섬세하게 수가 놓인 신발을 한 벌 가지고 왔다. 신을 신기위해 발을 들어올리자 빳빳한 드레스의 천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주 경쾌한 소리였다.
비영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짧은 통로를 지나 마침내 대기실로 들어섰다. 비영의 어머니인 서방성의 왕비이면서 비류천의 누나이기도 한 그녀가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비영의 자비로운 미소는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왕비는 어머니로써 해 줄수 있는 모든 격려와 축하의 말을 퍼 부으며 감동스런 표정을 지었다. 비영은 딸로써 보여야 할 최소한의 미소만으로 화답했을 뿐 좀처럼 편안한 기분이 아니었다.
호기심 많은 몇 명의 벗들이 식전에 약혼녀를 볼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호기심을 억제 못해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들의 발랄한 목소리도 비영의 기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영은 억지 웃음을 짓는데 이제는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한바탕 떠들던 벗들이 무리지어 다시 물러 간 뒤, 또 한 명의 방문객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번 방문객은 확실히 효과적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벗이었다. 비영 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시녀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을 즐겁게 해 줄 사람이었다. 천계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슴에 품게 되는 아름다운 남자-증장천왕 제공이 모처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멋있었다.
제공은 금실로 수 놓은 황금색과 순결한 흰 색의 화려한 약혼복을 입고 꽃과 보석으로 엮은 화관을 쓴 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앉아있는 비영을 보자, 황홀한 찬사를 퍼부으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물론 그는 주변에 산재한 조연들의 미에 대해서도 찬사를 빼 놓지 않았다.
어디서나 제공은 인기관리가 확실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들이 기대하는 말들을 정확하게 꺼낼 줄 알았다. 제공의 마법같은 형용사들로 대기실은 최고의 미인들만 모인 극락으로 바뀌었다. 막힘없는 제공의 유쾌한 농담에 비영은 진심으로 웃었다.
" 이 아름다운 공주를 빼앗기고 만 것이 내 일생의 후회가 될거야,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워,비영. 내 가슴에 영원히 이 모습을 새겨두도록 하지."
제공은 사뭇 진지하게 말하여 비영의 발그레한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행동은 다른 여성들의 시선을 부러움에 얼룩지게 만들었다.
" 이건 관지한테 비밀이야..."
제공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비영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 약혼녀에게 입을 맞추었단 소식에 칼을 빼들지 않을 사내는 없거든. 게다..관지는 나를 평소에도 죽이고 싶어했으니까 말이지."
비영의 어머니는 굳어있던 딸의 얼굴 근육들이 부드럽게 펴 지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그녀는 현명하게 몇 명의 시녀들을 뺀 나머지 여성들을 대기실에서 몰아냈고, 여성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가야만 했다.
제공은 분위기가 침착해지자, 비영에게 몸을 숙여 조용하게 전달했다.
" 소예가 왔어. 좀 전에 제황성에 들어서는 걸 봤거든."
그 말에 비영은 벌떡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그녀의 어깨를 제공이 가볍게 붙들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지긋이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 아이구, 공주님은 소예가 아니라 관지와 약혼해야하는거라구."
제공은 못 말리는 비영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비영도 환한 미소를 띄었다. 소예가 왔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뻤다. 이제 두려움도, 불안함도 사라지고 있었다. 소예가 왔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다문천왕의 일가가 내렸다. 약혼식 장소인 제황성 황궁의 대연회장 입구에서 소예가 잠시 망설였다. 다문천은 그런 딸의 태도에 신경도 쓰지 않고 왕비와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고 덩그라니 남은 소예 곁에는 걱정스런 얼굴로 소진이 남아 있었다.
" 언니, 괜찮아요?"
소진이 언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고, 소예는 자신없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나타날 광경들이 머릿 속에 그려지면서 더럭 겁이 났다.
연회장으로 들어서던 손님들의 시선은 문 옆에 불안한 얼굴로 서 있는 소예를 반드시 거치고 있었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그 날만큼은 이 아름다운 여자가 누군지 눈치채지 못한 채, 다만 감탄의 눈길만 던질 뿐이었다.
소예는 확실히 여느 날과 다른 차림이었다. 의례 전투복이 일상화된 그녀는 격식있는 자리에도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나기 일수였다. 대충의 차림으로 다니는 그녀는 워낙 특이해서 시선을 잡을 지언정 아름다운 여자로써 관심을 끌어 본 적이 없었다.
소예가 마음을 달래 소진과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을 때, 대다수의 하객들이 입을 벌린 채 그녀에게 넋을 뺏기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소예는 도발적인 차림새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소예는 건강하고 잘 다져진 몸의 매혹적인 곡선이 드러나게끔 달라붙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과 가슴선 위까지 이어진 망사 사이사이 흑요석의 구슬들이 빛의 각도에 따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치마 사이로 그녀의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녀의 강렬한 붉은 곱슬머리는 어깨와 등을 따라 물결치면서 검은 연회복과 대조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남자들은 새삼스레 저 굉장한 아가씨의 정체가 무엇인가 고민할 정도였다.
입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던 관지는 붉은 꽃처럼 피어난 소예가 들어서는 순간, 다른 사람들처럼 잠시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그가 놀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보다 그녀의 예상치못한 등장과 차림새였다. 친한 친구인 그로써도 한 번도 소예의 저런 변신을 본 적이 없어 그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반가움으로 달려갔다.
소진은 달려오는 관지를 보는 언니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채고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예의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 감축드리옵니다, 황태자전하."
관지는 소예의 지나치리만치 엄격한 예절이 여전히 낯설었다.
" 아..고마워."
짧은 침묵이 흘렀고, 관지는 인자한 웃음을 보이며,
" 비영한테서 네가 군대를 관리하는 문제로 바쁘다는 이야길 들었어. 약혼식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말에 솔직히 기운이 빠졌거든. 그런데 이렇게 와 주다니, 고마워. 진심으로 말이야."
소예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괜찮아..괜찮아..' 하며 주문을 걸고 있었다.
"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걸. 네게 드레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
관지는 사심없이 말했지만 그 말은 소예를 한 순간에 흔들어버렸다. 소예는 급히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소진은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언니를 놓쳐버렸다.
성대한 약혼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도 소예는 홀로 남겨진 채 호박색의 대리석 기둥을 부여잡은 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수백번을 중얼거렸다.
" 여기서 그만 두자...나는 괜찮아..정말 괜찮아...."
천제와 제 2황비가 함께 들어서자 한 동안은 왕들과 대귀족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인사가 이어지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마침내 약혼식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천제의 주관으로 널리 둘의 언약이 공포되고 있었다.
비영은 약혼식 절차 내내 부지런히 눈을 돌려 소예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하객들 속에서 겨우 다문천왕 일가를 찾아냈을 때도 그녀의 눈에는 소예가 보이지 않았다. 관지와 성수(聖水) 를 나누어 마시는 동안에도, 촘촘하게 꼬인 청색과 홍색의 실을 둘로 나누어 가질 때도 그녀의 몸만 의식을 따를 뿐 생각은 다른 곳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소예는 없었고 의식은 끝나갔다.
의식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졌다. 제황성과 천계 전역에서는 불꽃이 터지면서 흥겨운 잔치가 시작되었다. 먹고 마실거리가 그 날은 천계 전역으로 제공되었다. 천계는 성인식 이후 다시 한 번 경사스런 분위기에 빠졌다.
소진은 약혼식을 끝내고 밝은 표정으로 하객들의 참석에 감사를 전하는 다정스런 두 약혼자들을 보면서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소예는 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소진은 약혼식 참석 후 전장으로 향하겠다며 억지를 부리면서 언니의 준비를 돕고 있었다. 시녀 한 명이 익명의 상대에게서 전해진 상자 하나를 들고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소예는 소진이 있는 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상자를 뜯었고 둘은 그 안에서 아름다운 검은 드레스를 발견했다. 흑요석 구슬들이 가득 달린 환상적인 드레스였다. 소진이 졸라대는 통에 소예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드레스를 입었고 놀라울만큼 그녀에게 치수가 딱 들어맞았다. 게다 그 드레스는 많이 드러난 정면과는 달리 후면은 소예의 상처난 등을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의문점이 소예와 소진의 머릿 속에 동시에 떠오른 순간 소예는 상자 바닥에서 카드 하나를 집어들었다.
카드의 내용을 확인하던 소예는 뭔가 끔찍한 것을 발견한 듯 눈동자가 커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 카드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춤을 추듯 카드가 허공을 돌아 옥빛 융단 위에 떨어질 때 소예는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간 뒤였고 소진은 조심스럽게 그 카드를 집어 들었다. 무시무시한 경고를 생각하며 그녀가 카드를 읽어내렸지만,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 드리운 어둠 속에서 피어 날 불꽃같은 공주여,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내일의 연회가 지루하지 않길 바라오-당신의 벗"
하지만 소진은 어째서 언니가 소스라치며 당황했는지 곧 알아차렸다. 글귀의 뒤에는 붉은 직인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태자궁을 상징하는 그 직인에 손 댈 수 있는 것은 관지 뿐이라는 것도 소진은 잘 알고 있었다.
초율(礎律) 제 41화
비영은 무릎 위에서 흰 비단 장갑을 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비영의 치장을 맡았던 시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이 아름다운 공주의 자태에 흐뭇해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비영은 일어서서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황궁 최고의 제단사가 수개월을 걸려 완성한 약혼복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금실과 최고급 비단으로 짜낸 천에 금박과 수많은 작은 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과 황금의 약혼복은 함께 태어난 것처럼 어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걸린 금과 진주로 된 목걸이는 그것을 선물한 제 2황비의 탁월한 안목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시녀 한 명이 약혼복과 함께 마련된 섬세하게 수가 놓인 신발을 한 벌 가지고 왔다. 신을 신기위해 발을 들어올리자 빳빳한 드레스의 천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주 경쾌한 소리였다.
비영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짧은 통로를 지나 마침내 대기실로 들어섰다. 비영의 어머니인 서방성의 왕비이면서 비류천의 누나이기도 한 그녀가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비영의 자비로운 미소는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왕비는 어머니로써 해 줄수 있는 모든 격려와 축하의 말을 퍼 부으며 감동스런 표정을 지었다. 비영은 딸로써 보여야 할 최소한의 미소만으로 화답했을 뿐 좀처럼 편안한 기분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하객들의 소란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즐거움과 기쁨이 배인 목소리들이었다. 비영은 오늘의 약혼식이 하객들의 축제일뿐 자기와 무관하게만 느껴졌다. 두렵고 허전하며 우울하기까지 했다.
호기심 많은 몇 명의 벗들이 식전에 약혼녀를 볼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호기심을 억제 못해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들의 발랄한 목소리도 비영의 기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영은 억지 웃음을 짓는데 이제는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한바탕 떠들던 벗들이 무리지어 다시 물러 간 뒤, 또 한 명의 방문객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번 방문객은 확실히 효과적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벗이었다. 비영 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시녀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을 즐겁게 해 줄 사람이었다. 천계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슴에 품게 되는 아름다운 남자-증장천왕 제공이 모처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멋있었다.
제공은 금실로 수 놓은 황금색과 순결한 흰 색의 화려한 약혼복을 입고 꽃과 보석으로 엮은 화관을 쓴 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앉아있는 비영을 보자, 황홀한 찬사를 퍼부으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물론 그는 주변에 산재한 조연들의 미에 대해서도 찬사를 빼 놓지 않았다.
어디서나 제공은 인기관리가 확실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들이 기대하는 말들을 정확하게 꺼낼 줄 알았다. 제공의 마법같은 형용사들로 대기실은 최고의 미인들만 모인 극락으로 바뀌었다. 막힘없는 제공의 유쾌한 농담에 비영은 진심으로 웃었다.
" 이 아름다운 공주를 빼앗기고 만 것이 내 일생의 후회가 될거야,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워,비영. 내 가슴에 영원히 이 모습을 새겨두도록 하지."
제공은 사뭇 진지하게 말하여 비영의 발그레한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행동은 다른 여성들의 시선을 부러움에 얼룩지게 만들었다.
" 이건 관지한테 비밀이야..."
제공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비영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 약혼녀에게 입을 맞추었단 소식에 칼을 빼들지 않을 사내는 없거든. 게다..관지는 나를 평소에도 죽이고 싶어했으니까 말이지."
비영의 어머니는 굳어있던 딸의 얼굴 근육들이 부드럽게 펴 지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그녀는 현명하게 몇 명의 시녀들을 뺀 나머지 여성들을 대기실에서 몰아냈고, 여성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가야만 했다.
제공은 분위기가 침착해지자, 비영에게 몸을 숙여 조용하게 전달했다.
" 소예가 왔어. 좀 전에 제황성에 들어서는 걸 봤거든."
그 말에 비영은 벌떡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그녀의 어깨를 제공이 가볍게 붙들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지긋이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 아이구, 공주님은 소예가 아니라 관지와 약혼해야하는거라구."
제공은 못 말리는 비영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비영도 환한 미소를 띄었다. 소예가 왔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뻤다. 이제 두려움도, 불안함도 사라지고 있었다. 소예가 왔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다문천왕의 일가가 내렸다. 약혼식 장소인 제황성 황궁의 대연회장 입구에서 소예가 잠시 망설였다. 다문천은 그런 딸의 태도에 신경도 쓰지 않고 왕비와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고 덩그라니 남은 소예 곁에는 걱정스런 얼굴로 소진이 남아 있었다.
" 언니, 괜찮아요?"
소진이 언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고, 소예는 자신없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나타날 광경들이 머릿 속에 그려지면서 더럭 겁이 났다.
연회장으로 들어서던 손님들의 시선은 문 옆에 불안한 얼굴로 서 있는 소예를 반드시 거치고 있었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그 날만큼은 이 아름다운 여자가 누군지 눈치채지 못한 채, 다만 감탄의 눈길만 던질 뿐이었다.
소예는 확실히 여느 날과 다른 차림이었다. 의례 전투복이 일상화된 그녀는 격식있는 자리에도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나기 일수였다. 대충의 차림으로 다니는 그녀는 워낙 특이해서 시선을 잡을 지언정 아름다운 여자로써 관심을 끌어 본 적이 없었다.
소예가 마음을 달래 소진과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을 때, 대다수의 하객들이 입을 벌린 채 그녀에게 넋을 뺏기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소예는 도발적인 차림새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소예는 건강하고 잘 다져진 몸의 매혹적인 곡선이 드러나게끔 달라붙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과 가슴선 위까지 이어진 망사 사이사이 흑요석의 구슬들이 빛의 각도에 따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치마 사이로 그녀의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녀의 강렬한 붉은 곱슬머리는 어깨와 등을 따라 물결치면서 검은 연회복과 대조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남자들은 새삼스레 저 굉장한 아가씨의 정체가 무엇인가 고민할 정도였다.
입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던 관지는 붉은 꽃처럼 피어난 소예가 들어서는 순간, 다른 사람들처럼 잠시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그가 놀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보다 그녀의 예상치못한 등장과 차림새였다. 친한 친구인 그로써도 한 번도 소예의 저런 변신을 본 적이 없어 그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반가움으로 달려갔다.
소진은 달려오는 관지를 보는 언니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채고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예의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 감축드리옵니다, 황태자전하."
관지는 소예의 지나치리만치 엄격한 예절이 여전히 낯설었다.
" 아..고마워."
짧은 침묵이 흘렀고, 관지는 인자한 웃음을 보이며,
" 비영한테서 네가 군대를 관리하는 문제로 바쁘다는 이야길 들었어. 약혼식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말에 솔직히 기운이 빠졌거든. 그런데 이렇게 와 주다니, 고마워. 진심으로 말이야."
소예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괜찮아..괜찮아..' 하며 주문을 걸고 있었다.
"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걸. 네게 드레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
관지는 사심없이 말했지만 그 말은 소예를 한 순간에 흔들어버렸다. 소예는 급히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소진은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언니를 놓쳐버렸다.
성대한 약혼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도 소예는 홀로 남겨진 채 호박색의 대리석 기둥을 부여잡은 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수백번을 중얼거렸다.
" 여기서 그만 두자...나는 괜찮아..정말 괜찮아...."
천제와 제 2황비가 함께 들어서자 한 동안은 왕들과 대귀족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인사가 이어지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마침내 약혼식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천제의 주관으로 널리 둘의 언약이 공포되고 있었다.
비영은 약혼식 절차 내내 부지런히 눈을 돌려 소예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하객들 속에서 겨우 다문천왕 일가를 찾아냈을 때도 그녀의 눈에는 소예가 보이지 않았다. 관지와 성수(聖水) 를 나누어 마시는 동안에도, 촘촘하게 꼬인 청색과 홍색의 실을 둘로 나누어 가질 때도 그녀의 몸만 의식을 따를 뿐 생각은 다른 곳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소예는 없었고 의식은 끝나갔다.
의식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졌다. 제황성과 천계 전역에서는 불꽃이 터지면서 흥겨운 잔치가 시작되었다. 먹고 마실거리가 그 날은 천계 전역으로 제공되었다. 천계는 성인식 이후 다시 한 번 경사스런 분위기에 빠졌다.
소진은 약혼식을 끝내고 밝은 표정으로 하객들의 참석에 감사를 전하는 다정스런 두 약혼자들을 보면서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소예는 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소진은 약혼식 참석 후 전장으로 향하겠다며 억지를 부리면서 언니의 준비를 돕고 있었다. 시녀 한 명이 익명의 상대에게서 전해진 상자 하나를 들고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소예는 소진이 있는 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상자를 뜯었고 둘은 그 안에서 아름다운 검은 드레스를 발견했다. 흑요석 구슬들이 가득 달린 환상적인 드레스였다. 소진이 졸라대는 통에 소예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드레스를 입었고 놀라울만큼 그녀에게 치수가 딱 들어맞았다. 게다 그 드레스는 많이 드러난 정면과는 달리 후면은 소예의 상처난 등을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의문점이 소예와 소진의 머릿 속에 동시에 떠오른 순간 소예는 상자 바닥에서 카드 하나를 집어들었다.
카드의 내용을 확인하던 소예는 뭔가 끔찍한 것을 발견한 듯 눈동자가 커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 카드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춤을 추듯 카드가 허공을 돌아 옥빛 융단 위에 떨어질 때 소예는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간 뒤였고 소진은 조심스럽게 그 카드를 집어 들었다. 무시무시한 경고를 생각하며 그녀가 카드를 읽어내렸지만,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 드리운 어둠 속에서 피어 날 불꽃같은 공주여,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내일의 연회가 지루하지 않길 바라오-당신의 벗"
하지만 소진은 어째서 언니가 소스라치며 당황했는지 곧 알아차렸다. 글귀의 뒤에는 붉은 직인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태자궁을 상징하는 그 직인에 손 댈 수 있는 것은 관지 뿐이라는 것도 소진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