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제가 실수 많았지요" 교수님 자리를 찿았더니 대뜸 무안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아닙니다 실수는요" 멋적은 대답으로 일단 자리를 청했다 중국인 부인도 세안을 마치고 나서 말끔히 얼굴을 다듬고 있었다 그기도 인사를 건넸다 2시간쯤 더 가면 종착역에 다달를거라고 한다 다왔다는건데... 구내내로 치면 엄청 지겨운 거리인데 여기서 2시간은 건너마을 택이다 중국에 오니 또 그렇게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차츰 중국인을 닮아가는건 아닌지 도무지 시간 관념이 없어지는것 같다 시계가 없어도 크게 답답하지 않는 세상 여행이라는게 그런걸까 아님 중국이란게 그런곳이란 말인가 중국 부인이 교수에게 뭐라고 애기를 했다 분명 나에대한 애기 였는데... 통역을해 주었다 "부인이 최고 멋장이라고 해요" 부인을 바라보았을떄 그녀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난 허리가 직각이 되도록 인사를 건넨다 이제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점차 다달은것 같았다 교수님은 명함을 건네 주었다 놀러 오라고... 난 다시 한국에 나오면 연락 주세요.. 라고 했다 종착역이었기에 모두들 여기서 내려야 했다 교수님은 여기서 또 기차를 타고 연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12시간을 더 타야 한다고 한다 엄청난 짐 잔치가 또 시작 되었다 또 한번 총알을 피해가는 군인들 처럼 엉켜있는 사람들이 추위를 향해 아우성 치고 있다 우린 짐꾼들을 시켜 짐들을 부쳐 버렸다 후배부인 아버지가 마중을 나왔다 북새통 속에 난 그저 먼 발치에서 인사를 건넨다 총총 걸음으로 60년대 같은 기차역을 빠져 나가는데 잠시 헤어졌던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짐들을 계단으로 옮기느랴 킁킁 거리고 있었다 난 얼른 하나를 들어 주었다 그것이 그분과 마지막 모습이었다 후배네도 헤어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줄 알았지만 기차에서 내리자 말자 외면한다 필요없다는 것인데... 그래도 인연은 인연인데... 무섭다는 생각 영하 20도는 넘음직한 길림역의 밖은 너무 추워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아직 집인 설안으로 갈려면 1시간 정도 더 차를 타야 한다 우린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후배 부인이 흥정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 음성을 높이느게 장똉이... 드디어 후배가 초를 치기 시작한다 왜 싸우냐고... 그렇게 흥정을 하고 우린 택시에 올랐다 기온도 따스하고 안정을 좀 찿자 부인이 말했다 그게 싸우는게 아니라고... 흥정하는 거라고... 후배 장인을 비로서 똑똑히 볼수 있었다 2년만에 친정에 가는건데 쉽사리 빠져나오지는 못할터... 적어도 3일 이상은 묵어야 하는데... 후배네 집도 아닌 처가에 얻어 지내야 하니 나에게 있어선 무척 중요한 일이다 순박한 모습이 우선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빙판길이고 눈으로 덥여 있는데 나니는 차들.. 어디를 봐도 체인을 감은 모습이 눈에 띄이질 않는다 겁이라곤 눈꼽 만치도 없는 여태껏 체인이라곤 사 보지도 않는 나지만 심기가 편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체인도 감지않는 차가 시속 100k를 달린다 더 달릴수도 있지만 더 이상 속도가 안 난다고 한다 그래도 맞은편에 차가 오면 멈추기도 하고 정말 잘한다 빙판길에 차가 달려와도 사람들은 피하지도 않는다 그냥 걸어간다 그래도 사고하나 나질 않는다 참 그네들은 행단보도가 없다 아예 만들어 놓질 않았다 대련에서도 그렇게 막 건네 다녔다 아무데나 그냥 건넨다 택시가 도착허니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외삼촌 내외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순박한 모습들이고 무척 잘해 주었다 무엇보다 안심이다 때가 이미 점심 시간을 지넀으므로 우선 식사부터 나왔다 아니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술이 먼저 나온다 헉~ 도수가 50도... 어젯밤도 무척 마셨는데.. 한 모금도 넘어가질 않을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울리니 술술 넘가는게 아닌가 난 처음이고 식사를 차릴동안 우선 술상부터 나오나 보다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네들은 식사전 술을 먼저 마신다 우리나라 컵 정도 술잔에 술을 가득 붓고서 그걸 다 마시고 밥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울 나라의 원샵은 절대 금물 서로 권하며 약간씩 약간씩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다 소련인들은 보드카를 마신다 70도가 넘는술... 여기는 50도가 주종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술이 있어야 그 추위를 이겨낼수 있다는것 글구 여기 술은 50도가 주종이지만 소주처럼 꺨떄 머리가 아프다거나 휴유증이 없다 곡물로 제조해서 그런가.. 여하튼 속 쓰림도 없이 꺠끗하다 식사후 급한 마음에 거리를 한바퀴 둘러 보았다 모든게 빨리 이루워 줬으면 좋을련만 ..후배 녀석은 여기서 일주일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상에... 별수 없었다 혼자서 내려갈수도 없는일 방을 한칸 내 주었다 우리나라에선 찿아볼수도 없는 낡은 아파트 였지만 실내는 무척 따스했다 방 3칸이 있었는데 데리고 있는 조카에게 한칸을 내어 주고 후배네 가족들과 장인네가 한방에서 잤다 난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미안하기 이를떄 없어 다른 조치를 강구 했지만 굳이 말렸다 그네들은 그만큼 손님 접대에 성심을 다 한다 성경 아브라함... 롯... 어디에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자기 딸을 내 주었다는 애기 비로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후배네는 양 아버지네를 방문해야 한다며 나갔다 그때부터 그들은과 나는 일주내내 누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는데... 난 불면증 땜에 밤이 꼬박 새도록 내가 준비해간 자료들과 계획을 잡는데 여념이 었었다 뭐 달리 할일도 없었으니 그 자료들을 공부할수 있는게 무척 고마웠다 그랬는지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장인 분들이 날 무척 잘 보시었다 그 때문인지 후배와 그 부인도 날 대하는 태도가 무척 호의적이었고 다시금 앙금을 없애고 가까워질수 있었다 난 그들을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불렀다 어르신들 호칭엔 그 보다 더 좋을꼐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날 무슨 일이라도 해낼 신처럼 여겼고 드디어는 손을 잡고 후배들을 부탁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게 나의 큰 흠 이었다 옛날 어느 회사에 들어갔을때가 생각난다 물론 사이가 무척 안 좋은 큰형과 그회사 사장이 친구였다 처음 들어간 나에게 장부 정리를 맡겼다 난 처음 맡은 일이라 밤을 새워 해 놓았다 처음해 보는 일이라 전에 퇴사한 녀석에게 전화를 해 물어가면 마쳐 놓았는데.. 해 놓구두 뭐가 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녀석이 뭘 빼돌렸는데 나에게 잘 가르쳐 줄리는 만무하고 그걸 모두 다시 정리 하라고 했고 난 당연히 맞는걸 정리하니 맞아야 하는데 안 맞으니 그기서 내가 잘못 되었나 보다 하고 그렇게 혼땀~ 결국 모두 안 맞는 장부들은 내 밀었는데... 담날은 샘플 발송을 맡겼다 에이젼트가 무언지도 모르는 나에게.. 세계 각지로 보낼 샘플을 30개씩이나... 결국 휴일에도 혼자 나와 열심히 포장을 했다 각 나라.. 회사가 명기된 곳은 칼라 디자인등을 공장에서 구하든 어쩠던 보내면 되는데 이렁~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모두들 잘 받았다고 연락이 온다 나 참~ 난 모두 엉터리로 보낸걸루 아는데... 사장 동생(상무)이 날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 당시 운전도 할줄 알고 해서(90년) 며칠후 차도 하나 뽑아 준다고 한다 결국 며칠후 아무말 없이 나와 버렸다 결정적인 이유는 매일 밤 10시가 넘게 사람을 잡아두고 월급도 쥐 꼬리 만큼 준다는 거였지만... 윗 사람이 모두 퇴근하기 전에는 그냥 자릴르 지켜야 했다 때론 장부책이 날아가고 .. 그렇게 10시까지 앉아 있어야 허니.. 그게 죽을맛~ 날 너무 과대평가 한다는것...여하튼 난 그게 젤 부담 이었다 담날 삼촌네에 간다고 했다 우린 세발 택시를 탔는데 그건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한국 돈으로 200만 정도면 장만할수 있다는데 그네들은 그것이 재산 목록 1호였다 기본 요금은 2원 4발 택시는 3원으로 좀 비싸다 하지만 택시나 오토바이나 다를게 없었다 택시 또한 티코 수준이니... 모든곳이 얼어 붙었다 영하 20도를 넘기는 추위지만 그래도 거리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 다닌다 단층 아파트들이 즐비했고 위에 쓴것 처럼 빙판위로 차들이 또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 다닌다 그렇게 서로 극히 위험한 지경이면 온갖 욕을해 대면 싸움질도 한다 중국은 개개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2억이 사람인데... 숙모는 잔잔히 부셔지는 성격이었다 그들은 봄이오면 하는 일들을 애기해 주었는데 산에 가서 더덕두 캐구 오가피 순이랑 여러 산나물도 따며 즐겁게 소풍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외 삼촌이 호수에서 낚시를 해서 잡았다는 붕어 매운탕이 올랐는데 크기가 손바닥으로 가리기 힘들다 그네들의 애기는 마치 꿈꾸는 동산을 연상케 한다 꼭 봄이면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 오후에 거리를 나와 휴대폰 매장과 여러곳을 둘러 보았다 근처에 통신사가 있어 여러개의 점포가 널려 있었다 부인이 휴대폰 매장을 해 보겠다나 어찌나 여하튼 여기서 가게를 열어주면 보따리는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오는 물품을 소화해 낼수 있으니... 애니콜이 판을 친다 그런데... 가격이 국내값 보다 싸다 이렁~ 휴대폰 매장에선 값도 깎을수 없으니 적힌게 실제 가격인 셈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 애니콜은 중국 생산 품이라고 한다 여러 매장을 둘러 보았지만 기격이 오히려 국내보다 비싸다 다시금 중국인들의 한달 워급을 따져본다 이해가 안되긴 매 일반~ 뭘 하나 장만할려두 한달치 월급을 넣어야 하니 못 구입할수 밖에...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이우는 틀릴것이다 모두들 그기서 물건을 때 오는 형국이니 여기선 소매값이 치고..등등 복잡한 계산이 연산되었다 낑~ 밤엔 양 아버지가 초대를 한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조선족 식당을 정했다 그네들은 사먹는게 습관화 되었으니 음식값두 그만큼 싸고 음식점도 또한 즐비하다 음식을 주문 하는데 종류를 7가지나 주문한다 이렁~
중국여행... 보따리 기행기
"어젯밤에 제가 실수 많았지요"
교수님 자리를 찿았더니 대뜸 무안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아닙니다 실수는요"
멋적은 대답으로 일단 자리를 청했다
중국인 부인도 세안을 마치고 나서 말끔히 얼굴을 다듬고 있었다
그기도 인사를 건넸다
2시간쯤 더 가면 종착역에 다달를거라고 한다
다왔다는건데... 구내내로 치면 엄청 지겨운 거리인데 여기서 2시간은 건너마을 택이다
중국에 오니 또 그렇게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차츰 중국인을 닮아가는건 아닌지
도무지 시간 관념이 없어지는것 같다
시계가 없어도 크게 답답하지 않는 세상
여행이라는게 그런걸까
아님 중국이란게 그런곳이란 말인가
중국 부인이 교수에게 뭐라고 애기를 했다
분명 나에대한 애기 였는데...
통역을해 주었다
"부인이 최고 멋장이라고 해요"
부인을 바라보았을떄 그녀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난 허리가 직각이 되도록 인사를 건넨다
이제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점차 다달은것 같았다
교수님은 명함을 건네 주었다
놀러 오라고...
난 다시 한국에 나오면 연락 주세요.. 라고 했다
종착역이었기에 모두들 여기서 내려야 했다
교수님은 여기서 또 기차를 타고 연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12시간을 더 타야 한다고 한다
엄청난 짐 잔치가 또 시작 되었다
또 한번 총알을 피해가는 군인들 처럼 엉켜있는 사람들이 추위를 향해 아우성 치고 있다
우린 짐꾼들을 시켜 짐들을 부쳐 버렸다
후배부인 아버지가 마중을 나왔다
북새통 속에 난 그저 먼 발치에서 인사를 건넨다
총총 걸음으로 60년대 같은 기차역을 빠져 나가는데
잠시 헤어졌던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짐들을 계단으로 옮기느랴 킁킁 거리고 있었다
난 얼른 하나를 들어 주었다
그것이 그분과 마지막 모습이었다
후배네도 헤어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줄 알았지만 기차에서 내리자 말자 외면한다
필요없다는 것인데...
그래도 인연은 인연인데... 무섭다는 생각
영하 20도는 넘음직한 길림역의 밖은 너무 추워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아직 집인 설안으로 갈려면 1시간 정도 더 차를 타야 한다
우린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후배 부인이 흥정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 음성을 높이느게 장똉이...
드디어 후배가 초를 치기 시작한다
왜 싸우냐고...
그렇게 흥정을 하고 우린 택시에 올랐다
기온도 따스하고 안정을 좀 찿자 부인이 말했다
그게 싸우는게 아니라고... 흥정하는 거라고...
후배 장인을 비로서 똑똑히 볼수 있었다
2년만에 친정에 가는건데 쉽사리 빠져나오지는 못할터...
적어도 3일 이상은 묵어야 하는데... 후배네 집도 아닌 처가에 얻어 지내야 하니 나에게 있어선 무척 중요한 일이다
순박한 모습이 우선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빙판길이고 눈으로 덥여 있는데 나니는 차들.. 어디를 봐도 체인을 감은 모습이 눈에 띄이질 않는다
겁이라곤 눈꼽 만치도 없는 여태껏 체인이라곤 사 보지도 않는 나지만 심기가 편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체인도 감지않는 차가 시속 100k를 달린다
더 달릴수도 있지만 더 이상 속도가 안 난다고 한다
그래도 맞은편에 차가 오면 멈추기도 하고 정말 잘한다
빙판길에 차가 달려와도 사람들은 피하지도 않는다
그냥 걸어간다
그래도 사고하나 나질 않는다
참 그네들은 행단보도가 없다
아예 만들어 놓질 않았다
대련에서도 그렇게 막 건네 다녔다
아무데나 그냥 건넨다
택시가 도착허니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외삼촌 내외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순박한 모습들이고 무척 잘해 주었다
무엇보다 안심이다
때가 이미 점심 시간을 지넀으므로 우선 식사부터 나왔다
아니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술이 먼저 나온다
헉~ 도수가 50도...
어젯밤도 무척 마셨는데.. 한 모금도 넘어가질 않을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울리니 술술 넘가는게 아닌가
난 처음이고 식사를 차릴동안 우선 술상부터 나오나 보다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네들은 식사전 술을 먼저 마신다
우리나라 컵 정도 술잔에 술을 가득 붓고서 그걸 다 마시고 밥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울 나라의 원샵은 절대 금물
서로 권하며 약간씩 약간씩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다
소련인들은 보드카를 마신다
70도가 넘는술...
여기는 50도가 주종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술이 있어야 그 추위를 이겨낼수 있다는것
글구 여기 술은 50도가 주종이지만 소주처럼 꺨떄 머리가 아프다거나 휴유증이 없다
곡물로 제조해서 그런가.. 여하튼 속 쓰림도 없이 꺠끗하다
식사후 급한 마음에 거리를 한바퀴 둘러 보았다
모든게 빨리 이루워 줬으면 좋을련만 ..후배 녀석은 여기서 일주일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상에... 별수 없었다
혼자서 내려갈수도 없는일
방을 한칸 내 주었다
우리나라에선 찿아볼수도 없는 낡은 아파트 였지만 실내는 무척 따스했다
방 3칸이 있었는데 데리고 있는 조카에게 한칸을 내어 주고 후배네 가족들과 장인네가 한방에서 잤다
난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미안하기 이를떄 없어 다른 조치를 강구 했지만 굳이 말렸다
그네들은 그만큼 손님 접대에 성심을 다 한다
성경 아브라함... 롯... 어디에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자기 딸을 내 주었다는 애기
비로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후배네는 양 아버지네를 방문해야 한다며 나갔다
그때부터 그들은과 나는 일주내내 누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는데...
난 불면증 땜에 밤이 꼬박 새도록 내가 준비해간 자료들과 계획을 잡는데 여념이 었었다
뭐 달리 할일도 없었으니 그 자료들을 공부할수 있는게 무척 고마웠다
그랬는지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장인 분들이 날 무척 잘 보시었다
그 때문인지 후배와 그 부인도 날 대하는 태도가 무척 호의적이었고 다시금 앙금을 없애고 가까워질수 있었다
난 그들을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불렀다
어르신들 호칭엔 그 보다 더 좋을꼐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날 무슨 일이라도 해낼 신처럼 여겼고 드디어는 손을 잡고 후배들을 부탁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게 나의 큰 흠 이었다
옛날 어느 회사에 들어갔을때가 생각난다
물론 사이가 무척 안 좋은 큰형과 그회사 사장이 친구였다
처음 들어간 나에게 장부 정리를 맡겼다
난 처음 맡은 일이라 밤을 새워 해 놓았다
처음해 보는 일이라 전에 퇴사한 녀석에게 전화를 해 물어가면 마쳐 놓았는데.. 해 놓구두 뭐가 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녀석이 뭘 빼돌렸는데 나에게 잘 가르쳐 줄리는 만무하고 그걸 모두 다시 정리 하라고 했고 난 당연히 맞는걸 정리하니 맞아야 하는데 안 맞으니 그기서 내가 잘못 되었나 보다 하고 그렇게 혼땀~
결국 모두 안 맞는 장부들은 내 밀었는데...
담날은 샘플 발송을 맡겼다
에이젼트가 무언지도 모르는 나에게.. 세계 각지로 보낼 샘플을 30개씩이나...
결국 휴일에도 혼자 나와 열심히 포장을 했다
각 나라.. 회사가 명기된 곳은 칼라 디자인등을 공장에서 구하든 어쩠던 보내면 되는데 이렁~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모두들 잘 받았다고 연락이 온다
나 참~ 난 모두 엉터리로 보낸걸루 아는데...
사장 동생(상무)이 날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
당시 운전도 할줄 알고 해서(90년) 며칠후 차도 하나 뽑아 준다고 한다
결국 며칠후 아무말 없이 나와 버렸다
결정적인 이유는 매일 밤 10시가 넘게 사람을 잡아두고 월급도 쥐 꼬리 만큼 준다는 거였지만...
윗 사람이 모두 퇴근하기 전에는 그냥 자릴르 지켜야 했다
때론 장부책이 날아가고 .. 그렇게 10시까지 앉아 있어야 허니.. 그게 죽을맛~
날 너무 과대평가 한다는것...여하튼 난 그게 젤 부담 이었다
담날 삼촌네에 간다고 했다
우린 세발 택시를 탔는데 그건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한국 돈으로 200만 정도면 장만할수 있다는데 그네들은 그것이 재산 목록 1호였다
기본 요금은 2원 4발 택시는 3원으로 좀 비싸다
하지만 택시나 오토바이나 다를게 없었다
택시 또한 티코 수준이니...
모든곳이 얼어 붙었다
영하 20도를 넘기는 추위지만 그래도 거리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 다닌다
단층 아파트들이 즐비했고 위에 쓴것 처럼 빙판위로 차들이 또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 다닌다
그렇게 서로 극히 위험한 지경이면 온갖 욕을해 대면 싸움질도 한다
중국은 개개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2억이 사람인데...
숙모는 잔잔히 부셔지는 성격이었다
그들은 봄이오면 하는 일들을 애기해 주었는데 산에 가서 더덕두 캐구 오가피 순이랑 여러 산나물도 따며 즐겁게 소풍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외 삼촌이 호수에서 낚시를 해서 잡았다는 붕어 매운탕이 올랐는데 크기가 손바닥으로 가리기 힘들다
그네들의 애기는 마치 꿈꾸는 동산을 연상케 한다
꼭 봄이면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
오후에 거리를 나와 휴대폰 매장과 여러곳을 둘러 보았다
근처에 통신사가 있어 여러개의 점포가 널려 있었다
부인이 휴대폰 매장을 해 보겠다나 어찌나
여하튼 여기서 가게를 열어주면 보따리는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오는 물품을 소화해 낼수 있으니...
애니콜이 판을 친다
그런데...
가격이 국내값 보다 싸다 이렁~
휴대폰 매장에선 값도 깎을수 없으니 적힌게 실제 가격인 셈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 애니콜은 중국 생산 품이라고 한다
여러 매장을 둘러 보았지만 기격이 오히려 국내보다 비싸다
다시금 중국인들의 한달 워급을 따져본다
이해가 안되긴 매 일반~
뭘 하나 장만할려두 한달치 월급을 넣어야 하니 못 구입할수 밖에...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이우는 틀릴것이다
모두들 그기서 물건을 때 오는 형국이니 여기선 소매값이 치고..등등 복잡한 계산이 연산되었다 낑~
밤엔 양 아버지가 초대를 한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조선족 식당을 정했다
그네들은 사먹는게 습관화 되었으니 음식값두 그만큼 싸고 음식점도 또한 즐비하다
음식을 주문 하는데 종류를 7가지나 주문한다
이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