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wi (키위) - 42. 진심이 통한 바닷가 풍경

나비20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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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wi - 42


우리의 키스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큼 점점 더 광포함을 띠어갔다. 때때로 서로의 입술을 거칠게 물기도 했고, 두 팔은 서로의 몸을 뱀처럼 휘감아 버렸다. 그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려 얼굴 전체가 눈물로 젖게 되었다.


“다리 아파?”


어느새 젖먹이 아이처럼 오빠의 다리에 앉게 되었는데 아마도 시간이 흐르자 불편했던지 오빠는 다리를 조금 움직였다.


“괜찮아.”

“아프면서 괜찮다고 하네. 앞으로 아픈 것 숨기기 없기 해.”

“알았어. 조금, 아주 조금 아팠어.”


내 얼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하지만 씻고 오지 않는 한 얼굴을 닦아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나 씻고 올게.”


오빠는 품에서 벗어나 일어나려는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같이 씻자.”

“아니야. 세수만 하고 올 거야.”


나는 화들짝 놀라 욕실로 향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있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같이 씻자는 말을 하다니.

욕실 거울 속 내 모습은 정말 형편이 없었다. 눈은 당연히 퉁퉁 부어있었고, 술에 취한 빨간 눈에. 눈물 중에 벌써 말라버린 것도 있는지 얼굴 전체에 얼룩이 앉은 듯 보였다. 방금 전까지 이 얼굴을 가깝게 들이대고 있었다니 아주 창피한 노릇이었다.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조금은 차갑게 온도를 맞춰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병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 나처럼 벌써 화해했겠지. 영규 오빠도 화해할 생각이 있으니까 왔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자 어쩌면 그 두 사람 오늘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병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곳에서 오빠랑 단 둘이 밤을 보내야 한다는 건가? 그 것이 어떤 사건을 만들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일부러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졸리기는커녕 정신은 더욱 멀쩡해졌지만 일부러라도 졸린 척 얼른 잠에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졸리다. 빨리 자야겠어.”


욕실에서 한 발을 내딛으면서 말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졸려? 나 배고픈데. 같이 요기라도 하고 자자.”

“미안해.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지 속도 편하지가 않고, 졸음만 쏟아져. 배고프면 오빠 혼자 먹고 자. 냉장고에 먹을 거 조금 있을 거야. 먼저 잘게. 미안해.”


서둘러 침대를 차지하고 이불을 돌돌 말고는 벽을 보며 누웠다. 오빠는 정말 배고팠는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등 여러 소음들이 들렸다. 난 소리로 그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잠들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잠시 후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참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천창을 바라보고 목을 헹궈내고 있다, 그런 상상이 가능한 소리가 났다. 경쾌한 물소리였다. 그리고 욕실 문이 열리고 내게 점점 다가왔다. 그는 내가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자는 척을 해야 하는 건지 자다 일어난 척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한 것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었다.


“팔베개 해줄게. 머리 좀 들어봐.”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얌전히 그의 말에 따라 그의 팔을 베었다. 정말 좋은 느낌이라  점점 그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나의 입술이 그의 목 언저리에 닿았을 때 나의 허리께에 있던 그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왔다. 내 입술은 뜨거운 김을 내 뿜었고, 그도 팔에 힘을 실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내 가슴이 그의 가슴에 밀착이 되었다. 뜨거운 기운이 이불 속을 순식간에 달구어 등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 옷 벗자.”

“······.”

“네 몸이 보고 싶어.”


도리짓을 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로 솔직해지기, 서로 숨기기 없기.”


어서 방금 전한 약속을 상기해내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먼저 숨기질 말아야지.”


장난스런 내 말에 그는 웃옷을 벗어 던졌다. 우유 빛이 돌면서도 탄탄한 몸이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워서 그저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다.


“벗겨줘?”


그의 손은 다시 내 옷 속으로 들어왔고, 속옷은 풀은 후에 웃옷을 벗겨냈다.


“이쁘다.”


나는 애써 감탄스러움을 감추고 있었건만 그는 마음껏 감탄해했다.


“얼굴보다 더 예쁜데.”

“오빠도 그래. 얼굴보다 몸이 나은데.”


장난스런 말에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부터 입 맞추기를 시작했다. 그의 혀가 내 분홍 가슴에 닿았을 때는 그와 내가 정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둘 사이에 쉽게 넘을 수 있는 경계가 있었다면 그마저도 모두 녹아버린 듯한. 너무도 달콤하고 강한 즐거움이었지만 이쯤에서 관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슬쩍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아직은 싫어.”


점점 밑으로 내려가던 그의 입술은 다시 내 입술을 덮었고,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입술만을 탐했다. 잠시 후 그는 이불 속을 빠져 나와 내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참고 있으니까 그 이불 속에서 나오면 안돼.”


배려해주는 모습이 어느 때 보다도 멋있어 보였다.


“오빠는 바닷가 와서 무슨 생각했어?”

“니 생각만 했지. 내 욕심과 싸우고. 결국 욕심이 이겨버렸지만.”

“나 그동안 생각한 게 많아. 오빠를 만나기 전엔 꿈도 없었어. 부모님 돈으로 일찍 시집가서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렇게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오빠도 군대에 가야 할 거고. 나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꿈이 생겼어. 어느 정도 인정받는 성공도 하고 싶어졌고.”

“꿈? 어떤 꿈인데?”

“셋째 언니처럼 유학 갈 거야. 오빠가 군대에 간 동안. 가서 공부도 하고 세상 구경도 하고. 돌아올 때쯤엔 발 맛사지 전문인이 되는 거지. 그동안은 언니에게 열심히 배우고, 학원도 다닐려고.”

“멋지다. 난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진 못했는데. 그래도 결심한 것들이 많아. 많이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게으른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게으른 건 나도 용서 안 해!”

“어떻게 할 건데? 때릴 거야? 돈 벌어 오라고?”

“아니. 뽀뽀 안 해 줄 거야.”

“그건 너무 잔인하다. 안 해주면 억지로 하면 되지 뭐.”


그는 이불위로 올라와 몸으로 눌렀다. 팔도 뺄 수 없어 반항한다는 건 기껏 고개를 돌리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를 피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했다!”

“뭐야? 억지로 하는 게 어디 있어? 삐질 거야!”

“삐지면 또 한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에게 소리쳤지만 여전히 장난기 어린 웃음만 지었다. 그날 밤 함께 만들어 갈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다.


“우리 적금 들자.”

“적금?”

“일주일에 2만 5천원씩. 한달에 한사람 당 10만원, 20만원을 매달 모으는 거야. 큰 돈은 아니지만 나중에 여행갈 때 써도 되고. 근사한 생일 선물을 해줄 수도 있잖아.”

“혜림이가 그런 면이 있는지 몰랐네.”

“내가 왜? 그리고 동전은 따로 모으는 거야. 어때, 좋지?”


돈을 모으고, 군대에 언제 가서 결혼은 언제쯤 할지까지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해가 뜨려나봐.”


그는 커튼을 열어 젖혔다.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둘이 함께 맞는 첫 아침이라는 점에 들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평생의 아침도 그와 함께이리라. 


“내게 준 첫 아침 고마워.”


그는 내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고, 나는 대답대신 그의 손바닥에 입을 맞춰 주었다.

내가 맞이한 어느 아침보다도 햇살이 눈부신 멋진 아침이었다.

 

 

 

이제 두편 남았습니다.

에필로그 미리 올려드려요

키위에 애정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주시길 부탁드려요.

키위


결혼을 앞둔 21살. 내게 사랑을 말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삶이란 키위 껍데기 같다는 것을.



에필로그


어느새 29살이었다. 26살 이후로 매년 난 26살이었는데 올해는 내 나이를 겸허히 받아드렸다. 두 손으로 그 무게를 고스란히 받고 보니 20대를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급하게 들었다. 서른이 되어 감상적인 기분으로 돌아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좀 더 냉정하게 나의 20대를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내 삶의 분석표가 키위였던 셈이다.

키위란 제목을 처음 지어놓고 나는 매우 흡족하였다. 상큼 발랄할 젊음을 표현해주는 제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키위를 처음 쓸 때는 내 20대의 이야기가 철이 없긴 해도 새콤한 키위 같은 맛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키위]는 키위 껍데기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20대가 교묘하게 투영된 것이었다. 새콤했던 20대의 시작이 키위 껍데기처럼 마감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완결을 놓고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기쁘진 않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이상한 쓴 웃음이다.


키위를 써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독자들과의 싸움이었다. 키위는 벌써 2000명 넘는 독자가 읽어준 소설이다. 소리쳐 화내는 독자는 없었지만 그들은 주인공 ‘키위’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돈 있고 자신에게도 충실한 남자를 버리고 경제력 없는 남자에게 간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 다는 독자도 있었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알고 있다. 키위의 선택은 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20대 아닌가?


끝까지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하는 한 독자가 있었다. 나와 같은 29살 유부녀였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섭섭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날 통화에서 그런 섭섭함을 모두 지울 수 있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선택이 키위와 같아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안 좋은 남자를 두고 사랑하는 현재 남편을 택했는데 힘겹다고.

“그래도 다시 선택한다면 같을 지도 모르는 거잖아.”

내가 말했다.

“그게 그렇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키위 껍질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20대는 곧 끝나고, 난 새로운 30대를 받아드려야 한다. 이제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나이 서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30이란 것은 어떤 느낌일지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참외 같을까? 수박 같을까? 껍질만 단단한 수박처럼 단단한 척하고 있지만 속은 붉고 물만 가득한 것 아닐까? 기분 좋은 상상이다.


[키위]가 희망으로 끝난 것처럼 내 앞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여러분도 [키위]의 희망을 잊지말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끝을 맺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