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이 되는 시점에서부터 핸드폰이라는 기계는 일상속으로 깊숙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99년도 오티때의 말판돌리기(오티 끝나고 한 마디씩 적어주는..)를 다시금 읽어보면.. 당시 연락처를 보면 선배들은 상당수가 삐삐를 소지하고 있었고..새내기 99(당시에는 말이다..ㅡ.ㅡ;)들은 핸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99년도 후반을 넘기면서 그나마의 삐삐 소지자들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00년도 말판돌리기에서 나타난다.. 연락처를..삐삐로 기입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핸드폰이라는 것은 젊은 현대인이 누리는 문명이 아니라,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나 어린 유치원생까지도 포함시킨 현대의 문화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휴대할 수 있는 연락수단으로서 그 자리를 공고히 차지했다는 말이다..
흔히.. 기계..라는 이미지는 상당히 삭막한 것으로 인식된다. 현대를 이끈 경제 기반이 된 것도 기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현대의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이끈 것도 기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들때문에.. 컴퓨터 인터넷의 확산으로 우리는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일도 줄어들었고, 편지라는 것도 기계를 마주하며 쓰게 되었다.. 그리고 핸드폰 문자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나마의 편지..라는 부분도 다소 약해진 듯하다..
너무나 간단히 우리는 문자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아울러 발달한 이모티콘..이라는 문화가.. 우리의 감정을 대변해 는 듯하다. 무엇이 좋은점인지, 나쁜점인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한가지..
이 기계라는 것이 편의주에에 물들어버려 우리의 감정을 빼앗아 간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다.. 나 자신에게 향한 확신이지만 말이다..
잊혀져가는 참혹하고 슬픈 사건들.. 지난 911테러 당시에도 그랬고,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에도 핸드폰이라는 현대문명의 상징이 되는 기계로써 마음을 아리는 사연들이 전해졌었다.
테러범들에 의해(밝혀진 바에 따르면..) 무역센터로 향하는 비
행기 안에서..
남편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세지도 핸드폰에 의한 것이었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남기는 메세지도 핸드폰에 의한 것이었다. 최후의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남편의 결의를 전한 것도 핸드폰이었다.
그리고 연기에 휩싸인 지하철 안에서 다급히 엄마에게 전해진 메세지도 핸드폰의 문자서비스에 의한 것이었고, 마지막 절규를 전달한 것도 핸드폰이었다..
우리는 기계에 의해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감정을 지배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바쁘게 살아가는 단절된 생활이라는 공간에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지 않을까?
기계적으로 눌러보았던.. 핸드폰 버튼이지만..
그 번호를 누르면서 상대를 떠오르며 추억의 한 귀퉁이를 떠올려보는 여유만 가질수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결코 기계에 지배당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가끔씩 연락을 하는 친구들과의 대화의 끈을 조심스럽게 연결해 주는 핸드폰이, 기계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와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전령의 신.. 핸드폰이 이 전령의 신과 같지는 않을까?
멀리 떨어져 있고,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아지는 이때.. 핸드폰은 살짝 울려주고,, 그것만으로도 감격에 잠길수 있다는 현실.. 누군가에게 잊혀져가고 있지 않구나..라는 존재감을 심어주고.. 좋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그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한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핸드폰을.. 그저 하나의 기계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핸드폰에 관한 감상..
내가 대학생이 되는 시점에서부터 핸드폰이라는 기계는 일상속으로 깊숙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99년도 오티때의 말판돌리기(오티 끝나고 한 마디씩 적어주는..)를 다시금 읽어보면..
당시 연락처를 보면 선배들은 상당수가 삐삐를 소지하고 있었고..새내기 99(당시에는 말이다..ㅡ.ㅡ;)들은 핸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99년도 후반을 넘기면서 그나마의 삐삐 소지자들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00년도 말판돌리기에서 나타난다.. 연락처를..삐삐로 기입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핸드폰이라는 것은 젊은 현대인이 누리는 문명이 아니라,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나 어린 유치원생까지도 포함시킨 현대의 문화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휴대할 수 있는 연락수단으로서 그 자리를 공고히 차지했다는 말이다..
흔히.. 기계..라는 이미지는 상당히 삭막한 것으로 인식된다.
현대를 이끈 경제 기반이 된 것도 기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현대의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이끈 것도 기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들때문에..
컴퓨터 인터넷의 확산으로 우리는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일도 줄어들었고, 편지라는 것도 기계를 마주하며 쓰게 되었다..
그리고 핸드폰 문자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나마의 편지..라는 부분도 다소 약해진 듯하다..
너무나 간단히 우리는 문자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아울러 발달한 이모티콘..이라는 문화가.. 우리의 감정을 대변해 는 듯하다.
무엇이 좋은점인지, 나쁜점인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한가지..
이 기계라는 것이 편의주에에 물들어버려 우리의 감정을 빼앗아 간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다..
나 자신에게 향한 확신이지만 말이다..
잊혀져가는 참혹하고 슬픈 사건들..
지난 911테러 당시에도 그랬고,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에도 핸드폰이라는 현대문명의 상징이 되는 기계로써 마음을 아리는 사연들이 전해졌었다.
테러범들에 의해(밝혀진 바에 따르면..) 무역센터로 향하는 비
행기 안에서..
남편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세지도 핸드폰에 의한 것이었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남기는 메세지도 핸드폰에 의한 것이었다.
최후의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남편의 결의를 전한 것도 핸드폰이었다.
그리고 연기에 휩싸인 지하철 안에서 다급히 엄마에게 전해진 메세지도 핸드폰의 문자서비스에 의한 것이었고, 마지막 절규를 전달한 것도 핸드폰이었다..
우리는 기계에 의해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감정을 지배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바쁘게 살아가는 단절된 생활이라는 공간에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지 않을까?
기계적으로 눌러보았던.. 핸드폰 버튼이지만..
그 번호를 누르면서 상대를 떠오르며 추억의 한 귀퉁이를 떠올려보는 여유만 가질수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결코 기계에 지배당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가끔씩 연락을 하는 친구들과의 대화의 끈을 조심스럽게 연결해 주는 핸드폰이, 기계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와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전령의 신..
핸드폰이 이 전령의 신과 같지는 않을까?
멀리 떨어져 있고,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아지는 이때.. 핸드폰은 살짝 울려주고,, 그것만으로도 감격에 잠길수 있다는 현실..
누군가에게 잊혀져가고 있지 않구나..라는 존재감을 심어주고..
좋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그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한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핸드폰을.. 그저 하나의 기계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