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남자 유키*** <#8. 첫번째 죄악, 질투>

길스진200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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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번째 죄악, 질투>>

 

 

 

자고 일어난 지나는 주말 내내 침대에서 지내야만 했다.  분명히 열은 내린 것 같았고 한기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씩 드나드는 가정부의 엄한 말과 하루종일 왔다갔다하는 레이때문에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특히 레이는 그녀를 위해서 아침식사까지 쟁반에 담아서 그녀의 침실까지 직접 가져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녀가 침대에서 보라고 읽을 책까지 알아서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이제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의 귀에는 먹히지 않았다.

 

약을 먹어야된다는 레이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숟갈을 든 그녀는 식사를 끝내고 쟁반을 밀어냈다.

 

레이는 얼른 달려와 쟁반을 작고 동그란 유리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어른스러웠다.

 

"레이.  이제 괜찮아.  안 아퍼."

 

"안 돼요!"

 

레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다 나았다니까.  그리고 내가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닌데..."

 

"안 돼요!  아버지가 선생님 큰일 날뻔 하셨대요.  빗속에 더 계셨으면 죽었을 거래요."

 

"아버지...가?"

 

사토 유키...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다시 몸에 열이 오르는 것처럼 몸이 떨렸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그에게 빠지기라도 하듯 심장은 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예.  오늘 내내 방에만 계셔야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지나는 아이가 너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아이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았고,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 같아 너무 기분 좋았다.

 

항상 가지런하게 빗겨져 있어야할 아이의 머리는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아이얼굴 답지 않게 푸석푸석하게 보였다.

 

그녀는 괜히 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레이."

 

"예?"

 

"너 선생님 걱정 많이 했니?  그래서 잠도 한숨도 못 잤지?"

 

그녀의 질문에 사토 레이는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말했다.  그냥 신경이 쓰였을 뿐이라며... 얼머부리기만 했다.

 

"가서 자."

 

"싫어요."

 

아마 지나가 방에서 나갈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한 시라도 그녀 곁에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지나는 수 없이 이불자락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침대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서 자.  그럼 되잖아."

 

레이는 지나의 말에 놀랐다.  침대에 들어오라는 것은 같이 자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아이가 많이 고민되는지 눈알을 굴리는 표정이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꾸벅꾸벅 졸고있지 말고."

 

"..."

 

"얼른.  시간끌면 나 맘 바뀔지 몰라."

 

그러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 무릎에 올려져있는 책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조...좋아요!  뭐, 정 부탁하시는 거니까..."

 

"뭐?  하하하... 정말 고맙다, 레이."

 

지나는 키득키득 거리며 이불자락을 젖히고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옆으로 조금 옮겨앉았다.

 

어른처럼 선심쓰듯이 말하는 모양새가 너무 귀여웠다.  이런 녀석을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한참 책을 보고있을 때였다.  지나는 레이가 잠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

 

"으음?  안 자?"

 

"만나셨어요?"

 

"음?  누구?"

 

그녀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애인요."

 

지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리고 눈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를 놀란 눈으로 내려다봤다.

 

"애...애인?"

 

"만나셨어요?"

 

그녀의 심장은 질문에 또 질문이라는 꼬리를 계속 물고있었다.

 

아이가 무슨 뜻으로 이런 질문을 던질까 궁금했다.  그것도 순수한 느낌이 아니라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 마,만났지.  그래, 만났어."

 

"근데 전날 저녁에 만났는데 왜 또 보러 가요?  그새 보고싶으셨어요?"

 

"음?"

 

지나는 아이가 서 동인을 애인이라고 여기고 던지는 질문이란 걸 알았다.

 

서 동인은 애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까지 그런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 할 얘기가 있었거든.  안 자니?"

 

"자요."

 

지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깨알같이 인쇄된 글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이야... 그 남자하고는 영원히 굿바이야.  그거 아니?  헤어졌다고... 왜 헤어졌냐고?  들으면 놀라 나자빠질 거다.

 

지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얼른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

 

지나는 재빨리 서선을 돌렸다.  아이는 여태 자지 않았다.  초롱초롱한 눈은 아니었지만 잘 눈은 아니었다.

 

"왜?"

 

"그 애인이라는 분하고 결혼하실 거에요?"

 

"뭐?"

 

"그럼 이곳에 안 오실 거죠?"

 

뜻밖의 아이의 공격에 지나는 할말을 잃었다.

 

순수하게 던진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공격을 당하자 심장에 못이 박히는 것처럼 아팠다.

 

"아... 레이... 아냐.  그러니까... 결혼 안 해.  그리고 말했잖아.  레이한테 더이상 선생님이 필요없어도 될때까지 곁에 있는다고.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저 잘게요."

 

레이는 얼른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그날 밤에 유키는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느때처럼 아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이의 방은 비어있었다.  밤 11시.  이 시간에 안 자고 어딜 간 거지.

 

그는 방에서 나와 거실과 발코니를 나가서 마당을 살폈다.  그러나 찾지 못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의 방 곁에 있는 가정부의 방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나이든 가정부는 노크소리를 듣지 못 한 것 같았다.

 

그녀가 문을 열은 것은 열 번정도 그가 노크를 하고난 후였다.

 

"왜요, 사장님?"

 

"레이 거기 있습니까?"

 

"레이요?  아뇨."

 

가정부는 레이가 여기 있을 턱이 없다는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에 레이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얘가... 아!  2층 김 선생님 방에 가보셨어요?"

 

"예?"

 

유키의 미간이 모아졌다.  김 선생의 방에 왜...

 

가정부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레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2층으로 달려올라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내려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가정부가 타주는 냉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레이가 진짜 가정교사 방에 있단 말인가.

 

천천히 방문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지나와 그녀 곁에서 곤히 자고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방은 어두웠지만 두 사람은 아주 친밀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자고있다는 것이 보였다.

 

조용히 침대로 다가가 옅은 스탠드를 켜고 두 사람을 주도면밀하게 내려다봤다.

 

지나의 팔은 레이의 등을 감싸고 있었고 아들의 얼굴은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파묻어있었다.  그리고 손을 그녀의 가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 없는 감정이 그의 몸을 감쌌다.  기껏 아들녀석한테 질투라도 느낀단 말인가.

 

두 사람은 너무 자연스럽다 못 해 오히려 모자지간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왜 레이녀석이 김 선생의 방에 있는지는 차후에 알면 되지만 눈앞에서 자고있는 두 사람을 보자 알 수 없는 감정에 치솟아 화가 났다.

 

그는 스탠드를 끄고 들어왔던 것처럼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아들녀석을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자도록 허용하는 그녀에게 화가 났고, 무례하게 다 녀석이 선생님의 품에 안겨 그것도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자는 것에 단단한 덩어리 같은 감정이 목구멍에 걸렸다.

 

레이는 한 두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알것 다 알고 말귀알아듣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것도 10살이나 먹은 남자라는 것이다.

 

그런 녀석이 감히... 감히 그녀 품에서 자다니...

 

그는 자신의 방으로 향하며 속으로 '절대 질투하는 것이 아냐, 절대 레이에게 질투하는 것이 아냐'라고 소리쳤다.

 

 

 

 

다음 날, 월요일 저녁이었다.  지나는 저녁식사 시간에 레이에게서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그녀 뿐만 아니라 옆자리에서 콩나물을 다듬고있는 가정부까지도 놀란 표정이었다.

 

"뭐라고, 레이?"

 

"오늘 밤에도 선생님 방에서 자도 되냐구요."

 

식탁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보리가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녀석은 주인의 방에 레이가 자는 것이 못마땅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끙끙거리기도 했다.

 

"그...그건..."

 

"안 되요?"

 

아이는 애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처음에 이 아이의 슬픈 눈을 바라봤을 때는 그저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했는데, 지금은 꾀를 부릴 줄도 아는 영악함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아니.  그건 아냐.  와서 자도 돼.  근데, 레이.  왜 선생님하고 자고싶은 거니?"

 

"음... 이상하게 잠이 잘 와요.  악몽도 안 꾸고."

 

"악몽?"

 

지나는 가지런하게 잘 다듬어진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며 물었다.

 

"네.  자주는 아니지만, 잠에서 깨고가면 쉽게 잠 자지 못 해요.  근데 선생님하고 같이 자니까 정말 잠이 잘 와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검은 구슬 같은 아이의 눈동자에서 빛을 발견했다.  차마 안 된다며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해."

 

아이는 주먹을 불끈쥐며 좋아라 했다.

 

오늘 밤만 그렇게 하자고 지나는 속으로 마음먹었다.  사토 레이가 좋은 것은 인정하지만 아이에게 너무 잘해주어선 안 되었다.

 

그녀는 이곳에 오랫동안 있을 수는 없었다.  길어봐야 1년이나 2년일 것이다.  그들은 때가 되면 이별할 사이였다.

 

그런데 지금처럼 계속 정을 주게 되면 헤어질 때 무척 힘들 것이다.

 

레이가 그녀를 걱정해주는 것보다 몇 배로 그녀는 레이가 좋았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웠고 귀여웠다.

 

너무 정이 붙을까봐 두려울 정도로 그녀는 사토 레이를 좋아했다.

 

식사가 끝나고 레이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읽을 책을 한아름 챙겨서 지나의 방으로 왔다.

 

그녀는 책을 테이블에 놓는 것을 도와주며 이게 다 뭐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 이틀 전에 대여점에서 빌려오신 거잖아요."

 

"그건 알아.  이걸 왜 이방에 다 들고오느냐고.  조금 있으면 잘 시간인데 안 잘 거니?"

 

"자야죠.  읽던 거 마저 읽을려고요."

 

침대위로 가볍게 올라간 아이는 그녀에게 방의 불을 꺼달라고 한 후, 스탠드를 켰다.

 

그리고 그녀가 갖다 준 만화책 중에 하나를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지나는 학부모들이나 다른 교사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화책을 레이에게 읽으라고 빌려왔다.  첫편부터 완결편까지 모조리 들고왔다.

 

그녀는 예전에 모두 다 읽은 후였다.  너무 재미있는데다 10살짜리 아이가 봐도 될 건전한 만화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혀를 내두르거나 혀를 끌끌 차겠지만 그녀는 어렸을 적 만화방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리고 용돈을 모아 만화책을 몰래 사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리고 그녀는 학교선생님이 되었다.

 

지나는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도록 내버려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방으로 갔다.

 

시원한 물을 한 잔 가지고 어두운 거실로 가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체널을 여러번 돌리던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재밌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어 결국 전원을 꺼버리고 발코니로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여름공기가 마셔졌다.  며칠만 있으면 7월이었다.  그녀는 기분 좋은 음성으로 가볍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 뒤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온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서서히 자신의 바로 뒤, 바짝 붙어서서야 그녀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전히 어두운 그의 검은 얼굴을 흘겨보며 물었다.

 

"그렇게 사람을 놀래켜야 되겠어요?"

 

"다른 곳에 정신팔고 있는 여자를 놀랬켰다?"

 

"그, 그래요."

 

남자는 떨어지지 않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얼마나 가까이 서있느냐...손바닥 간격만 있을 뿐이었다.

 

"그건 무슨 노래요?"

 

"뭐가요?"

 

지나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와의 간격이 무섭도로 가까웠고 그녀의 살갗을 태웠다.

 

손만 내밀면 닿을 거리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몸은 흥분되었다.

 

아마 이 지구상 어딘가로 그녀가 달아난다해도 그가 존재한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도 그녀의 몸은 그를 찾게 될 것이다.

 

그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원통하고 분통했다.  애인과 헤어진지 하루도 아직 지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사랑했던 남자의 얘기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자리잡혀 있는데 또 다른 남자의 매력에 빠져 이렇게 허우적거리다니!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춥소?"

 

"네?"

 

"춥냐고?"

 

"아, 아뇨.  왜요?"

 

"금방 떨었잖소."

 

유키는 그녀를 보지 않고 캄캄한 마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분명히 긴장한 듯 몸이 굳어있었다.

 

혹시나 서로의 몸이 닿을까봐 일부러 그에게서 떨어져 섰다.  그것은 그의 육체를 상당히 의식하는 행동이었다.  바로 유키가 그녀를 의식하는 만큼...

 

"전날 밤, 레이 그방에 잤던데..."

 

"아, 네."

 

"왜 그랬소?"

 

그의 음성이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왜요?  그러면 안 되나요?"

 

"흠.  김 선생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요, 없는 사람이요?  좀 똑똑한 줄 알았더니."

 

"그게 무슨..."

 

"레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유키는 자신의 질문들이 하나같이 유치하고 바보같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꼭 꺼내고싶은 주제들이었다.

 

"제가 그러라고 했어요.  같이 자자고요."

 

"뭐요?"

 

그의 고개가 움직이더니 그는 그녀를 노려봤다.

 

"방이 혼자 사용하기에 너무 넓은데다 또... 레이하고는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흠... 방이 너무 넓어서라... 그럴 거면 열 살짜리 아들녀석보단 다큰 성인이 좀 낫지 않소?  예를 들어 남자.  필요하다면 멀리서 찾지 말고 날 불러요.  달려가줄 테니까."

 

"???"

 

지나는 그가 무슨 뜻으로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아들에게 질투를 한 것이리라.

 

그녀는 슬쩍 재미난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이거 어쩌죠?  오늘도 같이 잘 건데.  지금도 레이는 제 방에 있거든요."

 

"뭐요?  아니... 당장 내려보내시오!  그앤 갓난애기가 아니란 말이요!  당신 품에서 자지 않으면 우는 철없는 녀석이 아니란 말이오!  아니면 내가 직접 녀석을 끌어내릴까?"

 

"사장님!"

 

그가 거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녀는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그의 맨살이 느껴졌고 남자의 단단한 근육과 부드러운 솜털이 닿았다.

 

유키는 자신의 팔을 잡고있는 그녀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아, 죄송해요."

 

"내 아들은 다 큰 남자요.  그 나이면 모르는게 없지."

 

"당신만큼은 아니겠죠!"

 

"나만큼이 아니겠지라니?  내가 뭐?"

 

"레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너무 민감하게 여기시는 거 아니신가요?  레이는 여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의 품이 필요한 거라구요!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위로가 될만한 엄마같은 품이 그리운 거라고요!  당신처럼 음탕한 상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입 조심해!"

 

"도대체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에 대해서 뭘 알죠?  레이가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하는지 뭘 아느냐구요!"

 

"그 입 조심하라고 했소!"

 

그가 한발짝 떼어 다가오자, 지나는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깨닫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뒤는 난간이 그녀의 허리에 닿았다.

 

유키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섰다.  그리고 굵직한 음성으로 잇사이로 내뱉었다.

 

"내가 레이보다 많이 알고있는 부분이 음탕한 쪽이라 이거군?  엄마를 원하는 순수한 아들녀석하고 다르게 난 뭘 원한다고 음탕한 상대?  섹스상대를 말하는 거요?"

 

지나는 발가락 끝에서 찌릿찌릿한 전기같은 통증이 전해져옴을 느꼈다.

 

마치 전기고문이라도 받은 느낌이랄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기고문과도 같았다.

 

"남자라면... 그것도 몇 년동안 여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 건장한 남자라면... 당연한 거 아니오?"

 

"???"

 

"왜 믿지 못하겠다는 거요?"

 

그녀는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서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더이상 그가 다가오면 비상벨이 울려댈 것이다.  아니, 비상벨은 벌써 울렸다.

 

"미...믿을 수 없어요."

 

목이 잠긴 그녀의 목소리는 나즈막하게 허스키했다.  오히려 그에게 유혹적으로 속삭이듯이 들렸다.

 

바짝 마른 그녀의 입술을 적시기 위해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재빨리 핥았다.  어둠 속에서 그가 놓칠 리가 없었다.

 

"날 유혹할 셈인오?"

 

"???"

 

"혀로 입술을 핥는 짓은 그만 둬.  내 앞에서!"

 

지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단순한 행동이었는데 그에게 무슨 파장을 준 모양이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키스할 것처럼 고개를 바짝 숙이고는 속삭였다.

 

"당장... 방으로 올라가시오!"

 

키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키스를 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원망스럽고 바보 멍청이 같았다.

 

'어리석은 여자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음탕한 여자가 분명했다.

 

"날 유혹할 생각 말고 올라가시오!"

 

"뭐... 뭐라구요?  난... 당신을 유혹한 적 없어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래?  그런데 왜 내눈에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로 보였을까?  입술을 핥는 행동, 입술을 깨무는 행동, 순진하게 놀란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는 행동.  그건 자신에게 키스를 해달라는 뜻 아니오?"

 

"기... 기가 막혀서!  사장, 아니 당신... 미쳤군요!  대단한 착각 속에서 사시는 군요?  얼마나 당신이 바보같은 줄 알아요?

 

아들에게 질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본인이 아주 대단한 남자인냥 함부로 얘기하는데..."

 

유키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품에 끌어당겼다.  얼마나 거칠고 억센지 그녀는 하던 얘기를 잊어버릴 정도였다.

 

"나한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렇게 대드는 것도 날 유혹하려는 방법인가?  도대체 이유가 뭐야?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요?"

 

"???"

 

"왜 이곳에 온 거요?  한 몫 챙겨보겠단 심본가?  다른 여자들처럼?  계획이 그런 거였다면 당신은 실패야!

 

그러니까 당장 짐 싸들고 나가는 게 옳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날 화나게 하는 짓은 당장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요!"

 

그녀가 품 안에서 발버둥을 치자 그는 허리에 둘렀던 팔을 거두었다. 

 

"아, 만약 당신이 단순히 잠자리 상대가 필요한 거면... 내 기꺼이 상대 해주리다.  그건... 나도 원하는 바니까."

 

"뭐, 뭐라구요?!"

 

지나는 유키의 단단한 가슴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  손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그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그는 한참동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시선을 맞받아냈다.  그리고 돌아서 안으로 어가버렸다.

 

혼자 발코니에 남은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떨렸다.  그의 뒷통수에 대고 욕이란 욕을 죄다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해삼!  멍게!  해파리!  말미잘!  파리!  모기!  바퀴벌레보다 못한 인간!  레이만 아니었어도, 레이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다른 여자들처럼이라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에게 다가선 여자들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그런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이곳에 가정교사로 왔으니까.

 

집세를 내지 못해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형편인데다 보리와 그녀는 갈 곳 조차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곳의 가정교사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무슨 목적이냐며 죄인심문하듯 사납게 따져대다니...  그를 유혹했다고?  기가 막혔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남자라고... 그리고 그는 그녀를 창녀취급하듯이 말했다.  언제든지 잠자리 상대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그녀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알고 두 팔로 몸을 비볐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 여기 레이를 가르치러 온 가정교사지, 그의 재산이나 그의 육체같은 건 원하지 않아!  날 그런 여자로 봤다면 대단한 실수야!  사토 유키!'

 

지나는 성큼성큼 위로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다가 발길을 돌려 유키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노크했다.

 

잠시 후, 희미하게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가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예상한 것과 달리 갑자기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지나는 깜짝 놀라 주춤거렸다.

 

'어차피 어두우니까 상관없다는 건가?'

 

그의 방은 복도보다 더 어두운 것 같았다.  그의 방... 사토 유키의 방...

 

한발을 방 안으로 들여다놨다.  바로 곁에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지나는 힘겹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가 서있는 곳을 짐작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강열한 육체가 곁에서 전해왔다.

 

"사과받고 싶어요."

 

"..."

 

"절 그런 여자로 봤다니 화가 나는 군요!  전, 사장님의 재산에 관심 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장님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자구요!

 

전, 사장님을 눈꼽만큼도 원하지도 않으니까 제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모함하지 마시길 바래요!  그러니까 당장 사과하세요!"

 

유키는 그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에, 눈꼽만큼도 원하지도 않는다는 말에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인데도 그녀가 그런 말을 하자, 상당히 기분 상했다.  자존심에 칼질이라도 한 것처럼 화가 났다.

 

"싫소."

 

"뭐라구요?  숙녀에게 무례하게 대해놓고선 사과를 하지 않겠다뇨?  그건 사장님의 무례한 말들을 모두 인정하신단 건가요?"

 

"..."

 

그녀는 어둠 속에서 강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전 그런 여자가 아니라구요!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구요!  난 사장님한테 원하는 게..."

 

"난 당신을 원하오."

 

지나는 허리에 올렸던 주먹을 천천히 내리며 손을 풀었다.  그리고 놀라서 벌어진 입술을 가리려고 손바닥으로 막았다.

 

금방 잘 못 들었던 것 같았다.  뭐...라고 했죠?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다시 천천히 선명하게 말했다.

 

"당신을 원한다고 했소."

 

"아...??"

 

"당신은 날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난 당신을 원해."

 

"아... 저기..."

 

지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입술만 붕어처럼 꿈뻑거렸다.  그가 날 원한다고?  아냐!  잘못 들었을 것이다.

 

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열렸던 문은 그녀의 등 뒤로 닫혔다.

 

"저기, 난..."

 

유키는 아주 잠깐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몇 초였을까... 입술을 떼고는 속삭였다.

 

"지금도 날 원하지 않는다면 가도 좋소."

 

"???"

 

그리고 그는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부드럽게 키스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와... 하룻밤을 보내는 거요.  나와 같이 있는 거야..."

 

"..."

 

지나는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그녀를 유혹하듯 마법을 걸고 있었다.  마법이 아니라면 최면을 걸고 있었다.

 

"사, 사장님..."

 

그가 다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술을 떼지않고 길게 그윽하게 키스했다.

 

느릿느릿한 속도에 만취하듯 그녀의 입술에서는 신음소리가 가냘프게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전혀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대답만 해...  날 원한다고..."

 

"아아...음..."

 

"어서... 지나..."

 

그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다정스럽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지나라고... 연인에게 부르듯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를 원하는 것은 확실했지만 선뜻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그녀의 몸은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원한다고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얼마 되지 않았어.  애인과 헤어진지... 애인?  아, 안 돼!'

 

지나는 번개를 맞은 것처럼 눈을 번쩍 뜨고는 상대를 세차게 밀어냈다.

 

조금 전에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그녀는 왈칵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난... 이 남자를 너무 원해!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  하, 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서 우진이야!'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돌아서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 손잡이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유키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팔을 뻗어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이 놀랍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려던 짓에 더 놀라웠다.

 

그녀는 도망치듯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섰다.

 

그는 그만 그녀에게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을 털어놔버렸다.  그녀를 원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녀도 거부하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대답은 하지 않았어도 그녀의 몸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팔딱팔딱 뛰는 그녀의 심장과 맥박이 손바닥에서 느껴졌고 입술에서 느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그를 밀치더니 나가버렸다.

 

아마도...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게지.  그녀의 이성과 그녀의 마음이 사토 유키가 아니라 다른 남자, 애인을 원했던 것이다.

 

그녀의 육체는 그를 원하는데 그녀의 이성과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김 지나에게서 육체 외에 그 두가지를 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는 하룻밤 같이 있어 줄 여자만 있으면 되었다.  아들녀석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듯 그에게는 여자가 필요했다.

 

바로... 다른 여자도 아닌 김 지나, 그녀의 육체만 있으면 된다.

 

그는 선반에 올려놓은 몇 개의 술 중에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지금 그에게는 당장 술이 필요했다.

 

달궈지다 만 그의 몸을 잊게할 방법은 술이었다.  그는 병째로 입에 부었다.

 

모든 것이 김 지나 그녀때문이었다.

 

그녀가 아들녀석을 끌어안고 자는 행동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쓸데없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질투?  그녀 입으로 그런 단어를 말했다.  아들녀석에게 질투를 하느냐고 말이다.  그는 혀를 끌끌 찼다.

 

다른 상대도 아니고 아들녀석에게?  상대도 안 되는 그녀석에게 질투를 느낀다고?  말도 안 돼!

 

단지... 다 큰 녀석이 그녀 품에 안겨서 자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는 적어도 그렇게 변명하고 싶었다.

 

질투가 아니라고, 그냥... 기분 나쁠 정도로 신경쓰였던 것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질투?  흥!'

 

유키는 남은 술을 쉬지 않고 모조리 삼켜버렸다.  넘친 술이 그의 입술을 지나 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빈병을 입술에서 떼고는 목으로 흐르는 술을 손으로 거칠게 닦고는 바닥에 병을 던졌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왜!  그녀를 원하지만...'

 

그녀에게 '당신을 원해'라고 말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는 화도 났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녀가 승낙이라도 한다면 그녀 옷을 벗겨 가지고 싶을 정도로 그녀를 원하고 분노했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육체를 은근히 탐해온 것이 지금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녀가 눈앞에 없어야 했다.

 

'제기랄!  꺼져버려!  제발 내눈에서 사라져!  내 인생에서 꺼지라고, 김 지나!'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