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5> 너 누구야?

초록물고기2005.01.24
조회1,645
 

일주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지나고 있었다. 아주 조금 달라진 것은 동준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아침에 눈이 떠져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클럽에 나오고 있었다. 간간히 걸려오는 친구 놈들의 점심먹자는 청을 슬쩍 말을 돌려 거절하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한사장의 전화를 받고 잠시 다녀온 그 얼굴에 어두운 잿빛이 감돌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동준이 꼼짝 않고 담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불편한 존재 한필중, 쉽게 때어 내기엔 그 존재의 힘이 너무 깊고 강하게 동준은 누르고 있었다. 동준에게 닿아있는 어두운 그림자의 절반이 그에게서 번져 나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에 그의 그늘에서 비바람을 피했던 대가로 너무도 많은 것이 그에게 귀속되고 말았다.

 잠시 후 진서가 김주현과 함께 클럽으로 들어섰다. 진서와 몇 게임을 하고 난 후 급속도로 친밀감을 내보이고 있는 김주현의 태도가 동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들어와?”

 

김주현이 싱글거리며 데스크로 와 커피를 타며 동준의 말을 받았다.

 

  “너 가고 점심내기 게임했지. 야!...진서씨 점심내기 하니까 어찌나 살벌한지...”

 

동준이 시큰둥하게 김주현을 보며 남은 말을 물었다.

 

  “그래서.......”

  “물론...내가 얻어먹긴 했지.....하마터면 질 뻔 했는데 한번 얻어먹어야 다음 자리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서 나도 끝까지 악바리근성 발휘했지.”

 

 탈의실로 가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로 들어온 진서가 데스크 서랍에서 항아리를 꺼내 올려놓았다. 신문을 넘기던 동준이 곁눈질로 진서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녹차 드실래요?”

  “한잔 주면 마셔보지 뭐.”

 

 은근히 뒷말을 놓아버리는 동준의 말에 진서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동준이 자신에게 내 보이는 진서의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김주현이 타던 커피를 놓고 진서에게 녹차를 부탁했다. 그 눈에 야릇한 웃음이 담겨 있음을 동준이 본능으로 읽고 있었다.

 

  “어, 진서씨 그럼 나도 녹차 한잔 줘요.”

  “네.”

 

 첫물을 버리고 다시 우린 녹차를 커피 잔에 부은 후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동준이 자신도 모르게 맑고 은은한 그 향을 코 속으로 호흡했다. 가끔 티백으로 우린 것 외엔 그렇게 잎차를 마셔보지 못했던 동준이 진서의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진서씨 잘 마시고 가요.”

 

 김주현이 연신 싱글거리며 진서를 보고 있었다. 차를 마시고도 계속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갔다. 자신에게는 쉽게 웃음을 내보이지 않으면서도 김주현과는 클럽을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준이 그것에 신경이 쓰고 있는 자신의 유치함이 낯설면서도 알 수 없이 묘한 긴장감이 생겨 나쁘지 않았다.

 오후부터 시작된 장맛비가 열시를 지나면서부터는 창문을 뒤흔들 만큼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보도에 회원들이 삽시간에 클럽을 빠져나가고 진서가 운동기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준이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 사무실 유리창을 두들겨 진서를 불렀다. 자신을 돌아보는 진서에게 맥주를 흔들어 보였다. 잠시 후 진서가 사무실로 들어오고 동준이 한 모금 마신 캔을 내려놓고 다른 캔을 들어 진서에게 내밀었다.

 

  “둘 뿐이긴 하지만 함께 일하게 됐으니 정리하고 내려가지 한잔하지.”

 

 맥주 캔을 따던 진서가 엷게 웃어 보이며 동준의 말을 받았다. 여전히 쉽게 말을 내놓치는 않았지만 처음의 딱딱한 분위기는 많이 수그러든 상태였다. 동준이 그 냉냉함도 나쁘지 않았었다. 차라리 관찰한 뭔가를 찾은 듯 일상의 다른 변화를 느껴 알 수 없이 시선이 가고 있었다.

 

  “쉽게 말을 놓으시네요.”

  “불편하니?”

  “......불편하다고 하면 다시 높이게요?”

 

 동준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그 얼굴을 보았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것이 재미있어 자꾸 그렇게 웃음이 나고 있었다.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네.”

  “옷 갈아입고 와. 내려가게.”

 

동준이 다 마신 캔을 구겨서 휴지통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한참 동안 대답 없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던 동준이 싸늘한 말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은정씨.......올라오지 말고......거기서 기다려요.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진서가 동준을 돌아보며 애써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뭘 함께 하기가 쉬운 사람이 아니네요. 술은 다음에 하죠.”

  “아냐. 옷 갈아입고 문 잠그고 이층에 내려가 있어.”

 

 동준이 클럽을 나가고 홀로 남겨진 진서의 표정이 잠시전과 달리 어둡게 굳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진서가 눈을 감은 채 벽으로 손을 뻗어 사무실과 클럽 중안부의 조명을 순서대로 꺼 나가며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스쿼시 코트 하나만을 남겨둔 채 모든 조명을 꺼버린 후 자신의 방으로 가 긴 막대를 싸놓은 보자기를 들고 나왔다.

 죽도와 목검이었다. 조심스럽게 휘둘러보던 손을 들어 남은 등을 목검으로 찍어 껐다. 삽시간에 어둠이 채워지고 탈의실에서 세어 나오는 엷은 빛으로 사물의 형체가 구분되고 있었다.

 코트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어 자신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선으로 목검을 휘둘러보았다. 한손 안에서 부드럽게 돌아드는 그 손놀림이 이미 몸에 익어 있는 몸짓이었다.

  한층 강해진 바람소리가 건물을 휘감아 몰아치고 있었고 창을 부딪치며 부서지는 빗소리 가 밤의 고요를 삼키고 있었다. 목검을 잡은 손에 힘들 들어가 어둠을 가르는 그 몸짓이 무겁고 싸늘했다.

 

 -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데도 당신을 보고 있으면...

    이유없이 마음이 아프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은 빗줄기가 강풍에 그 물줄기를 휘감아 건물 입구로 들이치고 있었다. 동준이 건물 현관으로 내려가자 온몸이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정은정이 울먹이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미안해요...동준씨....내가...태수씨한테.....”

 

정은정이 말을 더 잊지 못하고 젖은 몸을 떨었다.

 

  “일단 올라가요. 좀 닦고 뜨거운 거 한잔 하고 얘기해요.”

 

 동준이 그녀를 데리고 이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파장을 준비하고 있던 여인이 동준과 눈빛으로 짧은 의문을 주고받은 후 말없이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뜨거운 거 한 잔 같다 줘요.” 

 

 젖은 얼굴을 대충 닦아낸 정은정이 여인이 가져다 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동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이제 정말 태수씨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은정이 또 다시 말을 멈추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그 사람은 자신이 뭘 잘못됐는지 조차 몰라요. 자꾸 동준씨때문이냐고 캐물어서 화가나서 그렇다고 대답해 버렸어요.”

  “나....신경 쓰지 말고.....하고싶은 데로 해요.”

  “......동준씨 죽여 버리겠대요.”

 

동준이 빙긋이 웃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정은정의 말을 농담으로 받았다.

 

  “그 녀석 원래 나 싫어해요. 신경 쓰지 말아요. 그리고...... 이젠 이렇게 찾아오는 거 하지 말아요. 내가 불편하고 싫어요. 이거 마시고 돌아가요. 기다리는 사람 있어서 먼저 올라갈게요.”

 

동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정은정이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일부러......그랬어요. 끝까지 숨길자신 없어서 일부러 그렇게라도 말해버리고 싶어서...그래서 태수씨한테 그랬어요."

  "누구나.....가끔 한번쯤은 위험한 놀이도 하고 싶을때 있는데......그게 진짜라 믿어버리면 가진거 다 잃고 많이 다칠수도 있어요."

 " 나 한번만 봐주면 안 되나요? 친구 여자라서......그래서 안 되나요?”

 정은정이 힘겹게 말을 꺼내놓고 입술이 경직되고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눈에 아무런 동요가 없음을 알아 그 가슴이 내려앉고 있었다.  

  “내가 은정씨 봐주면......그건 그냥 잠시 놀고 싶은 건데.....그래도 상관없어요?”

 

간신히 참아내고 있던 그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려 내렸다.

 

  “그래도......상관없다면......봐줄 건가요?”

 "..태수가 아니라 생각되면 접어요....태수하고 연관된 다른 모든 것도 버려요. 나도 그기에 속해있는 사람이에요"

 

 동준이 벽시계를 확인해 열한시가 넘은 것을 보고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다시 클럽 문을 열었다. 이미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내려오지 않은 걸로 봐선 아마도 약속을 접어버린 모양이었다. 문 잠그는 것을 잊고 잠들어버린 것이리라 생각한 동준이 잠시 망설이다 문을 열고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돌아들자 탈의실에는 세어나는 엷은 빛에 어두운 그림자의 움직임이 어렴풋하게 들어왔다. 동준이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 그 형체에서 눈을 때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코트 안에서 막대를 휘두르고 있는 진서의 몸짓이 한순간 동준의 호흡을 멈추게 했다.

 

  -저건.....

   뭐야....이건.....

 

 눈이 부실만큼 흰빛의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던 그 몸짓이 여전히 동준의 뇌리에 박혀 있

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선 한사람에게 세상 따스함을 전부 가져와 얼굴에 걸었던 미소 또한 가슴이 저리도록 고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동준이 얼마전에 가졌던 그 우연의 서늘함이 채 가시지 않은 심장에 또 다시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듯 힘 있게 막대를 휘두르고 있는 진서의 몸짓이 불현듯 검을 들었던 그 남자를 떠오르게 했다. 진서를 보고 선 그 눈에 달빛을 등지고 선채 아픈 웃음을 짓고 있던 그 남자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불편하고 낯설었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동준의 보았는지 진서가 하던 것을 멈추고 코트를 나왔다. 그리고 몇 발짝을 때어놓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둠속에서도 그 날카로운 물건의 정채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동준이 그때서야 등 뒤에서 칼을 들고 선 태수를 인식했다. 진서의 몸짓에 넋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에 클럽 안으로 들어선 태수를 모르고 있었다. 그 눈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서슬 퍼런 분노가 번뜩이고 있었다.  

 

  “너......”

  “개새끼....너하고는 영원히 악연이다....니가 그때 우리학교에 전학 왔던 그때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왜 아무것도 아닌 너 같은 새끼한테 내가 계속 뺏기고 살아야 돼...왜 내 인생에 자꾸 얼쩡거리고 끼어들어.......”

  “그래서 나 때문에 이번엔 니 인생 아예 접고 싶니.”

 

동준에게 다가서는 태수의 입에서 역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래....새끼야....항상 내 앞에 있다 생각하지 너....니가 아무리 개폼 잡아도 넌 한 사장 개야. 개 한리 죽어나간다고 주인이 눈이나 깜짝하겠냐...잠시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너 아니라도 그 정도 일 해낼 사람 있다는 거 보여주면 그만이다.”

 

태수가 다시 몇 발짝을 내놓자 어둠속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사람한테서 물러서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태수의 눈이 순간 벽에서 몸을 들어낸 진서에게 향해졌다.

 

  “누.....누구야.....뭐야...이 계집엔...”

 

 동준의 목소리가 경직되고 있었다. 몸을 가누고 서 있긴 했지만 술 힘으로 객기를 부리고 있는 태수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진서의 존재가 그 가슴을 불편하게 조이고 있었다.

 

  “너....나가라.....친구가 술을 좀 해서 그래. 별일 아니니 여기서 나가라.”

  “새끼야......내가 어째서 니 친구냐.....우린 악연이고 아마도 전생에 왠수였을거다...니가 그때 연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고 잠을 잘 수가 없다...개새끼야...그때 생각했지...언젠가는 니 그 속창을 사시미르 떠버릴 거라고...그때 다짐했다..”

 

 세 사람의 팽팽한 긴장감이 번뜩이는 칼끝만큼이나 떨리고 있었다. 태수가 내놓는 걸음만큼 다가선 진서가 다시 싸늘하고 마른 목소리를 내놓았다.

 

  “더 이상 다가서지 말아요.”

  “왜.....너도 이 새끼한테 정주고 몸 주고 다했냐.....그래서 가는 길도 함께 가고 싶냐...배창새기에 칼꽂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이년아.”

 

바닥으로 내려 잡고 있던 목검을 들어올려 다른 한손을 포개어 잡아 힘을 실코 있었다.

 

  “....더 이상......그 사람한테 다가서지 마.....한 발짝만 더 다가서면.....”

 

진서의 행동에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던 태수가 빈정거리며 혀 꼬인 말을 뱉어냈다.

 

  “그래.....한 발짝만 더 다가서면 어쩔 건데...어린년이 총 맞았나..간땡이가 부었....”

  “진서야....물러....”

 

어둠속에서 휙하고 진서의 목검이 태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흑.....

 

 태수가 하던 말을 다 내놓지 못하고 칼을 놓친 손목을 잡고 신음을 했다. 동준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크진 눈으로 진서를 보고 서 있었다.    

 

  “이...년이...”

 

 손목을 움켜쥔 채 진서에게로 다가서는 태수에게 또 한번 목검이 날아들었다. 허리를 가격당해 바닥으로 꼬꾸라진 태수가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고통을 토해냈다.

 

  “나가!!”

 

 태수가 허리가 펴지 못하고 엉거주춤 일어나 욕설을 해대며 클럽을 나갔다. 그러나 동준이 한동안 그 자리에 선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진서가 몸을 돌려 몇발짝 걷다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왜.....그렇게 살아요.”

  “......너...........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