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이곳에 내 이야기를 쓰면, 천상 여자이니, 덕이 있니 하는 리플이 달리곤 하는데...
참 쑥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사실 알고 보면 난 그다지 덕스러운 사람이 아니므로...
시댁에서 내가 듣는 말도 비슷하다...대체로 착하다..윗사람들 사이에서 잘 처신한다 ( 내 자랑 같네..ㅋㅋ)등등의 소리를 듣지만, (시모 수술 후 병 수발 할 때에는 "잘난 년" 소리도 들었구나...허허..) 그건 그다지 나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여튼 나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바로 "보통은 넘는다"는 소리이다...
언제 처음 그 말을 들었는가...
친정에서 들은 것은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고모들이 우리집에 패악을 떨러 왔을 때, 울 엄마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던 둘째 고모를 떠다 밀면서 "고모네 엄마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울 엄마한테 행패 부리면 가만 안 둔다"고 소리 질렀던 고3때였던 것 같다... 엄마한테 간살을 떨며 하나 있는 집마저 팔아먹게 하고, 애들만 실컷 키우게 하다가 병들자 아들 집으로 떠넘긴 그 딸들이, 자기 엄마 똥-오줌 받아내며 돌아가실 때까지 간병한 울 엄마에게 하는 짓거리라니.. 그간은 할머니가 계셨기에 아무 말 못했지만, 엄마 없는 친정에 와서도 손위올케에게 그리 함부로 구는 고모들과, 그 옆에서 무기력하게 서 있던 아버지를 보며 무척 화가 났기에 바락 바락 대들었다...그 뒤로 울 고모들 울 집에는 안 왔고, 들리는 소리로 "둘째가 보통은 넘는다"며 고모들이 아버지에게 뭐라 했단다...
남들로부터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결혼을 일찍 한 탓에 3맘의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님들이 많은 듯한데...사실 나는 91학번이다...)
같은 학번 님들은 기억하겠지만, 그 해 봄에 명지대 신입생 하나가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이 일은 내 삶과 가치관 자체를 뒤흔들 만한 일이었다...대낮에 새내기가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 나라...정말 분했다... 기독교 신자였고 세상이 신 중심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거부하고(이런 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범생이었다..) 시위에 참석하고.. 그런데, 그 시위 과정에서 또한번 나는 놀랐다... 그 새내기를 다들 "열사"라고 부르며, 열사의 뜻을 이어받자고 선배들이 구호를 외쳤다...
시위 후 토론 시간에 새내기들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다들 열사의 뜻을 이어받자는 격앙된 논조였다... 내 순서가 되어도 입을 열지 않자, 그나마 친했던 선배 하나가 괜찮으니 말해 보라며 옆구리를 찔렀다...숫기가 없어 보이는 얌전한 학생이었기 때문에...괜찮으니까 그냥 지금 심정을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 전, 대학 새내기를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는 이 나라가 혐오스럽습니다...그리고, 그 불쌍한 새내기를 열사로 칭하면서 선전의 도구로 삼는 선배들의 모습도 놀랍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이지만, 오늘 시위에 참석했었지요... 만약 오늘 시위에서 제가 선배들을 따라가다가 운이 없어서 맞아 죽는다면 저도 열사가 되는 겁니까.." 했다... 나중에 선배들끼리 수근대는 소리를 들었다.. 저녀석 보통이 넘네...만만치 않겠어...
사실 시댁에서도 나는 종종 그런 소리를 듣는다...
처음 들은 것이 언제였던가...아마 울 시작은어머니께 말대답했던 때였던 것 같다..
울 큰애를 낳기 전이니 결혼한 지 2년 정도 되었을까...
제사 마치면 항상 자고 오던 울 부부가, 마침 그 다음날 동창들과 낚시를 가기로 해서 시모께도 미리 말씀 드리고 즐겁게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형님들도 그러냐고, 이번에는 마무리 하고 다같이 가야겠네 하시면서...
시골인 친정에서 잔치가 있으셔서 제삿날 늦게 작은아버님 내외분이 오셨는데, 검은 비닐 봉투에 소머리 하나를 넣어가지고(핏물 뚝뚝~~) 오셨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 설명을 하자면 , 당시 제사를 마치고 곧바로 돌아가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많이 서운해 하셨다..다들 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살기 때문에 시댁에서 불편하게 자는 것보다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자는 게 낫고, 조카들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제사가 끝나자마자 형님들은 다들 집으로 가고 싶어하셨다.... 그래도 시모는 옛날 양반이라 서운해 하시고... 그래서 내가 낸 묘책이 아이가 없는 울 부부가 남아서 자는 거였다..제사 뒷설거지까지 다 하고 가면 너무 늦기 때문에 제사 뒷설거지 두고 형님들 먼저 가서 30분이라도 더 주무시라고... 딴에는 내 배려였다..)
울 작은어머니..다른 질부들(울 형님들)은 다 작은어머니랑 쿵짝하면서 울 시모 흉을 보는데, 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보기가 싫었나 보다..
제삿날 소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부터가 나는 싫었던 사람이니, 작은어머니랑 궁합이 안 맞는 건 사실인 듯했다..그 이후 말씀이 더 가관이다..
헉...소머리...물론, 해 본 적도 없는 일이고...다음날 대학 동창들과 낚시 약속이 있으므로 안 되겠다고 했다...다음날이 휴일이었으니 아마 다른 형님들한테 하라고 하셨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에도 계속 "하고 가라니까.." 소리를 너댓 번은 하시는 거다... 나는 계속 거절했고, 나중에는 작은어머니 언성이 높아지셨다... 난 결국 대답을 안 했다..( 그 동안 울 시모는 안방에 계셔서 내막을 몰랐고, 형님들은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 가겠지 싶었나 보다...난 암말 없이 제사 마치고, 설거지 마친 뒤(먼저 가시라는 말이 없으니 형님들도 꼼짝 없이 뒷설거지 같이 했다..) 형님들이랑 같이 집으로 왔다...
낚시를 마친 후 시댁에 갔더니, 울 시모와 시부가 동네 아짐들과 다 처리해서 이미 손질해 놓으신 상태였다...가져가서 먹으라고 내미시는 쇼핑백을 마다하고 그냥 집으로 왔다...
이틀 후인가...바로 윗형님이 전화를 하셨다...그나마 나랑 제일 나이 차가 적고, 그래서 이런 저런 속말도 가끔 하는 형님이라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악역을 자청한 모양이다..형님들과도 이야기 해 보았고, 작은어머니랑도 통화해 봤는데, 이번엔 막내 네가 잘못했으니 사과 전화를 드리란다...
"형님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하고 물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네 하고 나서 안 하면 되지...어른한테 계속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냐고...
그러면 못 쓴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아마 내 흉을 본 것이겠지...
잘 건드렸다 싶었다...
"전, 그렇게 못하네요...하지도 않을 것 대답만 넙죽하는 게 더 어른 무시하는 것 아니예요??
전, 작은어머니 이해가 안 되네요...아니, 어머니께 선물로 가져오신 거면 어머니가 어떻게 처리를 하시던 어머니가 알아서 하시게 둘 일이지, 왜 작은어머니가 이래라 저래라 자꾸 곤란하게 채근하신대요??
형님은 제가 나중에 형님은 제쳐두고, 형님 며느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울 형님 뭐라고 말을 못하신다...이어서 쏘아붙였다...
"형님들도 그래요...전 형님들도 이해가 안 가요..손아래 동서가 작은어머니한테 그리 당하고 있는데...빈 말이라도 작은어머니 그냥 두시면 저희가 알아서 손질할게요 하시면 안 되나요?? 이 집에 며느리가 저 하나에요?? 전, 친정 언니처럼 형님들 의지하면서 이날껏 공경하면서 살았는데, 내가 그리 곤란한 상황인데도 뒷짐 지고 있던 형님들한테 많이 서운해요..."
울 형님 계속 침묵...
"지금은 저도 감정이 상해서 전화 못 하네요...나중에 제가 드리거나 말거나 할게요.." 했다..
울 형님 날 달래려고 애쓰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작은어머니께 전화해서 사과를 하기는 했다...울 형님들 논리대로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그냥 네 하고 나중에 사정을 말씀해도 될 것을 거절하셔서 기분 상하셨죠?"
"알면 됐다..이놈아" 그러신다..
"전, 하지도 않을 거면서 한다고 대답하는 게 더 못할 일이라고 여겼었는데, 제 생각이 짧았나 봐요.."
작은어머니..침묵...
"전, 사실 시어머니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작은어머니는 친정어머니랑 비슷한 연세이시고 해서 항상 많이 의지했네요..
아가씨(작은어머니 딸)나 도련님도 저랑 또래여서, 여기 시숙들(거의 15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큰 시숙은..)처럼 어렵지도 않고 해서... 친근하게 느끼구요...
작은어머니도 저랑 같은 막내며느리(성씨도 같다..별로 흔한 성도 아닌데..) 이시고, 성씨도 같고...
항상 마음으로 많이 의지했었는데... 요즘 제 또래에 그런 일 해본 사람 없는 것 작은어머니 잘 아시잖아요...가르쳐 주시는 것도 아니고 저더러 무작정 하라고 하시니 서운해서 그만 말대답했네요..."
또 침묵....
나중에 울 시모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어머니와 큰형님이 울 시모에게 막내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나... 제삿날 무슨 일 있었냐고...그저 웃고 말았다..
그 때 이후로,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작은어머니나 형님들과 비교적 잘 지낸다..
매년 김장도 형님들과 작은어머니로부터 갖다 먹는다... 잘 해 주시고, 나도 노력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형님들은 시숙과 다투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우리 집에 전화를 한다...1-2시간씩 수다 떨면서 풀어드리곤 하고...시부모 문제를 제외하면 화기애애한 동서지간이었다...)
몇 번의 보통 아닌 성질을 보인 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나 스스로도 받는다...
그 보통 아닌 성질이 다시 꾸물럭 거리며 올라온다...
시부가 입원하는데에도 불똥이 튈까봐 전화 한통 안 하는 가운데 두 형님들...
시아버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도 전화 한번, 발길 한번 안 하는 큰형님...(아마...이번에 내놓은 자식이 되어서 시부모 모시는 일을 피해 볼 참인가 보다..)
이웃집 노인이 아파도 이렇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명절, 제사에는 모여서 화목한 가정인 척 했으나...
양 부모 모두 병들고 나니 찬밥이 되고 만다...
나서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지만...끝까지 모른 척 하기에는 울 시부가 너무 많이 여위셨다...
결국, 울 큰형님이 말한 잘난년들(3맘과 시누)이 알아서 노후를 책임 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간, 울 시누도 올케들 하는 것 두고 본다고 시댁에 얼씬도 안 했다...나도 그러라고 했었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월요일에 전화했다... 애달픈 자식들이 해야지 어쩌냐고...
형님들 때문에 머뭇거리다가 부모님 돌아가시면 우리 죄만 크다고...
화요일에 시누가 결국 아버지 뵈러 다녀갔단다...
모르긴 몰라도 울 시누 많이 울었을 거다. 한달 전에 비해 말도 못하게 여위신 아버지 모습에..)
그래요... 제가 모실 겁니다...
형님들 꾀에 넘어가서는 아닙니다...
저도 형님들처럼 꾀를 부리면 한 전략하는 사람입니다..
(고딩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모든 선거란 선거에서 참모, 정책국장이었던 사람이고..
제가 나서서 선거에 진 적이 없습니다...시어머니 병원비 문제로 2년 전에 시댁 식구들 소집했을 때 아마 어느 정도 아셨을 겁니다..)
시어머니 모시느니 이혼하겠다는 큰형님의 뻔한 협박 때문도 아닙니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큰시숙이 안쓰러워서도 아닙니다...
너무 이뻐서 바닥에 내려 놓기도 아까운 울 막둥이처럼,
울 시모께도 내 남편이 그리 끔찍한 막둥이일테니..
전 착한 며눌 암 환자도 아니고...
며느리 도리만 강조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치만 말이죠...사람 도리는 하고 사십시다...
네... 형님들의 골칫덩어리 시부모는 제가 모시지요..
근데 말이죠..형님들... 저 보통 아닌 것 아시죠??
보통 아닌 것, 잘난 년인 것...아마 제대로 보시게 될 겁니다..
형님들 깜짝 놀랄 만큼 행복하게 살 겁니다...
부모님 의식주는 제가 책임 지지요...
병원비는 지금처럼 나누어 냅시다..
용돈이요??
전 모시고 사니 용돈 안 드릴 겁니다..
그간 생활비 내신 것처럼 부모님 용돈은 형님들이 드리세요..
제사도 저희 집에서는 안 모십니다..
살아 있는 부모를 제가 모시니, 죽은 조상들 제사는 형님들이 번갈아 지내세요..
부모님 재산이요??
저 손 안댑니다.
이미 갈 것은 다 맏아들한테 간 상태이고, 남은 것이라고는 딸랑 집 한채...
그 몇천만원 땜에 모셨다는 소리 저는 안 들을 겁니다...
저 꼬시려고, 그거 모시는 사람 몫이라고 미리 말씀들 하시는데...절대 안 받습니다...
어머님이 굳이 굳이 주신다면, 어머님 손주들 머릿수대로 똑같이 나눠서 학자금으로 주시라 할 겁니다..(뭐, 우리 집 애가 셋이니 제가 제일 많이 받기는 하겠구만요...)
보통은 넘는다?!?
게시판에서는 글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다 보니, 단면만 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고...
언젠가부터 이곳에 내 이야기를 쓰면, 천상 여자이니, 덕이 있니 하는 리플이 달리곤 하는데...
참 쑥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사실 알고 보면 난 그다지 덕스러운 사람이 아니므로...
시댁에서 내가 듣는 말도 비슷하다...대체로 착하다..윗사람들 사이에서 잘 처신한다 ( 내 자랑 같네..ㅋㅋ)등등의 소리를 듣지만, (시모 수술 후 병 수발 할 때에는 "잘난 년" 소리도 들었구나...허허..) 그건 그다지 나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여튼 나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바로 "보통은 넘는다"는 소리이다...
언제 처음 그 말을 들었는가...
친정에서 들은 것은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고모들이 우리집에 패악을 떨러 왔을 때, 울 엄마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던 둘째 고모를 떠다 밀면서 "고모네 엄마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울 엄마한테 행패 부리면 가만 안 둔다"고 소리 질렀던 고3때였던 것 같다... 엄마한테 간살을 떨며 하나 있는 집마저 팔아먹게 하고, 애들만 실컷 키우게 하다가 병들자 아들 집으로 떠넘긴 그 딸들이, 자기 엄마 똥-오줌 받아내며 돌아가실 때까지 간병한 울 엄마에게 하는 짓거리라니.. 그간은 할머니가 계셨기에 아무 말 못했지만, 엄마 없는 친정에 와서도 손위올케에게 그리 함부로 구는 고모들과, 그 옆에서 무기력하게 서 있던 아버지를 보며 무척 화가 났기에 바락 바락 대들었다...그 뒤로 울 고모들 울 집에는 안 왔고, 들리는 소리로 "둘째가 보통은 넘는다"며 고모들이 아버지에게 뭐라 했단다...
남들로부터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결혼을 일찍 한 탓에 3맘의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님들이 많은 듯한데...사실 나는 91학번이다...)
같은 학번 님들은 기억하겠지만, 그 해 봄에 명지대 신입생 하나가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이 일은 내 삶과 가치관 자체를 뒤흔들 만한 일이었다...대낮에 새내기가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 나라...정말 분했다... 기독교 신자였고 세상이 신 중심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거부하고(이런 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범생이었다..) 시위에 참석하고.. 그런데, 그 시위 과정에서 또한번 나는 놀랐다... 그 새내기를 다들 "열사"라고 부르며, 열사의 뜻을 이어받자고 선배들이 구호를 외쳤다...
시위 후 토론 시간에 새내기들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다들 열사의 뜻을 이어받자는 격앙된 논조였다... 내 순서가 되어도 입을 열지 않자, 그나마 친했던 선배 하나가 괜찮으니 말해 보라며 옆구리를 찔렀다...숫기가 없어 보이는 얌전한 학생이었기 때문에...괜찮으니까 그냥 지금 심정을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 전, 대학 새내기를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는 이 나라가 혐오스럽습니다...그리고, 그 불쌍한 새내기를 열사로 칭하면서 선전의 도구로 삼는 선배들의 모습도 놀랍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이지만, 오늘 시위에 참석했었지요... 만약 오늘 시위에서 제가 선배들을 따라가다가 운이 없어서 맞아 죽는다면 저도 열사가 되는 겁니까.." 했다... 나중에 선배들끼리 수근대는 소리를 들었다.. 저녀석 보통이 넘네...만만치 않겠어...
사실 시댁에서도 나는 종종 그런 소리를 듣는다...
처음 들은 것이 언제였던가...아마 울 시작은어머니께 말대답했던 때였던 것 같다..
울 큰애를 낳기 전이니 결혼한 지 2년 정도 되었을까...
제사 마치면 항상 자고 오던 울 부부가, 마침 그 다음날 동창들과 낚시를 가기로 해서 시모께도 미리 말씀 드리고 즐겁게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형님들도 그러냐고, 이번에는 마무리 하고 다같이 가야겠네 하시면서...
시골인 친정에서 잔치가 있으셔서 제삿날 늦게 작은아버님 내외분이 오셨는데, 검은 비닐 봉투에 소머리 하나를 넣어가지고(핏물 뚝뚝~~) 오셨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 설명을 하자면 , 당시 제사를 마치고 곧바로 돌아가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많이 서운해 하셨다..다들 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살기 때문에 시댁에서 불편하게 자는 것보다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자는 게 낫고, 조카들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제사가 끝나자마자 형님들은 다들 집으로 가고 싶어하셨다.... 그래도 시모는 옛날 양반이라 서운해 하시고... 그래서 내가 낸 묘책이 아이가 없는 울 부부가 남아서 자는 거였다..제사 뒷설거지까지 다 하고 가면 너무 늦기 때문에 제사 뒷설거지 두고 형님들 먼저 가서 30분이라도 더 주무시라고... 딴에는 내 배려였다..)
울 작은어머니..다른 질부들(울 형님들)은 다 작은어머니랑 쿵짝하면서 울 시모 흉을 보는데, 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보기가 싫었나 보다..
제삿날 소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부터가 나는 싫었던 사람이니, 작은어머니랑 궁합이 안 맞는 건 사실인 듯했다..그 이후 말씀이 더 가관이다..
"막내야..네가 항상 자고 가니까... 이거 손질하고 토막 내서 냉동실에 넣어둬라" 하시는 거다...
헉...소머리...물론, 해 본 적도 없는 일이고...다음날 대학 동창들과 낚시 약속이 있으므로 안 되겠다고 했다...다음날이 휴일이었으니 아마 다른 형님들한테 하라고 하셨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에도 계속 "하고 가라니까.." 소리를 너댓 번은 하시는 거다... 나는 계속 거절했고, 나중에는 작은어머니 언성이 높아지셨다... 난 결국 대답을 안 했다..( 그 동안 울 시모는 안방에 계셔서 내막을 몰랐고, 형님들은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 가겠지 싶었나 보다...난 암말 없이 제사 마치고, 설거지 마친 뒤(먼저 가시라는 말이 없으니 형님들도 꼼짝 없이 뒷설거지 같이 했다..) 형님들이랑 같이 집으로 왔다...
낚시를 마친 후 시댁에 갔더니, 울 시모와 시부가 동네 아짐들과 다 처리해서 이미 손질해 놓으신 상태였다...가져가서 먹으라고 내미시는 쇼핑백을 마다하고 그냥 집으로 왔다...
이틀 후인가...바로 윗형님이 전화를 하셨다...그나마 나랑 제일 나이 차가 적고, 그래서 이런 저런 속말도 가끔 하는 형님이라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악역을 자청한 모양이다..형님들과도 이야기 해 보았고, 작은어머니랑도 통화해 봤는데, 이번엔 막내 네가 잘못했으니 사과 전화를 드리란다...
"형님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하고 물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네 하고 나서 안 하면 되지...어른한테 계속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냐고...
그러면 못 쓴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아마 내 흉을 본 것이겠지...
잘 건드렸다 싶었다...
"전, 그렇게 못하네요...하지도 않을 것 대답만 넙죽하는 게 더 어른 무시하는 것 아니예요??
전, 작은어머니 이해가 안 되네요...아니, 어머니께 선물로 가져오신 거면 어머니가 어떻게 처리를 하시던 어머니가 알아서 하시게 둘 일이지, 왜 작은어머니가 이래라 저래라 자꾸 곤란하게 채근하신대요??
형님은 제가 나중에 형님은 제쳐두고, 형님 며느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울 형님 뭐라고 말을 못하신다...이어서 쏘아붙였다...
"형님들도 그래요...전 형님들도 이해가 안 가요..손아래 동서가 작은어머니한테 그리 당하고 있는데...빈 말이라도 작은어머니 그냥 두시면 저희가 알아서 손질할게요 하시면 안 되나요?? 이 집에 며느리가 저 하나에요?? 전, 친정 언니처럼 형님들 의지하면서 이날껏 공경하면서 살았는데, 내가 그리 곤란한 상황인데도 뒷짐 지고 있던 형님들한테 많이 서운해요..."
울 형님 계속 침묵...
"지금은 저도 감정이 상해서 전화 못 하네요...나중에 제가 드리거나 말거나 할게요.." 했다..
울 형님 날 달래려고 애쓰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작은어머니께 전화해서 사과를 하기는 했다...울 형님들 논리대로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그냥 네 하고 나중에 사정을 말씀해도 될 것을 거절하셔서 기분 상하셨죠?"
"알면 됐다..이놈아" 그러신다..
"전, 하지도 않을 거면서 한다고 대답하는 게 더 못할 일이라고 여겼었는데, 제 생각이 짧았나 봐요.."
작은어머니..침묵...
"전, 사실 시어머니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작은어머니는 친정어머니랑 비슷한 연세이시고 해서 항상 많이 의지했네요..
아가씨(작은어머니 딸)나 도련님도 저랑 또래여서, 여기 시숙들(거의 15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큰 시숙은..)처럼 어렵지도 않고 해서... 친근하게 느끼구요...
작은어머니도 저랑 같은 막내며느리(성씨도 같다..별로 흔한 성도 아닌데..) 이시고, 성씨도 같고...
항상 마음으로 많이 의지했었는데... 요즘 제 또래에 그런 일 해본 사람 없는 것 작은어머니 잘 아시잖아요...가르쳐 주시는 것도 아니고 저더러 무작정 하라고 하시니 서운해서 그만 말대답했네요..."
또 침묵....
나중에 울 시모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어머니와 큰형님이 울 시모에게 막내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나... 제삿날 무슨 일 있었냐고...그저 웃고 말았다..
그 때 이후로,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작은어머니나 형님들과 비교적 잘 지낸다..
매년 김장도 형님들과 작은어머니로부터 갖다 먹는다... 잘 해 주시고, 나도 노력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형님들은 시숙과 다투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우리 집에 전화를 한다...1-2시간씩 수다 떨면서 풀어드리곤 하고...시부모 문제를 제외하면 화기애애한 동서지간이었다...)
몇 번의 보통 아닌 성질을 보인 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나 스스로도 받는다...
그 보통 아닌 성질이 다시 꾸물럭 거리며 올라온다...
시부가 입원하는데에도 불똥이 튈까봐 전화 한통 안 하는 가운데 두 형님들...
시아버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도 전화 한번, 발길 한번 안 하는 큰형님...(아마...이번에 내놓은 자식이 되어서 시부모 모시는 일을 피해 볼 참인가 보다..)
이웃집 노인이 아파도 이렇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명절, 제사에는 모여서 화목한 가정인 척 했으나...
양 부모 모두 병들고 나니 찬밥이 되고 만다...
나서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지만...끝까지 모른 척 하기에는 울 시부가 너무 많이 여위셨다...
결국, 울 큰형님이 말한 잘난년들(3맘과 시누)이 알아서 노후를 책임 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간, 울 시누도 올케들 하는 것 두고 본다고 시댁에 얼씬도 안 했다...나도 그러라고 했었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월요일에 전화했다... 애달픈 자식들이 해야지 어쩌냐고...
형님들 때문에 머뭇거리다가 부모님 돌아가시면 우리 죄만 크다고...
화요일에 시누가 결국 아버지 뵈러 다녀갔단다...
모르긴 몰라도 울 시누 많이 울었을 거다. 한달 전에 비해 말도 못하게 여위신 아버지 모습에..)
그래요... 제가 모실 겁니다...
형님들 꾀에 넘어가서는 아닙니다...
저도 형님들처럼 꾀를 부리면 한 전략하는 사람입니다..
(고딩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모든 선거란 선거에서 참모, 정책국장이었던 사람이고..
제가 나서서 선거에 진 적이 없습니다...시어머니 병원비 문제로 2년 전에 시댁 식구들 소집했을 때 아마 어느 정도 아셨을 겁니다..)
시어머니 모시느니 이혼하겠다는 큰형님의 뻔한 협박 때문도 아닙니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큰시숙이 안쓰러워서도 아닙니다...
너무 이뻐서 바닥에 내려 놓기도 아까운 울 막둥이처럼,
울 시모께도 내 남편이 그리 끔찍한 막둥이일테니..
전 착한 며눌 암 환자도 아니고...
며느리 도리만 강조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치만 말이죠...사람 도리는 하고 사십시다...
네... 형님들의 골칫덩어리 시부모는 제가 모시지요..
근데 말이죠..형님들... 저 보통 아닌 것 아시죠??
보통 아닌 것, 잘난 년인 것...아마 제대로 보시게 될 겁니다..
형님들 깜짝 놀랄 만큼 행복하게 살 겁니다...
부모님 의식주는 제가 책임 지지요...
병원비는 지금처럼 나누어 냅시다..
용돈이요??
전 모시고 사니 용돈 안 드릴 겁니다..
그간 생활비 내신 것처럼 부모님 용돈은 형님들이 드리세요..
제사도 저희 집에서는 안 모십니다..
살아 있는 부모를 제가 모시니, 죽은 조상들 제사는 형님들이 번갈아 지내세요..
부모님 재산이요??
저 손 안댑니다.
이미 갈 것은 다 맏아들한테 간 상태이고, 남은 것이라고는 딸랑 집 한채...
그 몇천만원 땜에 모셨다는 소리 저는 안 들을 겁니다...
저 꼬시려고, 그거 모시는 사람 몫이라고 미리 말씀들 하시는데...절대 안 받습니다...
어머님이 굳이 굳이 주신다면, 어머님 손주들 머릿수대로 똑같이 나눠서 학자금으로 주시라 할 겁니다..(뭐, 우리 집 애가 셋이니 제가 제일 많이 받기는 하겠구만요...)
형님들한테는 요 정도만 기대합니다...
나머지는 잘난 년인 3맘이, 보통 아니게 모실 겁니다...
일곱 식구가 단란하고 화목하게 사는 가정 ...제가 만들고 맙니다..
두고 보시지요..
PS.. 내일(아니 오늘이네요..) 울 시부가 입원하신답니다...
도무지 평상심이 찾아지질 않아 여기다가 장문의 하소연을 하네요...
일이 손에 안 잡혀서 포기하고, 맥주 캔 하나를 홀짝 거리고 있네요..
그래도 이 방이 있어서 이리 속상한 밤에 하소연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내일이면 부끄러워서 이 글을 지우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그래 한번 살아봐라" 는 식의 악플은 사양합니다.. 저도 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