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내숭과 거짓이 승리한다..내게 남은건...

If I ever feel loney2005.01.26
조회1,699

벌써 2년반이 지난 일이라..이제서야..감정의 동요 없이 이야기를 할수 있습니다.

이제와서 이런 글을 쓰는건 저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길 바라는 맘에서 입니다.

조금은 긴 내용인데..지루하지만 끝까지 읽기 바랍니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늦은 여름...지루한 오후 였습니다.

외국서 유학 생활을 한 저는 한 외국계 기업에 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생활하며 배운 영어를 외국인 친구와 계속 공유 하며 그 잃지 말아야 겠단 저는

직장 동료가 알려준 해외 팬팔 사이트를 가입해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과 간단한 프로필을 작성해

이메일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계중에 한국말로 보낸 분들도 많아서 또다른 친구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중 간결한 문장이 절 이끈 메일이 있었습니다.

몇번의 이메일이 오고 갔습니다.

그는 LA 이에 살고 있는 한인 교포였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모터서클을 타고 술과 담배를 하는 조금은 날라리 크리스천 이었습니다.

메일을 주고 받던 우리는 메신저로 대화 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음성채팅, 그리고 전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시차때문에 그사람의 시간에 맞춰 통화 하려니 여간 피곤하지 않았고...당연히 전화비도 엄청나게

나왔음에도 불구 하고...그런것 하나 우리에겐 걱정꺼리도 되지 않은 달콤하고 짜릿한 시간 이었

습니다.

 

두세달 시간이 흘러...그에게 약간의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게 너무 집착 하는 느낌....구속이라기 보단...너무 자주 전화하고....직접 만난것도

아닌 제게 사랑 공백을 해왔습니다.

한번은 음주후 모터서클을 운전한 그에게(상습적으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기에 헤어지자는 말을 했더니..울면서 애원 하더군요...

그후 그는 모터서클을 팔아 제게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그런 그가 좋았습니다.

후일..그에게서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Bi-POLA 라는 정신 질환을 10년전에 앓은 경험이 있다는...

바이폴라...즉 조울증 이란 병인데..완치가 없다는 병입니다.

조증(기분이 들떠있을때)와 우을증이 번갈아 가는...과대망상과 심한 상실감이 번갈아..오는..

그에 그런 아픈 기억을 들은 전...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그의 행동이 이해가 갔습니다.

후일 그가 다시 재발 하여도 저는 그옆을 지킬 자신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린 크리스마스를 함께 할 계획과 서로 보고 그래도 맘이 변함 없으면

결혼을 허락 받으러 한국에 그가 나왔습니다.

 

공항에서 그를 초조하게 기다린 제 앞에 장미꽃 한다발을 안고 따뜻하게 미소를 짓는 그를 드디여

만났습니다.

훨씬더 근사한 그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제 가족들은 그를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 재밋는 영화 그리고

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제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은 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여 늘 꿈에 그리던 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습니다.

한번의 이별의 아픔을 격어본 저에겐 사랑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행복 으로 ...

 

그와 무궁화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여행을 가 와인바 에서 그는 결혼하자며 너무 행복 하다고

프로 포즈 했습니다.

황홀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뒤로 하고..

저는 부모님게 전화로 말씀 드렸습니다. 결혼 할꺼라고...

부모님은 외국에 사시기에 결혼승낙을 하러 한국에 오셔야 하는 상황이라..

모든일을 결혼한 언니와 상의 하고 2월에 간단히 식을 올리고 그를 따라 같이 미국에 가서 사는

결론을 내린 전...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그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약혼링을 맞추러 신촌으로 간 그와 나는 너무나 행복 했습니다.

행복도 잠시...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그의 형수 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형의 두번째 여자 였습니다.

그의 형은 이혼을 하고 옛날 여자를 만나...아이까지 갖은 상태 였습니다.

엄격한 크리스천의 그의 부모님은 형을 용서하지 않으시고..멀리 LA로 동생과 보낸 상태이고

부모님은 미국의 다른 주에 살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형의 두번째 여자를 싫어하시는 부모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해 주셨습니다.

전 친구의 부모님들과 더욱 친한..어른들이 좋아하고...저또한 거리감 없이 딸처럼..매일 전화

드리고...제게 또 다른 부모님이 생겼단 마음이 들었습니다.

형의 두번째 여자는 한국에서 혼자 임신을 한 상태 이고..그 형과 살기위해 동대문의 가게를 정리

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녀를 청담동에서 만났습니다. 형의 여자 말입니다.

거의 만삭의 그녀는 쌍커풀과 코수술을 너무해서 어색한 모습에...셋팅에 눈썹까지 붙이고 온

그녀가 너무 우습고 안쓰러웠습니다.

아마 제게 컴플렉스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번쩍이는 십자가 목걸이를 들이밀며 이러더군요.."이거 각다이아몬드 예요" XX씨도 이거 도련님

(제 남친)에게 해달라 하세요" .....그때 전 너무 어의가 없었습니다. 워낙 쥬얼리도 별 관심 없던

저이고..그런건 제게 아무 필요 없고..그냥 남친 하나로 만족 했습니다.

그래서..."전 그런거 별로 관심 없어요..XX씨 하나면 셋방도 행복할것 같아요" 라고..

얼굴색이 변하더군요..

그때부터 그녀의 복수가 시작 되었나 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남친 집은 꽤 큰 사업체를 하고 있고 꽤나 영향력 있는 집안 이었습니다.

제가 2월에 결혼해 미국에 그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게되면.....그녀의 위치는 더욱 불안 하고

사업체을 제 남친이 전부 다 물려 받을꺼란 그녀의 생각에 시작된 제 불행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

였습니다.

택시안 그의 핸폰에서 울리는 그녀 목소리...또렸하게....

도련님 낼 부산 가야 해요...XX랑 같이 가는거 아시죠?

그녀가 거론한 이름은 여자 였습니다....

집에 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어찌 된일이냐고...

그는 형수가 심부름을 시켰다고...그리고 얼마전에 형수 친구들과 만났는데..그녀도 그중

한명이었다고..아무일 아니니..걱정말라던 그....

그는 부산을 가지 않았습니다. 저땜에 안간거 였겠죠...

이틀후 그는 형수를 만나러 청담동 간다고 하더군요....저녁 같이 먹자며 저보구 맛난걸  만들어

놓으라던 그는 밤 12시 새벽 2시가 되어도 안오더군요..

새벽 3시간 되어온 그는..술이 만취된 상태였습니다...옷을 벗기고...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고

꿀물을 타놓은 저는....택시타고 수산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를위해 모시조개탕을 해장국으로 해주고 싶은 저는 추운겨울 맨발에 경황없이 어둑한 시장을

헤매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아무런 변명 없이...또 나가더군요..

그러면서...분당에 있는 형수네서 지내겠다는 말을 하고....심장이 멈추는줄 알았습니다.

이유를 모른체 저는 눈물로 밤을 지세야 했습니다.

며칠후 그에겐 여자가 생겼다는걸 알았습니다....형수의 친구..네살 연상에...미대를 나온 그녀

였습니다....홀아버지에 혼기가 꽉찬 33살의 그녀...

후일 그의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론...형수가 "제가 너무 뚱뚱해 봐줄수 없다는둥"엄청난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그의 부모님께...그때 전163센티에 54키로 날씬 하지 않지만..뚱뚱하지도 않은

보통의 여자 였습니다...

그리고...그녀에게 그의 집이 엄청난 부자이니 꽉 잡으라며...그와 하루밤을 보내고...처녀라고..

올가미를 매 결혼을 하라는...참 어의 없는 일입니다.

아직까지도 남자들은 virgin에 많은 의미를 갖는가 봅니다...그때 알았다면...저도 수술이라도 하고..

그에게 아픈 과거를 철저히 숨길걸 그랬습니다....

제겐 그가 두번째 남자 였습니다....첫사랑의 아픔또한 그가 잘 알고 있고 그또한 많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솔직했던 제가 어리석었단걸 깨달았습니다....

물론......그녀가 맘에 들었나 봅니다..

제게 없는 긴 생머리에 눈웃음 말입니다..근데..그녀는 그리 예쁘지도 지적이지도 않은 멍청한...

여자 였습니다..얼마전 그녀의 싸이을 보고 방명록의 리플을 단 그녀의 글을 보고...35살의 깊이와

분위기는 찾아볼수가 없어 유치한 말과 욕 그리고 채팅언어 일색이었으니 말이죠...

 

철저한 내숭의 그녀 그녀는 미대를 나왔습니다 .미대를 나온 많은 이들이 술과 담배 또 자유로운

생황을 하는건 익히 본 저로선...의구심이 갔지만...그가 선택한건 제가 아니기에..그를 보냈습니다.

 

만남도 소중하지만 헤어짐도 소중한 저는 뭔가 예의를 갖춘 이별을 원했기에..우리에 추억이 있는

정동에서 만나자 했습니다.

길에 서서 이별을 고하는 그에게 저는 애원 했습니다...

딱 30분만 시간 내어 달라고..이렇게 길에서 아무렇게나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따뜻한 차한잔 마시며 이별 하고 싶다고..............

그는 냉정하게 뿌리 쳤습니다...고작 30분을 못내주는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는 저를 쫒아다니며..그 시간도 아깝다며...자다 일어나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가 따뜻한 차한잔에 인색했습니다...

너무 빠르게 진행된 이일이 현실인지 아닌지 조차 분간 안가 울부짖는 저를 뒤로 하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그와 헤어진후 그는 5월의 신랑이 되었습니다...제 생일이 있는 그 5월에 말이죠....

축하한다 전화한 제게...미안하다며..자기도 속은게 많다며..결혼식에 오겠냐는 말을 건네더군요..

저희동네인 서초동에서 한다며......

 

길고긴 이별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그후 매해 크리스마스엔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파리, 호치민....

그와함께했던...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제겐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술도 담배도 못하는 저로선 ....그를 잊기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업도 시작 했고..안정권의 꽤 괜찮은 수익도 얻고..파리로 이태리등등 열심히

출장 다니며 그를 시간에 묻었습니다.

 

이 이별에서 하나 배운게 있습니다.

절때 연인에게 과거를 솔직히 말하지 말것...이란 진리 말이죠...

 

이제는 다시..누군가를 위해 비워진 마음에 따뜻하게 예열을 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