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러브송 < 08 >

나비200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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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왜 울어요, 왜?”


사람들은 모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선뜻 상황을 설명 하려는 이가 없었다.


“형! 왜 문희씨가 울고 있던 거야?”

“모르겠어요. 희는 주방에서 혼자 고기 굽고 있었고, 우리는 여기서 카드 치고 있었는데.”


격양된 용준의 말에 채련이 말꼬리를 흐리며 답했다.


“그럼 다들 놀고 있었고, 문희씨 혼자 고기를 굽고 있었던 말이야?”

“그게 그렇게 됐다.”


대답하는 윤섭씨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분위기는 내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별 일 아니에요. 용준씨. 제가 아까 넘어진 데가 아파서 그랬어요. 저분들 때문이 아니라 아픈 것 때문에 힘들었었나 봐요.”

“얼굴이 왜 이래요? 아까 넘어졌을 때 다친 거예요?”

“괜찮아요. 조금 부은 것 뿐이에요.”

“문희씨 왜 바보 같이 굴어요? 아파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면서 괜찮다니요?”

“용준씨 저는 진짜 괜찮으니까 이제 화내지 말고 들어와 식사하세요. 식사 못했죠?”

“이렇게 다쳐서 아픈 사람한테 고기 굽게 시키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걸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화를 안내요? 사람들 진짜 너무하네요. 윤섭이형! 저랑 밖에서 얘기 좀 해요.”


용준씨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시종일관 격양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야!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니 눈엔 형들 안 보이냐? 니 여자가 짜구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어? 이 자식이 말이야 형들 보구서도 인사도 안하고 뭐하는 짓이야?”


윤태씨였다. 자신의 동생이 나이어린 용준씨에게 끌려나갈 판이 되자 화가 난 것 같았다.


“저 형들한테도 솔직히 섭섭하지만 최소한 예의를 지켜드리는 겁니다.”

“예의를 지켜?”

“예. 형들에게 섭섭해요. 윤섭이 형은 아까 잘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더 섭섭하구요.”

“이 정신나간 새끼!”


윤태씨의 손이 용준씨의 빰을 후려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니가 여자면 사죽을 못 쓰는 지는 진작에 알았지만 위아래도 없어? 한 대 맞고 나니 형들이 이제 보이냐?”

“형! 저 맞을 짓 한 거 알아요. 이런 건 섭섭하지 않다구요. 그래도 문희씨에게 한 형들 행동은 진짜 섭섭해요.”

“미친 새끼.”


윤태씨는 한 대 칠 듯하다가 손을 내려놓았다.


“치현아! 우리가 나가자. 저 놈 꼴 보기 싫다. 야! 그리고 너 용준이. 너 이제 우리들이랑 내 친구들한테 연락하지 말고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형이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 너 같은 동생은 우리한테 없으니까.”

“······.”


용준씨는 나가는 그들을 잡을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형! 이대로 가는 게 어디 있어.”


그들을 잡은 것은 윤태씨였다.


“야, 너는 나오지 마. 채련씨 때문에 남겨두는 거야. 그리고 내일 올라와서는 너도 용준이랑 연락하지 마. 알았어? 이래서 기집을 잘 만나야 한다는 거야.”


윤태씨는 나가면서 나에게 서늘한 눈빛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게 다 나 때문이라는 눈빛이었다.

정작 일을 만든 이는 그가 아니었던가, 대체 왜 내게 뒤집어 씌우는 거람. 내가 그렇게 잘못을 했던 걸까. 3년 전 거짓말을 한 것도 그였고, 난 그저 그 몰래 그를 마음에 담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남몰래,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벌어진 일이 다 내 책임이라니.

어쩌면 내 책임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자신 밖에 모르는 남자를 흠모했던 것이 잘못이면 잘못일 것이다.


“윤태씨,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엔 또 보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도 처음이니 재미있던 걸요.”


난 마음속에서 그를 내보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나의 인사를 싸늘한 냉소로 받았다. 3년간의 짝사랑이 완전히 끝나는 순간이었다.


***


“문희씨, 얼굴 괜찮아요? 찬바람 쐬는 것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괜히 나오자고 했나봐요.”


함께 바람을 쐬자고 했던 용준씨는 계속 내 걱정뿐이었다.


“아니에요. 아까 많이 답답했거든요. 조금 춥긴 해도 나오니 좋네요.”

“속 많이 상했죠?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다시는 그런 일 겪을 일 없을 거예요.”

“꽤 자신 있게 말하시네요.”

“내 여자 하나는 지킬 수 있는 남자니까요.”


어쩜 낯간지러운 말을 저렇게 술술 뱉을까. 역시 여자를 많이 만나본 바람둥이다웠다. 하지만 싫지 않았던 건 모든 남자들이 바람둥이라 저렇듯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세상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어서였다.


“왜 웃어요?”


그 상상이 날 웃음 짓게 했었나보다.


“어쩜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해요?”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예. 놀리는 거예요.”

“문희씨는 바보에요.”

“······?”

“내 여자가 되어 달라는 제 말뜻도 모르시고.”


순간 어색해져서는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 용준씨의 손이 나의 얼굴로 다가왔다.


“많이 아파요?”


따뜻한 손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손을 주머니에 넣어서 덥혀 놓고 있었을 것 같았다.


“손이 따뜻하네요. 절 위해서 일부러 그러신 거죠?”

“예. 차가운 손으로 문희씨 얼굴을 만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알고 있었어요. 저 그렇게 바보는 아니거든요.”

“······.”


말을 잇지 않는 용준씨의 눈길은 점점 뜨거워져 갔다. 당장 열정적인 키스라도 퍼부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제 추워요. 우리 돌아가요.”


그에게 마음을 줄 자신은 없었다. 내게 바람둥이는 무서운 존재니까.


“진짜 바보 아니네요. 키스하고 싶은 제 마음을 읽은 건가요?”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아요. 하지만 용준씨는 좋아요.”

“오늘은 그걸로 만족하지만 내일은 키스하고 싶어질 거예요.”

“조심해야겠네요. 내일은 도망 다녀야겠다.”

“전 잡으러 다니구요.”


우리는 어색함 없이 손을 꼭 잡고 객실로 향했다. 그에게 더 빠져버리는 것은 두려웠지만 멋진 남자의 손을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왔니? 같이 카드 치자.”


윤섭씨였다. 윤섭씨와 채련은 거실에서 단 둘이 카드를 치는 중이었다.


“아니. 형. 난 문희씨 얼굴 찜질해 주려고. 내일 더 부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윤섭씨에게 말하는 용준씨의 말에선 다정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 그러니?”

“형도 일찍 자. 나도 많이 피곤하네.”

“용준씨, 그러지 말고 같이 와서 놀아요.”

“죄송해요. 문희씨가 아픈데 그럴 수는 없죠.”


용준씨는 채련에게도 냉랭했다.


“용준씨, 저는 괜찮은데. 우리 같이 놀아요.”

“그럴까요? 문희씨가 좋다면 그렇게 하죠.”


나에 대한 용준씨의 배려는 지나칠 정도였지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넷은 그렇게 두어시간 놀다가 여자 남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정말 일 많던 하루가 마감된 것이었다.



***


“문희씨, 우리 두고 나온 것 없는지 확인했어요?”

“예. 서랍까지 열어봤는걸요.”

“빈틈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저에게는 빈틈 내어 주셔야 합니다.”


출발 준비를 할 때도 용준씨의 작업 멘트는 끊이지 않았다. 어제 오늘 익숙해져서는 듣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


“형! 문희씨는 내 차로 모실게. 형은 채련씨랑 같이 가. 중간 휴게실에서 한 번 보자구.”

“알았다.”


윤섭씨는 어제부터 내내 저기압이었다. 발랄함에서 용준씨와 비교되는 우울함은 무거움을 주기에 보기 좋지 않았다.


“그럼 우리 출발한다.”

“잠깐만, 나 문희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저요?”


차에 타려는 우리를 윤섭씨가 잡았다. 휴게실에서 다시 본다는데 따로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지 의아했다.


“문희씨, 서울 가기 전에 어제 일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잠깐만 저랑 얘기 좀 하시죠.”

“그 일이면 됐어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제가 다 잘 한 건 아니니까요.”

“잠시면 됩니다. 5분도 걸리지 않을 거예요.”


용준씨를 바라봤다. 용준씨도 잠시 이야기를 하고 오라는 눈치였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윤섭씨는 차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저, 어제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나이에 맞지 않게 주책 맞게 울기나 하고. 저도 잘 못이 많아요.”

“문희씨가 오해 하시는 게 있어요.”

“오해라뇨? 뭐죠?”

“어제 제 행동이요. 저도 문희씨 혼자 일 하시는 것 가슴 아팠습니다.”

“형님들이랑 같이 잘 노셨으면서 가슴이 아프셨다구요?”


사실 은근히 윤섭씨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래도 제일 믿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안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가 아니었던가.


“역시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라도 그랬을 테지요. 하지만 전 문희씨를 위해서······.”

“저를 위해서라구요?”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사실 문희씨가 우리 형에게 잘 보이기를 바랐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 형에게 잘 보이기를 바랐다니.’


“저희 형 보셔서 아실 테지만. 보수적이죠.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쯤은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아마 채련씨는 좋게 보지 않았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문희씨는 참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을 거구요. 문희씨가 저희 형 눈 밖에 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어요. 문희씨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중에 설명하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제가 왜 윤섭씨 형에게 잘 보여야 하죠?”


윤섭씨는 말이 없었다. 그저 애잔한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어머, 나 바본가봐!’


그제야 윤섭씨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남자 날 좋아하나봐.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거란 말이야?’


내게 친절했던 그의 태도가 갑자기 바꿨던 것이 모두 이해되면서 순간 나의 바보 같음에 휘청거릴 정도로 어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