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남자 유키*** <#13. 지나의 감정>

길스진200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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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나의 감정>>

 

 

 

다음 날 아침.  지나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 해 뒤척인데 반해 의외로 가뿐하게 일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이곳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제일 먼저 일찍 일어났으리라는 예감을 뒤엎었다.

 

아래층 다다미 방인 거실에서는 사토 츠바사가 앉아서 조간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안으로 들어서 그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츠바사는 차가운 시선을 그녀에게 던지고는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긴 의사소통이 안 될텐데,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지나는 그곳에서 나와 정원으로 나갔다.  그녀는 우선 밤새 어디서 잤는지 모를 보리를 기쁘게 반겼다.

 

"어휴~  우리 보리!  잘 잤니?  미안해... 괜히 멀리까지 데려와서 푸대접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보리는 신나게 꼬리를 치며 폴짝폴짝 뛰올랐다.  녀석의 짖는 소리에 그녀는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지나는 전날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제대로 보지 못 했던 많은 관상식물들을 둘러보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다양한 식물들이 많아 작은 밀림을 보는 듯 했다.  귀한 식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매우 신기했다.

 

거기다 시원하게 내려오는 작은 폭포와 연못 속에서 헤엄치는 잉어들은 또다른 볼거리였다.

 

"보리야, 봤니?  잉어야!  잉어!"

 

보리는 짖어대며 연못 속에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을 감상했다. 

 

이렇게 넓은 정원을 일일이 손보려면 인부들이 제법 필요할 것이다.

 

무슨 영화였더라...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영화에서 이런 정원을 가지고 있는 일본 주택을 본 적이 있었다.

 

일본 야쿠자 두목의 집이 매우 으리으리했는데 연못과 많은 관상식물들이 있었다.

 

거기에 실내는 전통일본가옥으로 방이 모두 다다미방이였다.

 

"공기가 어때요?"

 

갑작스런 여자 목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이곳 안주인 카오리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단정하고 심플한 옷차림이었지만 지나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빛이 나는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아주 좋으네요.  한국에서는 시골이나 산에 가야 이런 공기를 맡을 수 있죠.  정말 시골에 온 느낌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멋진 화분하나 드릴게요."

 

"예?  아, 저기... 고, 고맙습니다, 사모님..."

 

"조금 있으면 아침식사를 할 겁니다."

 

지나는 식사준비를 돕겠다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카오리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아뇨.  선생님은 이곳의 손님이세요.  여기는 일손이 많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편안하게 지내세요."

 

"아, 네..."

 

잠시 후, 지나는 주방으로 갔다.  아주 넓은 식탁에는 전날 저녁식사 때 있었던 사람 그대로 앉았다.

 

너무 조용히 식사하는 것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재미나게 대화를 하면서 식사하기를 바랐다.

 

일본 음식은 의외로 깔끔하고 정갈했으며, 시각적인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했다.

 

한국식과는 다르게 각자의 접시를 준비해 조금씩 덜어서 먹어야 하는 깔끔함과 주의가 필요했다.

 

또한 밥그릇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밥이든 국이든 들고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물은 직접 들이마시고 건더기는 젓가락을 사용해야만 하는 까다로움에 지나는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 맛은 매우 깔끔하며, 주재료의 형태와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 했다.

 

한참 식사하던 중, 그녀는 아까부터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자꾸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신경쓰였다.

 

'왜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지?'

 

그녀는 음식물이 흘리지 않도록 신경쓰랴,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신경쓰랴... 식사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레이와 가정교사가 일본으로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유키는 임시로 고용한 가정부의 요리가 입에 맞지 않아 짜증이 났다.

 

거기다 일하다가 새벽에야 잠든 그는 방문에다 절대 방해말라고 써붙여놨지만 가정부는 그의 명령을 어기고 자주 노크를 해 그의 잠을 깨웠다.

 

일하고 있을 때에도 노크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는 당연히 그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데도 왠지 귀찮고 짜증이 났다.

 

결국 유키는 가정부에게 돈을 주고 돌려보냈다.  확실히 앞에 있던 가정부만큼 제대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의 시간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 현명하고 눈치 빠른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간절하게 필요한 것은 레이의 가정교사였다.  이틀 밤 연속으로 꿈 속에서 반라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누워있는 그의 옷을 벗기고 가슴에 애무를 해주는 그녀의 입술을 뜨겁고 촉촉했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그녀의 손길은 자극적이고 애로틱했다.

 

그는 참을 수 없어서 그녀를 자신의 흥분한 몸 아래에 눕히고 그녀를 가졌다.

 

그녀의 흥분으로 격양된 신음소리는 그의 움직임을 리드미컬하도록 도와주었다.

 

유키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렸다.  벽시계가 어느새 10시를 가리켰다.  그는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도착한 기사는 유키가 돌아가도 좋다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나랑 한 잔 하겠나?"

 

"예."

 

기사는 그의 말에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들이 간 곳은 한강주변에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겉이 허름한 것처럼 내부도 오래되어 쾌쾌한 냄새가 났고 조명이 시원치 않아 침침했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은 몇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의 나이가 든 남자들이었다.

 

두 남자는 제일 안쪽 어두운 자리를 잡고 앉자 늙은 주인이 물잔을 가져왔다.

 

늙은 주인은 눈을 몇 번 껌뻑거리고는 이내 유키에게 주름 진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예...  술 주십시오.  안주는 알아서 주시구요."

 

주인은 어슬렁 주방으로 걸어가 술과 기본 안주를 가지고 왔다.  기사는 유키에게 먼저 술을 따라주었다.

 

사토 유키는 사고 전에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고 후, 그는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기사로 고용한 남자가 그에게 이곳을 소개해주었다.  실내가 어두워서 누군가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후로 유키는 아주 가끔씩 이곳을 찾았다.  주인은 의외로 그를 알아봐 주었고 노인네의 시력때문인지 그의 상처를 보지 못 했다.

 

"내가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이곳 때문이지."

 

유키는 술을 마시고는 조용히 말했다.

 

"이 찌개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자네 덕분이군."

 

"..."

 

기사는 사장의 빈 잔을 채워주고 자신도 잔을 비웠다.

 

두 남자는 여러가지 주제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고 이따금씩 주인이 다가오면 늙은 그에게도 술을 권하기도 했다.

 

"사장님께서도 건너가보셔야 되는 건 아닙니까?"

 

기사의 물음에 유키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그는 작은 소주잔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유키는 그의 입을 막고자 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사의 얼굴을 차갑게 응수했다.

 

"자네 생각은 듣고싶지 않아."

 

"이번에 들어온 가정교사... 좋은 여자인 것 같더군요, 사장님."

 

"???"

 

유키는 술 맛이 너무 쓰게 느껴져 더이상 술마시기 싫었다.  그리고 한낱 기사녀석한테서 쓸데없는 질문이나 듣고 있을 순 없었다.

 

"사장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갑을 꺼내어 수표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에 얹어놓았다.  그는 예전부터 이곳에 올 때면 수표 한 장을 내주고 왔다.

 

"그만 가지."

 

기사는 차에 올라타서 안전벨트를 매며 사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기사주제에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었다.

 

"..."

사토 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집 앞이길 바랐다.

 

 

 

 

사토 츠바사는 회사일로 장기간 타지역으로 출장을 가야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지나와 차를 마시기를 원했다.

 

거실로 간 그녀는 그가 혼자가 아니라 그 옆에는 카오리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놓았다.

 

그가 굵직하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일본어로 말했다.  옆에 앉은 카오리가 지나에게 통역해주었다.

 

"손님대접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마안하다고 하시는군요."

 

"네?"

 

지나는 놀란 눈으로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숙였다.  츠바사는 다시 뭐라고 얘기했다.

 

"미국으로 장기출장가셔야 하기때문에 불편한 일이 없기를 바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염려마시고 다녀오세요, 사장님"

 

카오리는 그녀의 대답을 남편에게 통역해주었다.  그러자 츠바사의 눈이 지나를 쳐다봤다.

 

그는 그럼 다녀와서 보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지나는 얼떨결에 허리를 구부렸다.

 

"사장님께선 자주 출장가시나 봐요?"

 

츠바사가 올라탄 검은 차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보고 지나가 카오리에게 물었다.

 

"네.  무역회사다보니 출장이 잦아요."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였다.  1층 어딘가에서 유스케가 나왔다.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는 그녀에게 오늘도 하루종일 집에 있을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사실 하루종일 집안에 쳐박혀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다가 미아가 되기는 더욱 싫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

 

이때 레이가 보리의 사료가 담긴 그릇을 들고 나왔다.  아이는 유스케의 얘기를 듣고는 잔뜩 기대의 눈빛을 던졌다.

 

"있잖아요.  우리 놀러나가요."

 

아이는 유스케의 옷소매를 잡아 당겼다.  그는 아이의 키높이에 맞춰 허리를 구부렸다.  레이는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지나는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설마 내 욕하는 것은 아니겠지... 약간은 불안했지만 유스케의 표정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아이가 제방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지나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었다.

 

"지금 외출 준비해요."

 

"예?"

 

느닷없이 외출 준비라니... 하지만 레이는 이미 제방으로 가버렸다.

 

"10분 후에 봅시다."

 

"가, 갑자기..."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

 

유스케는 가정부에게 차 한잔 부탁하고는 멀뚱하게 앉아있는 지나를 남겨두고 거실로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아까 이집 주인이 봤던 신문을 펼쳐들었다.

 

2층 방으로 올라온 지나는 옷장 문을 열고 옷을 골랐다.

 

얇은 어깨끈이 달린 흰색 꽃무늬 원피스에 길이가 짧은 하늘색 반소매 가디건을 걸쳤다.

 

평소에 화장을 짙게 하지 않는 그녀는 날씨가 너무 더워 스킨, 로션만 바른 후, 긴머리를 하나로 땋고 어깨 한 쪽으로 돌렸다.

 

정원에서는 레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보리와 놀고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에게 모자를 챙겨줘야 했다.

 

"레이.  모자 챙겼니?"

 

"아뇨."

 

"햇볕이 따가워서 얼굴 타.  모자 써야 돼.  얼른 방에서 가지고 나와."

 

레이는 보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의 시끄러운 발소리를 들은 유스케의 인상이 굳어졌다.

 

"레이!  집안에서 뛰면 안 된다!"

 

레이가 또다시 뛰어서 현관으로 향하자, 그는 아이를 붙잡아 세워놓고 일본어로 꾸중했다.

 

"버릇없이 굴어서야 되겠어?"

 

이내 아이의 시무룩한 표정이 보였고 지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 했지만 그의 말투에 기분이 조금 상했다.

 

"네, 죄송해요.  근데... 보리는요?  보리도 데려갈 건가요?"

 

"아니.  데려가지 않을 거다."

 

레이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보리에게 시내구경시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유스케는 승락했다.

 

"신난다!  보리야!  밥 다 먹었으면 같이 나가자!"

 

아이는 또다시 뛰면서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의 경고를 금새 잊은 아이때문에 유스케는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하면... 한국말로 해줄래요?  레이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잖아요.  적어도 저하고 같이 있다면..."

 

"습관이 안 돼있어요.  앞으로 주의하죠."

 

유스케는 지나의 외모를 잠깐 훑어봤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살짝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육중한 대문을 나선 그들 앞에는 첫날 이곳에 올 때 타고온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뒷문을 열어 레이와 보리를 태우고 닫았다.  지나는 막 타려고 하는데 그가 닫아버리자 놀랐다.

 

"당신은 앞에 타요."

 

"네?"

 

"얘기하면서 가요.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설명을 들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아, 네..."

 

 

 

 

차가 시내를 달리는 동안 유스케는 특정한 건물이 보이거나 그녀가 뭐냐고 손으로 가리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지나는 적어도 그의 옆 얼굴을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유스케는 남자다운 각진 얼굴이었다.  유키처럼 강인한 얼굴이나 뛰어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지금 봤을 때는 유키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이 느껴졌다.  물론 첫인상과는 다르게 친절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키보다는 높은 톤이었고 훨씬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깍듯하게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사토 유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례한 남자였다.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남자였다.

 

고집세고 제멋대로인데다 명령조로 내뱉은 말투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지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는지를 깨닫자, 저절로 아랫입술이 깨물어졌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문제가 생길 때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었다.

 

유키는... 그것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입술을 핥는 것과 입술을 깨무는 것, 그리고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미쳤구나, 김 지나?  뭐든지 그 남자와 연관을 시키니?  내내 그 남자 밖에 생각 안 하고 있잖아?'

 

그녀는 옆에서 운전을 하고있는 유스케를 보며 계속 사토 유키를 떠올렸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설마... 내가...  그렇지 않을 거야!  그를 사랑할 리가 없어!"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다른 남자를 눈독들이다 못해 사랑한단 말인가.

 

그녀는 어떤 남자든 이제 쉽게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자신의 순결을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는 상처받은 영혼이었고 그녀 또한 옛애인에게서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하지만 난 사랑을 믿어.  언젠가는 멋진 남자와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주는 만큼 그 남자도 날 사랑하는... 그런 날이 올 거야.'

 

서 우진 뿐만 아니라 과거에 만났던 모든 남자들에게서 받았던 상처만 기억하고 살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뜨거운 사랑, 진실한 사랑을 하고싶었다.  서로의 육체만 원하는 가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감정까지...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원했다. 

 

그런데...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그는 그녀의 육체만을 원할 뿐이었다.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나는 말없이 지나가는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면...?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심장 쪽이 강하게 두근거렸고 욱신거릴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뭐라고 설명할 텐가.

 

그런 증상이 사랑이라면... 미친 짓이었다.

 

그녀는 지금 혼자서 큰 집에 있을 남자를 떠올렸다.  역시나 맥박이 거칠게 뛰었다.  그가 지금 뭘 하고 있을 지 너무 궁금하고... 그가 너무... 너무...

 

'보고싶어...'

 

그녀는 턱을 지그시 다물었다.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정체가 뭔지 드디어 깨달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긴다면... 그는 내가 지금 아는 남자일 거야.'

 

그녀는 눈가에 어느새 맺혀있는 눈물을 슬쩍 닦아내고는 생각했다.

 

감정이 움직이는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에게 향한 감정이 사랑이란 것을 안 이상... 그녀는 그 감정에 충실할 것이다.

 

사토 유키...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되니까...  언젠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억지로 그에게 매달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부담이 될 테니까...

 

자연스럽게... 그의 얼어붙은 감정이, 굳게 닫힌 마음이 열리도록 기다리겠어!

 

지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앞으로 해야할 감정에 충실할 것을 기억하기만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