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랑은 하지 않을 지난 이야기

김선아2005.01.30
조회525

눈이 왔습니다.

높은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눈은 쌓이고 녹는 정다운 눈이 아니라 마치 이물질이 날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일 때가 많습니다.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는 걸로 눈 마중을 대신할 정도로 삶이 담담한 나이가 된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직도 엊그제만 같은 오래전 눈오던 밤이 떠올랐습니다.


12년전 겨울 이맘때 첫아이를 낳았습니다.

아기는 천사같았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리고...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자기만을 돌보아 달라고 보채는 이기적인 천사.


산후조리가 필요했지만 나를 도와줄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연로한 시어머니는 하루에 한번 오셔서 밥과 미역국을 준비해 주시는게 전부였고

친정엄마는... 제가 애낳을 무렵 여행을 갔다가 발목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당신 한 몸 운신하기도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엄마가 다쳤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짜증을 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크는 동안은 물론이고 진학문제나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라고 자식한테 딱히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친정엄마만 믿고 있던 내 출산계획마저도 이렇게 망쳐 놓다니.

 

위로와 걱정은 커녕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짜증스럽게 말하며 저도 그 순간 제 엄마앞에서 천사가 되었었나 봅니다.


아이를 돌보며 내 몸까지 추스려야하는 셀프 산후조리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그럴수록 친정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되어갈 무렵 친정아버지가 집으로 내려오라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엄마가 드디어 깁스를 풀었다고..게다가 혼자오기 어려울 것 같아 엄마가 중간까지 마중을 갈터이니 한 두시간 참고 오면 어떻겠냐고..

 

없던 병까지 생길지경이던 저에게는 마다할 수 없는 제안이었고 못이기는 척  기차를 탄 요령없고 걱정많던 산모는 제발 아기가 잠에서 깨지않을 것과 빨리 누군가에게 이짐을 모두 건네고 싶은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주역에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한손에는 원주에 사는 제부가 싸준 열판은 돼보이는 계란을 보자기로 싸들고 한손엔 아기 업는 포대기를 돌돌 말아쥐고...그리고 애기를 보려면 편해야 할 것 같아 부러 장만했다는 어울리지 않는  새파란 청바지를 입은 비장한 표정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양해를 구해 좌석을 바꾸고, 짐을 정리하고 내얼굴을 확인하더니 엄마는 처음 안아보는 손녀딸에게로 반가운 인사를 쏟아냈습니다.


'아이구...내새끼.. 니 엄마가 부실해서 니가 고생이 많았지..이제 외할머니랑 가서 뜨뜻한데서 니 엄마랑 둘이 푹 쉬면 되겠다..이제 내가 니 살도 찌워주고.다 해줄거니까..외할머니가 할일이 많네?.'

 

지친데다 그런 상황에 조금 짜증도 났던지 아기에 대한 몇마디, 다리는 어떠냐고 퉁명스럽게 한번 물었을 뿐 속좁은 딸은 어서 도착해서 눕고싶은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한겨울 , 밤은 빨랐고 태백이 다가올 무렵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는 눈은 보기 드물정도였습니다.

한여름 장대비도 이만하지는 않지 싶을 정도로 쏟아 붓던 눈은 기차도 서행해야할 만큼 순식간에 쌓였고 우리는 곧 내려야 했습니다.


'포대기 갖고 오길 잘했지..'혼자 중얼거리며 엄마는 아기를 당신등에 단단히 동여매더니 내 옷매무새까지 갖춰주며 계란보따리를 챙겼습니다.


'애기 데리러 오면서 무슨 계란은 그렇게 많이 들었어...'


하필이면 깨지기 쉬운 계란이 웬일인가 싶은 생각이 그제서야 났습니다.


'글쎄말이다. 그래도 사위가 챙겨주는데 어떻게 안갖고 올수가 있어야지.'


낯익은 고향역에도 아까만큼은 아니라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업고 한손에 계란을 잔뜩 든 엄마는 산모는 무거운 짐 들면 안된다며 옷가지를 챙긴 가방까지 남은 한손으로 뺏어들더니 미끄러지지않게 제발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에 또 당부를 했습니다.

가방은 내가 들겠다는 걸 안된다 한마디로 뚝 자르더니 엄마는 용감하게 눈속으로 뛰어들어 제길을 터주며 앞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성치않은 발목으로 계란보따리와 옷가방을 들고 한달된 애기까지 업은 늙은 엄마의 뒤를 주춤주춤 따라가면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지요..


'혹시라도 엄마가 저러다 넘어지면 애기가 다칠텐데...'


원체 살갑지 못한 강원도태생의 딸은 그냥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왜 저럴까....왜 저러실까.....'

.....................................

‘엄마란...뭘까..“

그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엄마의 용감한 뒷모습은 그 후로도 나를 아주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 지은 역사는 깨끗했지만 대리석이 깔린 입구쪽 경사는 그런날 더 미끄러워 성한 사람들조차 쩔쩔맬 정도였습니다.

'아이고..내가 손을 좀 잡아주면 좋을 텐데..조심해라..'

엄마는 당신한테 손이 두개뿐인게 한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조심하면 돼..엄마도 조심해요..'

한마디를 하면서 울지않기를 얼마나 잘했던지요.

만약 그랬다면 산모가 왜 우냐고 엄마는 눈물닦아줄 손이 하나 더 없는걸 또 얼마나 자책했을까요..


그눈이 얼마만에 다 녹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밤 엄마의 뒷모습을 본 이후로 이미 내 마음속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엄마랑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엄마는 크게 기억할 일로 치지 않았고 나는..차마 다시 떠올리기가 슬펐으니까요.


십년도 더 지난 오래전 일이지만 저는 그 눈오던 밤이 겨울마다 새롭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그곳에서 소일거리를 하시며 혼자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살갑지 않은 딸은 그렇다고 효녀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엄마를 무시하고


때로 무안주기도 하고,


그리고 자주


엄마를....... 잊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내아이에게 쏟는 사랑이 엄마에게서 배운 것임을,

내가 내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엄마에게서 온 것임을,

엄마가 나를 사랑한 마음으로 내가 내아이를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왔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엄마는 이제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날 밤이야기를 엄마랑 하지는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