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수다 - 5편

이끼200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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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과 가혜의 그 날 술자리는...





오랫동안 진성이를 그리워하던 가혜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 날... 가혜의 마음은 완전히 정훈이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술을 한잔... 두잔... 또 한잔...





목구멍으로 알코올이 넘어갈 때마다 가혜의 눈에 씌인 콩깍지는 단단하게 코팅까지 되어가고 있었다.





정훈은 가혜와 5살이나 차이가 나는... 뭔가 살아온 이야기들이 다른...





동일한 관심사인 "패션"을 공유하는 같은 혹성에서 살고있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입학해서 만났던 어렵고 거리가 있던 선배들과 정훈은 무엇인가가 달랐다.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그리고 친근하게 어깨를 툭 치는 행동이 더욱 그러했다.





또한... 멋졌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명한 눈썹... 그리고 남자로서는 소화하기 힘들 것만 같은 강렬한 프린트 셔츠...





가혜의 눈은 이미 술을 마시기 전부터 풀려있었다.





콩깍지라니까...





[ 그래서 가혜는 어느 디자이너 스타일을 선호하는거야? ]





[ 스텔라 매카트니요. ]





[ 폴 매카트니의 딸? ]





[ 네! 다들 그녀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성공했다고 하지만여...



언젠가... 제가 그녀가 디자인한 노란색 구두 사진을 하나 봤거든요...



그 구두 라인이...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





가혜가 얼굴의 홍조를 띄고 흥분해서 정훈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그런 구두를 신으면 정말 옷의 느낌이 확~ 달라질 것 같았어요. ]





[ 그럼, 가혜는 의류에 관심이 더 많아? 아니면 구두에 관심이 더 많아? ]





[ 글쎄요... 지금까지는 그냥 다 좋아요. ]





가혜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정훈이도 빙긋 웃으며 가헤의 술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





[ 가혜 남자친구 있니? ]





움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가혜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남자친구... 진성...





이제 ... 일주일에 겨우 한번정도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술 기운 탓이었을까... 가혜는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 것을 느꼈다.





[ ... 없어요.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가혜는 원샷을 해버렸다.





[ 그래? 그럼, 가혜 나랑 만나볼래? ]





모든 것이 시원시원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남자였다.





[ 당장 사귀자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서로 좀 알아보자는거지.



알아보다 괜찮으면 사귈 수도 있는거고... 안 그래? ]





자신감으로 철철 흘러넘치는 당당한 모습...





입 맛이 안 땡길래야 안 땡길 수 없게 생긴 겉모습에.... 성격... 말투까지...





가혜는 알았을까?





이미 자신의 눈동자에서 정훈에게 하트 레이저를 마구 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강시간은 물론 수업을 마치자마자 가혜는 정훈의 피팅모델이 되어서 제작을 도왔다.





아직 1학년이라 패션에 관련된 전공 수업이 전혀 없던 가혜는 정훈의 작업이 너무도





프로페셔날해보여 존경스럽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정훈의 레이스 만땅의 드레스 디자인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정훈과 매일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은... 예전 진성과의 입시준비 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날이 갈수록 가혜가 정훈을 사랑하는 감정은 퐁퐁 솟아났다.





그리고 가혜가 메이크업을 하고 정훈의 앞에 그 레이스 만땅 드레스를 입고 섰을 때,





그 모습에 정훈은 찔레꽃 향기마냥 아찔한 극쾌감... 엑스터시를 경험했다.





그 옷이 정훈 자신의 첫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을 입어준 마네킹이 아닌 Real 여자... 그것이 가혜였다.









그렇게 가혜와 정훈은...





사 / 랑 / 에 / 빠 / 졌 / 다 ...





















[ 으... 으음... ]





가혜는 알코올로 인해 미친듯이 펌프질을 하는 심장의 명령에 따라 정훈을 탐닉했다.





발표회 후, 전체 뒷풀이자리에서 술 몇잔을 신나게 짠짠거리다





찌르르한 눈빛을 교환한 정훈과 가혜는 술자리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도주를 감행했다.





둘 만이 있을 수 있는 장소...





시끄럽지 않은 곳...





바로... 그 곳...





가혜는 지금까지도 그 숙박업소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꿈 / 의 / 궁 / 전 ! !





그 숙박업소의 트렌디한 인테리어디자인과 묘하게 은은하게 침대위로 뿌려지는 조명은





알싸한 알코올 향기와 더불어 상대방의 체취에 더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정말.... 죽음! 그 자체였다.





멀쩡하게 걸어들어와도 바로 폭~ 쓰러질 듯한 분위기...





게다가 가혜와 정훈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





툭...





툭...





하나씩... 하나씩... 둘 사이를 가로막고있는 장애물이 제거되어 바닥에 버려졌다.





그렇게 드러난 가혜의 알몸을... 도취된 눈길로 정훈이 바라보고 있었다.





[ 왜 그렇게 뻔히... 봐... 요... ]





처음이 아니라도 여전히 알몸을 드러낸 다는 것은 똑같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진성과의 처음... 그 때보다 강도는 물론 덜했지만...





[ 24살... 내 평생 이렇게 예쁜건 처음봐... ]





정훈이 부드럽게 가혜의 몸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따라 가혜의 몸에 찌릿거리는 전류가 톡톡 터졌다.





[ 하...아..... ]





가혜가 가볍게 몸을 비틀었다.





[ 가혜야... 난 아마...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





정훈이 뜨거운 입김을 섞어 가혜의 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 휘유~~ 졸라 로맨틱한 스토리군. ]





내가 휘파람을 길게 뽑아냈다.





정말이지... 배가 아플 정도로 로맨틱한 스토리군...





[ 로맨틱해? ]





가혜가 아랫니를 악물면서 말을 이었다.





[ 그래, 나도 그 때까지는 아주 감격에 젖어있었다. ]





[ 뭐가 문제인데? ]





미연이가 깨작깨작 이런 저런 과자를 톡톡 분질러 먹으면서 물었다.





[ 후우... 그 놈이... 그 날이 처음이었더라구... ]





가혜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 별~! ]





가혜의 한숨에 내가 앞에있던 오징어 다리 쪼가리 하나를 가혜에게 집어 던졌다.





[ 니는 아까 나의 그 변태틱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





[ 야!! 너 처음에 집착하는 남자 봤어? ]





가혜가 내가 던진 오징어 다리 쪼가리를 외면한채 얼굴을 팍 찡그렸다.





[ 그게 뭔 소리냐? ]





나와 미연이는 거의 동시에 가혜에게 외쳤다. 찌찌뽕~





[ 난 여자만 순결... 뭐 그런거에 집착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남자도 그렇더라구... ]





[ 헉! 어떻게?? 너보고 자기랑 잤다고 책임지래? ]





[ 뭐... 거의 그런 식이었지... ]





어허라.... 거 별종일세... 신기한 놈이네...





- 미연이 넌 저런 얘기 들어본 적 있냐?





- 금시 초문이다... 그러는 넌...?





- 나도 난생 처음 들어본다.





가혜의 말에 미연이와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눈만 깜빡깜빡 텔레파시를 주고 받았다.





















원래 남녀 사이라는게 좋을 때는 이유없이 좋고... 싫어지면 이유없이 싫어지는 거다.





짧은시간 삐리리~~ 해서 화르륵~ 끓는 피를 불살랐던 정훈과 가혜는





기온이 스믈스믈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그 끓는피도 서서히 식어들기 시작했다.





가혜만 말이지.





그러다 가혜는 슬슬 시선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안되겠다 싶었던 가혜는 정훈에게 이별을 신청했다.





[ 뭐? 절대 안돼! ]





** 이별 신청 결과 : 접수 절대 불가





[ 안되는게 어딨어? 난 이제 마음이 떠났다니까? ]





가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정훈을 바라봤다.





[ 하여간 안돼. 가혜야, 난 너밖에 없어. 너도 알잖아... ]





남자에게 이별 통보를 해본 여자들은 알겠지만...





참, 남자가 이런 식으로 매달리면... 정말 있던 정까지 떨어진다.





가혜 역시 ... 미안한 마음보다 짜증이 앞섰다.





[ 오빠 대체 구질구질하게 왜 그래? 오빠 성격 안 이렇잖아? ]





그래... 사귈 때는 그렇게 시원스럽던 인간이 대체 왜 이러는거지?





[ 너니까... 가혜 너니까 그러는거야... ]





정훈의 애절한 눈빛이 소름끼치게 가혜의 눈에 들어왔다.





똑같은 눈빛도 마음이 떠나면 해석이 완전 반대가 되어버리는거다.





[ 오빠, 제발 이러지마... ]





[ 구속하지 않을께. 넌... 너 하고 싶을대로해... 아직 어리니까... 하고 싶은게 많겠지... ]





[ 그런거 아니야. ]





가혜는 가슴을 손으로 쿵쿵 쳐댔다. 답답했다.





정훈이가 가슴을 치는 가혜의 손을 잡았다.





[ 이.. 이거.. 노... ]





[ 사랑해, 가혜야... ]





[ 오빠! ]





[ 가혜... 넌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 꿈의 궁전에 살고있는 단 하나의 공주님이야...



그냥... 널 기다리게라도 해줘... ]





아아아ㅇㅏ악!! 악~~























[ 해미야, 어쩐지 좀 스산... 한데... 우리 창문 닫을까...? ]





[ 그러게... 좀 춥다. 담배연기 구멍만 남겨놓고 닫자. ]





가혜의 이야기에 미연이와 난 소름이 쭉쭉 돋았다.





미저리다...





[ 왜 하필 방을 "꿈의 궁전" 이라는데 잡았냐~ ]





[ 그러게~ 아예 청수장이나 신기루 모텔 이런데 잡지 그랬냐~ ㅋㅋㅋ]





나와 미연이의 이야기에 가혜가 도끼눈을 떴다.





[ 느그들 장난하냐.... 잉? ]





[ 큭.. 아니... 뭐... 우린... 그냥... 그렇다 그거지 뭐... 크크크... ]





내가 킥킥거리자 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실실 웃었다.





[ 무서운거 보여주까? ]





[ 뭐? ]





가혜의 말에 미연이가 바짝 긴장을 했다.





미연이는 겁이 많았다. 물론 나도... -_-a





[ 신정훈을 지금 이 자리에 2시간 안에 도착하도록 해주지. ]





[ 잉?? ]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의기양양하게 가혜가 핸드폰을 들었다.





[ 야~ 그게 언제적 얘긴데... 니가 지금 대학교 1, 2학년이냐? ]





[ 그래...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춘천에 놀러와서 어떻게...



야, 그리고 지금 새벽 3시인데 어디다가 전화를 해~ ]





[ 걔는 와! ]





정말로 가혜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나야...



자..?



나 배고파.



춘천. 친구들이랑 있어.



흠... 치킨... 후라이드랑 양념이랑...



여기? 여기 춘천의 셀프리 콘도 204호. 어딘지 알지?



알았어. ]







뭐냐...





[ 닭사오라고 했으니까 2시간은 초과하겠다. 닭집 찾아야 될테니까. ]





가혜가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혜야... 너도 미친거 같다...





[ 너... 뭐냐... ]





미연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 니네들이 안 믿었잖아. 처음에 목숨건 남자가 어떤지 한번 봐봐. ]





[ 진짜 온다는거야? ]





[ 어. ]





난 조용히 담배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새벽 3시에 닭집을 찾아서 후라이드랑 양념을 한마리씩 사들고 서울에서 춘천으로 온다고? ]





내가 다시 한번 가혜에게 되물었다.





[ 어. ]





[ 걔... 미쳤구나? ]





[ 내가 집착이라고 그랬잖아~ ]





가혜가 자기말을 좀 왜 못 믿냐고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 참 내... 대체 어떻게 했길래...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냐? 비법 좀 알자~ ]





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 난 걸려도 꼭~~ 어디서 씹다버린 상한 만두 부스러기 같은 놈들만 걸리구... ]





[ 나두~ ]





미연이가 한마디 끼어들며 가혜에게 건배를 청했다.





그래, 열받는데 술이나 왕창 먹여라...





[ 난들 그럴 줄 알고 만났겠냐...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진짜 괴로워. ]





[ 그러니까... 걔가 집착하는게... 니가 걔 총각딱지를 떼어줬기 때문이라고? ]





[ 어느날 그러더라구...



나랑 처음 할 때... 그 결심이 없었으면 나랑 안 했을 꺼라고...



그래서 자기는 나 이후로는 어떤 여자도 필요없대.



이미 자기는 하늘이 주신 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세상에 그런 여자는 하나면 된대. ]





가혜의 말에 또 한번 소름이 쫘악~ 돋았다.





단단히 잘못 걸렸군...





뭐, 사랑하는 남자에게 들었다면 눈물 펑펑흘리고 감동 이빠이 먹을 고백이겠지만...





이건... 쩝... 대략...





뭐랄까...?





[ 야! 가혜, 너 빨리 전화 다시 걸어서 오지 말라고 그래. 무섭다!! 무서워!! ]





갑자기 미연이가 가혜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 넌 또 왜 갑자기 광분하고 그러냐? ]





가혜가 다시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누르면서 미연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 생각할수록 끔찍해!! 악악... 대체 하나... 둘.. 어머머 7년이야.. 7년...!! ]





[ 그 놈은 지금 30살이 넘었다는 것도 알아주라. 아, 여보세요?



너 어디야?



됐어. 닭 샀으니까 오지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