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무죄 판결을 보면서..

초록바다2007.01.27
조회272

통일 독일 직후에 밝혀진 일입니다.

동독의 첩보조직(KGB와 같은)인 슈타지에 포섭된 서독 지식인사회는 동독에 불리한 정책 수립을 반대하고 동독에 유리한 여론 조성에 앞장섰다고 하지요. 고정간첩들은 자신을 진보 지식인으로 위장했다. 통독 직전 서독의 고정간첩은 2만~3만명에 이르렀다는 말다고 있고요. 실제로 통독 이후에 증거가 나와 감옥에 줄줄이 복역한 경우도 있다고 하내요.

 

실제로 1970년대 독일수상이었던  빌리브란트의 사임은 그의 비서들의 간첩행위 때문이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판결을 놓아두고 다음번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나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유감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실위의 발표는 나를 웃겼다.. 왜냐면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처리한 것 보다도 더 큰 왜곡과 뻔뻔한 기만이 그들의 발표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면피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진실위의 역겨운 '인혁당 발표'를 보고..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발표에 의하면 1차 인혁당사건은 강령과 규약이 일부 논의됐어도 채택된 적이 없고, 당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2차 인혁당(민청학련)사건 역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며 그들의 목적이 사회주의건설이 아닌 민주투쟁이라고 주장을 했다..


즉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박정희 정권이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세력으로 왜곡하여 탄압을 했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요지다..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인권유린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의 사형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증거 없이 상황논리에 따른 추론으로 확정 지어 발표를 했다.. 나는 이 발표를 보고 웃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기 때문이고,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나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실위의 발표는 나를 웃겼다.. 왜냐면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처리한 것 보다도 더 큰 왜곡과 뻔뻔한 기만이 그들의 발표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면피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먼저 인혁당 사건이 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혁당이란 인민혁명당의 약자다.. 한일협정반대데모와 유신헌법 철회 데모가 가열되었던 1974년 계엄령을 선포 하에서 발생된 두 차례의 용공 사건을 인혁당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1차 사건의 경우 당시 한일회담반대투쟁을 주도했던 서울대의 “불꽃회”와 고려대의 “구국투쟁위원회” 등을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한 공산혁명세력으로 적발한 사건이다..


2차 인혁당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불리 우는데, 유신독재반대투쟁을 주도했던 배후세력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북과 내통하는 공산혁명세력으로 적발 된 사건이다.. 진실위의 발표는 이들이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용공세력이라는 박 정권 시절의 판결이 조작된 것이며, 북한의 방송을 몇 번 청취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공산혁명세력은 아니고 단지 한일협정과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세력이라는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진실위의 판단은 좌파들이 그토록 수구언론으로 매도하는 신동아나 월간중앙에 80년대 게재되었던 수준의 내용일 뿐이다.. 사실 인혁당 사건은 그리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또한 인혁당 사건에 대한 그간의 담론의 조작의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본질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신동아나 월간중앙의 기사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한 기사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인혁당 사태에 대해 가장 깊은 수준의 연구를 했던 것이 80년대 NL(주사파)과 PD(맑스파)로 나누어지는 당시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남한사회의 좌파세력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을 한다.. 60년대 이전 북한의 노동당을 전위정당으로 규정하는 “민주 기지론”에 의거 활동하던 남한의 좌익들은, 60년 이후의 상황변화에 따라 남한 내의 독자적인 지하당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민주기지노선 하에서 지역혁명론”을 제기했다..


즉 “남한 인민들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하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형명적 당을 독자적으로 꾸려야 하며, 이 당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혁당 사건이나 통혁당 사건 같은 박정희 시절의 공안사건을 남한 내에 전위조직을 건설하는 혁명과업의 과정으로 판단을 한다..


또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부산의 암장(마그마)그룹은 1954년 고교학습서클로 태동하였지만, 4.19 당시 또 다른 인혁당 사건의 연루자들인 도예종, 서도원 등을 만나 전위그룹을 형성하며 맑스레닌선집, 스탈린선집, 도이치이데올로기, 반듀링론, 공산당사 등 각종의 이론서와 월북작가, 역사학자들의 책을 섭렵하며 공산혁명운동을 수행하였다. 그 중에는 인혁당을 80년대 학생운동 양대세력 중 맑스파인 PD세력의 원조로, 통혁당은 NL세력의 원조로 보는 자들까지도 있었다..


또한 좌파 역사학자들은 인민혁명당이라는 이름이 베트남의 인민혁명당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들이 이러한 이름을 정한 이유는 베트남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베트남의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생각했던 남베트남 공산세력과 같이, 북한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생각하는 남한 노동당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까지 주장을 한다.. 좌파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자료는 다 인용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즉, 인혁당 사건이 당시 남한 내의 공산혁명세력이 북한 노동당과 형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남한 내의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전위 조직임은 좌파 역사학자들이 커밍아웃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진실위는 뻔뻔하기 그지 없게 이들을 공산혁명세력이 아닌 민주세력으로 둔갑을 시키며 대국민 기만을 하고 있다.. 흘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들을 복권 시키고 국가에서 보상금도 주며, 민주투사로 둔갑을 시킬 모양이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가 절차나 과정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며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형량도 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주의자들이 민주투사로 둔갑을 한다는 것은 또 한번의 기만이며 조작이고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겠는가? 물론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솔직히 까 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


쉬쉬하지만 우리사회에 모두 다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지금 현정권의 주축이 된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력들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지만, 그들이 주체사상이나 맑시즘을 추종하며 남한 내의 공산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아닌가? 부디 아니라고 하지 말기 바란다.. 나 역시 그 조직의 한 부분에 속해 있었고 경험한 사실이니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자료도 원한다면 출처를 다 알려줄 수 있다..


그런 자들이 정권을 잡고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으니,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혁명분자들 역시 민주투사로 둔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이 구린 것이 있으면 차라리 하지를 말던지, 도대체 이 기만적이고 비열한 정권을 어찌 평가해야 할까! 예측은 했지만, 너무도 뻔뻔한 그들의 기만에 치가 떨릴 정도다.. 부디 해도 해도 정도 껏 하기를 바란다..

 

이상 시대유감님의 글을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