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보장되고 장래가 촉망되는 직장도 흙 묻은 신발 털 듯 초개처럼 버리고 그는 산으로 들어갔다.
예쁜 아내와 단 둘이서 산으로 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고 단칼에 내린 강단에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않았다.
그는 주말이면 낚시를 다녔다.
낚시를 즐겨한 까닭은 고기를 잡기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고 싶어서였다.
계절 따라 걸린 하늘색을 달리하며 물안개 피는 낚시터의 고저녁함과, 산코숭이를 감아오는 저녁이내 속으로 사위어가는 일몰의 정숙함에 어찌할 바 몰라 하며 숨을 죽여 함께 자연이고자 하던 그였다.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이었나보다.
형님! 나 저수지가 발아래 있고 밤나무와 소나무가 솔솔 하고 밤밤 하는, 햇빛 푸진 남향 땅 5백 평 샀소!
서너 달치 월급 모으면 지불할 수 있는 땅이라 그저 주운 겁니다.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경상도 고성 땅 어느 저수지로 낚시를 갔단다.
기쓰고 찾아간 것도 아니고 지나는 길에 다람쥐 세수하는 물냄새에 이끌려 우쭐우쭐 다가간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다가온 산과 물을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맑은 산냄새, 솔냄새, 물냄새, 그 냄새는 세상과 반대방향의 냄새였다.
화려하거나 찬란한 채색을 가진 것이 아닌 그윽한 청량(淸凉)의 맛을 버릴 수 없는 선향(仙香)이었다며, 대여섯 가구가 사는 외지고 한적한 곳인데 쉽사리 마음이 끌려 오만해진 영혼을 내려놓고 싶더란다.
마침 민박을 청한 집 남정네와 소주 한 잔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 끝에 남정네가 손가락으로 저수지 건너편 비탈을 가리켰다.
저 땅 오백 평이 임자를 찾고 있으니 살 생각 없냐기에 그 자리에서 비상금을 몽땅 털어 계약금을 주고 구두로 땅을 구입했다며 무척 만족 해 했다.
바람처럼 산 속으로 들어간 그가 얼마 전 뜬금없이 연락을 해왔다.
풍문에 간간이 자투리 소식은 듣고 있었다.
염소와 닭과 오리, 그리고 개를 친구처럼 키우며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는 편린(片鱗)이었지만, 그를 잊지는 않고 있었기에 연락이 닿은 그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내친걸음에 그를 찾아 산길 찾기에 간편한 옷차림으로 남도 길을 나섰다.
추위가 강샘을 부렸지만 하늘은 맑았고 길은 한적했다.
몇 개의 길을 바꾸어 타며 그가 머무는 곳 이십 여리 초입에서 마중 나온 그를 만났을 때 완연한 촌부로 변해 소탈한 웃음을 머금고 솔향기 푸른 청산(靑山)에 그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의 집으로 가는 산길의 한적함, 고요란 말이 이곳을 두고 말함이리라.
산내리바람이 신나게 비탈을 훑으며 내려오다 논두렁 밭두렁에 발이 걸려 살얼음으로 멍들어버린 명경알 같은 저수지, 그곳엔 하늘도 가파르게 빠져 멱을 감고 있었다.
물바람이 살고 있는 갈대숲사이로 원앙과 오리무리들이 급할 것 없다는 듯 날갯죽지를 고르고 있었고, 겨울바람이 봄바람을 시늉하며 살랑살랑 마른 갈대를 쓰다듬는 온화한 정경 속에 그들과 어우러져 하나가되고 싶은 가벼운 충동을 느꼈다.
맑은 바람을 마시니 어느덧 찌든 육신이 청수(淸水)에 씻긴 듯 맑아진다.
산을 끼고, 물을 안고, 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한 배미 푸른 보리밭 내려다보며 멋대로 지은 작은집이 산 아래 앉아있었다.
바로 그가 사는 보금자리이려니·····
소슬한 경개(景槪) 둘러보니 곤지곤지 욕심 없는 삶, 숨김없이 살기 알맞았다.
금강이나 설악처럼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빼어남도
산령(山靈)이 내려앉아 푸짐한 지리의 육덕(肉德)함도
하늘과 맞닿은 태백의 신령(神靈)스러움도
한 봉우리로 뽐내는 한라의 오만(傲慢)도 없었다.
내 곁으로 오라며 동네를 감싸 안고 오지랖처럼 펼쳐진 산들이 맑은물에 발을 담그려 잠시 서성이다 웃음 짓는, 마냥 사람들아 편히 살거라 다독이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등 같은 정겨운 산중 동네였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편안한 조화에 심취하여 고목등걸에 걸터앉아 마음의 평화를 다독였다. 우리는 어느 듯 서로가 모르게 가슴속에 간직했던 비밀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낌없이 털어놓도록 말하라고 풋풋한 자연이 우리를 순정(純情)으로 몰아갔다.
포장되어있던 비밀이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산중생활을 결심한 것은 친구에게 담보로 내어준 집과 은행에 대출까지 하여 빌려준 돈이 친구의 사업실패로 그에게 발등에 불처럼 떨어졌고 살림도 거덜 났단다.
그 순간 얼마 전 낚시터에 사둔 땅이 생각나서 아내와 텐트 하나 둘러메고 쫒기 듯 왔노라 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금 세상으로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내가 반대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失笑)를 터뜨린다.
자연이 주는 보배로움에 늘 감사하며 노동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그들 부부의 충실함은 벌써 초월(超越)하고 현달(賢達)한 자유인이었다.
강추위에 얼어버린 텃밭에는 파릇한 시금치 잎사귀와 손가락 길이만큼 오순도순 자란 마늘 싹들이 복음(福音)처럼 노래 부르며 겨울과 싸우고 있었다.
처음 아내에게 볼 면목이 없었지만 지금은 부족함이 없다며 맑은 얼굴로 말하는 톤이 부드러운 현악기의 음률처럼 여운을 두고 들려와서 곱기만 하다.
산중으로 처음 와서 봄과 여름 대여섯 달은 텐트를 치고 살았단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철망을 사다가 가두리를 만들고 어렵사리 구한 거위 한 쌍과, 토종닭과 오골계 몇 쌍을 키울 너른 공간을 만들어 방사(放飼)를 했단다.
흐르는 산물을 끌어다 닭이 깃을 씻고 오리가 멱을 감을 수 있는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 여남은 쌍 풀고, 흰둥이 검둥이 몇 마리도 들여다 마음껏 뛰어다녀라 그대로 풀어 키운 놈들이 분양을 하고도 삼대(三代)가 한식구로 살고 있다며 흐뭇해한다.
아내는 달걀 줍는 재미가 깨소금 맛이라며 달걀 수거가 일상의 취미라 했다.
어느 날 그렇게 알을 잘 낳던 닭들이 알을 낳지 않아서 의아해 하던 중, 난데없이 노란 병아리를 몰고 나오는 암탉을 보고서야, 아하! 이놈들이 덤불 속에 알을 숨겨 낳은 후 부화를 했구나, 횡재가 따로 없었다며 새 솜 보숭보숭한 햇병아리를 보았을 때의 황홀한 행복감은 지금도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며 감격해 했다.
처음 거위와 오리와 닭을 합사하였더니 거위가 오리는 제 식구인줄 알고 보호를 하는데 닭들을 공격하여 닭은 따로 분리해서 키운단다.
오리는 닭보다 더 영리해요.
서너 번 알을 가져가면 절대 한 번 알을 낳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알을 낳는 법이 없습니다.
자리를 옮겨가며 알을 낳아 사람을 골탕을 먹입니다.
그래도 알을 잃어버리면 물속에다 마구잡이로 알을 낳아 숨겨버리는 영리한 놈들입니다.
몇 쌍으로 시작한 닭과 오골계가 금방 백여 마리로 불어나더란다.
내 눈에 황금색 갈키와 붉은 벼슬에 검은 털빛으로 삼색이 혼합된 관상용(觀賞用)같이 아름다운 닭이 있어서 저것은 무슨 닭이냐고 물어보니, 오골계와 토종닭이 어울려 살다보니 혼혈이 나와서 새로운 종이 되었는데, 그도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정이 더더욱 가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놈들이라며, 닭장 지은 후 연락주시면 바로 한 쌍 보내겠다며 인심을 쓴다.
낯선 사람이 오면, 깃을 세우고 부리를 사납게 쪼으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닭대가리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씽긋 웃었다.
여름 서너 달 콧등에 허물이 벗겨지도록 땅을 일구고 가축을 다스리며, 대여섯 가구 동네 사람들과 알음알음 정이 들어갈 무렵이었단다.
나무들이 옷을 벗고 나목(裸木)이 되고난 후에 주위에 별스런 풍광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녹음 진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무덤들이 한 두기도 아닌 떼무덤이 마치 공동묘지 속에 텐트를 치고 있는 모양이라 상여 움막보다 더 을씨년스럽고, 밤이면 아내는 기가 질려 몸서리치며 무서움에 떨었단다.
한번은 무덤떼보다 더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었다며 하는 이야기가, 불도그 두 마리를 따로 사람 키 높이로 철망을 쳐서 키우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한 마리가 없어졌고 남은 한 마리는 얼이 빠져 꼼짝을 않고 웅크리고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주변에 어른 주먹크기만한 산짐승의 발자국이 산자락을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했단다.
불도그 한 마리를 물고 그 높은 철망을 뛰어넘어간 산짐승을 생각해보라며, 간혹 멧돼지가 새끼들을 대리고 물가로 내려오는 모습은 심심찮게 보았지만 아마도 호랑이가 아니면 표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사건 후 숲 속에 머무는 바람소리도 심상찮게 들렸고, 텐트에 나무그림자만 비치어도 깜작깜작 놀라 경기가 들었고, 머리끝이 주뼛거려 텐트를 접기로 작정하고 읍내로 나가 합판을 사와서는, 흉내만 낸 집을 지었는데, 여름이면 에어컨을 켜도 실외 온도에 버금가고 겨울이면 난방을 해도 한대나 다름없다며 싱거워 한다.
그러나 저들이 머무는 작은 공간의 소박함은 버릴 것은 버리고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무욕(無慾)의 소탈함이려니, 또한 작은 것의 슬기로움과 아름다운 가난이 주는 평화가, 무엇보다도 도시의 직선으로 그어진 회색의 빛바랜 우중충한 무거움이 한 톨 섞이지 않은, 무한한 자연 속에 그대로 녹아버린 우리들 원시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불현듯 장자의 굽은 소나무가 생각남은 왜 이련가?
봄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은 잉태하고, 가을이 출산을 하면, 겨울은 산후 조리로 휴식을 하며 자연의 한 살은 마감한다.
다음 해 또 다른 씨 뿌림과 잉태와 출산과 휴식기를 그치며 순환하는 자연을 바라본지 십여 년, 그가 내게 말했다.
시간을 따지지 마십시오.
느리게 사니 시간도 더디 갑디다.
경쟁이 없으니 욕심도 없어졌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으니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자연에 내 맡기니 병이 나지 않았습니다.
큰 경개를 벗하니 아량과 도량이 생겼습니다.
보이는 산천이 넓다 보니 옹졸해지지 않았습니다.
미주알고주알 세상이치 따질 일 없으니
이곳에서 십년은 바깥에서의 백년 입디다.
그의 삶을 바라보다 불현 듯 한 토막 얘기가 생각났다.
한 노부부가 산중생활을 하는데 영감님은 아침가리 밭을 갈고, 할멈은 밭에서 나는 채소와 산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다 파는 가난한 살림을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할멈은 평소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수가 좋은 날이라며 영감님에게 물었다.
“보소 영감, 우리나라 돈 전부 합치면 삼만원은 될까요?”
영감이 이런 얼퉁사니 보란 듯 말했다.
“이런 빙신, 2십 만원도 넘는다.”
나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래, 우리나라 돈이 삼만원이면 어떻고, 이십 만원이면 어떠리, 내게 족한 것 이상이면 그것은 모두 허상(虛像)이리라.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창망(?望)한 달이 쉬엄쉬엄 청솔가지를 넘다 걸리기를 되새김하는 산중의 겨울밤은 적막하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아물어 가는 상흔(傷痕)과 그리움의 세월을 달님이 밀었다 당기며 새록새록 숨을 고른다.
영악한 사람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혀 갈등하는 세상 속에서 거칠어진 영혼을 말끔히 씻어낸 그는, 자연처럼 초연(超然)한 또 다른 자연이 되어있었다.
나는 알지니!
그대의 손바닥, 투박하게 자리 잡은 굳은살의 의미를·····
나는 가만히 상념(想念)에 잠겨 도종환의 시(詩) ‘인차리’를 읊조려보았다.
돌아가라 돌아가라고 바람이 분다
우리 사는 한평생 눈물겹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꽃잎 몇 개 피우기도 하고
끌어안는 것마다 싱싱한 풀잎 되어
뼈마디 가슴 가득 죄어오는 날도 있으리라
새떼보다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더욱 어두운 곳으로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리라
그 위에 진눈깨비 오래도록 때리는 날도 있으리라
그렇게 살다 돌아가라 돌아가라고
네 마음 순한 자리 돌아가라고
바람이 분다.
돌아오는 길
그의 집 주위를 아쉬운 듯 살펴보다가 낙엽이 두껍게 이불을 펼치고 있는 숲 속에서 푸르른 춘란(春蘭)이 꽃대를 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녀리고 보드란 곡선을 자랑하는 잎줄기만 보아도 상쾌한 야생의 춘란.
꽃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욕심이었지만, 맑은 향이 지금 코끝에 묻어날 듯 수줍고 온유한 빛으로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다.
산채꾼들의 눈에 뜨이지 않아 미나리꽝처럼 푸짐한 춘란이 더미더미 상큼한 밭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풀들이 겨우내 옷을 벗고 있어도
모진 눈바람 속에 저렇게 푸르고 고아한 자태를 뽐내누나
함초롬히 꽃봉오리 내밀어
꽃피울 시절을 기다리는 춘란이여
너도 엄동설한의 송죽(松竹)처럼 절개(節介)를 말하는가.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식으로 살아가는 그의 집을 나서며 나는 춘란 서너촉을 애지중지 이끼에 감쌌다.
靑山에 살리라
靑山에 살리라
어느 날 악착스럽게 덤벼드는 세상이 고단하다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간 후배가 있었다.
미래가 보장되고 장래가 촉망되는 직장도 흙 묻은 신발 털 듯 초개처럼 버리고 그는 산으로 들어갔다.
예쁜 아내와 단 둘이서 산으로 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고 단칼에 내린 강단에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않았다.
그는 주말이면 낚시를 다녔다.
낚시를 즐겨한 까닭은 고기를 잡기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고 싶어서였다.
계절 따라 걸린 하늘색을 달리하며 물안개 피는 낚시터의 고저녁함과, 산코숭이를 감아오는 저녁이내 속으로 사위어가는 일몰의 정숙함에 어찌할 바 몰라 하며 숨을 죽여 함께 자연이고자 하던 그였다.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이었나보다.
형님! 나 저수지가 발아래 있고 밤나무와 소나무가 솔솔 하고 밤밤 하는, 햇빛 푸진 남향 땅 5백 평 샀소!
서너 달치 월급 모으면 지불할 수 있는 땅이라 그저 주운 겁니다.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경상도 고성 땅 어느 저수지로 낚시를 갔단다.
기쓰고 찾아간 것도 아니고 지나는 길에 다람쥐 세수하는 물냄새에 이끌려 우쭐우쭐 다가간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다가온 산과 물을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맑은 산냄새, 솔냄새, 물냄새, 그 냄새는 세상과 반대방향의 냄새였다.
화려하거나 찬란한 채색을 가진 것이 아닌 그윽한 청량(淸凉)의 맛을 버릴 수 없는 선향(仙香)이었다며, 대여섯 가구가 사는 외지고 한적한 곳인데 쉽사리 마음이 끌려 오만해진 영혼을 내려놓고 싶더란다.
마침 민박을 청한 집 남정네와 소주 한 잔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 끝에 남정네가 손가락으로 저수지 건너편 비탈을 가리켰다.
저 땅 오백 평이 임자를 찾고 있으니 살 생각 없냐기에 그 자리에서 비상금을 몽땅 털어 계약금을 주고 구두로 땅을 구입했다며 무척 만족 해 했다.
바람처럼 산 속으로 들어간 그가 얼마 전 뜬금없이 연락을 해왔다.
풍문에 간간이 자투리 소식은 듣고 있었다.
염소와 닭과 오리, 그리고 개를 친구처럼 키우며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는 편린(片鱗)이었지만, 그를 잊지는 않고 있었기에 연락이 닿은 그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내친걸음에 그를 찾아 산길 찾기에 간편한 옷차림으로 남도 길을 나섰다.
추위가 강샘을 부렸지만 하늘은 맑았고 길은 한적했다.
몇 개의 길을 바꾸어 타며 그가 머무는 곳 이십 여리 초입에서 마중 나온 그를 만났을 때 완연한 촌부로 변해 소탈한 웃음을 머금고 솔향기 푸른 청산(靑山)에 그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의 집으로 가는 산길의 한적함, 고요란 말이 이곳을 두고 말함이리라.
산내리바람이 신나게 비탈을 훑으며 내려오다 논두렁 밭두렁에 발이 걸려 살얼음으로 멍들어버린 명경알 같은 저수지, 그곳엔 하늘도 가파르게 빠져 멱을 감고 있었다.
물바람이 살고 있는 갈대숲사이로 원앙과 오리무리들이 급할 것 없다는 듯 날갯죽지를 고르고 있었고, 겨울바람이 봄바람을 시늉하며 살랑살랑 마른 갈대를 쓰다듬는 온화한 정경 속에 그들과 어우러져 하나가되고 싶은 가벼운 충동을 느꼈다.
맑은 바람을 마시니 어느덧 찌든 육신이 청수(淸水)에 씻긴 듯 맑아진다.
산을 끼고, 물을 안고, 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한 배미 푸른 보리밭 내려다보며 멋대로 지은 작은집이 산 아래 앉아있었다.
바로 그가 사는 보금자리이려니·····
소슬한 경개(景槪) 둘러보니 곤지곤지 욕심 없는 삶, 숨김없이 살기 알맞았다.
금강이나 설악처럼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빼어남도
산령(山靈)이 내려앉아 푸짐한 지리의 육덕(肉德)함도
하늘과 맞닿은 태백의 신령(神靈)스러움도
한 봉우리로 뽐내는 한라의 오만(傲慢)도 없었다.
내 곁으로 오라며 동네를 감싸 안고 오지랖처럼 펼쳐진 산들이 맑은물에 발을 담그려 잠시 서성이다 웃음 짓는, 마냥 사람들아 편히 살거라 다독이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등 같은 정겨운 산중 동네였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편안한 조화에 심취하여 고목등걸에 걸터앉아 마음의 평화를 다독였다. 우리는 어느 듯 서로가 모르게 가슴속에 간직했던 비밀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낌없이 털어놓도록 말하라고 풋풋한 자연이 우리를 순정(純情)으로 몰아갔다.
포장되어있던 비밀이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산중생활을 결심한 것은 친구에게 담보로 내어준 집과 은행에 대출까지 하여 빌려준 돈이 친구의 사업실패로 그에게 발등에 불처럼 떨어졌고 살림도 거덜 났단다.
그 순간 얼마 전 낚시터에 사둔 땅이 생각나서 아내와 텐트 하나 둘러메고 쫒기 듯 왔노라 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금 세상으로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내가 반대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失笑)를 터뜨린다.
자연이 주는 보배로움에 늘 감사하며 노동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그들 부부의 충실함은 벌써 초월(超越)하고 현달(賢達)한 자유인이었다.
강추위에 얼어버린 텃밭에는 파릇한 시금치 잎사귀와 손가락 길이만큼 오순도순 자란 마늘 싹들이 복음(福音)처럼 노래 부르며 겨울과 싸우고 있었다.
처음 아내에게 볼 면목이 없었지만 지금은 부족함이 없다며 맑은 얼굴로 말하는 톤이 부드러운 현악기의 음률처럼 여운을 두고 들려와서 곱기만 하다.
산중으로 처음 와서 봄과 여름 대여섯 달은 텐트를 치고 살았단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철망을 사다가 가두리를 만들고 어렵사리 구한 거위 한 쌍과, 토종닭과 오골계 몇 쌍을 키울 너른 공간을 만들어 방사(放飼)를 했단다.
흐르는 산물을 끌어다 닭이 깃을 씻고 오리가 멱을 감을 수 있는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 여남은 쌍 풀고, 흰둥이 검둥이 몇 마리도 들여다 마음껏 뛰어다녀라 그대로 풀어 키운 놈들이 분양을 하고도 삼대(三代)가 한식구로 살고 있다며 흐뭇해한다.
아내는 달걀 줍는 재미가 깨소금 맛이라며 달걀 수거가 일상의 취미라 했다.
어느 날 그렇게 알을 잘 낳던 닭들이 알을 낳지 않아서 의아해 하던 중, 난데없이 노란 병아리를 몰고 나오는 암탉을 보고서야, 아하! 이놈들이 덤불 속에 알을 숨겨 낳은 후 부화를 했구나, 횡재가 따로 없었다며 새 솜 보숭보숭한 햇병아리를 보았을 때의 황홀한 행복감은 지금도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며 감격해 했다.
처음 거위와 오리와 닭을 합사하였더니 거위가 오리는 제 식구인줄 알고 보호를 하는데 닭들을 공격하여 닭은 따로 분리해서 키운단다.
오리는 닭보다 더 영리해요.
서너 번 알을 가져가면 절대 한 번 알을 낳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알을 낳는 법이 없습니다.
자리를 옮겨가며 알을 낳아 사람을 골탕을 먹입니다.
그래도 알을 잃어버리면 물속에다 마구잡이로 알을 낳아 숨겨버리는 영리한 놈들입니다.
몇 쌍으로 시작한 닭과 오골계가 금방 백여 마리로 불어나더란다.
내 눈에 황금색 갈키와 붉은 벼슬에 검은 털빛으로 삼색이 혼합된 관상용(觀賞用)같이 아름다운 닭이 있어서 저것은 무슨 닭이냐고 물어보니, 오골계와 토종닭이 어울려 살다보니 혼혈이 나와서 새로운 종이 되었는데, 그도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정이 더더욱 가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놈들이라며, 닭장 지은 후 연락주시면 바로 한 쌍 보내겠다며 인심을 쓴다.
낯선 사람이 오면, 깃을 세우고 부리를 사납게 쪼으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닭대가리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씽긋 웃었다.
여름 서너 달 콧등에 허물이 벗겨지도록 땅을 일구고 가축을 다스리며, 대여섯 가구 동네 사람들과 알음알음 정이 들어갈 무렵이었단다.
나무들이 옷을 벗고 나목(裸木)이 되고난 후에 주위에 별스런 풍광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녹음 진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무덤들이 한 두기도 아닌 떼무덤이 마치 공동묘지 속에 텐트를 치고 있는 모양이라 상여 움막보다 더 을씨년스럽고, 밤이면 아내는 기가 질려 몸서리치며 무서움에 떨었단다.
한번은 무덤떼보다 더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었다며 하는 이야기가, 불도그 두 마리를 따로 사람 키 높이로 철망을 쳐서 키우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한 마리가 없어졌고 남은 한 마리는 얼이 빠져 꼼짝을 않고 웅크리고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주변에 어른 주먹크기만한 산짐승의 발자국이 산자락을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했단다.
불도그 한 마리를 물고 그 높은 철망을 뛰어넘어간 산짐승을 생각해보라며, 간혹 멧돼지가 새끼들을 대리고 물가로 내려오는 모습은 심심찮게 보았지만 아마도 호랑이가 아니면 표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사건 후 숲 속에 머무는 바람소리도 심상찮게 들렸고, 텐트에 나무그림자만 비치어도 깜작깜작 놀라 경기가 들었고, 머리끝이 주뼛거려 텐트를 접기로 작정하고 읍내로 나가 합판을 사와서는, 흉내만 낸 집을 지었는데, 여름이면 에어컨을 켜도 실외 온도에 버금가고 겨울이면 난방을 해도 한대나 다름없다며 싱거워 한다.
그러나 저들이 머무는 작은 공간의 소박함은 버릴 것은 버리고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무욕(無慾)의 소탈함이려니, 또한 작은 것의 슬기로움과 아름다운 가난이 주는 평화가, 무엇보다도 도시의 직선으로 그어진 회색의 빛바랜 우중충한 무거움이 한 톨 섞이지 않은, 무한한 자연 속에 그대로 녹아버린 우리들 원시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불현듯 장자의 굽은 소나무가 생각남은 왜 이련가?
봄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은 잉태하고, 가을이 출산을 하면, 겨울은 산후 조리로 휴식을 하며 자연의 한 살은 마감한다.
다음 해 또 다른 씨 뿌림과 잉태와 출산과 휴식기를 그치며 순환하는 자연을 바라본지 십여 년, 그가 내게 말했다.
시간을 따지지 마십시오.
느리게 사니 시간도 더디 갑디다.
경쟁이 없으니 욕심도 없어졌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으니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자연에 내 맡기니 병이 나지 않았습니다.
큰 경개를 벗하니 아량과 도량이 생겼습니다.
보이는 산천이 넓다 보니 옹졸해지지 않았습니다.
미주알고주알 세상이치 따질 일 없으니
이곳에서 십년은 바깥에서의 백년 입디다.
그의 삶을 바라보다 불현 듯 한 토막 얘기가 생각났다.
한 노부부가 산중생활을 하는데 영감님은 아침가리 밭을 갈고, 할멈은 밭에서 나는 채소와 산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다 파는 가난한 살림을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할멈은 평소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수가 좋은 날이라며 영감님에게 물었다.
“보소 영감, 우리나라 돈 전부 합치면 삼만원은 될까요?”
영감이 이런 얼퉁사니 보란 듯 말했다.
“이런 빙신, 2십 만원도 넘는다.”
나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래, 우리나라 돈이 삼만원이면 어떻고, 이십 만원이면 어떠리, 내게 족한 것 이상이면 그것은 모두 허상(虛像)이리라.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창망(?望)한 달이 쉬엄쉬엄 청솔가지를 넘다 걸리기를 되새김하는 산중의 겨울밤은 적막하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아물어 가는 상흔(傷痕)과 그리움의 세월을 달님이 밀었다 당기며 새록새록 숨을 고른다.
영악한 사람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혀 갈등하는 세상 속에서 거칠어진 영혼을 말끔히 씻어낸 그는, 자연처럼 초연(超然)한 또 다른 자연이 되어있었다.
나는 알지니!
그대의 손바닥, 투박하게 자리 잡은 굳은살의 의미를·····
나는 가만히 상념(想念)에 잠겨 도종환의 시(詩) ‘인차리’를 읊조려보았다.
돌아가라 돌아가라고 바람이 분다
우리 사는 한평생 눈물겹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꽃잎 몇 개 피우기도 하고
끌어안는 것마다 싱싱한 풀잎 되어
뼈마디 가슴 가득 죄어오는 날도 있으리라
새떼보다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더욱 어두운 곳으로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리라
그 위에 진눈깨비 오래도록 때리는 날도 있으리라
그렇게 살다 돌아가라 돌아가라고
네 마음 순한 자리 돌아가라고
바람이 분다.
돌아오는 길
그의 집 주위를 아쉬운 듯 살펴보다가 낙엽이 두껍게 이불을 펼치고 있는 숲 속에서 푸르른 춘란(春蘭)이 꽃대를 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녀리고 보드란 곡선을 자랑하는 잎줄기만 보아도 상쾌한 야생의 춘란.
꽃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욕심이었지만, 맑은 향이 지금 코끝에 묻어날 듯 수줍고 온유한 빛으로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다.
산채꾼들의 눈에 뜨이지 않아 미나리꽝처럼 푸짐한 춘란이 더미더미 상큼한 밭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풀들이 겨우내 옷을 벗고 있어도
모진 눈바람 속에 저렇게 푸르고 고아한 자태를 뽐내누나
함초롬히 꽃봉오리 내밀어
꽃피울 시절을 기다리는 춘란이여
너도 엄동설한의 송죽(松竹)처럼 절개(節介)를 말하는가.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식으로 살아가는 그의 집을 나서며 나는 춘란 서너촉을 애지중지 이끼에 감쌌다.
불현듯 그의 맑은 미소가 그리워지면 그를 보듯 너의 고아한 자태를 보리라.
맑은 분에 옮겨 심어 내 책상머리에 앉은 지 사흘 후, 때아니게 꽃이 활짝 피었다.
아마도 높은 실내 온도에 봄인가보다 착각했으리라.
아니리!
어느새 가까워진 그의 향기가 서리서리 피고 있음이리라.
새악시 볼에 핀 부끄럼 같은 시인(詩人)의 꽃이
그의 맑은 미소처럼 단정하고 청아하게 피었다.
2005 02 04 立春大吉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