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기를 포기하지 않는 새... ★☆

박송이2005.02.14
조회414



★☆ 날기를 포기하지 않는 새... ★☆

“땡땡땡”

2003년 11월 8일 1교시 언어영역 시간을 알리는 소리.

모두들 긴장되는 듯 경직된 모습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발 수능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하고 기도를 하듯이 눈을 감고 큰 숨을 내쉬었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은 시험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괴롭던 120분이 모두 지나자 고개를 들어 교실을 한 번 휘돌아보았습니다. 모두 큰 죄를 지은 듯 고개를 떨구고, 얼굴에는 오만상의 찌푸린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모습만 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애 첫 수능은, 나의 큰 한숨과 함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시련.. 그것도 나의 학창시절 가장 중요한 대학진학에서의 실패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리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렇게 긴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내가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었을 땐.. 나무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바람과 어울리고 겨울의 잔재를 없애려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그런 봄이었습니다. 봄은 호감이 갑니다. 연둣빛의 부드러움. 겨우내 힘겹게 이어오던 대학시험의 여운. 그리고 겨울은 끝났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 어렸을 적부터 나와 함께 자란, 나의 단짝인 오빠가 나를 오빠의 시골로 인도했지요. 변한 것 하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선 세월의 고단함을 깊은 주름으로 새겨 오셨지만, 자연은 흠 없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시골집에서도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새끼를 낳으려는 누렁이 곁을 지키고 앉아 있을 뿐. 누렁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참 치열한 3년이였구나.. 이제 나는 자유롭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을 겁내고 있는 것인가...


다음 날 저녁, 오빠와 함께 바다에 갔습니다. 웅장한 모습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는 나에게 오빠는 아래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진흙 위엔 파도가 남긴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그 무늬가 아름다워 물어보니 ‘연흔’. 어떠한 감정도, 흔들림도 없이 말했습니다. 잦아드는 밤의 그림자에 얼어붙는 저 연흔처럼 내 가슴도 얼어붙어 버렸다고..


오빠의 그 표정. 가슴이 아려옴을 느꼈습니다. 오빠는 나에게 오빠 큰아버지 차에서 밤을 지새우자 했죠. 바닷가에서의 밤은 길고도 길었습니다. 오징어 배 불 밝히는 모습을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오빠가 날 깨운 때는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잘 봐!” 오빠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오빠의 시선을 따라 나는 진흙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돌처럼 딱딱했던 그 연흔이 녹아들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말했습니다. 내가 알 수 있길 바란다고.. 저렇게 지울 수 있는 것이라고..


그 때, 태양을 향해 솟구쳐 나는 갈매기,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오빠가 가장 좋아하던 구절,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한 대목.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되어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낮게 읊조렸습니다. 오빠가 말했습니다.


“오빠는 송이가 날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태양을 향해 나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그렇게 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들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하며..


그리고 인천에 돌아온 나는, 다시 한번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또 흐르고 나는 지금 당당한 여대생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버린 시간이었지만 지금 당당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오빠 그거 알아요? 오빠는 나에게, 실패의 쓰라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분발하는 삶의 자세가 성공의 기쁨보다도 더 소중하고 고귀한 삶의 경험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어요. 오빠를 통해 아픔 속에서 얻는 삶의 참뜻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내 지난날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까닭은 언제나 흔들림 없이 나의 곁에서 나를 믿어준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예요.


별 보다 많은 사람 중에서 저를 당신의 연인으로 택하시어, 그 많은 사랑을 받게하심, 이 어찌 기적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오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