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나잇 스탠드 - 9 -인연- " 난 침대위에서 잘테니까 넌 밑에서 자라. " 바닥에 이불을 깔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는 아무 대답이 없는 선애였다. " 대답이 없네?싫어? " " 아니. " " 그래 싫으면 안되지.너도 솔직히 양심은 있어야지. 주인이 바닥에서 잘 수는 없잖아? " " 근데 바닥에서 자면 좀 춥지 않을까? 나 추운데서 자면 안되는데.. " " 안추워. " 난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어보았다. 그리곤 아주 따뜻하다는 표정을 지어주려 했는데... 아,안지어졌다..-_-;심각하게 추웠다.. " 뭐..추워도 그냥 자!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따뜻해질꺼야! " " ......... " 내가 말해놓고 생각해봐도 참;;성의없는 대답이였다. " 불 끈다? " " 응. "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 줄을 잡아당기자 방안을 밝혀주던 빛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난 조심스레 침대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녀를 차가운 바닥에 눕히고 나 자신은 침대위에서 잔다는 게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같이 부둥켜 안고 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이불을 덮고 누워있자 나의 온 몸은 나른해지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항상 그렇 듯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둠속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한 나무에 기대어 무의식의 세계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세계.나의 존재 가치 마저 느낄 수 없는 그런 세계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등 뒤에 기대고 있던 나무가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안에 울려퍼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가 날 현실속으로 끌어올린다. " 잠이 안와. " 선애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을 일으킨건 귀가 아니라 반쯤 잠들어 있던 의식이였다. 짜증이 터져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자제하며 입을 열었다. " 어서 자라. " " 잠이 안오는 걸. " " 잠이 안와도 자라. 이건 이 집 주인으로서의 명령이다. " 나의 명령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방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마이클.나 자장가 불러줘. " " 자장가 같은 소리하지 말고 좀 자라고! 그리고 내 이름 마이클 아냐! " " 치사해. 어쩐지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 " 진짜 자꾸 떠들래?좀 자자고!! " 나의 고함소리가 방안에 크게 울려퍼지자 또 다시 아무말이 없는 선애였다. 하지만 꺽일 듯 하면 다시 일어서는 잡초같은 목소리.. " 이름이 뭐야? " " 너 나가! 당장 나가!! " " 미안 안 그럴께. " 역시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무서운가 보다. " 입 한번만 더 열면 진짜 내쫓아 버릴꺼야. 알았어?" " 응. " 선애는 나의 협박이 무서웠는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바닥에 있는 카세트를 건들였을뿐...-_- [치지직..치지지직..] " 아 진짜 이 기집애가? " 선애를 향해 큰 소리를 칠려던 찰나 내 귀에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 안녕하세요.줄리엣님? 오늘 또 이렇게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 호,혹시 줄리엣이라면 그때 그 여자?? 난 선애를 혼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채 라디오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 오늘은 인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어때요?줄리엣님은 새로 시작하는 인연이 있으신가요? ] [ 네.있어요. ] [ 그 사람에 대해 얘기 좀 해주시죠. ] [ ........... ] [ 줄리엣님? ] [ 전 그 사람에게 있어 곧 잊혀질 사람이예요. ] [ 그건 왜 그렇죠? ] [ 그와 전 헤어져야 해요. 그건 서로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과도 같은 것이예요. 그는 절 기억하겠다 했지만....전 알아요. 제가 사라져 버리면 그는 물론 슬퍼하겠죠. 많이 힘들어하고 슬퍼할꺼예요.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꺼예요. 하지만 그 뿐이예요. 시간이 지나면 어렸을때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 듯 저 역시 그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질꺼예요. 그리곤 완전히 잊혀지겠죠. 물론 아주 가끔씩 저를 떠올리며 그런 사람이 있었지..하는 회상 정도는 하겠지만요. 하지만 그 뿐이예요. 잊어야 하는 사람은 잊어야 하니까요. ] [ ..................... ] [ 아픈 사랑이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은 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아파하고 전 그 사람에게 잊혀져야 하기에 아파요. 그를 건들지 말 껄 그랬나봐요. 그냥 스쳐지나가게 내버려 둘 껄 그랬나봐요. 전 단지 기억되고 싶었어요.누군가에게 기억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봐요. 곧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그렇게 떨쳐버리고 싶었나봐요..] [ ................................ ] [ 제가 이 세상에 사라져 없어져 버리더라도 저를 애타게 그리워 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랬어요. 그럼 눈을 감고 나서도 왠지 행복할 것 같았어요. 웃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극복할 수 있을꺼라 자신 했어요. 아픈 사랑은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꺼라는 말을 믿었어요. 근데 그건요.제 착각이였나봐요..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전 너무 아파요.그 사람은 더할 나위 없겠죠. 그래요.제가 몰랐던 거예요.아픔은 단지 아픔으로 각인된다는 사실을.. 아픔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아픔이라는 사실을.. 전 이기적이예요. 나쁜 여자예요. 결국은 그를 이용해버린 셈이니까요. 돌아갈 수 없겠죠? 그 사람과 제가 모르고 지내던 그 시간으로.. ]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가 꺼져버렸다. " 왜 꺼? " ".............." " 어이? " ".............." 혹시 또 우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보이지도 않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래봤자 TV,라디오 일뿐이잖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속 얘기라구. 저 여자..단지 상품 타고 싶어서 거짓말 하는 거야. 세상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거짓말들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거야." 그랬다.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랬다. 이 세상이 지껄여 대는 거짓말들을 믿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선택받은 인간들만 웃으며 사는 세상이다. 하늘에게 선택 받지 못하고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나 같은 자식들은 애초부터 희망이란 단어는 개소리에 불과 했던 거다. 그어버리고 싶었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그어버리고 싶었다.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간혹 거센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술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내 귀는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 만을 향해 있다.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정말이지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얼핏 들려온 듯 했지만 곧 기억속에서 지워졌다. -자연스럽게-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눈을 뜨자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일이 아닌 오늘이였고 날 멀뚱 멀뚱 바라보고 있는 선애의 모습이였다. " 괜찮아? "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선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였다. 아직도 잠이 덜깼는지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 물 갖다 줄까? " " 뭐? " 인상을 찌푸린채 그렇게 되물었다. " 물 말이야.물 마실꺼냐구. " " 아냐.됐어. " 벽에 기댄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게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것이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분명 악몽을 꾼 것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잠 자리가 불편 했던 것도 아니였다. 그럼 도대체 왜?이유는 오래가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날 멍하니 바라 보고 있는 선애를 불렀다. " 야. " 선애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 응? " " 옷걸이에 걸려있는 바지에 핸드폰 있을꺼야. "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일으키던 선애는 옷걸이 쪽으로 다가가 나의 바지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난 그녀가 내민 핸드폰을 받지 않고선 입을 열었다. " 전화해. " " 응? " " 전화하라고. " " 어딜? " " 너희 집에..아니 그 이준식 실장인가 하는 사람한테 말야. " " .............. " "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너 여기서 나가기 싫다며? 그럼 전화해서 말하라고. 나 유괴범으로 몰리는 거 보고 싶은 건 아니지? 전화해서 납치된 게 아니라 친구랑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란 말야. " 그때서야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 쪼개기는.. " " 뭐?! " " 아,아냐.-_-;어서 전화부터 걸어. " " 응! " 단순한 게 그녀의 최대한 무기이자 약점인 것 같기도 하다.-_-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거는 그녀.. 이준식 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일까? 선애는 핸드폰을 닫았다가 다시 전화를 거는 행동을 수 차례 반복하다가 날 향해 울상을 지었다. " 이 핸드폰 고물이야.짜증나.. " " 전원 켰어? " " 아 맞다! " " 아 맞다 좋아하시네..어서 전화나 걸어!! " " 응! 응! " 선애는 핸드폰을 들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가는 건지 밖으로 나가려 한다. " 너 어디가? 여기서 해. " " 걱정마. 핸드폰 들고 도망안가! " 나의 심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군..-_- 밖에서 선애의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 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 분이 지났을까?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였다. " 전화 했어? " " 응. " " 뭐래? 당장 집으로 들어오래지? " " 아니. 거기서 잘 지내래. " -_- " 이 지지배야. 말 같은 소릴 해라? 응? " " 걱정마. 너 혼자 두고 나 어디에도 안가! " " 무슨 소리!! 나 지금 정말 혼자 있고 싶거든? 제발 좀 가라. 부탁이다.. " 나의 그 말에 선애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 히히. 그러다 나 진짜 가면 울려고 그러지?! " " ........... " " 그렇지? 맞지? " " 너랑 대화를 주고 받은 내가 미친놈이지 -_- " 날 바라보는 선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그러지마. 자신을 비하하는 건 나쁜 거랬어! " 내 자신을 비하한게 아니라 너를 비하한거다. 이 머리 나쁜 지지배야 ;; 이준식 실장의 애타는 목소리를 떠올려보건데 선애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수긍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였다.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나와 함께 있으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 널 보는 나의 눈이 틀렸다고 해도, 니가 그런 나쁜 사람이라 해도 난 가지 않을꺼야. 그냥 너한테 당해버릴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보다 무서운 일은 없으니까. 그건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 그녀에게 있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순한 이유는 아닌 듯 했다. 그건 확실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겁을 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깨트리는 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청소 하자. " 선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안의 먼지를 보며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해. " 그녀를 슬쩍 쳐다보다가 관심없다는 투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 같이 해. 이불도 털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 " 이불도 혼자 털고 빨래도 혼자 해. " " 진짜 협조 안할꺼야? " 뭐 협조?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애는 미친듯이 웃어제끼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흘러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은 채 입을 열었다. " 협조라고 했냐? 여기가 너희 집인 것처럼 말한다? " 나의 그말 한마디에 선애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그녀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미세하게 떨려온다. 다른 건 다 견딜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우는 소리만큼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였다. " 야. 야. 농담이야. 또 울려고 그러는 거지? " " ............ " "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울지마. " " 청소.. " " 아,알았어 할께! 할테니까 울지마 -_- " 이모 집에서 나와 이 좁은 방구석으로 이사온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청소를 해야되겠다고 생각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청소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상 며칠만 지나면 금방 지저분 해질 게 뻔한데 치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였다. 남에게 보여줄 일도 없었다. 여자는 커녕 친구도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 나였으니까. 이 조그만 한 칸짜리 방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비밀,그리고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였다. 누군가가 나를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 그건 신체 일부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부담감 보다 더한 것이였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달라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지만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불쾌하다거나,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녀와 난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위로 올라갔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어서 그런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꽤 어두운 편이였다. 그런 우중충한 날씨에 바람이 빠질 수 없다는 듯 바람의 세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이 더 해지는 그 추위는 상상을 초월 했다. 빨래를 널고 있는 선애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 야. 너 괜찮아? " 선애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선애는 나의 그런 심정을 무안스럽게 만들려는 작정이였는지 날 향해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난 그런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주고는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번의 매서운 겨울 추위가 나의 온몸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스며들었을때.. 어제 밤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 근데 바닥에서 자면 좀 춥지 않을까? 나 추운데서 자면 안되는데.. " 아....설마..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희미해짐과 동시에 선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Written by Lovepool
원 나잇 스탠드 - 9
*원 나잇 스탠드 - 9
-인연-
" 난 침대위에서 잘테니까 넌 밑에서 자라. "
바닥에 이불을 깔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는 아무 대답이 없는 선애였다.
" 대답이 없네?싫어? "
" 아니. "
" 그래 싫으면 안되지.너도 솔직히 양심은 있어야지.
주인이 바닥에서 잘 수는 없잖아? "
" 근데 바닥에서 자면 좀 춥지 않을까? 나 추운데서 자면 안되는데.. "
" 안추워. "
난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어보았다.
그리곤 아주 따뜻하다는 표정을 지어주려 했는데...
아,안지어졌다..-_-;심각하게 추웠다..
" 뭐..추워도 그냥 자!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따뜻해질꺼야! "
" ......... "
내가 말해놓고 생각해봐도 참;;성의없는 대답이였다.
" 불 끈다? "
" 응. "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 줄을 잡아당기자 방안을 밝혀주던 빛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난 조심스레 침대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녀를 차가운 바닥에 눕히고 나 자신은 침대위에서 잔다는 게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같이 부둥켜 안고 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이불을 덮고 누워있자 나의 온 몸은 나른해지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항상 그렇 듯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둠속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한 나무에 기대어 무의식의 세계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세계.나의 존재 가치 마저 느낄 수 없는 그런 세계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등 뒤에 기대고 있던 나무가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안에 울려퍼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가 날 현실속으로 끌어올린다.
" 잠이 안와. "
선애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을 일으킨건 귀가 아니라 반쯤 잠들어 있던 의식이였다.
짜증이 터져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자제하며 입을 열었다.
" 어서 자라. "
" 잠이 안오는 걸. "
" 잠이 안와도 자라. 이건 이 집 주인으로서의 명령이다. "
나의 명령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방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마이클.나 자장가 불러줘. "
" 자장가 같은 소리하지 말고 좀 자라고! 그리고 내 이름 마이클 아냐! "
" 치사해. 어쩐지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
" 진짜 자꾸 떠들래?좀 자자고!! "
나의 고함소리가 방안에 크게 울려퍼지자 또 다시 아무말이 없는 선애였다.
하지만 꺽일 듯 하면 다시 일어서는 잡초같은 목소리..
" 이름이 뭐야? "
" 너 나가! 당장 나가!! "
" 미안 안 그럴께. "
역시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무서운가 보다.
" 입 한번만 더 열면 진짜 내쫓아 버릴꺼야. 알았어?"
" 응. "
선애는 나의 협박이 무서웠는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바닥에 있는 카세트를 건들였을뿐...-_-
[치지직..치지지직..]
" 아 진짜 이 기집애가? "
선애를 향해 큰 소리를 칠려던 찰나 내 귀에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 안녕하세요.줄리엣님? 오늘 또 이렇게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
호,혹시 줄리엣이라면 그때 그 여자??
난 선애를 혼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채 라디오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 오늘은 인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어때요?줄리엣님은 새로 시작하는 인연이 있으신가요? ]
[ 네.있어요. ]
[ 그 사람에 대해 얘기 좀 해주시죠. ]
[ ........... ]
[ 줄리엣님? ]
[ 전 그 사람에게 있어 곧 잊혀질 사람이예요. ]
[ 그건 왜 그렇죠? ]
[ 그와 전 헤어져야 해요.
그건 서로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과도 같은 것이예요.
그는 절 기억하겠다 했지만....전 알아요.
제가 사라져 버리면 그는 물론 슬퍼하겠죠.
많이 힘들어하고 슬퍼할꺼예요.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꺼예요.
하지만 그 뿐이예요.
시간이 지나면 어렸을때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 듯 저 역시 그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질꺼예요.
그리곤 완전히 잊혀지겠죠.
물론 아주 가끔씩 저를 떠올리며 그런 사람이 있었지..하는 회상 정도는 하겠지만요.
하지만 그 뿐이예요.
잊어야 하는 사람은 잊어야 하니까요. ]
[ ..................... ]
[ 아픈 사랑이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은 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아파하고 전 그 사람에게 잊혀져야 하기에 아파요.
그를 건들지 말 껄 그랬나봐요. 그냥 스쳐지나가게 내버려 둘 껄 그랬나봐요.
전 단지 기억되고 싶었어요.누군가에게 기억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봐요.
곧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그렇게 떨쳐버리고 싶었나봐요..]
[ ................................ ]
[ 제가 이 세상에 사라져 없어져 버리더라도 저를 애타게 그리워 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랬어요.
그럼 눈을 감고 나서도 왠지 행복할 것 같았어요. 웃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극복할 수 있을꺼라 자신 했어요.
아픈 사랑은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꺼라는 말을 믿었어요.
근데 그건요.제 착각이였나봐요..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전 너무 아파요.그 사람은 더할 나위 없겠죠.
그래요.제가 몰랐던 거예요.아픔은 단지 아픔으로 각인된다는 사실을..
아픔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아픔이라는 사실을..
전 이기적이예요. 나쁜 여자예요. 결국은 그를 이용해버린 셈이니까요.
돌아갈 수 없겠죠? 그 사람과 제가 모르고 지내던 그 시간으로.. ]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가 꺼져버렸다.
" 왜 꺼? "
".............."
" 어이? "
".............."
혹시 또 우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보이지도 않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래봤자 TV,라디오 일뿐이잖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속 얘기라구.
저 여자..단지 상품 타고 싶어서 거짓말 하는 거야.
세상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거짓말들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거야."
그랬다.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랬다.
이 세상이 지껄여 대는 거짓말들을 믿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선택받은 인간들만 웃으며 사는 세상이다.
하늘에게 선택 받지 못하고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나 같은 자식들은
애초부터 희망이란 단어는 개소리에 불과 했던 거다.
그어버리고 싶었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그어버리고 싶었다.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간혹 거센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술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내 귀는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 만을 향해 있다.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정말이지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얼핏 들려온 듯 했지만
곧 기억속에서 지워졌다.
-자연스럽게-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눈을 뜨자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일이 아닌 오늘이였고
날 멀뚱 멀뚱 바라보고 있는 선애의 모습이였다.
" 괜찮아? "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선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였다.
아직도 잠이 덜깼는지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 물 갖다 줄까? "
" 뭐? "
인상을 찌푸린채 그렇게 되물었다.
" 물 말이야.물 마실꺼냐구. "
" 아냐.됐어. "
벽에 기댄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게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것이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분명 악몽을 꾼 것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잠 자리가 불편 했던 것도 아니였다.
그럼 도대체 왜?이유는 오래가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날 멍하니 바라 보고 있는 선애를 불렀다.
" 야. "
선애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 응? "
" 옷걸이에 걸려있는 바지에 핸드폰 있을꺼야. "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일으키던 선애는 옷걸이 쪽으로 다가가
나의 바지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난 그녀가 내민 핸드폰을 받지 않고선 입을 열었다.
" 전화해. "
" 응? "
" 전화하라고. "
" 어딜? "
" 너희 집에..아니 그 이준식 실장인가 하는 사람한테 말야. "
" .............. "
"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너 여기서 나가기 싫다며?
그럼 전화해서 말하라고. 나 유괴범으로 몰리는 거 보고 싶은 건 아니지?
전화해서 납치된 게 아니라 친구랑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란 말야. "
그때서야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 쪼개기는.. "
" 뭐?! "
" 아,아냐.-_-;어서 전화부터 걸어. "
" 응! "
단순한 게 그녀의 최대한 무기이자 약점인 것 같기도 하다.-_-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거는 그녀..
이준식 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일까?
선애는 핸드폰을 닫았다가 다시 전화를 거는 행동을 수 차례 반복하다가 날 향해 울상을 지었다.
" 이 핸드폰 고물이야.짜증나.. "
" 전원 켰어? "
" 아 맞다! "
" 아 맞다 좋아하시네..어서 전화나 걸어!! "
" 응! 응! "
선애는 핸드폰을 들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가는 건지 밖으로 나가려 한다.
" 너 어디가? 여기서 해. "
" 걱정마. 핸드폰 들고 도망안가! "
나의 심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군..-_-
밖에서 선애의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 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 분이 지났을까?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였다.
" 전화 했어? "
" 응. "
" 뭐래? 당장 집으로 들어오래지? "
" 아니. 거기서 잘 지내래. "
-_-
" 이 지지배야. 말 같은 소릴 해라? 응? "
" 걱정마. 너 혼자 두고 나 어디에도 안가! "
" 무슨 소리!! 나 지금 정말 혼자 있고 싶거든? 제발 좀 가라. 부탁이다.. "
나의 그 말에 선애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 히히. 그러다 나 진짜 가면 울려고 그러지?! "
" ........... "
" 그렇지? 맞지? "
" 너랑 대화를 주고 받은 내가 미친놈이지 -_- "
날 바라보는 선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그러지마. 자신을 비하하는 건 나쁜 거랬어! "
내 자신을 비하한게 아니라 너를 비하한거다. 이 머리 나쁜 지지배야 ;;
이준식 실장의 애타는 목소리를 떠올려보건데
선애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수긍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였다.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나와 함께 있으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 널 보는 나의 눈이 틀렸다고 해도, 니가 그런 나쁜 사람이라 해도 난 가지 않을꺼야.
그냥 너한테 당해버릴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보다 무서운 일은 없으니까.
그건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
그녀에게 있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순한 이유는 아닌 듯 했다. 그건 확실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겁을 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깨트리는 선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청소 하자. "
선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안의 먼지를 보며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해. "
그녀를 슬쩍 쳐다보다가 관심없다는 투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 같이 해. 이불도 털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
" 이불도 혼자 털고 빨래도 혼자 해. "
" 진짜 협조 안할꺼야? "
뭐 협조?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애는 미친듯이 웃어제끼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흘러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은 채 입을 열었다.
" 협조라고 했냐? 여기가 너희 집인 것처럼 말한다? "
나의 그말 한마디에 선애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그녀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미세하게 떨려온다.
다른 건 다 견딜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우는 소리만큼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였다.
" 야. 야. 농담이야. 또 울려고 그러는 거지? "
" ............ "
"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울지마. "
" 청소.. "
" 아,알았어 할께! 할테니까 울지마 -_- "
이모 집에서 나와 이 좁은 방구석으로 이사온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청소를 해야되겠다고 생각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청소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상 며칠만 지나면 금방 지저분 해질 게 뻔한데 치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였다.
남에게 보여줄 일도 없었다. 여자는 커녕 친구도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 나였으니까.
이 조그만 한 칸짜리 방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비밀,그리고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였다.
누군가가 나를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
그건 신체 일부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부담감 보다 더한 것이였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달라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지만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불쾌하다거나,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녀와 난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위로 올라갔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어서 그런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꽤 어두운 편이였다.
그런 우중충한 날씨에 바람이 빠질 수 없다는 듯 바람의 세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이 더 해지는 그 추위는 상상을 초월 했다.
빨래를 널고 있는 선애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 야. 너 괜찮아? "
선애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선애는 나의 그런 심정을 무안스럽게 만들려는 작정이였는지 날 향해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난 그런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주고는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번의 매서운 겨울 추위가 나의 온몸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스며들었을때..
어제 밤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 근데 바닥에서 자면 좀 춥지 않을까? 나 추운데서 자면 안되는데.. "
아....설마..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희미해짐과 동시에 선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Written by Love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