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은 옷을 도매로 사서 트럭에 싣고 지방 도시를 돌아다녔다. 눈썰미가 있어서 가지고 간 옷들은 잘 팔렸다.
교민들 대부분 옷에 관한 일을 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옷을 파는 일에 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양봉을 했던 우리는 너무나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지방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랑과 우리는 아이들을 끌고 놀러 다녔다.
'바야블랑까'라는 도시는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700키로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그 곳에서 옷 장사를 시작한 아는 분이 놀러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 사람도 원래는 양봉이민으로 왔다가 옷 소매상을 새롭게 시작한 거다.
먼저 와서 자리잡고 색시를 불러왔는데 색시는 나보다 작고 인형같이 생긴 말빨좋은 경상도 아가씨였다. 억척스러운 그녀는 어벙하고 착한 신랑을 휘어잡고 한국에서 들어온 시아버님이랑 시골에서 양봉을 하며 살다가 옷장사를 하자고 나섰다. 그들은 눈이 똥그란 이쁜 딸을 낳고 도시 바야블랑까로 나가서 가게를 차렸다.
시골에서 나처럼 양봉일을 하며 앵무새도 키우고 흙과 더불어 지내던 그녀였지만 워낙 똑소리나게 똘똘했던 터라 옷장사도 야무지게 잘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리오네그로'라는 지역에서 양봉을 했는데 그 곳은 사과농장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한국 분들이 몇 집 농사이민도 와서 그 곳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 곳은 햇빛이 좋아서 고추 농사도 잘 되었고, 농사진 고추가 자연 햇빛 속에서 말라서 색도 아주 고왔다.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들여와서 김치를 담가 먹어야했던 교민들은 리오네그로에서 고추 농사가 시작된 뒤로 그 곳 고춧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그 고춧가루는 질이 좋아서 주위 다른 나라 교민들에게도 공급이 되었다.
랑은 봉고차 하나를 사서 안을 멋있게 개조를 했다. 여행하기 편리하게 개조된 차를 타고 우린 바야블랑까로 놀러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맨날 북쪽에 있는 농장 지대만 보다가 남쪽으로는 처음 내려가는 거라 흥분됐다. 위쪽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남쪽은 굴곡이 조금씩 있었다. 위쪽은 그냥 대표적 대평원지대이다.
남쪽은 가다가 시냇물도 흐르고 미류나무 우거진 길을 따라 마을도 있었다.
대개의 마을은 아메리카 대륙을 이어주는 판 아메리카 도로에서 한참이나 들어가서 있었다.
바야블랑까라는 도시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커다란 산이 대평야 지대에 혼자 불룩 나와있다. 산맥도 없고 주위에 이어지는 지형하나 없이 그냥 평야 지대에 밥공기 하나 엎어놓은 모양의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나무가 그리 우거지지도 않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별다른 특색이 전혀 없는 그 산은 그냥 그렇게 평야 지대에 놓여져 조금만 가면 바야블랑까라는 도시가 나온다는 이정표 노릇을 하는 듯 했다.
바야블랑까 그 집에서 먹고 자며 그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하루를 놀고 힘들면 그냥 그 집 식구들 들어 올 시간에 맞춰서 밥 먹게끔 차려놓곤 했다. 주부가 나가서 일을 하니 밥 해 먹는게 참 허술했었나부다. 그들은 내가 밥을 해 놓으면 너무나 맛있게들 먹었다.
바야블랑까에는 개발이 안된 노천 온천이 있었다.
산이 귀한 아르헨티나인데 바야블랑까는 한국처럼 시냇물도 흐르고 야산도 있었다. 야산을 타고 오르니까 산 중턱에 움막이 하나 있었다. 움막 옆에 흐르는 시냇물은 뜨거워서 김이 펄펄 났다. 손 끝을 대보고 난 깜짝 놀랐다. 너무 뜨거웠다. 폭이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시냇물은 솥에서 펄펄 끓던 물처럼 흐르면서도 부글부글 끓으며 흘러내렸다.
움막에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서 있다가 나오는 거라는데 주위에 샤워시설도 없고 그냥 물레방앗간처럼 생긴 움막 하나 있어서 온천욕을 기대하고 간 나는 실망이 컸다. 게다가 물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화상을 입기 쉽상이다. 움막 옆에 수도 시설이 있어서 찬물도 나온다고 하는데 시냇물은 뜨겁고 수돗물은 차가워서 도대체 어케 사용해야할지 몰랐다. 그림의 떡이었다.
그 시냇물에 계란을 넣고 20분 있으면 너무 맛있는 찐계란이 된다는 동네 사람 말을 듣고 계란을 사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온천물을 퍼다가 식수로도 사용한다고들 했다.
우리도 가져간 물통에 가득가득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퍼담았다. 퍼담으면서도 온천물의 내용 성분도 모르며 마셔도 될까 의심도 되었지만 동네 사람들 다 마시고 산다니까 그냥 퍼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물은 내가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성분 때문이었는지 약한 내 위장에 염증을 일으켰다. 그 물을 마시기 시작하자 내 위는 바로 쓰린티를 냈고, 급기야는 병원에 가서 위염 치료를 받아야했다.
바야블랑까 근처에는 여러 개의 산이 있는데 그 한 곳에는 자연 표고버섯 산지가 있었다. 그 곳에는 고사리도 많다고 했다. 우리가 놀러 갔던 때는 버섯과 고사리를 채취할 시기가 아니어서 안갔는데 아는 분들은 그곳에서 따온 고사리와 버섯을 말려서 먹곤했다.
그 산지 관리인은 맘씨가 좋아서 한국 사람들이 오면 그냥 올라가서 맘대로 채취하게끔 해줬드랬는데 몇 년 후 그 소문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퍼져 사람들이 단체 관광을 많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곳을 어지럽히고 오고 아예 씨까지 채취를 해와서 자연 파괴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 버섯산지는 한국인 출입금지가 되었다.
단지 얼굴 아는 바야블랑까에서 사는 한국인만 출입이 제한되지 않았다. 난 그 산지를 가보고 싶었지만 다시 남쪽으로 더 한참 내려가야한다는 말에 포기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절벽이 많은 곳에서 랑은 낚시를 하고 싶어 했지만 아가도 있고, 아들 녀석도 어린터라 위험하니까 그냥 집으로 향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89. 바야블랑까 놀러가기
랑은 옷을 도매로 사서 트럭에 싣고 지방 도시를 돌아다녔다. 눈썰미가 있어서 가지고 간 옷들은 잘 팔렸다.
교민들 대부분 옷에 관한 일을 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옷을 파는 일에 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양봉을 했던 우리는 너무나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지방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랑과 우리는 아이들을 끌고 놀러 다녔다.
'바야블랑까'라는 도시는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700키로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그 곳에서 옷 장사를 시작한 아는 분이 놀러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 사람도 원래는 양봉이민으로 왔다가 옷 소매상을 새롭게 시작한 거다.
먼저 와서 자리잡고 색시를 불러왔는데 색시는 나보다 작고 인형같이 생긴 말빨좋은 경상도 아가씨였다.
억척스러운 그녀는 어벙하고 착한 신랑을 휘어잡고 한국에서 들어온 시아버님이랑 시골에서 양봉을 하며 살다가 옷장사를 하자고 나섰다.
그들은 눈이 똥그란 이쁜 딸을 낳고 도시 바야블랑까로 나가서 가게를 차렸다.
시골에서 나처럼 양봉일을 하며 앵무새도 키우고 흙과 더불어 지내던 그녀였지만 워낙 똑소리나게 똘똘했던 터라 옷장사도 야무지게 잘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리오네그로'라는 지역에서 양봉을 했는데 그 곳은 사과농장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한국 분들이 몇 집 농사이민도 와서 그 곳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 곳은 햇빛이 좋아서 고추 농사도 잘 되었고, 농사진 고추가 자연 햇빛 속에서 말라서 색도 아주 고왔다.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들여와서 김치를 담가 먹어야했던 교민들은 리오네그로에서 고추 농사가 시작된 뒤로 그 곳 고춧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그 고춧가루는 질이 좋아서 주위 다른 나라 교민들에게도 공급이 되었다.
랑은 봉고차 하나를 사서 안을 멋있게 개조를 했다. 여행하기 편리하게 개조된 차를 타고 우린 바야블랑까로 놀러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맨날 북쪽에 있는 농장 지대만 보다가 남쪽으로는 처음 내려가는 거라 흥분됐다. 위쪽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남쪽은 굴곡이 조금씩 있었다. 위쪽은 그냥 대표적 대평원지대이다.
남쪽은 가다가 시냇물도 흐르고 미류나무 우거진 길을 따라 마을도 있었다.
대개의 마을은 아메리카 대륙을 이어주는 판 아메리카 도로에서 한참이나 들어가서 있었다.
바야블랑까라는 도시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커다란 산이 대평야 지대에 혼자 불룩 나와있다. 산맥도 없고 주위에 이어지는 지형하나 없이 그냥 평야 지대에 밥공기 하나 엎어놓은 모양의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나무가 그리 우거지지도 않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별다른 특색이 전혀 없는 그 산은 그냥 그렇게 평야 지대에 놓여져 조금만 가면 바야블랑까라는 도시가 나온다는 이정표 노릇을 하는 듯 했다.
바야블랑까 그 집에서 먹고 자며 그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하루를 놀고 힘들면 그냥 그 집 식구들 들어 올 시간에 맞춰서 밥 먹게끔 차려놓곤 했다. 주부가 나가서 일을 하니 밥 해 먹는게 참 허술했었나부다. 그들은 내가 밥을 해 놓으면 너무나 맛있게들 먹었다.
바야블랑까에는 개발이 안된 노천 온천이 있었다.
산이 귀한 아르헨티나인데 바야블랑까는 한국처럼 시냇물도 흐르고 야산도 있었다.
야산을 타고 오르니까 산 중턱에 움막이 하나 있었다. 움막 옆에 흐르는 시냇물은 뜨거워서 김이 펄펄 났다. 손 끝을 대보고 난 깜짝 놀랐다. 너무 뜨거웠다. 폭이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시냇물은 솥에서 펄펄 끓던 물처럼 흐르면서도 부글부글 끓으며 흘러내렸다.
움막에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서 있다가 나오는 거라는데 주위에 샤워시설도 없고 그냥 물레방앗간처럼 생긴 움막 하나 있어서 온천욕을 기대하고 간 나는 실망이 컸다. 게다가 물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화상을 입기 쉽상이다. 움막 옆에 수도 시설이 있어서 찬물도 나온다고 하는데 시냇물은 뜨겁고 수돗물은 차가워서 도대체 어케 사용해야할지 몰랐다. 그림의 떡이었다.
그 시냇물에 계란을 넣고 20분 있으면 너무 맛있는 찐계란이 된다는 동네 사람 말을 듣고 계란을 사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온천물을 퍼다가 식수로도 사용한다고들 했다.
우리도 가져간 물통에 가득가득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퍼담았다. 퍼담으면서도 온천물의 내용 성분도 모르며 마셔도 될까 의심도 되었지만 동네 사람들 다 마시고 산다니까 그냥 퍼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물은 내가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성분 때문이었는지 약한 내 위장에 염증을 일으켰다. 그 물을 마시기 시작하자 내 위는 바로 쓰린티를 냈고, 급기야는 병원에 가서 위염 치료를 받아야했다.
바야블랑까 근처에는 여러 개의 산이 있는데 그 한 곳에는 자연 표고버섯 산지가 있었다. 그 곳에는 고사리도 많다고 했다. 우리가 놀러 갔던 때는 버섯과 고사리를 채취할 시기가 아니어서 안갔는데 아는 분들은 그곳에서 따온 고사리와 버섯을 말려서 먹곤했다.
그 산지 관리인은 맘씨가 좋아서 한국 사람들이 오면 그냥 올라가서 맘대로 채취하게끔 해줬드랬는데 몇 년 후 그 소문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퍼져 사람들이 단체 관광을 많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곳을 어지럽히고 오고 아예 씨까지 채취를 해와서 자연 파괴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 버섯산지는 한국인 출입금지가 되었다.
단지 얼굴 아는 바야블랑까에서 사는 한국인만 출입이 제한되지 않았다.
난 그 산지를 가보고 싶었지만 다시 남쪽으로 더 한참 내려가야한다는 말에 포기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절벽이 많은 곳에서 랑은 낚시를 하고 싶어 했지만 아가도 있고, 아들 녀석도 어린터라 위험하니까 그냥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