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라리는 한을 넘어서는 미학이다. 그소리는 가슴에 어린한이 응어리를 삭이고 정한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과도 같다. 정선 땅에 사는 사람들이 유달리 아리랑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이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피곤한 삶을 엮어 풀어나가던 소리가 아리랑 이었다. 명창이나 소리꾼이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아리랑과 산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아리랑이 다른점은 가사의 내용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는 소리의 맛이다. 나는 정선 땅 곳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누룽지 맛 같은 구수한 아리랑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어디가면 누가 어떤 맛이 나는 아리랑을 부르는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의 소리꾼들이 있게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소리를 귀 동냥으로 배우면서부터 소리꾼들은 아리랑에 빠져들었다. 내가 만나 정선의 할머니 가운데 구수한 누릉지 맛이 우러나는 대표적인 사람은 정선군 북평면 나전2리 장평마을의 전옥선(全玉仙)할머니다.
투박한 소리 뿐만 아니라 변화 무쌍한 얼굴 표정으로 엮어가는 가사 해설 또한 일품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욕심없이 살아온 토박이의 삶을 일게 해준다. 그녀는 1925년 정선군 북면 숙암리 벗밭이라는 골짜기에서 아버지 전문여와 어머니 정복덕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하나 뿐인 자식이다 보니 딸이어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컸다. 두메산골 마을 벗밭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접한 소리가 바로 정선아라리였다. “매일 낭구하러 산에 올라가는 나무꾼들이 지게 작대기로 태장이를 치면서 부르는 아리랑을 들었지요. 듣고시리 따라 해보니 재미시럽길래 배운거래요” 그녀 자신의 삶이 애정해서인지 들으며 배운 정선아라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열 여섯 살에 시집을 가 진부면으로 이사를 했지만 고향땅을 떠나서는 살지 못했다. 칠십평생 살아온 삶은 아리랑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는 요즘도 새벽녘이면 밭일을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 일손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은 몇푼 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탓도 있지만 멀리 정선 땅 곳곳을 다니면서 평생 소리처럼 친숙한 땅을 벗하고픈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일하러 온 할머니들과 김도매고 배추도 심고하면서 아리랑을 부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무대에 서 본적도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가사도 따로 없다. “해보면 재미시러워 싹다 좋아하지요” 모든 가사를 다 좋아한다는 그녀가 들려주는 아리랑은 들어도 들어도 끝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이가. 나는 민국의 민요학자인 로버트 레이글과 함께 그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구구절절한 아리랑을 네시간 넘게 녹음을 했지만 총기가 넘치고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소리에 푹 빠져 들어 가는것이었다. 얼굴에 파인 깊은 주름살도 펴져가는 것만 같았다. 녹음테이프가 떨어져 아쉬워하는 내게 머릿속에 잔득 담아가라고 했다. 세계 곳곳의 민요를 찾아 지구촌 곳곳을 두루 다녀 본 그 미국인은 이렇게 오래 이어지는 토속민요는 자기가 가본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KBS ‘6시 내공향’ ‘다큐멘타리-한을 노래하며’와 교육방송등에 출연한 뒤로 멋이 들어가지 않은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서울, 부산 등지에서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아오기도 한다. 전옥선 할머니의 아리랑은 땅의 느낌처럼 푸근한 둥글게 와 닿기에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전 옥선 할머니의 정선 아라리
* 사진 / 전 옥선 할머니의 근영 * 소리 / 전 옥선 할머니의 정선 아라리
아리랑의 해학과 익살일품
정선아라리는 한을 넘어서는 미학이다. 그소리는 가슴에 어린한이 응어리를 삭이고 정한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과도 같다. 정선 땅에 사는 사람들이 유달리 아리랑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이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피곤한 삶을 엮어 풀어나가던 소리가 아리랑 이었다.
명창이나 소리꾼이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아리랑과 산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아리랑이 다른점은 가사의 내용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는 소리의 맛이다. 나는 정선 땅 곳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누룽지 맛 같은 구수한 아리랑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어디가면 누가 어떤 맛이 나는 아리랑을 부르는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의 소리꾼들이 있게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소리를 귀 동냥으로 배우면서부터 소리꾼들은 아리랑에 빠져들었다. 내가 만나 정선의 할머니 가운데 구수한 누릉지 맛이 우러나는 대표적인 사람은 정선군 북평면 나전2리 장평마을의 전옥선(全玉仙)할머니다.
투박한 소리 뿐만 아니라 변화 무쌍한 얼굴 표정으로 엮어가는 가사 해설 또한 일품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욕심없이 살아온 토박이의 삶을 일게 해준다. 그녀는 1925년 정선군 북면 숙암리 벗밭이라는 골짜기에서 아버지 전문여와 어머니 정복덕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하나 뿐인 자식이다 보니 딸이어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컸다. 두메산골 마을 벗밭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접한 소리가 바로 정선아라리였다. “매일 낭구하러 산에 올라가는 나무꾼들이 지게 작대기로 태장이를 치면서 부르는 아리랑을 들었지요. 듣고시리 따라 해보니 재미시럽길래 배운거래요” 그녀 자신의 삶이 애정해서인지 들으며 배운 정선아라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열 여섯 살에 시집을 가 진부면으로 이사를 했지만 고향땅을 떠나서는 살지 못했다. 칠십평생 살아온 삶은 아리랑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는 요즘도 새벽녘이면 밭일을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 일손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은 몇푼 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탓도 있지만 멀리 정선 땅 곳곳을 다니면서 평생 소리처럼 친숙한 땅을 벗하고픈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일하러 온 할머니들과 김도매고 배추도 심고하면서 아리랑을 부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무대에 서 본적도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가사도 따로 없다. “해보면 재미시러워 싹다 좋아하지요” 모든 가사를 다 좋아한다는 그녀가 들려주는 아리랑은 들어도 들어도 끝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이가. 나는 민국의 민요학자인 로버트 레이글과 함께 그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구구절절한 아리랑을 네시간 넘게 녹음을 했지만 총기가 넘치고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소리에 푹 빠져 들어 가는것이었다. 얼굴에 파인 깊은 주름살도 펴져가는 것만 같았다. 녹음테이프가 떨어져 아쉬워하는 내게 머릿속에 잔득 담아가라고 했다. 세계 곳곳의 민요를 찾아 지구촌 곳곳을 두루 다녀 본 그 미국인은 이렇게 오래 이어지는 토속민요는 자기가 가본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KBS ‘6시 내공향’ ‘다큐멘타리-한을 노래하며’와 교육방송등에 출연한 뒤로 멋이 들어가지 않은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서울, 부산 등지에서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아오기도 한다. 전옥선 할머니의 아리랑은 땅의 느낌처럼 푸근한 둥글게 와 닿기에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출처 :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도서출판 다움) 진용선 지음 2005. 2. 15. 휘뚜루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