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선거가 위험해, 윤보선을 암살하시오” 방준모 전 중정감찰실장 85년 ‘윤보선 암살음모’ 폭로
2005-02-15 14:53 민일성 (mini99999@dailyseop.com)기자
“이 선거가 아무래도 위험해. 암살할 준비를 하시오”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정권은 1967년 5월 실시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을 벌였던 신민당 윤보선 후보를 암살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60년대 중정 감찰실장을 지낸 방준모(육사 8기·미국 거주)씨는 1985년 미국의 한 교포신문을 통해 ‘윤보선 암살 음모’의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고 15일 한겨레신문은 보도했다.
방씨는 “김형욱 부장이 저를 직접 불러 놓고는 ‘이 선거가 아무래도 위험해. 백중지세야. 까딱하다간 지겠어. 박 대통령의 혁명과업 완수와 경제계획을 완수하려면 할 수 없소. 암살할 준비를 하시오’라고 명령을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방씨는 개표 당일 장총을 든 저격수와 함께 윤씨 집 안방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덕성여고 2층에서 비밀리에 대기했다. 그러나 선거 걸과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의 대패. 민주공화당 소속 박정희 대통령은 윤 후보를 116만2125표 차로 크게 이겼다.
정적 제거를 위해서는 상대방 후보의 암살 명령까지 서슴지 않았던 박 정권의 손아귀에서 윤 후보가 목숨을 건지는 순간이었다. 방씨는 실제 개표 결과 박 대통령이 승리하는 바람에 그냥 철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씨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1966년 ‘반역자의 고백’이라는 책까지 냈지만 안기부나 국정원이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한편 한겨레신문은 같은 기사에서 장준하, 김대중 등 박정희 정권의 정적 제거 의혹 사건은 끊임없이 불거졌다고 밝히고 있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東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 체류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괴한 6명에게 납치돼 오사카항에서 배로 부산항까지 이동, 8월13일 동교동 자택으로 압송됐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일했었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KBS 라디오를 통해 처음 납치사건 명령이 떨어졌을 때 착수를 안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재촉을 해서 착수했다는 이야기를 최영근 전 의원에게서 들었다고 밝힌바 있다. 최 전 의원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장본인이었던 이후락 부장의 측근이었다.
그러나 이후락 부장은 1987년 기자들에게 “최영근씨에게 그런 말을 한 사실도 없으며, 박 대통령의 지시도 없는 단순 납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족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이 사건을 정적 살해 음모공작 사건으로 보고 7대 우선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위원회는 납치 지시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인지 아니면 이 부장 단독결정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가 선거때,, 암살이라고...??
박정희 “선거가 위험해, 윤보선을 암살하시오”
방준모 전 중정감찰실장 85년 ‘윤보선 암살음모’ 폭로
2005-02-15 14:53 민일성 (mini99999@dailyseop.com)기자
“이 선거가 아무래도 위험해. 암살할 준비를 하시오”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정권은 1967년 5월 실시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을 벌였던 신민당 윤보선 후보를 암살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60년대 중정 감찰실장을 지낸 방준모(육사 8기·미국 거주)씨는 1985년 미국의 한 교포신문을 통해 ‘윤보선 암살 음모’의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고 15일 한겨레신문은 보도했다.
방씨는 “김형욱 부장이 저를 직접 불러 놓고는 ‘이 선거가 아무래도 위험해. 백중지세야. 까딱하다간 지겠어. 박 대통령의 혁명과업 완수와 경제계획을 완수하려면 할 수 없소. 암살할 준비를 하시오’라고 명령을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방씨는 개표 당일 장총을 든 저격수와 함께 윤씨 집 안방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덕성여고 2층에서 비밀리에 대기했다. 그러나 선거 걸과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의 대패. 민주공화당 소속 박정희 대통령은 윤 후보를 116만2125표 차로 크게 이겼다.
정적 제거를 위해서는 상대방 후보의 암살 명령까지 서슴지 않았던 박 정권의 손아귀에서 윤 후보가 목숨을 건지는 순간이었다. 방씨는 실제 개표 결과 박 대통령이 승리하는 바람에 그냥 철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씨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1966년 ‘반역자의 고백’이라는 책까지 냈지만 안기부나 국정원이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한편 한겨레신문은 같은 기사에서 장준하, 김대중 등 박정희 정권의 정적 제거 의혹 사건은 끊임없이 불거졌다고 밝히고 있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東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 체류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괴한 6명에게 납치돼 오사카항에서 배로 부산항까지 이동, 8월13일 동교동 자택으로 압송됐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일했었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KBS 라디오를 통해 처음 납치사건 명령이 떨어졌을 때 착수를 안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재촉을 해서 착수했다는 이야기를 최영근 전 의원에게서 들었다고 밝힌바 있다. 최 전 의원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장본인이었던 이후락 부장의 측근이었다.
그러나 이후락 부장은 1987년 기자들에게 “최영근씨에게 그런 말을 한 사실도 없으며, 박 대통령의 지시도 없는 단순 납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족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이 사건을 정적 살해 음모공작 사건으로 보고 7대 우선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위원회는 납치 지시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인지 아니면 이 부장 단독결정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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