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련

이야기 상자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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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

 


 하필이면 오늘 반공훈련을 하는 날이라 태림과 엄마는 정신 없이 움직여야 했다. 모든 걸 아버지가 들어오시기 전에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지 다른 날은 잘 들어오시지 않는 분이 반공훈련을 하는 날이면 소등을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 오셨기 때문에 그녀들의 손은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면 단 둘이 맛난 식사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 준비하는 상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태림의 방 한 켠에 차려 놓은 두 사람을 위한 상은 6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태림의 언니부부를 위한 제사상이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언니의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거부했다.
 언니의 죽음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태림은 그런 아버지가 증오스러웠지만 그 만큼 무서웠기 때문에 반항한번 한적히 없었다.
 아버지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를 대학에도 보내주지 않고 나이가 아버지 뻘 만한 남자에게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고 했고, 언니는 그걸 피하기 위해 다 큰 나이에 가출을 했고, 예전부터 남 몰래 사랑을 키워온 동갑내기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아버지가 쏟아낸 저주처럼 금새 끝나고 말았다. 언니는 임신한 몸으로 형부와 시댁에 가던 도중,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었다.
 "태림아. 어서 하자꾸나."
 "네."
태림은 잠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처럼 화려함도 당당함도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지워진 분이었지만, 적어도 자식들을 향한 사랑만은 잊어버리지 않았고, 버리지 않으신 분이었다.
 엄마는 외갓집의 빚을 갚기 위해서 처녀의 몸으로 아이가 딸린 아버지에게 시집왔고, 그 아이를 친딸처럼 키우다가 태림을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던 아들이 아니라면 세 모녀를 무시했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힘든 삶에서 큰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는 시련을 다시 한번 겪고 말았다.
 태림은 죽어버린 언니 부부와 보지도 못한 조카가 죽어버린 것도 안타까웠지만 지금 살아서 그들의 제사상을 차리는 엄마가 가장 불쌍했다.
 오늘은 언니와 형부를 위해 잠시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
 다행이 상을 다 치우자 아버지가 집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아버지가 아실 일은 없지만 두 모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거대한 체격을 가진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의논할 일이 있으니 둘 다 거실로 와."
 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말이 그녀들을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사소한 것도 가족과 의논하는 법이 없이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시는 분이었지 한번도 이러신 적이 없던 분이었다.
 두 모녀는 왠지 모른 떨리는 마음으로 독재자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태림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이제 나이가 드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
 태림과 그녀의 엄마는 계엄령을 선포하듯이 독재적으로 태림의 결혼을 선언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그러면 그렇지 아버지가 그들 모녀에게 뭔가 상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항상 그렇듯이 결정하고 선포하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 모녀를 남겨두고 일어서려고 하자 여자의 엄마는 자신의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결, 결혼이라니요. 태림인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그랬다 태림은 아직 고등학생 이였고,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어 엄마를 이 집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이 태림이의 꿈이자 인생의 목표였다. 그런데 결혼이라니? 그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태림 모녀의 정신을 강타했다.
 "뭐가 문제야. 부모가 동의하면 결혼할 수 있는 나이야!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어."
 언니도 강제로 결혼시키려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 보내고 나서도 뉘우침은커녕 하나 남은 자신 마저 그렇게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자 태림은 화가 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앞에 다가섰다. 다른 건 다 아버지의 말에 따랐지만 이번만은 이번 한 번만은 순순히 따를 수가 없었다.
 "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태림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어머니가 팔을 붙잡았을 때보다 더 울그락 불그락 거리면서 붉어지다가 점점 더 검붉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가슴을 누르는 분노 때문에 처음으로 무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넌 내가 시키는 데로 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나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만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따르기 바랬고, 그렇지 않을 시에는 가차없이 냉정하고 폭군처럼 변하는 사람이었다.
 "싫어요. 전…악."
 "안돼요."
 엄마의 외침이 있었지만, 이미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태림이의 얼굴에 선명하고 붉은 손자국을 내 후였다. 처음 맞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도 그 통증에는 익숙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태림이의 여린 몸은 소파에 다시 안게 될 정도였다.
 벌써 맞은 곳이 후끈거리며 맥이 뛰는 것처럼 벌떡였다.
 "이러지 마세요. 얘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뭐야. 당신이 얘를 이렇게 가르치니 버릇이 없지."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겨웠다, 그저 힘이 있다고 해서 그는 가족 위에 군림하려고 했고 조금이라도 그의 눈에 거슬리면 가족에게도 무자비했고, 상처 내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다.
 "잔말하지 말고 결혼식은 올리지 않을 거지만, 곧 신랑이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라. 거기서 학교 다니면 돼."
 "여보.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예요. 어떻게 이런 어린애가 결혼을……."
 하지만 무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남편의 서늘한 눈길하나만으로도 평생 그의 언어 폭행과 육체적 폭행을 당해왔던 약한 그녀로써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입 닥치고 태림이가 그 집에 들어갈 준비나 해. 워낙 재력가라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을 거야."
 정말 싫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만약 지금 결혼을 한다면 엄마를 이 집에서 꺼낼 수 있는 기회는 멀어지고 말 것 같았다. 이제 일년도 남지 않았다. 담임선생님도 좋은 직장을 소개시켜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을 해주셨다.
 "그렇게 그 집의 재력이 좋으면 아버지나 하세요. 전 하지 않을 거예요."
 인상이 험악한 중년의 남자는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고 있는 자신의 딸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서있는 자신의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딸이 말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줄 알고 있던 그는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띄었다.
 태림은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아차 했지만 이미 그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은 자신의 엄마를 향해 내려쳐 지기 시작했다.
 "안돼요. 제발 멈춰요, 흑흑."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의 손이 엄마에게 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이미 저항하려는 의지를 잊어버린 먹이 감을 놓지 않았고, 그 손길이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는 태림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하세요."
 폭군은 그제야 처량하게 맞고있던 여자를 소파에 던지다 시피 내려놓았다. 엄마는 마치 생명력이 없는 인형처럼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잘 생각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그들을 나두고 뒤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찢어버릴 듯이 바라보았지만, 눈길로는 아무런 해를 미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태림은 넝마조각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엄마에게로 몸을 돌렸다.
 "엄..마. 미안해요."
 어차피 아버지의 말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에게 반항을 했으니, 이런 결과가 있으리라는 걸 미리 예측해야 했었다. 그런데 태림이 하나 예측하지 못한 것은 폭력의 손길이 자신 아닌 엄마에게 향하는 거였다.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견디어 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맞는 것에 이골이 나 있는 연약한 엄마에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자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여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미안해하면서 불쌍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만은, 너 하나만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흑흑흑."
 두 모녀는 서로를 끌어 앉고 얼굴을 적시면서 그렇게 자신들의 인생을 한탄했다.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딸이 하나 달린 아버지에게 시집을 와서 태림을 낳고 살았다. 언니인 여진도 아버지의 욕심에 의해 아버지 뻘 나이의 남자에게 강제로 결혼시키려고 하자 집을 나갔었고, 곧 좋아했던 남자와 결혼을 했었다. 아버지는 그 결혼을 싫어했지만 이미 법적으로나 무엇으로나 결혼이 합법화된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반공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대한민국의 전역에 퍼짐과 동시에 숨어 있던 아주머니는 빨리도 소등을 했다. 달빛이 비추는 작은 불빛 말고는 모녀를 비추어 주는 따뜻한 빛줄기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태림은 이 어두움이 자신의 미래를 나타내는 것 같아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엄마에게 그런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 걱정하지마. 난 잘해 낼 꺼야. 그래도 언니보다는 더 나을 수도 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림은 앞으로 자신과 엄마의 앞에 일어날 일들이 두려웠다. 언니는 죽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의 품안에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끝낼 수가 있었다. 언니의 소원처럼 같은 시간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했던 언니가 처음으로 부러웠다. 이제 곧 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가지면 엄마와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태림의 생각이 너무 짧았다.
 
 세준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있는 아버지가 마치 뿔을 두 개 달리고 코가 세 개쯤 달린 괴물로 보이려고 했다.
 결혼이라니! 그런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세준에게 말하고 있었다.
 세준은 자신과 똑 같이 생긴 날카로우면서도 커다래 먹이를 놓치지 않을 두 눈을 아무런 거침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 정신 나가셨어요?"
 그 말 자체가 정신 나간 소리였다. 그건 아버지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죄송해요. 하지만 결혼이라뇨. 그것도 김진만 사장의 딸 하고요?"
 세준은 보고 있던 서류를 다시 보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사악하고 재수 없는 김진만 사장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고, 그중 큰딸은 결혼한 지 일년도 안되어서 죽었고, 작은 딸은 아직 학생이었다.
 세준은 자신의 강인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각이 진 얼굴을 손으로 거칠게 문지르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헤치고 나가야 할지 그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결혼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만약에 한다고 해도 김진만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장인이 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욱 싫었다. 욕심과 탐욕으로만 가득한 얼굴과 자기가 원하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가 가든지 상관하지 않는 남자, 세준은 그가 경멸 서러웠다. 자신에게 한 짓을 빼더라도 그를 경멸한 만할 많은 증거를 아버지에게 제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아무리 세준이 무슨 말을 하다고 해도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필 이 시점에서 결혼이라니! 이제 겨우 혜란이의 배신을 딛고 일에 전념하는 세준에게 하늘이 왜 이런 시련을 주려고 하는지 그는 한숨만이 나왔다.
 "아버지.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아들의 말에 자신의 목숨 보다더 사랑하는 세준을 바라보면서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그건 그 여자가 돈 만 밝히는 여자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다행이 김 사장의 딸은 그런 혜란과는 격이 다른 아이이고."
 아버지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갑자기 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일 말이다. 적어도 그의 인생과 관련된 일이면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가능한 그의 결정을 따라주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인 인륜지 대사를 아버지가 혼자 독재자처럼 처리하고 있었다.
 "전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사랑하셔서 결혼하셨다고 하였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는 그런 기회를 뺏어가려고 하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