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1부 12막 : 밀정(密偵) #02 & #03)

J.B.G200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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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여전히 번화한 중림의 시장에서 과거의 회상에 잠긴 철기주가 검은 망토로 신분을 숨긴 채 추억이 담긴 담벼락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

 

그렇게 잠들어있을 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 철기주는 곧 일어나 운산으로 이동했다.

 

‘적국의 암살자 인가?’

 

운산의 무덤에 다다른 철기주는 곧 무덤에 예를 갖추고,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저녁이 되도록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나치게 신중한 자 이군… 아직 나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인가?’

 

그때, 숲 속에서 화살이 날아 들었다. 그러나 이미 주목하고 있던 철기주의 몸을 뚫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누구냐?”

 

그런데 이상하게 숲에서 갑자기 칼 바람이 불었다.

 

‘응? 같은 편이 아니었나?’

 

철기주는 급히 숲으로 뛰어 들었고, 그는 뜻 밖에 광경을 목격했다. 자신처럼 긴 망토로 신분을 가린 자가 자신에게 활을 쏜 것으로 보이는 암살자를 주살한 것이었다.

 

“넌…”

“소장입니다. 장군님.”

“무연… 장군?”

 

철기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냉정해 졌다.

 

“나를 지키는 것은 전장만으로 족합니다.”

“…”

 

이렇게 말하면서 철기주는 문득 상처를 입은 그녀를 보았다.

 

“…”

 

깊지는 않으나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철기주는 급히 피가 멎도록 붕대를 감아주고는 그녀를 데리고 운산을 내려와 초류향에 들었다. 그리고 곧 초란이 무연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지금 방에는 초란과 무연 두 사람만이 있었다.

 

“부장이 호위까지 맡는 줄을 몰랐습니다.”

“…”

 

초란은 직감적으로 무연이 품고 있는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연의 팔에 붕대를 감으며 물었다.

 

“사연이 듣고 싶네요.”

“네?”

“장군님을 사모하게 된 사연…”

“…”

 

잠시 고민하던 무연은 초란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철기주에게 구명되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초란이 이야기가 끝이 나자 물었다.

 

“그것 때문이라니… 너무 쉽게 운명을 정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이해 못하겠죠… 이곳에서 항상 장군님을 모시니…”

“…”

 

초란은 그만 놀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전 그 일이 없었어도 장군님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모시고 싶어요. 간절히… 하지만, 그분은 허락해 주질 않아요…”

“…”

 

그때 철기주가 방에 들어왔다. 그러자 초란은 곧 약품을 챙겨서 방을 나서려 했다.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나가고 방 안에는 철기주와 무연만 남게 되었다.

 

 

 

#03

 

철기주의 방을 나선 초란은 곧 적령의 방에 들었다.

 

“철기주란 장수가 든 것이 아니었니?”

“응… 그런데 이번엔 다른 손님과 함께야?”

“…”

“부장이면서 호위장수인 것 같아…”

“흠… 요즘 암살자들의 활동이 심해져서 인가…?”

“명을 어기고 장군님을 미행한 것 같아…”

“그래…?”

 

초란은 심히 얼굴빛이 어두워 보였다.

 

“그 부장… 여인인가 보구나?”

“…”

 

그날 밤. 초란이 잠이 들자 적령은 몰래 차비를 하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철기주가 있는 방에 편지를 남겼다.

 

“…”

 

무연이 잠든 것을 옆에서 지키고 있던 철기주는 인기척을 느끼고 곧 밖으로 나갔고, 문 앞의 편지를 발견했다.

 

“이건…”

 

예상보다 깊었던 상처로 인해 피를 많이 흘려 이미 잠이든 무연을 방에 두고 철기주는 편지를 따라 초류향을 나섰다. 그렇게 밤이 더욱 깊어갈 즈음 잠이 든 초란의 방에 하녀가 나타났다.

 

“언니!”

 

하지만 이미 잠이 든 초란은 답이 없었다.

 

“언니!”

 

하녀가 재차 부르자 초란이 잠에서 깨어났다.

 

“…응…?”

“언니!”

“무슨 일이니?”

“검은 장수님과 같이 들었던 손님이 언니를 찾아요”

“검은 장수…? 응, 왜…?”

“검은 장수님이 사라졌대요?”

“뭐?”

 

초란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적령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순간 무엇인가를 깨달은 초란은 크게 놀라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돼!”

 

그 시각.

두 영웅은 결국 서로의 신분을 숨긴 채 대면하고 있었다.

 

“전장이 아닌 곳에서 왜 내가 당신과 싸워야 하지?”

“용군은 모두 내 원수니까?”

“당신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난 전장이 아닌 곳에서 당신과 싸울 이유가 없소.”

“있다면?”

“…”

“예를 들어 지난날 진양에서 장수 악귀를 참살한 것이 바로 나라면 당신이 싸울 이유가 되는가?”

“…”

 

적령의 도발에 철기주는 곧 마음을 정한 듯… 칼을 뽑아 들었다.

 

“그것이라면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렇게 두 사람이 시퍼런 칼날을 세우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 즈음 초란의 외마디 비명이 멀리에서 들여왔다.

 

“멈춰요!”

 

그러나 두 사람은 칼을 멈추지 않고 경합을 벌였다. 그러고 곧 두 번째 경합을 하려는 찰나에 무연과 초란이 말을 타고 두 사람 사이에 달려들었다.

 

“제발 그만둬요! 제발!”

 

무연은 칼을 뽑아 들고 철기주의 앞에서 적령과 대치했고, 초란은 적령의 옷자락을 잡고는 울고 있었다.

 

“너…”

“제발 그 칼을 거두어… 제발…”

 

그러나 두 사람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적령은 지금 초란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물러서! 여기서 철기주를 죽일 거야!”

 

그리고 철기주도 적령과 같이 명했다.

 

“초란아! 나도 이번에는 물러설 수 없다. 악귀를 참살한 저자를 용서할 수가 없다.”

 

서로를 죽이려고 격렬하게 대치한 두 사람을 대면한 초란은 그만 목놓아 통곡하고 말았다.

 

“바보 같은 사람들…”

 

결국, 초란은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을 힘으로 물리치려 했다.

 

“소녀! 오늘 여기에서 죽습니다.”

“뭐?”

“무슨 짓이냐?”

 

초란은 품에서 칼을 빼어 들어 목에 찔러 넣으려 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소녀를 여기에서 객사시키겠습니까?”

“너 도대체…”

“초란아!”

 

그러는 사이 이미 초란의 목에 박힌 칼로 피가 새어 나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의지는 결연한 것이었다.

 

“도대체… 왜…”

 

하지만 이 광경을 보고 가장 놀란 것은 철기주와 적령보다조 무연이었다.

 

‘역시, 당신은…’

 

초란을 잃을 수 없었던 철기주와 적령은 그만 칼을 거둘 수 밖에 없었다. 철기주는 노기를 감추지 못한 채 무연과 함께 돌아섰고, 적령도 아무 말 없이 물러서 사라졌다.

 

“흑! 흑! 흑!”

 

초란은 그 자리에서 떠날 줄 모르고 계속 통곡하고 말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 이 일로 두 영웅 중 하나가 죽었다면… 중앙대륙의 역사는 어찌 변했을까…’

 

초란의 생각대로 그날 두 영웅 중 하나가 음모를 모은 채 죽었다면… 중앙대륙은 더 빨리 통일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 후의 참극의 역사도 되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