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아리랑의 유래 * 정선(旌善)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정선아리랑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조선시대 초기(朝鮮初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하던 선비들이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그 중 7명이 정선(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忠節)을 지키며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입지 시절의 회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심정(心情)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곤 했다. 이들이 지어 비통(悲痛)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시는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정선아리랑이 지금과 같이 ‘아리랑’ 또는 ‘아라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은 조선조 후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던 조선 후기부터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자 명맥을 이어온 정선의 소리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음율을 붙여 부르면서"후렴구"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아라리"또는"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담아 불렀다.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공(反共)의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민족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부르기도 했다.
정선아리랑에는 시대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떼타는 일의 고단함과 유희등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구전되어온 정선아리랑은 1971년12월16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 되었고, 체계적인 연구와 전수는 물론 다양한 활동으로 오늘날 우리나 라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정선 상정바위산(1,006m)에서 본 우리나라 지도모양 *
1. 긴 아라리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참고 : 가사내용의 첫머리 글자순서(ㄱ,ㄴ,ㄷ,)로 하였음]
간다지 못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 되었오
개구장가에 포름포름에 날 가자구 하더니 온 산천이 어우러져도 날 가자구 안하네
그대 당신을 사모하다가 골수에 든 병 화타 편작이 치료한들 일어날 수 있나
금도 싫고 은도 싫고 문전옥답(門前沃畓) 내 다 싫어 만주벌판 신경(新京) 뜰을 우리 조선(朝鮮)주게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저 여자가 이마 눈썹은 여덟 팔(八)자로 잘 가꾸네
꽃 본 나비야 물본 기러기 탐화봉접(探花蜂蝶)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 수 있나
나비 없는 강산에 꽃은 피여 멋하며 당신 없는 요 세상 단장하여 멋하나
날 따라오게 날 따라오게 날만 따라오게 잔솔밭 한중허리로 날 따라오게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도랑에 물이 뿔거든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울고 간줄 알아요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이불 담요 깔겠나 마틀마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들자
노랑 저고리 진분홍 치마를 받고 싶어 받았나 우리 집 부모님에야 말한 마디에 울며 불며 받았네
노랑두 머리에 파뿌리 상투를 언제나 길러서 내 낭군 삼나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간이라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담배불이야 반짝반짝에 님 오시나 했더니 저 몹쓸놈의 반딧불이가 나를 또 속이네
당신은 거기에 있고서 나는야 여기에 있어도 말한 마디 못 전하니 수천리로구나
당신은 나를 알기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당신이 날만치만 생각을 한다면 오동지 섯달에도 진달래가 피지요
당신은 왔다가 그저 간 듯 하여도 삼혼칠백(三魂七魄)의 맑은 정신은 뒤따라간다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아니라면은 해당화(海棠花)는 왜 피며 모춘삼월(暮春三月)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멀구다래를 딸려거든 청서듥으로 들고요 이내 몸을 만날라거든 후원별당으로 들게
무정한 기차야 소리말구 가거라 산란한 이내 마음이 더 산란하구나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물한동이를 여다 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니는 촌살림 하기는 정말 원통하구나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江山)이 붉어 좋다
밥 한 냄비를 달달 볶아서 간난이 아버지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어자자
배달의 동포야 굶주리지 말고서 힘대 힘대로 일하여 자수성가 합시다
변북이 산등에 이밥취 곤드래 내 연설을 들어라 총각 낭군을 만날라거든 해 연년이 나거라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 동산 행화춘절(杏花春節)이 날 알려주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친다
살개바우 노랑차조밭 어느 누가 매느냐 비 오고 날 개는 날에 단둘이 매러 갑시다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도 풀은 풀이 아니냐 하루밤을 자고 가도 임은 임일세
삼십육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 을유년(乙酉年) 팔월십오일 다시 만발하였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서울에 종로 네거리 솥 때우는 아저씨 우리들의 정 떨어진 것은 왜 못때워주나
석새배 곰방치마를 둘렀을 망정 네까짓 하이칼라는 내 눈 밑으로 돈다
수수밭 삼밭을 다지내 놓고서 빤빤한 잔디밭에서 왜 이렇게 졸라
술으는 술술술 잘도 넘어 가는데 찬물에 냉수는 중치에 미인다
시누야 올캐야 말내지 말게 삼밭 속의 보금자리는 내가 쳐 놓았네
시어머니 산소를 까투리 봉에다 썼더니 아들딸 낳는 쪽쪽 콩밭골로 가네
시어머니 산소를 깨구리 봉에다 썼더니 옆구리만 찔러도 해딱 자빠지네
시집간지 삼일만에 부뚜막 장단을 쳤더니 시어머니 눈은 까재미 눈이 된다네
시집온지 사흘만에 바가지 장단을 쳤더니 시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엉덩이 춤만 추네
신발 벗고 못가실 데는 참밤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갈 때는 술집 문전이라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남자 있겠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여자 있겠지
아우라지 강물이 소주 약주 같다면 오고 가는 친구가 모두 내 친굴세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앞 남산 살구 꽃은 필락말락 하는데 우리 둘이 정이야 들락말락 하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구요 우리 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앞남산에 황국단풍은 구시월에나 들구요 이내 몸에 속단풍은 시시때때로 든다
앞 남산의 호랑나비는 왕거미줄이 원수요 시방시체 청년들은 삼팔선(三八線)이 원수라
영감아 홍감아 집잘보고 있거라 잠자리 팔아서 엿사다 줌세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정수정망(定數定望)이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오늘 갔다가 내일 온다면 나는 안따라가지만 오늘 갔다가 모레 온다면 나는 따라가요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 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
우리 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물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우리 어머니 나를 길러서 한양 서울 준댔죠 한양 서울 못 줄 망정 골라골라 주세요
원앙금침에 잣비개는 저녁마다 비련만 대장부 긴긴 팔은 언제나 비나
월미봉(月尾峯)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 된다면 오던새 그나비도 되돌아 간다
유전자(有錢者) 무전자(無錢者) 사람 괄세 말어라 인간세계 부귀영화는 돌고도 돈다
육칠월 감자 싹으는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적는데 대한 청년 남아는 만고풍상을 다 겪네
이밥에 고기 반찬은 맛을 몰라 못먹나 사절치기 강낭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이삼사월 긴긴 해는 점심 굶어 살아도 동지섣달 긴긴 밤이야 임 그리워 못 살겠네
저건너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해 묵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 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정선 사십리 발구럭 십리에 삼산(蔘山) 한치인데 의병난리가 났을때도 피난지로다
정선앞 한강수(漢江水)는 소리없이 흐르고 옛 조상 옛 시(詩)는 변함이 없다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니냐 무릉도원 어데가고서 산(山)만 충충하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정선읍내야 백모래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 마나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드려 놓고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잔나 비 끝에 돕는 달은 유정(有情)도나 하구나
천기운기(天氣運氣)로 눈 비 올라면 땅이 누기가 있드시 눈도 비도 다 오는데 당신은 왜 못오시나
정선 아리랑 제1부
정선 아라리 1부(약 20분소요)
* 정선읍 전경
* 정선 아리랑의 유래 *
정선(旌善)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정선아리랑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조선시대 초기(朝鮮初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하던 선비들이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그 중 7명이 정선(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忠節)을 지키며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입지 시절의 회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심정(心情)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곤 했다.
이들이 지어 비통(悲痛)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시는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정선아리랑이 지금과 같이 ‘아리랑’ 또는 ‘아라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은 조선조 후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던 조선 후기부터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자 명맥을 이어온 정선의 소리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음율을 붙여
부르면서"후렴구"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아라리"또는"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담아
불렀다.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공(反共)의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민족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부르기도 했다.
정선아리랑에는 시대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떼타는 일의 고단함과 유희등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구전되어온 정선아리랑은 1971년12월16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 되었고, 체계적인 연구와 전수는 물론 다양한 활동으로 오늘날 우리나
라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정선 상정바위산(1,006m)에서 본 우리나라 지도모양 *
1. 긴 아라리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참고 : 가사내용의 첫머리 글자순서(ㄱ,ㄴ,ㄷ,)로 하였음]
간다지 못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 되었오
개구장가에 포름포름에 날 가자구 하더니
온 산천이 어우러져도 날 가자구 안하네
그대 당신을 사모하다가 골수에 든 병
화타 편작이 치료한들 일어날 수 있나
금도 싫고 은도 싫고 문전옥답(門前沃畓) 내 다 싫어
만주벌판 신경(新京) 뜰을 우리 조선(朝鮮)주게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저 여자가
이마 눈썹은 여덟 팔(八)자로 잘 가꾸네
꽃 본 나비야 물본 기러기 탐화봉접(探花蜂蝶)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 수 있나
나비 없는 강산에 꽃은 피여 멋하며
당신 없는 요 세상 단장하여 멋하나
날 따라오게 날 따라오게 날만 따라오게
잔솔밭 한중허리로 날 따라오게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도랑에 물이 뿔거든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울고 간줄 알아요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이불 담요 깔겠나
마틀마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들자
노랑 저고리 진분홍 치마를 받고 싶어 받았나
우리 집 부모님에야 말한 마디에 울며 불며 받았네
노랑두 머리에 파뿌리 상투를
언제나 길러서 내 낭군 삼나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간이라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담배불이야 반짝반짝에 님 오시나 했더니
저 몹쓸놈의 반딧불이가 나를 또 속이네
당신은 거기에 있고서 나는야 여기에 있어도
말한 마디 못 전하니 수천리로구나
당신은 나를 알기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당신이 날만치만 생각을 한다면
오동지 섯달에도 진달래가 피지요
당신은 왔다가 그저 간 듯 하여도
삼혼칠백(三魂七魄)의 맑은 정신은 뒤따라간다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아니라면은 해당화(海棠花)는 왜 피며
모춘삼월(暮春三月)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멀구다래를 딸려거든 청서듥으로 들고요
이내 몸을 만날라거든 후원별당으로 들게
무정한 기차야 소리말구 가거라
산란한 이내 마음이 더 산란하구나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물한동이를 여다 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니는
촌살림 하기는 정말 원통하구나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江山)이 붉어 좋다
밥 한 냄비를 달달 볶아서 간난이 아버지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어자자
배달의 동포야 굶주리지 말고서
힘대 힘대로 일하여 자수성가 합시다
변북이 산등에 이밥취 곤드래 내 연설을 들어라
총각 낭군을 만날라거든 해 연년이 나거라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 동산 행화춘절(杏花春節)이 날 알려주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친다
살개바우 노랑차조밭 어느 누가 매느냐
비 오고 날 개는 날에 단둘이 매러 갑시다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도 풀은 풀이 아니냐
하루밤을 자고 가도 임은 임일세
삼십육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
을유년(乙酉年) 팔월십오일 다시 만발하였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서울에 종로 네거리 솥 때우는 아저씨
우리들의 정 떨어진 것은 왜 못때워주나
석새배 곰방치마를 둘렀을 망정
네까짓 하이칼라는 내 눈 밑으로 돈다
수수밭 삼밭을 다지내 놓고서
빤빤한 잔디밭에서 왜 이렇게 졸라
술으는 술술술 잘도 넘어 가는데
찬물에 냉수는 중치에 미인다
시누야 올캐야 말내지 말게
삼밭 속의 보금자리는 내가 쳐 놓았네
시어머니 산소를 까투리 봉에다 썼더니
아들딸 낳는 쪽쪽 콩밭골로 가네
시어머니 산소를 깨구리 봉에다 썼더니
옆구리만 찔러도 해딱 자빠지네
시집간지 삼일만에 부뚜막 장단을 쳤더니
시어머니 눈은 까재미 눈이 된다네
시집온지 사흘만에 바가지 장단을 쳤더니
시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엉덩이 춤만 추네
신발 벗고 못가실 데는 참밤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갈 때는 술집 문전이라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남자 있겠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여자 있겠지
아우라지 강물이 소주 약주 같다면
오고 가는 친구가 모두 내 친굴세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앞 남산 살구 꽃은 필락말락 하는데
우리 둘이 정이야 들락말락 하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구요
우리 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앞남산에 황국단풍은 구시월에나 들구요
이내 몸에 속단풍은 시시때때로 든다
앞 남산의 호랑나비는 왕거미줄이 원수요
시방시체 청년들은 삼팔선(三八線)이 원수라
영감아 홍감아 집잘보고 있거라
잠자리 팔아서 엿사다 줌세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정수정망(定數定望)이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오늘 갔다가 내일 온다면 나는 안따라가지만
오늘 갔다가 모레 온다면 나는 따라가요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 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
우리 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물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우리 어머니 나를 길러서 한양 서울 준댔죠
한양 서울 못 줄 망정 골라골라 주세요
원앙금침에 잣비개는 저녁마다 비련만
대장부 긴긴 팔은 언제나 비나
월미봉(月尾峯)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 된다면
오던새 그나비도 되돌아 간다
유전자(有錢者) 무전자(無錢者) 사람 괄세 말어라
인간세계 부귀영화는 돌고도 돈다
육칠월 감자 싹으는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적는데
대한 청년 남아는 만고풍상을 다 겪네
이밥에 고기 반찬은 맛을 몰라 못먹나
사절치기 강낭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이삼사월 긴긴 해는 점심 굶어 살아도
동지섣달 긴긴 밤이야 임 그리워 못 살겠네
저건너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해 묵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 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정선 사십리 발구럭 십리에 삼산(蔘山) 한치인데
의병난리가 났을때도 피난지로다
정선앞 한강수(漢江水)는 소리없이 흐르고
옛 조상 옛 시(詩)는 변함이 없다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니냐
무릉도원 어데가고서 산(山)만 충충하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정선읍내야 백모래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 마나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드려 놓고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잔나
비 끝에 돕는 달은 유정(有情)도나 하구나
천기운기(天氣運氣)로 눈 비 올라면 땅이 누기가 있드시
눈도 비도 다 오는데 당신은 왜 못오시나
하루밤 맺은 정을 끊지 못해서 우느냐
능나도 수풀 속에서 봄비가 온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살아 나지요
허공중천에 뜬 달은 임 계신 곳을 알건만
나는야 어이해서 임 계신 곳을 모르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냈으니
만지산(滿池山) 전산옥(全山玉)이야 술판 차려놓아라
*아우라지 섭다리 *
2. 엮음 아라리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네칠자나 내팔자나 네모반듯 왕골방에
샛별같은 놋요강을 발치만치 던져놓고
원앙금침 잣벼개에 앵두같은 젖을빨며 잠자보기는
오초강산에 일글렀으니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만 두자
네칠자나 내팔자나 한번여차 죽어지면
겉매끼 일곱매끼 속매끼 일곱매끼 이칠에십사 열네매끼
참나무 댓가래 전나무 연춧대 스물두 상두꾼에
너호넘차 발맞추어 시방시체 개명말로
공동묘지 석자석치 홍대칠성 깔고덮고
척 늘어지면은
어느 동기 어느 친지가 날 찾아 오나
당신이 날마다고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 오이김치 초치고
칼로 물치듯이 뚝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가고서 왜 또 돌아왔나
산진매 수진매야 휘휘 칭칭 보라매야
절끈 밑에 풍경달고 풍경 밑에 방울달아
앞남산에 불까토리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저 공중에 높이 떠서
빙글뱅글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숙암 단임 봉두군이
세모재비 메밀쌀 사절치기 강낭콩
주먹같은 통로구에
오글박작 끊는데
시어머니 잔소리는 부시돌 치듯하네
앞으로 보니 옥이백이 뒤로보니 반꼬두머리
번들번들 숫돌이며 박죽 잘글 툭툭 차던 우리 시어머니여
공동묘지 오시라고 호출장이 왔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 치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우리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옆전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다녀 오세요
우리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씨구씨구 모재씨구 깍구깍구 머리깍구
밑맨미투리 딱거머신구 메물볶음떡 세반제기
한짐 잔뜩 걸머지구 웃짐지구 덧짐지구
대화방임 원주대벌루
삼촌에 도부갔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우리집 시어머니 날 삼베 질삼 못 한다고
앞 남산 관솔괭에 놓고서
날만 꽝꽝치더니
한오백년 못 살고서 북망산천 가셨네
동네 어른들 들어보세요
우리집에 시어머니 뒤로보면 왕대골 앞으로보면 숫돌님
구리눈에 옥니배기 주걱턱에 자래목에 곱세등에 배불때기
수중다리 밥자루지고야
날만 때리더니
강림도령 모셔 가더니 여태 소식이 없어요.
2005. 2. 18. 휘뚜루 작성.